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의 39개 대학 중 8개 대학이 세계 대학순위 50위권에 들었다. 41개국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비교한 PISA 평가 4개 부문 중 2개 부문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도 세계 대학순위 100위권 밖에 머무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대조된다. 태양전지, 페니실린, 인공와우이식 등 생활수준을 한 단계 높인 친숙한 발명들도 호주 과학자의 작품이다. 호주교육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
호주인들의 업적은 노벨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왔다. 지금껏 9명의 호주인이 노벨상을 받았으며, 문학상 수상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모두 과학 및 의학 분야에서 배출됐다. 그중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2005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 베리 마셜 교수는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헬리코박터균을 직접 마신 일화로도 유명하다.
호주 과학자가 이룩한 업적들은 이미 생활용어가 됐을 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 예를 들어 블랙박스, 전파 망원경, 제록스 복사, 태양전지, 페니실린, 초음파 스캐너, 인공와우이식, 심장박동조절기, 조류독감 백신, 라텍스 수술용 장갑, 미세혈관수술, 섬유광학, 각종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등이 있다.
호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독보적인 반면, 한국은 이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데 탁월하다. 두 국가의 이런 강점들이 상호 보완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양국의 경쟁력이 보완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때다.
오늘날 호주와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적인 학업과 진로를 위해 해외 우수 교육기관을 찾느라 바쁘다. 필자는 지난 7년간 한국에서 일하면서 결혼해 아이를 둔 학부모이며, 현재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교육과학참사관으로 재직 중이다. 이런 배경으로 필자는 자연스레 한국과 호주의 상호 보완적인 교육경쟁력 활용방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학이 낳은 ‘멀티플레이어’
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아낌없는 투자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한국만큼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한국 기업들은 최첨단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으며, 한국은 세계 최고 인터넷 강국 중 하나다.
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부 이사인 호주의 베리 맥고어 교수는 지난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최근 발표된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41개 OECD 국가에서 27만5000명에 이르는 15세 이상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비교 연구) 결과를 인용, 한국의 학교교육이 질과 형평성에서 세계 최고이며, 호주를 비롯한 많은 국가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 학생들의 높은 학업성취도 요인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과 폴란드의 교육 비평준화 정책이 PISA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과 달리, 한국의 평준화 정책은 교육의 전체적인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평준화 정책은 우수한 학생보다는 덜 우수한 학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안겨주었다. 이는 폴란드의 예에서도 증명됐다. 2000년 PISA에서 저조한 성적을 보인 폴란드가 비평준화 정책에서 평준화 정책으로 전환한 뒤, 2003년에는 훨씬 향상된 PISA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학교교육이 우수한데도 불구하고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5964명을 비롯해 많은 한국 학생이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맥고어 교수는 높은 PISA 수치를 자랑하는 핀란드의 교육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한국 학생들도 ‘높은 학업성취도와 더 많은 여가시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학을 떠나는 한국 학생이 해마다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주에서는 학업 성취 못지않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여가활동도 중요하게 여긴다.
호주의 기본 교육체계는 초등과정 6년, 중·고등 과정 6년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호주 교육이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토론과 비판적인 글쓰기를 강조하며 사고력, 호기심, 창의력 계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영어 동화를 읽어주는 메리 제인 리디코트씨. 호주 교육은 자율적 토론과 비판적 글쓰기를 강조한다.
물론 유학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보다 많은 여가 시간을 이용해 교과목 이외의 음악, 미술, 스포츠, 외국어 학습이 가능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 외국어(영어)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호주 정부는 호주 학생들에게 외국 유학을 적극 권장한다. 실제로 호주 학생이 한국에서 1년간 생활한 뒤 쌓은 한국어 실력은 호주에서 6년간 배운 한국어 실력과 맞먹는다. 필자도 1984년 일본에 머물면서 그런 경험을 한 바 있다.
유학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독립성, 유연성, 적응력, 글로벌 마인드와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는 울타리식 학교 교육에서는 얻기 힘든 능력이다. 제2, 제3의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적인 취업경쟁 속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각광 받을 수 있다.
대학 3분의 1이 세계 200위권
호주 학생들은 자신의 학업이나 연구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며 도전의식이 높은 편이다. 호주는 이주 역사가 시작된 1788년부터 일찍이 발명가와 과학자의 산실이었다. 이는 호주가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어 자급자족을 하지 않고선 살 수 없는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호주를 최첨단 기술과 발명의 나라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보다 교육, 특히 대학교육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호주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한다. 호주 교육은 비판적·주체적 사고, 폭넓은 읽기, 토론 참여, 협력과 협동에 중점을 둔다. 호주에서는 학생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적성과 개성에 맞는 학업진로를 선택하도록 한다. 반면 한국의 교육체제는 일정한 틀 안에서 기존의 지식을 적용, 개발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강점을 갖고 있다. 양국의 이와 같은 강점은 학생의 가치를 최대화하는 데 상호의존적이다.
한국인은 호주의 대학들이 세계의 우수 대학 순위 안에 드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한다. 미국에 3000개에 육박하는 대학이 있는 반면 호주의 대학은 고작 39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주 ‘Times Higher Education Supplement’가 발간한 대학순위에 따르면, 호주 대학의 3분에 1이 200위 안에 선정됐으며, 이중 무려 8개 대학이 50위 안에 올랐다. 세계 인구의 0.3%에 불과한 호주가 세계 과학지식의 3%에 이르는 공헌기록을 남긴 비결은 무엇인가.
호주 정부는 대학간 경쟁을 장려하기위해 다양한 대학평가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적용해 각 대학의 실력을 꾸준히 검증하고 있다. 대학들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OECD 역시 학생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세계의 대학과 학부를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PISA 같은 의미 있고 타당한 순위평가 시스템 개발에 고심하고 있다.
유학을 앞둔 학생은 순위가 높은 우수 대학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과정의 학교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정 분야에 한해서는 세계 최상위권의 대학이나 명문 대학들보다 훨씬 명망 있는 대학도 많다. 다시 말해 특정 분야로 인해 유명해진 대학의 타 분야는 그 명성과 전혀 관계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대학순위를 매기지 않지만 학생들이 대학 진학시 참고할 수 있는 대학 진학 정보지 ‘Good University Guide’ 등 다양한 자료를 발간한다. ‘Good University Guide’는 정부나 기타 신뢰할 만한 기관들의 자료를 토대로 호주에 있는 39개 대학의 상세한 정보와 나름의 평가 내용을 제공한다(www.hobsons.com.au).
또한 감사독립기구인 호주대학품질국(AUQA)이 5년 주기로 발행하는 감사보고서도 열람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교수학습, 연구, 경영 등에 관한 감사 자료를 담고 있다. 호주 연방정부에서 매년 발행하는 대학교육의 품질보증과 개선방안에 관한 자료도 참고할 만하다. 자신에게 적합한 대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단순히 대학순위에 의존해 대학을 선택하기보다는 각종 진학 가이드 책자 및 보고서를 두루 살핀 뒤 자신이 원하는 항목이 반영된 기준들을 조목조목 살펴보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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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964명에 달하는 한국 학생이 호주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이수 중이고, 전공과정도 비즈니스, 경영, 정보통신기술, 과학, 엔지니어링, 약학, 치과, 법학, 재정학, 사회 · 공동체학, 관광학, 영화학, 텔레비전·디지털 미디어학, 교육, TESOL 등 다양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유학 중인 호주 학생은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흔히 언어의 장벽 때문에 더 많은 외국 학생을 유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한국대학이 영어로 수업하는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한국 대학들이 제공하는 과정에 대한 정보 부족이 그 원인이다. 한국과 호주 대학 간의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연계가 해결의 열쇠다.
호주 정부와 대학들은 바이오 의학, 나노 테크놀로지, 과학수사, 정보통신기술 보안, 에너지와 재료공학, 환경·해양학, 천문학 등 한국과 호주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영역에서 더 많은 공동연구가 이뤄지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호주 정부와 대학들은 다양한 장학금을 정책적으로 마련해놓고 있다.
‘의무교육 혜택’이라는 울타리
한국과는 달리 호주 학부모들은 교육비 부담이 덜하다. 시내에서 수천km 떨어진 외딴 곳의 학생도 10학년까지 보장된 우수한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다. 대학 학비는 졸업 후 일정 규모의 소득이 있을 때 원천징수된다. 생활비나 교통비가 걱정되는 저소득층 학생은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지원 받을 수 있다.
호주 학부모들은 스포츠, 음악, 대중연설, 연극, 미술 등과 같은 인성교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자녀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지니고 자아와 사회를 존중하며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의사소통 능력, 자제력, 탐구심, 그리고 자아·타인·사회를 존중하는 마음을 통해 대인관계 능력 향상을 꾀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자녀들을 격려한다.
대학 졸업 후 대부분의 사람은 취업을 하고,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 그에 준하는 학위를 취득한다. 직업 만족도는 임금, 지위, 성취감, 적성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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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한국의 대학졸업자 취업률은 매우 유사하다.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07’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호주에서 25~64세 인구 중 23%가량이 대학을 졸업했으며, 대학졸업자의 남녀 평균 실업률은 한국과 호주 모두 2.4%를 기록했다. 참고로 OECD 국가들의 남녀 평균 실업률은 각각 3.6%와 4.3%이다.
호주 총인구 2100만명 중 약 100만명은 해외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유연성, 적응력, 생산성, 자립성, 문제 해결능력은 호주 인력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인들도 전세계를 누비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목표를 이루어내는 근면성, 헌신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전통적으로 호주에서는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해서 지식, 기술, 자질이 학위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졸업한 학교의 이름 자체는 취업에 큰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호주 학생들은 대학 진학 때 단순히 학교의 유명세나 순위를 좇기보다는 자신의 소신과 필요에 따라 과정과 대학을 선택한다.
호주와 한국의 교육 시스템 자체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각각의 시스템은 대조적인 양상을 띤다. 국제적 시각으로 볼 때 양국의 교육 시스템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창의성 교육을 바탕으로 개발과 적용능력이 중시되는 교육환경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면 두 나라는 세계를 이끌어갈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최근까지 진학이나 취업을 할 때 지역적 위치, 거리, 비용 및 그 외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러한 제약들은 이제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 시스템, 교육기관, 문화를 찾아 전세계로 유학을 떠난다. 과거에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교육을 받는 공간적인 제약이 따랐지만, 지금은 자신이 원하는 특성을 지닌 교육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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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비용 문제는 어떠한가. 인터넷 덕분에 비용 문제도 더 이상 큰 제약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Australian University의 글린 데이비스 총장은 지난달 ‘The End of the Gatekeeper’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이 교육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누구나 무료로 온라인상의 지식에 접근하여 활용할 수 있으므로, 대학들은 모든 것을 재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와 교육 시스템에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도전과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신경 써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원하는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좋은 조력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육의 세계화, 개방, 다양화로 인해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만큼 필자를 포함한 학부모의 역할은 가히 도전적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우선 한국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헌신, 그리고 한국식 교육 방법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남편을 둔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