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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색(色),계(戒)’를 읽다

적과의 동침, 그 야릇하고 잔혹한 몸의 대화 “뱀처럼 파고드는 그 남자… 내 심장이 굴복하고 말 거예요”

  • 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영화 ‘색(色),계(戒)’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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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면서도 원치 않는

영화 ‘색(色),계(戒)’를 읽다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섹스를 나누는 여자. 왕차즈는 자신의 배후인 항일 단체에 찾아와 호소한다.

“남자는 뱀처럼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와요. 그 뱀은 심장까지 공격하죠. 하지만 언젠가 내 심장이 굴복하고 말 것 같아요. 그는 내가 피를 흘릴 때까지 멈추지 않아요. 고통에 몸부림치며 지쳐 떨어질 때, 그는 이 모든 행위를 멈추죠. 그는 알아요.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연기가 아닌 진짜라는 것을, 그 고통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말이에요.”

그녀의 말은 자신을 어서 이 연극에서 꺼내달라는 호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연극에 정서적으로 깊이 연루됐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색, 계’가 연기에서 몰입, 몰아와 파국으로 이어지는 왕차즈와 이(량차웨이 분)의 관계를 ‘섹스’와 ‘몸’을 통해 그 어떤 언어보다 강렬한 파토스로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왕차즈와 이의 섹스는 성욕을 자극하는 포르노그래피의 선정성이 아니라 그들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의미’인 셈이다. 이런 점은 서서히 달라지는 그들의 체위와 눈빛, 교성을 통해 섬세히 제시된다. 이를테면, 이와 왕차즈의 첫 섹스신은 ‘선정적 20분’이라는 광고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이는 왕차즈의 시간이 비는 틈을 타 드디어 그녀를 둘만의 비밀 공간으로 부른다. 이에 왕차즈는 스파이의 본분을 살려 옷을 하나씩 벗으며 자신의 육체를 전시하고 남자를 유혹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애초부터 이에게 섹스는 게임이 아니라 파괴적 욕망의 해소도구에 불과하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남자. 이에게 섹스는 범람하는 욕망을 배설하는 하수구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손발을 묶어서는 마치 화장실에서 배뇨하듯 성욕을 쏟아버린다. 이 장면에는 에로스도, 충동도 없다. 포르노그래피처럼 가학적 사디스트의 욕망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이 첫 정사 신은 그들의 관계가 경계하는 두 사람의 접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폭력적 정사 신이 아니라 그저 폭력에 불과하다.

폭력적으로 시작된 그들의 섹스는 점차 경계를 푸는 과정으로 이완된다. 그녀의 눈을 마주보려 하지 않던 이는 정상위를 나누며 서로를 바라보게 되고, 입을 맞추지 않고 던지듯 외면하던 남자는 점차 그녀의 얼굴을 대면한다. 급기야 여성 상위를 허락하고, 그녀는 이의 눈을 베개로 가리며 그의 경계심을 시험하기까지 한다. 이가 여성 상위로 자신의 눈을 가리도록 허락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그녀에게 맡기는 행위와도 같다. 단둘만 있는 방안에서의 섹스, 그것은 매우 사적이면서도 친밀한 관계다. 둘만의 ‘방’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둘 사이의 완전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이완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마지막 섹스신은 결국 ‘이’가 경계를 풀고 그녀를 신뢰하게 됐음을 잘 보여준다.

감정의 이완, 신뢰, 그리고 축출

이가 왕차즈에 대한 경계를 풀고 연인으로 받아들였듯 왕차즈 역시 자신이 격렬하게 섹스를 나누는 상대가 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만다. 그 순간은 아주 찰나였지만 왕차즈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만다. 찰나의 선택으로 결국 그녀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축출되고 만다. 친일파 이와 왕차즈의 섹스는 적을 탐색하는 행위처럼 잔혹하면서도 격정적이다. 내면을 드러낼 수 없기에 그리고 언어로 그 감정을 중계할 수 없기에 몸의 언어는 더욱 격렬해진다.

왕차즈와 이가 섹스를 나누기까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학생시절 처음 만나 유혹하려 했던 어설픈 순간에서 시작해 가난과 방황을 겪은 뒤의 만남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영화는 이 4년이라는 시간을 구구절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초췌해진 왕차즈의 모습을 통해 그 시간을 유추하게끔 할 뿐이다. 그녀는 이 시간들을 겪고 난 후 “그 시절에 난 너무 어설펐어”라고 회고한다. 이 어설픔은 자신이 행했던 ‘막부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많은 것을 망설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망설임은 자신을 던져 막부인이 되는 데 대한 저항감을 뜻한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막부인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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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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