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9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왼쪽에서 3, 4번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주 방폐장 기공식.
환한 미소를 지은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는 연설 첫머리에서 “경주시민 여러분 기쁘시지요?… 걱정도 좀 있지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객석의 반응은 썰렁했다.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해법은 이해찬 전 총리가 제시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제외한 중저준위 방폐장부터 짓자는 것이 첫째 해법이고, 주민투표를 통해 후보지를 선정하자는 것이 둘째 해법이었다. 중저준위 방폐장을 유치한 곳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이전시키고 양성자 가속기를 지어주자는 것이 셋째 해법이었다.
그러자 상황이 180도로 변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그 가운데 주민투표에서 89.5%의 찬성률을 보인 경북 경주가 우승자가 됐다. 경주는 월성원전 본부가 있는 월성군과 합쳐진 지자체다. 월성은 과거에도 방폐장 후보지로 검토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강력한 반핵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총리의 해법이 제시되자 주민 대다수가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핵보다는 ‘당근’의 위력이 강했기 때문일까.
방폐장은, 쉽게 설명하면 방사성 폐기물이라고 하는 특별한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이다. 1993년 문 닫은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쓰레기 더미 위에 흙을 덮는 복토(覆土)를 하고 나무를 심어 ‘하늘 공원’으로 변신했다. 경주 방폐장도 처분장 공사가 완료되면 녹지공원으로 변신한다. 차이점은 ‘무작정 투기’가 없고, 녹지공원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중저준위 폐기물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60cm 두께의 사일로, 100m 두께의 흙
경주 방폐장에서는 지표 밑 80~130m쯤에 시멘트로 사일로(silo)를 만들어 방폐물을 보관한다. 사일로가 완공되면 더 이상의 토목공사는 없기에 이곳은 녹지공원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방폐물은 차량으로 실어 나르기만 하면 된다.
원전단지에 가면 거대한 원통형 시멘트 건물을 볼 수 있다. 원자로를 담는 ‘격납용기’로 60~120㎝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로 돼 있어 날아가던 비행기가 떨어져도 깨지기 어렵다고 한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 2호기는 냉각수가 빠져나가는 바람에 과열돼 녹아내렸다. 이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튀어 나갔으나 99.99% 이상이 격납용기에 갇혔다.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역시 과열돼 녹아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소련식 원전에는 격납용기가 없었다. 일반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마감재로 된 건물이 원자로를 덮고 있었다. 이 구조물은 원자로에서 나오는 열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러자 원자로에서 나온 불꽃이 밖으로 나오면서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 때문에 화재를 진압하려고 출동한 원전 직원과 소방대원들이 방사능에 노출돼 59명(방사선 피폭 후유증을 앓다가 2005년에 사망한 사람까지 더한 수치)이 숨졌다.
똑같은 사고인데도 스리마일 원전 폭발 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법적으로 허용된 것 이상의 방사선을 쬔 사람도 없었다. 이 두 사고를 통해 격납용기는 원전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포인트로 자리매김했다. 경주 방폐장의 사일로 두께는 격납용기에 버금가는 60㎝이다.
난지도 매립장에서는 부패한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가 올라온다. 그러나 난지도 매립장은 워낙 광범위해 가스가 올라와도 폭발하지 않는다. 경주 방폐장에 보관될 방사성 폐기물에서는 ‘아예’ 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이 폐기물에서는 10여m 거리만 두면 거의 피해를 주지 않는 자연 방사선보다 약간 센 방사선만 나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