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소동기 변호사의 골프생각

캐디 성희롱 관련사건을 위한 준비서면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김영민

캐디 성희롱 관련사건을 위한 준비서면

2/4
또 당신은 증거를 대라고 하셨군요. 이는 그야말로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행위입니다. 골프에서는 ‘의심받을 만한 행위’조차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지요. 제가 지켜보니 당신은 게임의 정신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곳 스코틀랜드에서는 골프의 오락성만을 탐닉해 파다, 보기다 떠들어대는 사람을 가장 경멸합니다. 골프에서는 어떻게 홀아웃했는지를 말하기 전에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그 세세한 행동이야말로 평판의 대상이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네요.”

그러면서 브라우닝은 땅에다 볼을 놓고 포터의 흉내를 내보였다.

“자 보세요! 당신은 이렇게 했습니다. 클럽 끝으로 떠 있는 라이에 볼을 올려놓고 당신에게 유리하게 게임을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비열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자세였습니다. 잘 보십시오. 이래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재판장님,

골프라는 운동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돼 국민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뿐 아니라, 때론 비리의 온상으로 비칠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또한 골퍼를 나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든 이야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본래 골프경기는 다른 운동과 달리 심판이 없기 때문에 발생 초기부터 정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운동이었습니다. 골프가 ‘신사의 운동’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골프 규칙에 전통적으로 ‘볼은 있는 그대로 플레이돼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2대 원칙이 있었던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골프가 지닌 이렇듯 미묘한 양면성 때문에 골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 역시 이중적인 경향을 띱니다.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골프를 혐오하거나 적대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골프를 하는 사람들은 그 본연의 면을 보기보다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골프를 치는 것이 마치 무슨 큰 벼슬이나 되는 양 거만을 떨며 스코어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성희롱 경고받자 명예훼손 고소

본 사건에서 자신을 채권자로, 골프장을 채무자로 하는 회원 제명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사람의 태도도 골프에 관한 부정적인 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회사의 사장으로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거금을 내고 골프 회원권을 취득한 채권자가, 그것도 이미 환갑을 지나 인생의 황혼녘에 선 사람이, 나이 어린 경기보조원(캐디)들에게 거친 말을 한 것이 이 사건의 요지입니다. 아무리 자기 돈 자기가 마음대로 쓰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전세금이 없어서 엄동설한에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그의 유죄를 인정한 형사판결과 달리 백보를 양보해 그가 자신의 주장대로 경기보조원을 강제추행하지 않았다 해도, 성희롱을 했다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한 채권자의 행동이 사건의 무대가 된 골프장 회원권을 가진 골퍼이기 때문에 용인돼야 하는 것일까요.

참고로 이 사건과 관련해 채권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형사판결은,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아래와 같은 취지로 판시했습니다.

피고인은, ○○컨트리클럽의 회원인바,

1. ○○컨트리클럽 1번홀 티박스 부근에서 드라이버헤드로 피해자인 경기보조원의 엉덩이 부위를 수회 툭툭 치고, 같은 날 4번홀 부근에서 세컨드샷 지점으로 카트를 타고 이동하던 중 왼손으로 위 피해자의 오른쪽 허벅지를 만지면서 수회 주물러 위 피해자를 강제 추행했고,

2.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만나자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대한 경위서를 작성해 ○○컨트리클럽에 제출한 것에 불만을 품고는, 자신이 운영하는 ○○주식회사 사무실에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년, 쌍년, 너 이년, 내 앞에 무릎을 꿇려버리겠다. 네까짓 게 뭔데, 너 쪽문으로 다니지? 너 이년 사람 시켜서 데려와 패겠다”라고 말해 피해자를 협박했고,

3. ○○컨트리클럽 4번홀 부근에서 경기보조원에게 “이곳 언니 중에 싸가지가 없는 애도 몇 명 있다. 여기 ○○○이라고 있는데 걔 진짜 싸가지가 없다. 일도 제대로 못하고 볼 봤냐고 물어보면 못 봤다고 대답한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싸가지는 제일로 없다. 어떻게든 ○○○을 이 회사에서 짤리게 만들겠다”라고 말해 공연히 ○○○를 모욕하고,

4. 소재불상의 회사 사무실에서 공소 외 성명불상자로 하여금 그곳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케 한 후 인터넷 문자메시지 발송서버로 “골프장에서 폭리 착취하고 회원 하대하며 인권탄압 일삼는 ○○자본 하수인 퇴출하자”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컨트리클럽 회원 200여 명의 휴대전화로 발송하도록 한 것을 비롯해, 모두 4회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문자메시지를 발송토록 해 공연히 ○○컨트리클럽을 모욕했다.

2/4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김영민
목록 닫기

캐디 성희롱 관련사건을 위한 준비서면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