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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가 다시 열어 본 ‘이회창 취재수첩’

昌, 풍수학자가 찍어준 이촌동 이사 뒤 총체적 ‘기력’ 회복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허만섭 기자가 다시 열어 본 ‘이회창 취재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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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와 ‘민심’을 몰랐다…월드컵 스페인전 중간에 나가
  • 오이·러브호텔·TV 토론…더 깊이 빠져든 ‘귀족의 늪’
  • 말이 씨가 된 2005년 강재섭의 ‘만우절 농담’
  • 2005년 이사 후 건강 회복, 정계 복귀 조건 만개
  • 2006년 정초 세배객 앞에서 대구 서문시장 화재 걱정만
  • 유연한 昌, 따뜻한 昌의 파괴력은?
허만섭 기자가 다시 열어 본 ‘이회창 취재수첩’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11월9일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단암빌딩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구두를 신은채 책상위에 올라 “발로 뛰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회창(李會昌·71)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 선언은 잔잔하게 ‘원사이드’로 흐르던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요동치게 했다. 이 전 총재는 출마와 동시에 여론조사상 지지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단숨에 2위 후보가 됐다.

11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가면서 이 전 총재의 여론조사상 지지율은 다소 정체 기미도 보였다(11월 1일 MBC-코리아리서치 22.4%→11월7일 KBS-미디어리서치 21.5%→11월10일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20.6%).

그러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여권의 공세, 검찰의 김경준 사건 수사 결과, 영남·충청·호남 민심 동향, 보수층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서는 이회창 전 총재가 ‘대안적 보수 후보’로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이 전 총재 캠프의 시각이다.

‘대세론’ ‘제왕적 총재’ 등 여러 정치 유행어를 낳으면서 10년 야당사(史)의 최고 주역이었던 만큼 이 전 총재는 언론의 중요한 취재 대상이었다. 2002년 12월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후에도 그랬다. 2003년 1월1일부터 2006년 12월31일까지 한국언론재단 기사검색시스템(KINDS)의 9개 종합일간지에서 검색되는 ‘이회창’ 기사는 무려 5468건에 이른다.

최근 그의 출마 후 서랍 속에서 ‘이회장 취재수첩’을 다시 펴 들었다. 여론은 “이회창을 너무 잘 안다. 더 알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익숙한 대상의 변신과 재발견이 원래 더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경기장 나와 TV 보며 응원”

2002년 대선 이전 이회창 전 총재는 ‘근엄한 아버지’의 이미지였고 그를 둘러싼 측근들은 실제로 그렇게 우상화했다. 2001년 10월6일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구 포스코 사옥 내 중식당 휘닉스에서 이 전 총재와 한나라당 의원 10여 명이 식사를 함께 했다. 의원들의 골프 모임 뒤풀이 자리에 이 전 총재가 들른 것이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돈 뒤 의원들은 이 전 총재에게 “사비를 5000만원씩 털어 내년 대선을 돕겠다”면서 앞다퉈 충성맹세를 했다. 몇몇 의원들은 실제로 ‘충성!’ 구호와 함께 경례를 붙이기도 했다. 이 전 총재도 이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전 총재의 ‘대세론’은 2002년 초 호화빌라-원정출산-설훈 의원 폭로-김대업 병풍(兵風)-기양건설 의혹 등 연이은 공격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한나라당 측은 네거티브 때문에 대선에서 패했다고 억울해 하지만 이 전 총재의 ‘귀족적, 제왕적 이미지’가 네거티브의 공격 재료로 안성맞춤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전 총재와 그 측근들은 대선 중, 후반 ‘이회창 이미지’를 ‘서민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2002년 6월22일 토요일 오후 이 전 총재는 광주월드컵경기장 일반석에서 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을 관전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후반전이 끝나도 스코어가 0대 0이어서 연장전이 벌어지는 상황이 됐다. 이 전 총재 일행은 슬며시 자리를 떴다. 비행기 시간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전 총재 측은 “광주공항에서 TV를 보면서 계속 응원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기자의 느낌은 ‘이 전 총재 측은 축구와 민심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였다.

‘이회창의 서민 따라하기’는 곁에서 보기에도 어색했고 썰렁하기까지 했다. 이 전 총재는 시장에서 오이를 씻지 않고 즉석에서 먹었다. 여고생 오빠부대를 ‘빠순이’라고 지칭하기도 했고, 서민적 풍모를 보인다면서 러브호텔을 이용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측근들은 “이 전 총재가 비속어를 몰라서 적어준 대로 말한 것이다. 오이는 바지에 닦아서 먹었다. 러브호텔이 아니라 깨끗한 장급 여관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여권의 ‘위장서민’ 공세는 먹혔다. 이 전 총재는 ‘귀족 이미지의 늪’에서 헤어 나오려 하면 할수록 더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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