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전신마비 루게릭병 환자가 눈빛으로 써내려간 분노의 편지 2만3000자

“무시, 핑계, 거짓말, 말 바꾸기가 참여 정부 복지정책입니까?”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7-12-10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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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게릭병 환자 이광복씨. 자신에게 지급되던 간병비가 갑자기 끊기자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냈다. 이유를 알고 싶다며 5개월간 13차례 민원을 냈지만 복지부는 우왕좌왕, 거짓말, 복지부동, 모르쇠로 일관했다. 때로는 담당자의 업무 미숙과 퇴직, 때로는 부서 이사와 인사이동 핑계를 댔다. 말을 못하는 그에게 “궁금하면 전화하라”고 했다. 청와대, 감사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뺑뺑이’만 돌렸다. 눈을 깜박여 1분에 두 글자를 만드는 그가 ‘신동아’에 보내온 피맺힌 편지. 그것이 전하는 우리 복지행정의 일그러진 단면.
    전신마비 루게릭병 환자가 눈빛으로 써내려간 분노의  편지 2만3000자
    11월2일 오후 기자의 e메일 계정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제목은 ‘이광복입니다. 자료 보내드립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쓸데없는’ 자료가 들어오는 터라 마우스는 이미 ‘삭제’ 버튼을 향해 커서를 옮겨놓고 있었다. ‘이광복’이란 작위적 이름은 삭제 의지를 더했다. 그런데 마우스의 왼쪽 버튼을 누르기 직전 ‘희귀난치병 실태고발’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첨부된 6개 파일 중 하나였다. 마음을 바꿔 ‘한번 읽어나 보자’는 생각에 ‘실태고발’ 파일 문서를 열고 읽어 내려가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59세의 루게릭병 환자로 전신이 마비되고 호흡기에 의존한 상태라 말을 못합니다. 눈 깜박이는 것으로 1분에 두세 글자를 만듭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분에 두세 글자라니…. 첨부파일을 모두 다운로드해 글 전체의 분량을 확인했다. 200자 원고지로 115매, 정확히 2만3000자였다. 그것도 각종 지침이나 표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사연만 정리한 글자수가 그랬다. 계산해보면 일주일 꼬박 먹지도, 자지도 않고 계속 눈을 깜박여야 쓸 수 있는 분량이다.

    “복지부의 간병비 지원 제도가 너무 부당하고 졸속으로 개정되어 그 문제를 밝히다가 민원업무가 더 엉터리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무원의 ‘놀자판’ 해외연수도 언론에서 비판하지 않았다면 ‘공무원 복지제도’로 존속했을 겁니다. 이런 민원업무도 언론에서 공론화하면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편지의 내용을 간추리면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정부의 간병비 지원이 올해부터 소득·재산 기준을 적용하면서 갑자기 없어졌는데, 왜 그런지 살펴보니 정책 변화의 근거도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해 민원을 넣고 5개월 동안 보건복지부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공무원의 한심한 민원 대처 행태와 복지부동 작태를 뼈저리게 경험했다’는 것. 이씨의 편지는 시종일관 분노에 차 있었지만 논리가 정연하고, 복지부가 전신마비 환자에게 보낸 답은 무성의, 거짓말, 변명 일색이었다.



    눈으로만 말하는 환자

    이씨의 사연을 전하기 전에 먼저 루게릭병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의학용어로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이다. 뇌간과 척수의 세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파괴돼 마비증세가 눈을 제외한 전신으로 확대되는 질환으로, 스스로 호흡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호흡보조기 등의 생명연장 기구가 있어야 하는 질병이다. 따라서 호흡기를 달고 있는 루게릭병 환자는 간병인이 없으면 단 하루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이 질환에 ‘루게릭병(Lou Gehrig´s disease)’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1930년대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전설의 4번타자’로 이름을 날리던 야구선수 루 게릭이 1939년 이 질환으로 진단받은 뒤 2년 만에 숨지면서부터다. 루 게릭은 만루홈런만 23개를 쳤고, 2130 경기 연속 출장기록을 남겼다. 이후 메이저 리그에선 그의 등번호 4번이 영구 결번됐다. 그가 마지막 출장할 때 입었던 유니폼은 얼마전 자선 경매에서 40만250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 환자 중에서도 상태가 나은 편에 속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발병 후 수개월에서 몇 년이 지나면 누워서 꼼짝을 못하는데, 호킹 박사는 휠체어에 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 현재 국내에는 1000여 명의 루게릭병 환자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호흡기에 의존해 눈을 깜박여 ‘예’ ‘아니오’와 같은 간단한 의사 전달만 할 뿐 글을 쓰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신마비 루게릭병 환자가 눈빛으로 써내려간 분노의  편지 2만3000자

    이광복씨가 보낸 편지 내용과 복지부의 ‘황당한’ 답변들.

    이씨 부인과의 통화에서 일단 ‘이광복(李廣馥·58)’이 남편의 본명이며, 현재 눈을 제외한 온몸에 마비가 와 기도(氣道)를 열고 호흡기를 장착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편지를 누가 작성했느냐고 물으니 “남편이 직접 눈으로 말한 것을 나와 간병인, 딸들이 받아쓰고 그것을 다시 인터넷으로 옮기는 것은 조카가 하고…뭐, 그런 식이다. 우리는 솔직히 그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전신마비 환자가 눈으로 말한다? 잘 이해되지 않았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받아쓴다’는 말로 미뤄 호킹 박사처럼 첨단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이씨가 전에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며 언제부터 어떻게 아팠는지 물었다.

    “남편 허락을 받아야 해요.”

    전신마비 상태지만 가장으로서 이씨의 위엄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그의 글에서도 카리스마가 묻어나온다. 자신의 신병과 관계된 내용은 ‘59세의 전신마비 루게릭 환자이고 눈으로 글을 쓴다’는 것뿐. 나머지는 잘못된 제도와 복지부 공무원의 태도를 나무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은 대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글에 비친 그는 강인했다.

    ‘인간승리’의 편지

    이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부인은 “그 편지면 족하지 않나. 꼭 봐야 하느냐”고 했다. 사진촬영도 반대해 간신히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그곳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공간이 이씨의 방으로, 흡사 병원 중환자실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침대에는 몸을 고정하는 여러 가지 장치와 호흡기, 가래와 농을 씻어내는 석션(suction) 기계가 부착돼 있었다. 그리고 침대 머리 쪽 양편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 숫자가 씌어 있는 문자판과 이런저런 생활용어가 적힌 종이가 코팅되어 붙어 있었다. 무슨 암호문 같았다.

    이씨는 이것을 이용해 가족과 간병인에게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가령 ‘최’라고 말하려면 부인이나 간병인이 이씨에게 문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눈으로 선택하게 한 후 자음을 ‘ㄱ’부터 순서대로 읽어 나가다 ‘ㅊ’에 이르면 이씨의 눈이 깜박인다. 그 다음엔 모음을 순서대로 읽어나가다 ‘ㅗ’에 이르면 눈을 움직인다. 이어 또 한 번 자음과 모음을 선택하게 한 후 모음을 순서대로 읽으면 ‘ㅣ’에서 눈에 변화가 온다. 이씨의 부인은 “30분간 60자 정도를 받아쓰는데, 그 정도만 해도 남편의 등에서 땀이 흥건히 배어난다”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게 이씨에게 얼마나 고단한 작업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군말 없이 쉬지 않고 자음과 모음을 읽어내는 가족과 간병인의 인내도 놀랍다.

    이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정보도 꿰고 있다. 이씨의 노트북 컴퓨터 모니터에는 바둑판처럼 번호가 붙어 있는데 가족이나 간병인이 번호를 하나씩 부르면 선택하고 싶은 곳에서 눈이 깜박이고 그런 절차를 하나씩 거쳐 필요한 내용을 찾아 들어간다. 일반인이 단 몇 초 만에 할 수 있는 일도 그에겐 땀을 뻘뻘 흘리며 해야 하는 고역이다.

    자음과 모음 문자판에는 ‘전심신호등’이라고 쓰인 부분이 있다. 뭔가 불편한 게 있거나 원하는 게 있을 때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이씨가 문자판의 ‘전심신호등’에서 눈을 깜박이면 부인과 간병인은 생활용어 문자판을 꺼내 다시 거기에 씌어 있는 수십 가지 요구사항을 쭉 읽고, 그의 눈이 원하는 것을 해준다. 자음과 모음이 쓰인 문자판에는 ‘이심(以心)’, 생활용어 문자판에는 ‘전심(傳心)’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눈만 보아도 이심전심으로 다 통한다는 뜻. 부인에게 이씨가 무슨 일을 했으며 언제부터 병을 앓았는지 다시 물었다. 부인은 이씨에게 “말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그는 눈을 한 번 깜박였다. 한 번 깜박임은 긍정, 두 번 깜박임은 부정이다.

    “1999년까지 증권감독원에서 일하다 그 이듬해 증권선물거래소 이사로 옮겼는데, 2002년 9월 초쯤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툭’ 꺾이는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죠. 그때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2004년 8월까진 그럭저럭 일상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급속하게 몸이 나빠졌어요. 이 문자판도 남편이 직접 고안한 겁니다. 말을 잃어버리기 전에 미리 준비해둔 거죠.”

    이씨는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기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싱긋 웃어 보였다. 얼굴의 코 위쪽 근육은 아직 살아 있었다. 용기를 내 이씨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부인이 이씨에게 “말을 할 거냐”고 물었고 이씨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하나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데 짧은 것은 15분, 긴 것은 30분이 걸렸다.

    복지부의 생색용 보도자료

    전신마비 루게릭병 환자가 눈빛으로 써내려간 분노의  편지 2만3000자

    이광복씨의 생명을 지켜주는 기구들. 위가 정부에서 대여해준 호흡기이고 아래는 가래나 농을 씻어내는 석션 기계다.

    ▼ ‘신동아’로 편지를 보낸 이유가 뭡니까.

    “간병비를 달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는) 아직까진 형편이 괜찮아요. 모든 루게릭병 환자와 그 가족을 대표해 편지를 보낸 겁니다. 환자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당사자나 가족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정확한 근거도 없이 정책을 바꾼 것은 잘못이죠.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국민의 충복인 공무원이 사회적 약자인 희귀병 환자를 무시하고 거짓말만 하는 작태를 고발해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거죠.”

    ▼ 루게릭병 환자에게 간병비가 얼마나 중요한가요.

    “호흡기를 달고 있는 루게릭병 환자는 간병인이 하루라도 없으면 바로 죽습니다. 우리도 간병인에게 매월 150만원을 줍니다. 전신마비 환자에게 호흡기 대여료만 지원하고 간병비를 주지 않는 건 죽으라는 이야기죠. 아니면 투병생활 몇 년 하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면 그때 지급받으라는 겁니다. 전신마비 루게릭병 환자 가족은 10년이면 집 날아가고 쪽박 차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그마한 집 한 채와 승용차가 있다고 간병비와 의료비 지원을 끊겠답니다. 이런 질환에 형평성을 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 편지는 언제부터 쓴 겁니까.

    “복지부에 민원을 넣고 나서 얼마 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까 5개월은 넘었다고 봐야죠. 나도 가족도 너무 힘들어서 매일 조금씩 썼어요.”

    이씨는 “내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기회에 잘못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가 2시간 이상 진행되면서 이씨는 매우 힘들어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만 몇 개 더 하고, 나머지는 기자가 이씨의 편지를 근거로 확인 취재를 하기로 했다. 과연 이씨와 복지부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희귀·난치성 질환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사업을 확대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복지부가 낸 보도자료의 제목은 ‘원발성 폐성 고혈압 등 희귀질환 9종 추가 및 간병비 지원 확대’. 의료비 지원사업 전체 예산도 지난해 390억원의 두 배인 782억원으로 늘었다. 복지부는 “루게릭병과 다발성 경화증 등 5종 질환자에 대해 지급하는 간병비도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늘린다”고 밝혔다.

    정부는 2003년부터 루게릭병의 특성, 즉 간병인이 없으면 호흡기를 달아줄 사람이 없어 죽음에 직면하는 현실을 감안해 다른 희귀·난치성 질환과는 달리 루게릭병 등 5종 질환자에 대해서만큼은 소득·재산조사 결과에 관계없이 호흡기 대여료(80만원)와 의료비, 간병비(20만원)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그후 이씨가 당면한 현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는 복지부 발표 직후 간병비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면서 복지부의 보도자료가 ‘생색내기용’이었음을 직감했다. 복지부가 지원대상 질병을 확대하면서 그전까지 루게릭병에 대해 적용해온 소득·재산조사 면제조항을 갑작스레 없애버린 것이다. 즉 호흡기 대여가 필요한 루게릭병 환자에 대해 소득·재산조사 면제 특례를 적용할 때 호흡기 대여료만 지원하고 간병비는 제외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면 4인 가족 기준으로 대도시 지역에 작은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나 2500cc 이상 또는 3000만원 이상 승용·승합차를 소유한 사람은 지원대상에서 탈락한다. 수도권에 아파트를 소유한 이씨에게도 이 기준이 적용됐다. 하지만 복지부 보도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관련 지침에도, 간병비 지원 신청서류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보도자료 첨부서류에 단 두 줄이 붙어 있었지만 그걸 찾아서 볼 수 있는 환자와 가족은 거의 없었다.

    이씨는 의료비 지원제도가 계속 확대되는 상황에서 왜 이런 정책상의 변화가 생겼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금껏 정부의 복지정책은 그 혜택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든 법이 없었다. 그는 또 이런 복지혜택 축소가 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참여정부’에서 단행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

    “궁금하면 전화하라”

    전신마비 루게릭병 환자가 눈빛으로 써내려간 분노의  편지 2만3000자

    이광복씨의 입 문자판 ‘이심전심’. ‘이심’은 원하는 것을 시킬 때 쓰이고, ‘전심’은 눈으로 말할 때 사용된다.

    그때부터 이씨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홈페이지의 ‘참여마당 신문고’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정부 정책이나 행정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면 해당 기관이 그에 대한 답변을 하거나 직접 민원업무를 처리해주는 곳으로, 만약 민원인이 고충처리위원회나 감사원, 청와대 등 기관을 따로 지정하면 그곳에서 민원에 대한 답변을 하거나 해결에 나선다. 이씨는 질의문 하나를 만드는 데 며칠씩 걸렸다. 온 가족이 성심껏 그를 도왔다.

    지난 3월20일 보낸 질의문의 핵심 내용은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간병비 지원에 있어 소득·재산 기준 적용 면제 조항이 갑작스럽게 철회된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 또 의료지원 사업 전체 예산은 증가하는데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간병비만 축소된 이유, 의료비 지원사업 지침에 루게릭병 환자의 간병비 지급 변경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유, 의료비 지원신청 서식에 소득과 재산을 기재하는 항목이 없는 이유 등에 대해서도 답변을 요구했다. 답은 3월28일 게시판에 올라왔다. 이씨는 청와대를 민원처리기관으로 선정했지만 답변을 보낸 곳은 복지부 질병관리팀이었다.

    “사단법인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나 일부 환자에게서 ‘소득·재산 기준을 초과한 대상에게도 간병비를 지급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는바 내부 회의 결과, 소득·재산 기준 초과자에게는 생명과 직결되는 호흡기 대여료만 지급하는 대신 저소득층 희귀난치성 질환자에게 간병비 혜택을 늘리도록 결의하였습니다. 보다 공정하게 많은 대상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주기 위해 조금씩 조정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면 0000-0000으로 전화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씨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어느 것 하나 답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루게릭병 환자의 간병비 지원에 대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는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확인한 결과 ‘그런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연합회는 다른 루게릭병 환자들로부터도 같은 질문이 이어지자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 같은 답변을 올려놓았다.

    이씨는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사안이 일부 환자의 불만과 복지부의 내부 회의로 결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씨를 더 절망스럽게 한 것은 민원인이 말도 못하고 손가락조차 못 움직이는 환자임을 알면서도 “궁금한 내용이 더 있으면 전화를 해서 물어라”는 복지부의 답변이었다. 복지부는 답변마다 이런 문구를 상용구처럼 사용했다. 복지부 담당 공무원이 루게릭병이 어떤 질환인지 전혀 모르거나, 민원인에 대한 배려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민원인 무시하기 대작전

    이씨는 ‘참여마당 신문고’에 다시 질문을 올렸다. 그는 또 며칠 동안 눈을 깜박여야 했고 가족들은 쉴 새 없이 자음과 모음을 받아적었다.

    “(의료비지원사업) 지침에서 특례(루게릭병은 재산·소득 관계없이 간병비, 의료비 지원)를 둔 것은 문자 그대로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인데, 즉 다른 것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형평성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입니다. 당초 특례조항을 만들 때에도 형평성의 문제가 없었는데 2007년에 갑자기 형평성이 문제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례조항이 잘못됐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사흘 후 복지부로부터 온 답변은 또 한번 할 말을 잃게 했다. 이전의 답변과 글자 한 자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복지부는 루게릭병과 관련된 질문이 민원으로 올라오면 내용과 관련 없이 이미 만들어진 답변을 그대로 복사해 올렸다. 4월4일, 이씨는 다시 질의서를 만들어 올렸다.

    “희귀난치성질환자연합회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주십시오. 그리고 일부 환자가 제시한 의견의 내용은 무엇인지, 또 그 일부 환자는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확인해주십시오. 그리고 소득·재산에 관계없이 간병비를 지원받는 환자가 몇 명이며 그들이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았는지 알려주십시오.”

    이씨는 그 외에도 각종 통계자료를 요구했다. 정책 변화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복지부 질병관리팀으로부터 “정확한 답변을 위해 개인 e메일을 보내겠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민원 처리기간인 7일을 훌쩍 넘어 두 달이 지나도 e메일은 오지 않았다. 복지부는 한술 더 떠 이씨의 민원이 ‘종결되었다’고 게시판에 공시했다.

    화가 난 이씨는 복지부 감사팀에 질병관리팀의 ‘부실 민원처리’를 시정해달라며 민원을 냈다. 그랬더니 복지부 감사팀은 “귀하께서 질의한 민원은 이미 취하한 민원”이라는 회신이 왔다. 이에 이씨는 “취하한 사실이 없는데 왜 마음대로 단정하는가, 민원인에게 확인하지도 않고 이럴 수 있는가”라고 항변했다. 복지부 감사팀은 이에 직원의 ‘업무미숙’을 탓하며 질병관리팀으로 책임을 미뤘다.

    “담당자의 업무 미숙으로 일부 질문에 대해 정확한 설명이 부족하였기에 자세한 답변을 담당자로 하여금 메일로 보내드리도록 조치하였으며 향후 동일한 사안이 재발하지 않도록 담당자에게 주의조치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답변은 담당부서에서 하도록 했습니다.”

    이번에도 “궁금한 사항은 감사팀에 전화로 문의하라”고 되어 있었고, 담당자가 보낸다던 메일은 역시 오지 않았다. 감사팀도 그것으로 “민원이 종결됐다”고 게시판에 공시했다. 그래서 이씨는 이번에는 감사원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지금껏 복지부로부터 당한 내용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 사안은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할 사항으로, 그곳에서 결과를 통보할 것”이었다.

    이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정책이 바뀐 이유를 밝혀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5월8일 복지부 감사팀에 다시 독촉 민원을 올렸다. 그랬더니 복지부 감사팀이 이번에는 “담당직원이 퇴사해서 그렇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늘어놓았다.

    “귀하의 민원에 대해 질병정책팀 담당자로 하여금 여러 번 답변을 독촉했으나 담당자가 답변을 하지 않고 퇴사를 해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오늘 중으로 꼭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답변은 그 후 두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감사원에 “복지부가 아직 답변을 안 보내는데 업무협조에 착오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질의했더니 “귀하의 민원에 대해 별도의 회신은 생략한다”는 답이 왔다. 이씨는 ‘국가의 내부 통제기능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복지부의 끝없는 거짓말

    ‘어떤 환자 단체가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고 그것이 어떻게 정책에 반영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지 두 달하고도 보름. 참다못한 이씨는 6월20일 복지부 질병관리팀에 “5월10일 담당자가 일주일 안에 답변을 한다고 전화까지 했는데 답변이 없다”고 따져물었다. 그랬더니 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귀하께서 보내신 민원은 접수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이씨는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슬퍼졌다. 참여마당 신문고 게시판에 민원이 버젓이 올라 있는데 민원이 접수되지 않았다니…. 직원이 답변을 하지 못하고 퇴사했다고 사과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민원이 접수되지 않았다니….

    눈물을 머금고 4월4일에 보낸 민원을 다시 한번 복지부 질병관리팀으로 보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처음과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복지부가 말 바꾸기를 시작한 것이다.

    “귀하의 민원내용이 인사이동과 사무실 이전 등 내부 사정에 의해 즉시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간병비 지원이 특례조항에서 제외된 것은 우리 부가 단독으로 결정한 게 아니고 전국적인 시도 보건소들과 각종 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검토가 선행된 후 결정된 사항입니다. 의견을 낸 주체와 의견을 수렴한 수단에 대해 밝혀달라고 했으나 이는 공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좀더 형평성 있고 많은 환자 가계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이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씨는 복지부가 핑계만 대고 말 바꾸기를 하는 것에 의구심을 가졌다. 무슨 음모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처음엔 업무 미숙, 그 다음엔 담당자 퇴사, 이번엔 이사와 인사이동 때문이라네요. 인사이동을 하고 사무실이 바뀌면 민원인의 민원 내용을 까먹어도 된다는 말인가요?”

    민원 내용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간병비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주체는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서 어느새 ‘시도 보건소와 각종 단체’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못 밝히겠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 이씨가 이에 대해 “왜 밝히지 못하는가, 그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복지부는 “그들이 누구인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에 의거 비공개 대상이라고 여겨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눈 깜박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공개통신법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정보공개통신법 제9조의 정보 비공개 요건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었다. 복지부가 또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씨는 “복지부의 답변처럼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 주체를 밝히는 게 정보 비공개 대상이라면 맨처음 민원 회신에서 복지부가 ‘(사)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힌 것은 어떤 법적 근거에서냐”고 되물었다.

    왜 환자 가족에겐 묻지 않았나?

    이씨는 이런 논리를 근거로 복지부에 대한 공박에 나섰다. “의견을 수렴한 각 보건소와 담당부서, 단체의 명칭과 담당부서, 수렴 문항의 내용, 문항별 답변, 의견 수령 방법, 의견 수렴 시작 날짜를 밝혀달라”고 한 것. 복지부는 간병비 축소에 대한 의견을 밝힌 단체에 대한 언급은 피한 채 “전국 16개 시도에 공문을 내려 보내 개선사항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고만 밝히고 다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재차 질문을 하자 그때서야 복지부는 각 시도에 내려 보낸 시행 공문의 제목과 수신처를 적시하고, 각 시도가 “근육병(루게릭병) 특례비 기준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3월20일에 시작해 8월25일까지, 13차례의 민원 제기를 통해 이씨가 받은 마지막 답변이었다. 이씨는 더 이상 복지부에 민원 내는 것을 포기하고,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한 편지 쓰기에 골몰했다. 그간 복지부는 이씨의 민원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간병비 지원제도 변경 의견을 개진한 주체를 계속 바꿨다.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일부 환자’→‘시도 보건소와 각종 단체’→‘정보공개 불가능’→‘전국 16개 시도’로.

    과연 16개 시도 보건복지 담당부서는 실제 ‘근육병 특례비 기준을 조정해달라’는 공문을 올렸을까. 기자는 경기도와 서울시, 경상북도와 대구시, 전라남도의 관련과 담당자에게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 지원사업 지침개선 의견 조회’라는 공문이 내려간 적이 있는지, ‘근육병 특례비 기준을 조정해달라’는 의견을 내놓았는지 물었다. 그들의 공통된 답변은 “그런 공문은 받았지만 근육병(루게릭병) 특례비 기준을 조정해달라고 특정 질환에 대한 언급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일부 환자 가족으로부터 그런 불만이 나왔더라도 과연 어느 담당자가 특정 질병에 대한 혜택을 축소해달라는 의견을 내겠는가”라며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자는 복지부의 간병비 지침 변경이 복지부 내 관련 자문회의를 통해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문위원은 “자문위원 중 몇 명이 형평성 차원에서 한정된 예산을 좀더 다양한 희귀난치병 환자에게 배분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루게릭병 환자의 간병비를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리면서 소득·재산 기준을 넘는 환자를 제외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 안이 그대로 채택됐다. 배제되는 인원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지금 이와 관련해 민원이 제기되자 간병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루게릭병 환자를 구제하자는 목소리가 자문위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남편이 17년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한국루게릭병협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루게릭병에 대한 지침을 변경하면서 루게릭병 환자의 가족들과 한 번도 협의한 적이 없다. 아무리 형편이 괜찮아도 루게릭병 수발 10년이면 생활보호대상자(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된다. 간병비 지침이 변경된 이후 집과 자동차를 다른 사람 명의로 돌리는 환자 가족도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이게 참여복지의 실체이고 복지정부가 할 일인가”라며 울먹였다.

    다윗의 돌팔매

    이씨는 최근 메일 한 통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저의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정전이 되면 미리 직원을 보내 비상발전기를 가동해줍니다. 호흡기가 멎으면 제가 바로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지난주 정전이 됐는데, 직원을 못 보내니까 119 구조대에 신고해 구급대원을 출동시켜 줬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지난 9월부터 호흡기 사용 가구의 전기료를 감면해주고 있습니다. 왜 아픈 자와 가난한 자를 책임지는 보건복지부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그들에게 당장 형편이 좀 나은 환자는 그냥 죽어도 되는 국민일 뿐인가요? 결국 아파서 가난해지고 그래서 죽으면 그때야 돕겠다는 것인가요?”

    마지막으로 이씨에게 “어렵사리 쓴 편지를 많은 매체 가운데 왜 하필 ‘신동아’에, 그것도 기자에게 보냈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인터넷에서 기자 프로필을 뒤지던 중 신동아 홈페이지에서 최 기자의 것을 봤는데 ‘소수와 약자의 편에 서고 싶은 기자’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다음은 ‘신동아’ 홈페이지에 나오는 기자의 프로필 문구 중 일부다.

    “아이디는 ‘싸움개(ftdog)’이지만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 스타일. 하지만 걸어오는 싸움은 반드시 응전하고 끝까지 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는 개입해 끝까지 소수와 약자의 편에 서고 싶은 기자. 양심 있는 소수와 정당한 약자에 관련된 기사라면 언제라도 쓸 준비가 되어 있음.”

    과연 이씨에게 골리앗은 누구였을까. 그는 자신이 눈으로 쓴 ‘분노의 편지’가 많은 동료 환자를 어려움에서 구하고 거대한 ‘골리앗’의 허구적 논리를 깨는 ‘돌팔매’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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