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이안 감독의 ‘색, 계’ 역시 마찬가지다. ‘색, 계’는 이야기의 흐름을 몸의 언어와 눈빛으로 번역해낸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몸은 필요불가결한 ‘장면’의 도구로 활용된다. 외국어를 이해하듯 섹스를 충동이 아닌 메타포로 볼 때 비로소 이 영화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감각의 제국’은 몸의 언어로 파편화한 이성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던 시도의 극한에 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어느 기생이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정부(情夫)를 교살한 뒤 그의 성기를 잘라버리는 충격적인 실화 ‘아베 사다’ 사건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실화에서 여자는 잘린 남근을 몸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왜곡된 열정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작품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통해 제국주의 광기의 반대편에 놓인 다른 제국으로 묘사된다. 사랑하는 남자의 신체를 흡입하고자 하는 여자의 광기는 전쟁에 나가기 위해 길게 도열한 군사들과 훌륭한 데칼코마니가 된다. 열정의 통로는 다르지만 그들 모두가 미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체주의의 광기와 대비된 그들의 열정은 실연(實演) 논란을 불러올 만큼 파격적인 정사 신(scene)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완전히 파악해 흡수하고자 하는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기도 하다.
연기하는 삶의 희열
‘색, 계’의 정사 장면은 여러 면에서 ‘감각의 제국’을 떠올리게 한다. 체위나 시선의 교환, 촬영 방법 등에서 말이다. ‘색, 계’는 욕망과 경계라는 서로 다른 준거가 맞부딪치고 길항하는 대결의 장을 제시한다. 영국에 있는 아버지가 호출하기만을 기다리는 왕차즈(탕웨이 분).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자 다른 여자와 재혼했다는 소식을 알린다. 아무 곳에도 의지할 바 없고, 옭아매는 것도 없는 상황에 놓이자 그녀는 자유보다 먼저 허망함을 느낀다. 갑작스레 무중력 상태에 놓인 왕차즈,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계기가 마련된다. 그것은 바로 연극. 홍콩에 피난 온 학생들이 준비한 항일 연극의 여주인공 역을 부탁받는다. 왕차즈는 드디어 다른 삶의 가능성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다른 삶이 왕차즈에게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희열’을 선사했다는 사실이다. 그 희열은 사실 ‘연기하는 삶’이 불러오는 희열, 그러니까 배우가 무대 위에서 경험하는 황홀경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 배경이 일제 강점기인 1942년이지만, 그녀에게 특별한 정치적 의식은 없다. 그녀는 정치가 아닌 새로운 삶의 통로로서 연기를 선택한다. 문제는 연극이 좁은 무대를 벗어나는 데서 비롯된다. 그들은 연극의 희열을 ‘진짜 항일운동’으로 확장하자고 결의한다. 이제 그들의 삶은 연극으로 전도된다.
왕차즈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 막부인을 연기하며 친일파의 오른팔 격인 이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항일 연극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사업가 역할을 하기 위한 돈과 스파이 역을 위한 요염함. 순진한 대학생 연극단은 이미 시작된 연극에 휩쓸려 자기 자신을 저당잡힌다. 왕차즈는 요부를 연기하기 위해 순결을 폐기처분한다. 하지만 순결은 아주 작은 대가에 불과하다. 그녀가 이불에 피를 흘린 날 단원들은 결국 친일파의 하수인을 죽인다. 이는 감행이라기보다 사고에 가깝다. 그렇게 사고처럼 그들은 역사의 한가운데로 빨려들어간다. 분홍신을 신은 소녀처럼, 그들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이 위험천만한 연기에 몰입해야만 하는 것이다.
왕차즈는 조직의 명령에 따라 제거 대상으로 지목된 친일파의 정부(情婦)가 된다. 언젠가 그를 죽여야만 한다는 시한부 관계는 그녀에게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친일파의 정부 역할. 왕차즈는 목숨을 건 이 연기의 긴장에 자신을 빼앗기고 만다. 연기와 삶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친일파인 적에 대한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방황한다. 급기야 그를 연인이라 불러야 할지 제거해야 할 적으로 치부해야 할지 혼동하기 시작한다. 이제 위험한 것은 ‘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