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한국디지털대 김중순 총장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7-12-07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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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평생교육법이 통과되면서 설립되기 시작해 6년 만에 17개로 늘어난 온라인 대학. 언제 어디서나 수강이 가능한 온라인 대학은 바쁜 직장인들에게 자기계발의 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온라인 대학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디지털대 김중순 총장은 “온라인 대학 특성을 무시한 법 적용은 힘겹게 일궈온 온라인 대학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디지털대 김중순 총장
    몇해 전부터 대학에 개설되기 시작한 온라인 강의는 오프라인 강의와는 다른 차원의 편리함으로 학생의 환영을 받았다. 인터넷을 통해 듣는 1대 1 강의로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 비 오는 날 2시간씩 걸려 학교까지 갈 필요도, 답답한 교실에서 몸을 웅크릴 필요도 없어졌다. 게다가 다른 대학 교수는 물론 외국 대학 유명 교수의 수업을 듣는 것도 가능해졌다. 온라인 강의는 이런 매력으로 수강신청 인기 1순위를 달리게 됐다. 일정이 빠듯한 연예인 대학생들도 주로 온라인 강의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모든 강의를 온라인으로만 제공하는 대학이 있다. 2000년 평생교육법이 통과되면서 온라인 강의만 제공하는 온라인 대학이 문을 연 것. 실시간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송통신대와 달리 온라인 대학의 강의는 정해진 기간 내에 스스로 일정을 조절해 학습한다는 면에서 좀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2월 문을 연 한국디지털대학은 한국 최초의 온라인 대학이다. 7개 학과 800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한국디지털대학은 2006년 13개 학과 재적생수 7000명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했다. 11월12일, 서울 종로구 계동 계산 아래에 자리 잡은 한국디지털대에서 김중순(金重洵·69) 총장을 만났다. 김 총장은 온라인 대학의 현황부터 설명했다.

    “현재 17개 온라인 대학이 있고, 그 가운데 2개는 2년제입니다. 2001년 설립된 대학이 9개였는데, 6년 사이에 2배로 늘어난 것이지요. 이들 가운데 오프라인 대학에 속한 온라인 대학도 있고, 한국디지털대학처럼 온라인 대학만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 처음 설립하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겠군요.



    “국내에 벤치마킹할 만한 모델이 없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중, 강의 콘텐츠와 수업자료를 동영상과 텍스트로 만드는 기술적인 문제가 제일 컸습니다. 교수들도 1주일치 수업 분량을 미리 녹화하는 데 적응하느라 힘들어 했고요. 수업 내용 이외의 이야기도 하고 적절하게 쉬어가며 진행하는 오프라인 수업과 달리 90분 내리 수업만 해야 한다는 부담도 컸을 테고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 온라인 대학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온라인 대학은 평생교육법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글자 그대로 평생교육시대에 평생교육을 하는 데 있어 온라인 대학은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간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을 위해 학원, 야간대학 등을 이용했는데,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수업 듣는 게 좀 꺼려질 수도 있잖아요. 온라인 대학에선 온라인으로만 강의를 듣고도 4년제 대학 학위를 딸 수 있고, 등록금이 저렴해(학점당 6만원) 여러 전공을 공부할 수도 있지요. 원하는 전공을 깊이 공부한 뒤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 직장인 학생이 많겠군요.

    “학생은 세 부류로 나뉩니다. 대학 못 가서 한 맺힌 사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사람, 진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 이들 중 40~50%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다시 대학 문을 두드린 학생들이지요. 불안정한 시대에 교육, 즉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겁니다.

    직장인 학생 비율은 70~80%입니다. 이들은 업무와 관계 있는 전공을 선택하기도 하고, 관심 있는 다른 분야를 공부하기도 하지요. 사회복지과, 부동산경제학과, 실용외국어학과 등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겁니다. 공부 자체가 좋아서 여러 전공을 듣는 학생도 있습니다.”

    김중순 총장은 40년 가까이 미국에서 생활했다. 특히 1981년부터 테네시대에서 교수 및 학부장을 거치며 미국 대학 시스템을 면밀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김 총장은 “내가 미국 대학 경험이 많아서인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으로부터 ‘전통 대학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디지털 시대 대학이니 창의성을 발휘해 학교를 운영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창의성 죽이는 교육제도

    한국디지털대 김중순 총장

    한국디지털대는 결혼이민자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해 한국어와 한국문화 온라인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막상 총장을 맡고 보니 허허벌판에 던져진 듯 막막한 기분이었다. 선례가 없다 보니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촘촘한 규제가 그것이다. 모든 걸 대학에 맡기고 기본적인 부분만 법 테두리 안에서 제재하는 미국 교육당국과 달리, 한국은 일을 진행시키기 힘들 정도로 규제가 심했다. 법망을 뚫느라 하루 걸릴 일이 이틀, 사흘씩 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미국 대학은 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경험을 살려 효율적으로 운영하려 했지만 교육부의 규제 때문에 창의성을 발휘하기 힘들더군요. 캘리포니아주는 우리나라보다 규모가 크지만, 교육부 관리는 우리가 훨씬 많습니다. 제가 머무르던 테네시주의 교육부 관리는 합쳐서 10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규제가 그만큼 심하다는 뜻이지요.”

    ▼ 우리 고등교육 문제의 본질이 과도한 규제에 있다고 보시는 군요.

    “우리 경제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데, 대학은 100위도 못합니다. 경제도 교육도 사람이 하는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왜일까요. 교육 관련 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지요. 모든 일을 진행하는 데 일일이 허가를 맡아야 하니 변화가 더딜 수밖에요. 예컨대 제 전공이 기업인류학인데, 예전에 연세대에 인류학과를 개설하려 했더니 절차가 복잡하더군요. 결국 정원이 35명을 넘어야 한다는 규정에 맞추지 못해 학과 개설이 흐지부지됐지요. 다양한 학문이 뿌리내리기 힘든 환경입니다.

    게다가 추진력도 부족합니다. ‘오프라인 대학엔 수시입학제가 있으니 온라인 대학에도 실업고교 학생을 수시입학 시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면 ‘좋은 생각인데 기다려 보라’고 하고선 계속 답이 없지요.”

    학문 위의 행정

    ▼ 교육관련 규제가 엄격해진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물론 교육당국에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배경을 살펴보면 그간 제 구실을 못한, ‘나쁜’ 대학들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도 많지만 등록금 받아서 장사하는 질 나쁜 대학도 많지 않습니까. 대학, 교수, 재단에도 책임이 있는 거지요.

    문제는 옥석을 가리기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대학 현황을 일일이 조사할 수도 없어 106개 대학을 하나의 잣대로 규제하다 보니 잘하는 대학도 발목을 잡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못하는 학교를 처벌하기보다는 잘하는 학교에 인센티브를 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 요즘 대학가에 교수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바람이 거센데요.

    “황우석 교수 사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연구할 시간이 모자랄 텐데, 강연도 다니고 대외활동도 많이 하는 것이 가짜가 아니면 가능하겠는가 하고요. 나쁜 교수상(像)의 단면을 보여준 사례라고 봅니다.

    흔히 교수 1명당 학생수가 많아서 문제라고들 하는데, 그것도 맞는 얘기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수의 질입니다. 요즘 선거철이 되면서 교수들이 정치판으로 뛰어드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왜 진작 정치를 안 하고 교수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학 내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장 시키고 보직을 주면 대우받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미국에선 학문이 행정 위에 있는데, 한국에선 반대로 행정이 학문보다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학교는 당연히 학자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거꾸로 된 것이지요. 학문, 그리고 가르치는 데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 교수를 해야 합니다. 다른 데 흥미가 있는 교수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어요.

    한국에는 미국 전문가가 없습니다. 미국 석·박사는 무수히 많아도 학교 행정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드물죠. 카이스트(KAIST) 서남표 총장이 테뉴어 심사를 강화해서 화제를 모았는데, 미국 대학에서 오래 있었던 양반이 한국 대학의 현실을 보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습니다. 미국은 테뉴어 심사를 할 때마다 교수들이 ‘심장마비 걸리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교수들이 밤 11시, 12시까지 공부할 수밖에 없지요.”

    ▼ 학생 관리 면에서는 어떤가요.

    “한국 대학들은 입학 정원을 늘리기 위해 로비합니다. 미국은 반대로 주에서 학생을 많이 받으라고 하고, 학교는 더는 못 받겠다며 승강이를 벌입니다. 학교 시설이 포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학생을 받지만, 절대 그 이상은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입학한 학생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지요. 한국 대학에선 낙제하는 경우가 드문데, 미국에선 2류 학교에서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낙제를 못 면하니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고등교육법, 울며 겨자 먹기

    지난 10월17일 개정 공포된 고등교육법에 따라 온라인 대학도 내년 4월 법 시행과 동시에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 이렇게 되면 평생교육법에 근거해 설립된 온라인 대학이 오프라인 대학에 상당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최근 몇몇 온라인 대학의 부정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부가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김 총장은 이에 대해 “온라인 대학의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대학은 평생교육법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오프라인 대학의 시각에서 본 가이드라인을 적용받게 됐습니다. 평생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학교를 도중에 룰을 바꿔 학교법인으로 가라는 것인데, 이렇게 법을 소급적용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쪽에서는 ‘계속 평생교육법을 따르라’고 하는데, 그러면 대학이 아닌 ‘평생교육시설’이 되면서 대학원도 설립할 수 없게 되는 등 손해가 많지요. 결국 부당해도 고등교육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직 시행세칙이 나오지 않아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 고등교육법 적용을 받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는 건가요.

    “우선 행정의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온라인 대학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런데 개정 고등교육법에서는 대학의 면적, 교수 확보율, 학교법인 기본재산 등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온라인 대학은 특성상 시스템 설비만 제대로 갖춘다면 기타 물리적 공간이나 시설은 필요하지 않기에 온라인 대학에 맞지 않는 규정이지요.”

    김 총장은 미국 피닉스 대학과의 학점 교환도 규제 때문에 무산됐다고 밝혔다. 1976년 설립된 피닉스 대학은 지금까지 25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미국의 대표적 온라인 대학.

    “오늘 신문에 ‘두바이와 싱가포르는 각각 20여 곳, 35곳의 해외 대학을 유치했지만, 한국은 단 1곳에 그쳤다’는 내용의 기사가 났더군요. 원인은 해외 대학의 설립과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입니다. 피닉스 대학과 학점 교환을 하자는 이야기가 오갔으나 ‘온라인 대학은 학점 교환을 못한다’는 규제 때문에 더는 일을 진척시킬 수가 없었죠. 결국 다른 쪽으로 협력할 방법을 생각해보자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연세대를 설립한 언더우드씨는 ‘한국은 국제화라면 올챙이가 다른 우물로 가는 걸 생각하지, 다른 우물의 올챙이가 여기로 오는 건 생각 못한다’고 했는데, 맞는 말입니다. 경쟁력을 키우려면 경쟁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대학은 우리끼리 경쟁합니다. 그러니 세계 상위 대학 순위에 못 들어가는 거지요. 해외 대학이 들어오면 우수 학생들의 해외 유출도 막고, 국내에서 적은 비용으로 공부할 수 있는 등 이점이 많습니다. 우리끼리만 있으면 교수들 신분도 안정적이고 하니 누구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아요. 그러나 계속 싸고돌면 독립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경쟁자는 세계 최고 온라인 대학

    ▼ 한국디지털대의 궁극적인 경쟁 상대는 누구입니까.

    “오프라인 대학들은 모든 온라인 대학에 대해 경쟁의식을 느낄 겁니다. 온라인 대학이 생긴 뒤에 야간대학이 많이 없어졌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한국의 온·오프라인 대학이 아닌 세계 최고의 온라인 대학을 경쟁상대로 삼고자 합니다. 예컨대 온라인 대학이 노벨상 수상 교수의 온라인 수업을 유치하는 데는 오프라인 대학이 같은 교수를 초빙하는 비용의 10분의 1도 들지 않습니다. 그런 특성을 경쟁력으로 키우고 싶어요.”

    ▼ 다문화 가정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온라인 기반을 활용한 사회공헌을 생각했는데, 다문화 가정에 한글 수업을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10만명의 결혼 이민자가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적응 못하는 이들을 방치하는 건 인권침해입니다. 삼성SDS와 손잡고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현재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약 4000명의 결혼 이민자에게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음 학기부터는 베트남어와 베트남문화 수업도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런 일은 온라인 대학만이 할 수 있는 봉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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