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유영혜가 ‘중앙’ 1936년 9월호에 기고한‘제2의 노라 : 결혼의 비극’으로 사진 속 인물이 유영혜다.(위) 최옥희(아래 좌) 김상한(아래 우)
식장으로 들어오는 하객들의 상의는 장대비에 흠뻑 젖었고, 하의는 흙탕물이 튀어 여기저기 얼룩이 졌다. 그래도 하객들은 봉래각 입구에 서서 굳은 표정으로 하객을 맞는 신랑에게 싫은 내색 없이 환하게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이렇게 좋은 날 신랑 표정이 그게 뭔가. 난처해할 것 없네. 결혼식 날 비가 오면 백년해로한다지 않는가.”
하객들의 덕담이 이어져도 김상한의 굳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표정이 어두운 것은 신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객을 맞는 내도록 신랑 가족들도, 신부 가족들도 어색한 미소 한번 짓지 않았다.
아수라장이 된 결혼식
오후 3시 정각, 사회자는 곧 식이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식장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 환담을 나누던 하객들은 식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고, 신랑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식장으로 입장할 준비를 했다. 사회자가 신랑 입장을 선언하려 할 때,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두르고 양장을 차려입은 여인이 신랑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식장으로 걸어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새를 보면 누구든 한눈에 기생임을 알 수 있었다. 하객들의 시선은 난데없이 출현한 기생에게 쏠렸다.
불청객의 출현으로 결혼식장은 삽시간에 대혼란에 빠졌다. 신랑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급기야 신부 대기실로 몸을 피했고, 양가 가족들도 신랑을 쫓아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다. 하객들은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느라 웅성거렸다. 얼마 후 신부의 오빠 유의탁이 식장으로 들어와 불청객에게 다가갔다.
“그만 나가주시죠.”
“….”
불청객은 대꾸도 하지 않고 버텼다. 유의탁은 기생과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식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얼마 후, 유의탁은 본정(오늘날의 충무로)경찰서 경관과 함께 식장으로 돌아왔다. 서슬 퍼런 경찰이 나가라고 명령해도 기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완력으로 끌어내려 하자 급기야 기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경찰은 난감한 듯 쳐다보다가 유의탁과 나직이 몇 마디를 주고받은 후 최후통첩을 내렸다.
“좋소. 정 결혼식을 지켜봐야겠거든 자리에 앉아 있어도 좋소. 하지만 만일 결혼식을 조금이라도 방해한다면 그땐 경찰서로 끌고 가 즉결에 넘기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