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적 배경

한편 1968년 북한의 1월21일 ‘청와대 습격사건’ 및 1월23일 ‘푸에블로호 납북사건’, 10월30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승복 살해사건)은 남북관계를 극도의 긴장상태로 몰아갔다. 1966~73년 이뤄진 베트남전쟁 파병으로 우리나라는 외화획득 등 경제발전의 기회를 얻었으나 전사자 5000여 명, 부상자 1만6000여 명이 발생했다. 그런 가운데 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기간 경부고속도로(1968. 2~1970. 7)가 완성되는 등 국내적으로는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른 급격한 정치·경제·문화적 변화가 나타났다.
2. 사건 개요
1968년 월간 ‘신동아’는 12월호에 정부의 차관도입 실태, 차관배정 과정, 차관도입의 공과 등에 대해 심층취재하면서 차관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보도하였다.
동 기사는 ‘신동아’ 정치부 기자 김진배, 경제부 기자 박창래가 1968년 9월 ‘외자도입특별국정감사특위’ 취재 및 국회의원 면담과정을 거쳐 작성하였다. 주요 내용은 차관의 국내기업 배정과정에서 일부 재벌들에게 특혜성 차관이 배정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집권여당은 차관배정의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었다. 정치자금 ‘4인 공동관리설’ ‘5% 커미션설’ 등 당시 공화당 및 집권층의 뇌물·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의 도덕성을 공격하였다.
신동아 차관 기사 요지
○정부지급 보증하에서 들여온 차관이 산업을 일으키고 수출을 촉진하여 국민소득을 높인다는 점이 인정되나 거대한 정치자금 조성수단이 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음.
○현금 차관, 외화 대부, 연불 형식으로 들어온 차관은 20억달러에 이르고 1963년부터 1968년까지 6년간 도입된 상업차관 약 8억달러의 5%가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가정하면 4000만달러(100억원)로 추산됨.
○공화당이 중앙선관위 기탁금액의 61%를 가져갈 경우 1억5000만원에 불과한데 이 정도 돈으로 두 번의 선거를 치렀다고 보기 어려움.
○집권당의 위상으로 볼 때 일부 정치자금이 체제안정을 위한 긍정적인 부분에서 소비될 가능성이 있으나 세간의 ‘4인 공동관리설’과 관련 정치자금이 일사불란하게 수금, 관리, 배포된다는 설이 있음.
○이는 최근 도입된 외자가 특정 재벌에만 배정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 권력과 재벌의 결탁 심화 및 차관배정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비난을 면키 어려움.
이와 관련 중앙정보부는 동(同) 기사 게재와 연관된 ‘신동아’ 기자 5명(박창래 기자, 김진배 기자, 손세일 부장, 홍승면 주간, 유혁인 차장)을 연행, 반공법 위반혐의를 두고 취재, 집필, 게재 경위에 대해 심층조사하면서 동 기사가 기밀사항으로 당시 세간의 ‘차관망국론’을 퍼뜨려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했다고 주장하였다. ‘차관망국론’은 차관경제가 미·일에 대한 경제적 예속을 가중시켜 궁극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