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견이 죽자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 이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좀처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시적 감정이라고 가볍게 보기 쉽지만 당사자가 겪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애완견을 제대로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 고통의 정도를 설명한다.
11월1일, 애완견이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미혼여성 이야기가 신문에 났다. 이 여성은 3년 동안 키우던 개가 병으로 죽자 ‘내 탓’이라며 자책감에 시달리다 공원에서 목을 맸다. 상당수 네티즌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애견인들은 그의 죽음에 남다른 공감과 동정을 표했다. 애견인에게 키우던 개의 질병과 죽음은 자신에게도 그만큼 커다란 상처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언론매체도 그녀의 죽음이 심각한 정신적 장애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적시하지 못했다.
결혼생활 내내 아이가 생기지 않아 10년째 강아지 ‘예삐’에 의지해 살던 김정화(37)씨. 그녀에겐 밤늦게 들어와 새벽같이 나가는 남편보다 예삐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김씨 부부는 서로의 호칭을 ‘예삐 엄마’ ‘예삐 아빠’라고 부를 만큼 애견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강아지를 키우게 된 계기가 자신의 불임이었던 만큼 예삐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각별함 그 이상이었다. 예삐는 멀어져가던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자 노릇도 톡톡히 했다.
우울증 → 거식증 → 간경변
그러던 지난 2월 큰일이 터졌다. 산책 중 김씨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예삐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만 것. 김씨는 그때부터 정서적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火葬)을 하고 남은 예삐의 뼛가루를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는 틈만 나면 만지고 우는가 하면 사람들과의 대화나 만남을 일절 거부한 채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예삐의 사진과 장난감, 옷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게 일상사가 됐다. 더욱이 대낮에도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면서 술 외에 먹은 음식은 모두 토해내는 거식증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녀는 7개월 만에 몸무게가 17kg가량 줄어 현재는 32kg밖에 나가지 않는다. 우울증에 거식증, 알코올 중독까지 겹친 것.
“죽고 싶다”는 말만 되뇌는 김씨를 보다 못한 남편이 그녀를 정신과로 데려갔지만 처방받은 우울증 약은 이렇다 할 치료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심한 구역질 증상이 생기면서 정신과 치료에 대한 혐오만 커졌다.
건국대 의대 하지현 교수(신경정신과)는 이 같은 증상에 대해 “애완견이 죽은 후 나타나는 우울증과 상실감은 정상적인 ‘애도반응’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이 환자의 경우엔 상담만으로 치료할 수 없으니 반드시 약물치료를 동반해야 한다”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