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날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은 친자본주의적인 듯하지만 여전히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한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중국의 하이에크’로 불리는 류쥔닝 캐세이공공정책연구소 소장은 중국 공안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정부의 감시와 통제에 주눅 들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그를 베이징에서 만났다.
劉軍寧<br>▼ 베이징대 박사(정치학)<br>▼ 現 Cathay Instititute for Public Affairs(CIPA) 원장<br>▼ ‘뉴욕타임스’ 선정 China’s Bright Young Stars, ‘워싱턴포스트’ 선정 China Democracy’s Vital Voices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유재산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일은 범죄일 수 있다. 중국이 그렇다.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다. 사유재산은 지극히 부분적으로만 인정될 뿐이고, 경제활동의 자유 역시 작은 규모에 국한된다.
그런 중국에서 사유재산과 경제적 자유,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자유인을 만나봤다. 캐세이공공정책연구소의 류쥔닝(劉軍寧·46) 소장이다. 연구소라고는 하지만 따로 사무실을 갖춘 연구소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실질적으로 민간 연구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류 소장처럼 당국이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일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온라인으로만 존재하는 연구소’의 류쥔닝 소장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위해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김정호 미국 하와이대 케이트 주 교수가 류 박사를 ‘중국의 하이에크’라고 칭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류 박사는 중국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류쥔닝 중국의 하이에크라는 별명은 제게 과합니다. 저는 그저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고 있을 뿐이지요.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중국인, 자유주의에 호의적
김정호 캐세이공공정책연구소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합니까.
류쥔닝 크게 세 가지입니다. 먼저, 젊고 유망한 젊은 자유주의자를 발굴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공공정책과 사회 문제들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의 반응을 조직하는 일을 합니다. 세미나도 열고 논평도 내보내지요. 연구소의 웹사이트(jiuding.org)가 주된 전달 수단이지만, 상대적으로 당의 통제가 느슨한 지방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합니다. 또한 중국 밖의 자유주의자들과 교류하는 통로 노릇을 합니다.
김정호 사유재산과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류 박사의 메시지에 중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익숙하지 않은 사상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진 않나요.
류쥔닝 그렇지 않습니다. 제 얘기에 상당히 호의적으로 반응하며 잘 받아들입니다.
김정호 학교에서 자유주의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텐데 류 박사께선 어떻게 자유주의자가 되었습니까.
류쥔닝 정식으로 자유주의 교육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자생적 자유주의자라고 할까요. 저는 낙후한 안후이성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개혁개방 이전에 공산주의 교육을 받았고,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베이징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가 미제스나 하이에크 같은 자유주의 철학자의 학문을 접하고 거기에 경도된 것은 중국사회과학원에 다니면서부터죠. 그 연구소 도서관에서 그러한 책들을 읽으면서 자유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김정호 류 박사는 중국 공안의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압니다. 생활하는 데 불편하진 않습니까.
류쥔닝 아마 지금도 중국 공안이 절 요주의 인물로 분류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위험할 건 없어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데, 하나는 요주의 인물이 하도 많아서 당국으로서도 감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경제가 확장되면서 당국의 감시를 받지 않는 영역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지방지에만 글을 기고할 수 있고, 당의 직접 통제를 받는 중앙지에는 글을 실을 수 없다는 거죠. 모든 신문이 당의 소유이긴 하지만, 지방지에 대해선 당의 통제가 느슨한 편입니다.
‘시카고 보이’
류쥔닝 소장은 중국 인민이 충분한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류쥔닝 자유파는 대개 고전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자유파는 지난 10여 년 동안 급속히 성장했어요. 그 밖에 신좌파, 국가주의파, 마르크스주의파 등이 있는데, 대놓고 자유주의라고 말할 형편은 못되지만 제대로 공부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선 자유파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영향력도 큽니다.
김정호 자유주의는 경제학적 사고방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현대경제학은 자유주의적 사고의 근원이기도 한데, 중국의 경제학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마르크스나 마오쩌둥 경제학이 주도하고 있나요? 아니면 가령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시카고 학파나 오스트리아 학파도 영향력이 있습니까.
류쥔닝 중국의 모든 경제학자는 공식적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내용으로 들어가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해도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요.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시장경제 지향적입니다. 현재 중국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저스틴 린 박사가 대표적이죠. 그는 ‘시카고 보이(Chicago Boy)’예요. 시카고 보이란 피노체트 정권 당시 시카고대 출신의 칠레 경제학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그들은 피노체트의 독재를 용인하면서 칠레의 경제정책을 시장경제 지향적으로 이끌어 갔어요. 현재 중국 정부와 대학에는 그런 시카고 보이 스타일의 경제학자가 많습니다. 한편 중국 학생들은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뿐 아니라 그보다 더 철저한 자유주의 경제학인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학에도 매료되고 있습니다.
김정호 류자이푸가 쓴 ‘전통과 중국인’에 따르면 중국인에게 자유의 개념은 매우 낯선 것으로 묘사되는데, 류 박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중국 문명사에도 자유주의 전통이 있다고 봅니까.
중국의 자유주의 역사
류쥔닝 자유주의 역사는 깊어요. 노자와 장자의 도가(道家) 사상, 무위자연 사상이 그렇죠. 인간사를 포함한 만물의 움직임에 개입하지 말고 도에 따라 스스로 흘러가는 대로 놔두라는 것이 자유주의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노자의 ‘도(道)’는 모든 권력 위에 있고, 궁극적 정의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왕과 황제들이 중앙집권적 사상인 공자의 사상을 공식 이데올로기로 삼았지만, 도가사상은 중국인의 문화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관중(管仲), 양주(楊朱), 회남자(淮南子) 같은 사람들도 자유주의 사상가로 봐야 합니다. 세계 최초의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는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도 공자가 아닌 노자의 도가사상 영향을 깊이 받은 사람이죠.
김정호 류 박사께선 중국이 번영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철저한 사유재산제도와 경제적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유재산제도와 경제적 자유가 중국의 번영을 가져온다는 확신의 근거를 중국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으로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류쥔닝 왕조의 흥망을 결정한 원인은 아주 다양할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적인 결정 요인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통치자가 백성의 재산권을 존중하지 않고 약탈을 일삼는 순간부터 멸망으로 치달았다는 사실이죠. 반면 백성의 재산권을 존중한 왕조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당 태종을 생각해보세요. 그는 세금을 줄이고 가렴주구를 없앴어요. 당시 관점에서는 사유재산제도를 철저히 한 거죠. 양귀비로 유명한 현종 말년부터 가렴주구가 시작되고 그것이 당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패턴은 다른 왕조에서도 계속 되풀이됩니다.
“당내 민주주의, 말 안 된다”
김정호 보통의 중국인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류쥔닝 아직도 많은 사람이 마오쩌둥과 공산당을 숭배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역사의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죠. 대약진운동 과정에서 수천만이 아사(餓死)한 비극을 아는 중국인은 별로 없어요. 학생들은 문화혁명의 비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고요. 그런 것들이 밝혀지면 마오쩌둥과 공산당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쩌둥 치하에서뿐 아니라 덩샤오핑 때도, 지금의 후진타오 치하에서도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거죠.
김정호 중국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중국인들도 진정 민주주의를 원하나요.
류쥔닝 중국에서도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믿음에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중국 인민들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커지고 있고요. 다만 당이 민주화에 호의적이지 않고, 민주주의로의 개혁을 거부하고 있지요.
김정호 입헌민주주의와 당내 민주주의 논쟁에서 류 박사는 입헌민주주의 옹호자인 것으로 압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왜 입헌민주주의를 지지하는지 설명해주시죠.
류쥔닝 입헌민주주의란 헌법 안에서의 민주주의를 뜻하지요. 서방의 여러 나라와 남한이 그렇듯이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주의, 보통선거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가 바로 입헌민주주의입니다. 어떤 정치세력도 법 아래에 있지요. 한편 당내 민주주의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고도 하는데, 공산당 내에서의 민주주의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됩니다. 독재체제하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지요. 당내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구호는 진정한 민주화를 늦추기 위한 구실에 불과합니다. 제가 입헌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그것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에요. 또 그것만이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준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했기 때문이고요. 그런 민주주의 아래서 특정 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든 않든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에요. 유권자들이 심판할 테니까요.
“反독점법은 ‘코미디’”
김정호 경제적으로 낙후된 중국 서부 내륙지역민의 불만이 고조돼 정치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요.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데 성장 위주의 자유주의 정책보다 분배 위주의 정책이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합니까.
류쥔닝 현재의 정치적 불안은 지역간 소득격차 때문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소득격차는 민주화가 달성된 후에도 여전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지요.
김정호 “어떤 자유도 없던 중국에 약간의 자유가 주어지자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이 가능하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약간의 자유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류쥔닝 일한 사람이 그 결과를 갖고, 또 다른 일을 벌일 수 있는 자유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작은 사업에 국한해 허용됩니다. 조그마한 공장, 조그마한 식당은 비교적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지만, 큰 기업이나 은행, 보험 같은 금융업종은 민간이 할 수 없지요. 아직도 중국 경제는 제대로 된 자유경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정호 최근 도입되고 있는 반(反)독점법이나 노동관계법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류쥔닝 중국의 반독점법은 한마디로 ‘코미디’예요. 주로 국유 대기업과 외국 기업이 그 대상이 될 텐데, 국유 대기업 간에 어떻게 경쟁할지는 결국 국가가 결정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은 국유 석유회사가 민간 소유의 주유소를 사들이고 있어요. 국영 대기업 간의 경쟁은 허울뿐인 경쟁(facade competition)이죠. 필요한 것은 반독점법이 아니라 국유 기업의 민영화예요. 한편 외자 기업들에 대해서는 경쟁을 촉진하기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친(親)노동정책은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도 양날의 칼을 지닌 정책이라고 봐요.
김정호 한국에서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도시가 팽창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강력한 수도권 규제 정책을 시행해왔지요. 중국의 경제성장도 상하이, 베이징, 톈진 같은 대도시 팽창을 가져왔는데, 중국 정부도 이들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까.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이 있는지요.
류쥔닝 중국 정부도 지역균형정책을 쓰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대서부발전전략(大西部發展戰略)입니다. 동부 도시들에서 거둔 돈을 서부 지방에 씀으로써 도시화가 일부 지역에 편중하는 현상을 막으려는 정책이죠. 하지만 동부 도시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은 없습니다.
김정호 중국에서 사유재산제도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나요. 토지소유권은 확실히 보장됩니까.
류쥔닝 저는 사유재산제도가 다른 모든 권리와 자유의 기초라고 생각해요. 불행하게도 중국에서는 사유재산제도와 경제적 자유 보장이 아주 열악한 상태죠. 토지사유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개발 사업을 할 땐 아주 형편없는 보상만 해주고 토지를 수용합니다. 그래서 베이징엔 방방곡곡에서 헐값에 땅을 뺏긴 후 억울함을 탄원하려는 사람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토방촌(土訪村)’이라는 곳까지 생겨났지요.
김정호 보상 가격은 누가 결정합니까.
류쥔닝 촌장이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몰라요. 촌장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만 당이 임명한 촌서기(村書記)의 감독을 받습니다. 결국 당이 결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개발업자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보상이 이뤄질 경우 대개 뇌물이 오갑니다.
김정호 제조업이나 금융업 사정은 어떻습니까.
류쥔닝 민간인이 금융회사를 설립하거나 소유할 수 없습니다. 증권회사건 은행이건 중국에 민간 금융기업은 존재하지 않죠. 제조업의 경우도 대기업은 대부분 국가 소유이고,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민간인 소유로 돼 있어요. 주요 산업은 모두 국가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국유가 중국 기업의 지배적 소유 형태라 경제적 자유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에요.
김정호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은 상당히 자본주의 국가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에서 보인 전체주의적 양상과 요즘의 자본주의적 양상 중 어느 쪽이 진짜 중국의 모습인가요.
류쥔닝 중국은 아직 진정한 자본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스탈린식 사회주의와 외견상의 자본주의가 결합된 형태, 혹은 공산주의 몸에 자본주의 옷을 입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남한의 시장경제가 북한으로
김정호 1998년에 ‘아시아적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썼지요.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은 서구인과 달리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사상을 갖기 어려운 가치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류쥔닝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인간 본성의 보편성을 믿고, 자유를 향한 성향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든 이슬람이든 모든 지역이 저마다 고유한 역사적 전통을 가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유와 사유재산제도에 치명적 장애는 아니라고 봅니다. 남한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자유주의자는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며, 김 원장님과 제가 그렇듯 동아시아에도 건재해요. 역사를 보더라도 노자, 장자 같은 사상가들은 인류 최초의 자유인 아닙니까. 자유주의는 동아시아적 전통의 매우 값진 부분이지요.
김정호 한국에서는 한중 FT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중국에선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류 박사의 개인적인 견해도 궁금하고요.
류쥔닝 어느 나라와의 FTA도 찬성이에요. 하지만 보통의 중국인은 거기에 관심이 없지요. 중국은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죠. FTA 같은 정책 문제는 정책 당국자들의 몫이라 일반인은 관심이 없어요. 신문에서조차 언급하지 않는 걸요.
김정호 마지막으로 남한과 북한의 통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류쥔닝 남한과 북한은 각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전세계에 보여주는 박물관인 셈이죠. 남한의 성공은 동아시아 전통이 자유시장 및 자유민주주의를 성취하는 데 걸림돌이 아님을 입증하기도 하고요. 하이에크가 말한 대로 시장경제는 확장된 질서이기 때문에 서독의 체제가 동독으로 확장됐듯 남한의 시장경제도 북한으로 확장돼가리라 확신합니다.
동아시아 통합의 날
베이징에서 류 박사와 두 시간여 대화를 나누는 내내 든 생각은 ‘반쯤 찬 물잔’의 비유였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이 중국을 상당히 자본주의적인 나라로 여긴다. 하지만 류 박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중국의 체제를 자본주의로 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유재산제나 경제적 자유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역사상 가장 철저했던 공산주의 체제, 즉 마오쩌둥 체제에서 벗어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우리가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보는 것은 중국 당국이 외자유치를 위해 한국 기업에 베푸는 특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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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박사는 무위자연사상의 시조인 노자와 장자 같은 훌륭한 자유주의 사상가가 배출된 중국에서 인민들이 정권의 압제에 시달리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중국인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잘해낼 수 있음에도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중국의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어디서나 자유의 가장 큰 적은 정부인 모양이다.
이번 대화에서 또 한 가지 실감한 것은 중국이 정말 가깝다는 사실이다. 아침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베이징에서 대담을 하고, 다시 밤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왔다. 시간으로 따지면 베이징이나 제주도나 별반 차이 없다.
동아시아도 유럽처럼 통합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