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삼성 vs 김용철, ‘폭로 쓰나미’ 실체

“학연, 지연, 검찰내 평가 담은 ‘관리대상 검사’ 250명 명단 있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donga.com

    입력2007-12-10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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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 관계자 “임원 차명계좌는 대개 비자금 조성용…은행 협조로 가능”
    • 검찰 관계자 “대선자금 출처? 채권 구입자 ‘양심선언’ 없으면 입증 불가”
    • ‘관리대상 검사 명단’과 ‘떡값’ 전달 입증은 별개
    • 에버랜드 사건 조작, 개연성 있지만 증인 확보가 관건
    • 삼성 간부 “젊은 직원들은 에버랜드 사건에 문제 의식”
    삼성 vs 김용철, ‘폭로 쓰나미’ 실체
    2년 전 이른바 ‘X파일 사건’이 터졌을 때다. 삼성의 문제점을 취재하던 중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팀장에게 물었다.

    “재벌기업들 중 유난히 삼성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뭔가.”

    “유난히 삼성이 지배구조 승계와 관련해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박 팀장의 말은 삼성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지탄받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다. 삼성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의 뿌리인 셈이다.

    ‘삼성 저격수’로 나선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근간도 그것이다. 김 변호사의 ‘양심 고백’ 파동은 X파일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X파일은 1997년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의 대화를 안기부가 도청한 자료다. 정경 유착의 실상을 생생히 보여준 X파일은 ‘기업 이상의 기업’이라는 삼성의 부도덕한 일면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때도 지금처럼 비자금과 ‘떡값 검사’가 논란이 됐다. 고발인도 똑같이 참여연대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2년 전엔 검찰이 수사했지만 이번엔 특검이 수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3당은 11월14일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 도입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은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세 당의 의석을 합하면 과반수에 이르는 데다 한나라당도 조건부이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가 폭로한 내용은 크게 네 가지. ▲차명계좌를 통한 불법 비자금 조성 ▲2002년 대선 자금의 실체 ▲‘떡값 검사’ 명단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 조작이다.

    물론 삼성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대부분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며 음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삼성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하고, 입증할 만한 자료도 많다”는 것이다.

    과연 김 변호사의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일단 지금까지는 삼성이 수세에 몰리는 양상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의 주장이 워낙 폭발적이어서 국민정서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 국민의 신뢰도가 높은 편인 사제단의 전폭적 지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지만 삼성의 반박에도 일리가 있다. 김 변호사의 주장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증거 싸움이 될 것이다.

    불법 비자금

    “나도 모르게 내 명의로 개설된 은행계좌에 50억원대 현금과 주식이 들어 있었다. 이는 삼성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다.”

    10월29일 사제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라며 밝힌 내용이다. 사제단은 은행계좌 3개와 증권계좌 1개를 물증으로 제시했다. 사제단에 따르면 김 변호사의 2006년 금융소득 종합과세 납부실적에는 1억8000여만원의 이자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돼 있다. 연 이율을 4.5%로 계산하면 예금액이 50억원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계좌 주인 안 밝히는 이유는?

    삼성 vs 김용철, ‘폭로 쓰나미’ 실체

    7월18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활동 관계자 초청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건희 회장(왼쪽).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삼성이 김 변호사의 동의 없이 차명계좌를 만들었다. 둘째, 이 계좌엔 비자금이 들어 있다. 김 변호사는 이런 식으로 비자금 조성에 이용되는 삼성의 임원 계좌가 1000여 개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삼성의 임원 수를 감안한 추정이다.

    “삼성의 사장단, 고위 임원, 구조본(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임원, 재무 인사 등 핵심 보직 임원과 간부 사원 상당수가 차명계좌를 갖고 있다. 차명 비자금 계좌를 갖고 있는 임원 명단의 일부를 내가 갖고 있다.”(11월5일 사제단 2차 기자회견 중 김 변호사의 말)

    김 변호사의 주장이 맞다면 삼성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은 물론 사문서 위조, 조세포탈 혹은 탈세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융실명제하에서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통장을 만들 수 없다. 김 변호사는 입사 초기에 회사의 요구로 주민등록증 사본과 도장을 제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을 이용해 통장을 만든 것 같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은 비자금 계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차명계좌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김 변호사가 구조본 재무팀에 근무할 때 친하게 지낸 동료가 김 변호사의 사전 양해를 얻어 개설해 사용한 계좌다. 이 계좌는 회사와 관계없는 특정 개인의 재산이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약 7억원의 개인재산을 이 계좌에 입금해 삼성전자 등 주식에 장기 투자했다. 이후 주가가 상승해 2004년 이후 총매각 금액이 50억여 원이 된 것이다.”

    이 설명대로라면 김 변호사가 자신의 명의를 빌려줘 놓고는 이제 와 엉뚱한 소리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계좌의 실제 주인은 누군가.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김 변호사도 잘 아는 사람이다. 삼성 사람이 아니라 외부인이라고 한다. 재무팀 임원이 지인의 부탁을 받고 김 변호사의 명의를 빌려 차명계좌를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개인간 사적인 거래일 뿐이다. 세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다. 김 변호사와 계좌의 실제 주인 간에 다리를 놓은 사람이 모 임원이다. 김 변호사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의 이름으로 된 계좌를 만들었겠나.”

    그럴 듯한 해명이다. 그러나 의문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삼성에 따르면 계좌의 실제 주인이 지난 9월말 통장에 들어 있던 돈을 다 빼내갔다고 한다. 삼성은 전직 임원 예우 차원에서 지난 3년간 김 변호사에게 자문료 명목으로 매달 2000만원을 지급했다. 공교롭게도 문제의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은 자문료 지급이 만료된 시점이다. 계좌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면 불필요한 공방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밝히지 않고 있다. 삼성 같은 대기업의 임원이 왜 차명계좌를 만들어 외부인의 재테크를 도와줬는지도 의아하다. 금융실명제 위반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은행도 알면서 협조한다”

    금융실명제하에서 당사자 아닌 제3자가 계좌를 만들려면 위임장과 당사자의 주민등록증 사본과 도장, 인감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이 경우엔 실명제법 위반이 아니다. 문제는 기업이 차명계좌를 만드는 경우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직 시중은행 간부는 “은행이 눈감아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이 차명계좌를 운용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주거래 은행은 기업측에서 개인의 신분증 사본만 내밀면 통장을 만들어준다. 원래는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그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다. 잘 알기 때문에 묵인하는 것이다. 이번 경우도 우리은행이 눈감아줬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김 변호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그렇게들 한다. 법적으로 문제 안 되게 서류 처리를 해둔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김 변호사가 공개한 계좌는 ‘비자금 조성용’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통장에 있는 돈은 비자금으로 운용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근무할 때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대기업체는 그런 통장이 많다. 일부 중소기업체도 만든다. 보이지 않는 관행이다. 은행도 알면서 협조한다. 사고가 터지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쪽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공개될 경우 회사와 당사자, 은행 모두 다친다. 회사는 공금 횡령, 개인은 횡령 방조, 은행은 실명제법 위반이 된다.”

    삼성 vs 김용철, ‘폭로 쓰나미’ 실체

    삼성 순환출자 구조

    현직 시중은행 간부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실명 확인 없이 개설된 계좌임에 분명하다. 삼성 정도의 기업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역시 ‘비자금 계좌’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양쪽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비자금 계좌가 맞는 것 같다. 여러 소리 할 것 없다. 돈의 출처와 이동경로를 조사하면 곧바로 확인될 일이다. 삼성만 그러는 게 아니다. 다 한다고 봐야지.”

    그는 “그런데 김용철이 더 나쁘지 않나. 삼성에서 받을 것 다 받고 이제 와서 그런 폭로를 하다니…”라면서 혀를 찼다.

    대선자금 비자금

    김용철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삼성의 대선자금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2002년 대선 때 삼성이 정치권에 제공한 선거자금의 일부는 회사 비자금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삼성의 오랜 상처를 헤집는 발언이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검찰이 밝혀낸 삼성의 대선자금 액수는 385억원이다. 이 중 340억원이 이회창 후보측에 전달됐다. 현금은 40억원이고 나머지 300억원은 채권이다. 반면 노무현 후보측에 건넨 정치자금은 30억원. 현금과 채권 각각 15억원씩이다. 나머지 15억원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에게 건네진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측 소명 깰 방법이 없었다”

    당시 삼성은 이 돈에 대해 “회사 공금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이라는 논리를 폈다. 검찰에 소환된 이학수 부회장은 자신의 재량으로 이 회장의 돈을 대선후보 진영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의 삼성 관련 수사는 미완의 작품이었다.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500억원대의 삼성 채권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은 2002년 대선 때 800억원어치의 채권을 구입했다. 대선자금 수사에선 그중 300억원의 쓰임새만 밝혀졌다.

    2004년 5월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500억원대의 삼성 채권에 대한 내사를 중지했다. 채권 매입에 관여한 전 삼성증권 직원 최모씨와 김모씨가 국내에 들어오면 수사를 다시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두 사람은 수사 도중 해외로 출국해 도피 의혹을 낳았다.

    2005년 9월 대검 중수부(부장 박영수)는 두 사람의 신병을 확보해 수사를 재개했다. 그해 12월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한나라당에 24억7000만원,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에게 6억원어치의 채권이 더 전달된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그에 맞춰 삼성은 “대선 때 쓰고 남은 돈”이라며 검찰에 400억원대의 채권을 제출했다.

    2차 수사를 이끈 검찰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제출한 채권과 검찰이 확보한 채권의 일련번호가 맞아 떨어지고 배서 등 유통 흔적이 없어 대선 때 쓰다 남은 것이라는 삼성측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2차 수사팀은 채권 구입자금의 출처에 대해 따로 조사하지 않았다. 전(前) 수사팀이 이미 확인했다는 이유에서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의 과녁은 기업이 아니라 정치권이었다. 자금의 출처가 아니라 용처였다. 말하자면 삼성이 어떻게 자금을 마련했는지에 대해선 깊이 수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2003년 검찰 수사를 주도한 법조계 고위인사는 “자금의 출처를 의심은 했지만, 달리 증거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삼성의 소명을 깰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부동산과 주식을 팔아 마련한 자금”이라며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

    대선자금 수사 당시 삼성 구조본 재무팀장이던 김인주 사장은 채권 구입 경위에 대해 “구조본 박모 상무가 매입을 지시했다”고 발을 뺐다. 박 상무는 실무자인 최모씨와 김모씨에게 책임을 미뤘다. 그 사이에 최씨와 김씨는 외국으로 도피했다. 검찰 수사는 거기서 중단됐다. 1년여가 지난 2005년 9월, 두 사람의 귀국으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을 때는 박 상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검찰 인사는 언제쯤 할까요”

    법조계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의문을 갖고 있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입증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채권으로 바뀐 현금의 출처를 어떻게 조사하겠나. 채권을 구입한 삼성 직원이 ‘양심 고백’을 하지 않는 한 김용철이 입증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증인인 박모 상무가 죽었지 않나. 이제 와서 이학수가 입을 열겠나, 김인주가 말하겠나.”

    ‘떡값 검사’ 명단

    “나는 검찰을 비롯해 법조계 인물을 관리했다. 구조본 안에서 검찰 관리 수십명을 관리하고 나머지는 60여 개 계열사 관리자가 나눠서 했다. 설, 추석, 여름휴가 일 년에 3회, 500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정기적 뇌물을 돌린다.… 현직 최고위 검사 가운데도 삼성의 불법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은 사람이 여럿 있다.”

    11월5일 김용철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밝힌 삼성의 검찰 로비 실태다. 그에 앞서 언론 인터뷰에선 더욱 구체적인 얘기를 했다.

    “삼성이 구조본 차원에서 부장검사급 이상 검찰 간부 40여 명에게 추석이나 설 ‘떡값’과 휴가비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건넸다. 검사장급에겐 1000만원 이상 건네기도 했다. 구조본이 검찰을 관리하든 데 드는 비용은 연간 10억원 정도에 이른다.”(11월1일자 ‘한겨레’)

    이에 대해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 주장에 대한 삼성의 입장’을 통해 이렇게 반박했다.

    “삼성에서는 검사나 판사를 상대로 떡값이나 휴가비 등을 돌린 적이 없으며, 김 변호사에게 그 같은 일을 지시한 바도 없다. 만일 김 변호사가 법조계 등의 인사를 만나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김 변호사가 사적 관계에서 한 일이지 회사에서 로비를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

    삼성은 또 김 변호사가 사제단에 넘겼다는 ‘명단’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했다. “검찰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명단을 반나절 안에 손쉽게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떡값 검사’ 명단 시비는 2년 전에도 있었다. X파일 사건 때다. 1997년 작성된 X파일 녹취록에 따르면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은 검사들 이름을 대며 얼마씩 줄지 상의했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암시하는 대화도 나온다.

    “검찰 인사는 언제쯤 하면 좋을까요?… 회장님 귀국하신 다음에 하는 게 낫겠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릴 필요가 있죠?”

    이 얘기와 다음 얘기를 연결하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 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임.”(‘회장 지시사항’ 문서-2003년 12월12일 보광)

    “식사, 골프 접대는 기본”

    X파일 녹취록에는 ‘떡값 검사’의 실체가 드러나 있다. ‘명단’이 있을 개연성을 보여준다. 실제로 돈을 전달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삼성이 관리하는 검사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법무팀장이 되자 구조본의 한 간부가 검찰 관리대상 명단을 검토해달라고 했다. 그 안에 ‘삼성 장학생’ 명단이 들어 있었다. 이 명단을 기초로 검찰의 핵심 주요 보직간부, 초임 근무를 서울지법에서 한 간부 판사, 사법시험 성적 우수자 등을 대상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11월3일 발행 ‘시사IN’)

    “삼성의 관리검사 명단을 보게 된 것은 2001년 재무팀에 있을 때다. 내가 주요 보직을 중심으로 이 명단을 보완했다. 관리대상 명단은 삼성 본관 27층 재무팀 관재파트 상무 방에 벽으로 위장된 비밀금고 내에 보관돼 있다.”(11월12일 사제단 3차 기자회견)

    기자는 검찰과 삼성의 관계를 취재하는 과정에 ‘관리대상 검사 명단’의 실체를 확인한 바 있다. 삼성 사정에 밝은 모 기관 관계자를 통해서다. 삼성 간부들과의 학연, 지연 등 각종 연고와 언론, 검찰 내부 평가 등을 종합해 만든 명단이다. 사시 기수 별로 5~10명의 검사 이름이 적혀 있는데, 대체로 부부장급 이상의 간부다. 인원은 약 250명.

    이 명단이 김 변호사가 말하는 명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른 해석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관리하는 검사 명단이라기보다는 주시해야 할 검사 명단이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말장난 같지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사제단이 김 변호사의 말을 빌려 밝힌 ‘관리대상 명단’은 삼성측 주장대로 ‘괴명단’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구체적이다.

    “명단에는 대상자의 직책과 성명, 그룹 내 담당자를 적는 빈 칸이 있다. 뇌물을 전달한 뒤에는 빈 칸 아래 담당자 이름이 기재된다. 담당자 이름이 적힌 것으로 뇌물 전달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검찰에 ‘삼성 장학생’이 있다는 건 오래 전부터 나온 얘기다. 대검의 한 간부는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삼성 장학생’ 얘기가 나올 만하다. 삼성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이 검찰 근무 연고를 바탕으로 검사들에게 접근하는 게 사실이다. 나만 해도 같이 식사도 하고 때로 골프 초청도 받았다.”

    ‘배달사고’ 가능성도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재직시 삼성 구조본 소속 변호사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그다지 잘나가는 검사가 아니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처럼 ‘떡값’을 주지는 않더라. 일 년에 몇 차례 골프 접대를 받았다. 에버랜드 4인 가족 입장권과 수십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은 적도 있다.”

    삼성 관련 고소고발 사건이 기소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도 검찰과의 유착 의혹을 부풀리는 데 한몫 한다. 삼성 관련 사건 중 기소가 된 것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밖에 없다. 삼성전자 계열사 주식 헐값매각 고발사건, 삼성 SDS BW(신주인수권부 사채) 저가발행 고발 및 고소사건, 삼성 SDI 부당노동행위 고소사건, 삼성 SDI 노동자 불법 위치추적 고소사건, 이재용 전무의 삼성생명 계열사 주식 헐값 인수 고발사건, 2002년 대선 관련 재벌총수 정치자금법위반 고발사건이 다 무혐의 처리되거나 각하됐다.

    삼성이 임직원의 각종 연고를 활용해 각계 인맥을 관리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임직원은 자기가 관리하는 사람의 승진인사와 경조사를 챙긴다. 삼성의 한 간부에 따르면 검사의 경우 법무팀에서 명단을 만들어 일괄 관리한다. 대상자의 직급에 따라 ‘선물’을 보내는 사람의 급이 다르다. 예컨대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 검사에게 생일이나 승진 등 축하할 일이 생기면 회장 명의로 화분 등이 배달된다.

    이런저런 정황에 비춰 삼성에 ‘검사 명단’이 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 그렇지만 ‘명단’과 ‘떡값’은 별개다. ‘떡값 검사’를 입증하려면 언제 어디서 누가 얼마를 줬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

    11월12일 사제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에서 뇌물(사제단은 ‘떡값’이 아니라 ‘뇌물’이라고 주장한다)을 받았다는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 세 사람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들을 관리했다는 삼성 관계자 2명의 이름도 언급했다. 당사자들은 모두 완강히 부인하고 나섰다. 삼성 관계자 두 사람은 기자회견 다음날인 11월13일 김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곧바로 고소한 것은 정말 억울하거나 증거 싸움에서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사제단이 밝힌 내용이 다 사실이라 해도 김 변호사 주장의 약점이 덮이지는 않는다. 세 사례 모두 김 변호사가 직접 돈을 준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 정통한 검찰 관계자는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명단이 있다 해도 돈을 전달한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김 변호사가 직접 돈을 준 검사는 세 사람밖에 없다고 들었다. 나머지는 대상자와 친분 있는 다른 간부를 통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입증하느냐. ‘배달사고’도 있을 수 있고.”

    “지배권 승계 위한 것”

    그렇긴 해도 단정하기엔 이르다. 사제단이 갖고 있다는 ‘추가 자료’의 폭발성을 가늠할 수 없는 까닭이다. 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더 구체적인 자료가 있다. 당사자들이 그런 게 있으리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입증 자료다. 기자회견에서 다 내놓지 않은 것은 당사자들에게 심한 망신을 주기 싫어서였다.”

    점입가경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제단은 지금 차가운 사실과 뜨거운 진실 사이에 서 있다. 과연 사제단의 ‘확신’은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진실에 대한 열망을 담은 것인가. 어느 쪽이냐에 따라 이번 사태의 향방이 크게 바뀌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에버랜드 사건

    “에버랜드 편법 증여 사건에 대해 모든 증거 진술을 조작했다. 돈과 힘으로 신성한 법조를 오염시켰다. 저도 거기 관여했다. 명백한 범죄였다. 법무팀장을 맡은 제가 중심이 돼서 저질렀다.”(11월5일 김용철 변호사 기자회견)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을 일컬어 흔히 ‘에버랜드 사건’이라 부른다. 에버랜드가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전무 등에게 전환사채를 헐값에 매각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된 사건이다. 고발인은 법학교수 43명이고, 피고발인은 이건희 회장 등 33명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은 고발장이 접수된 지 3년 만인 2003년 9월. 그해 12월 이른바 분리기소가 이뤄졌다.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불구속기소하면서 이건희 회장 부부에 대해서는 참고인중지결정을 통해 사실상 수사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1, 2심 재판부는 관련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전환사채 발행이 무효라는 취지로 판시했다.

    “에버랜드 사건 대법 판결까지 이 회장 조사 안한다고? 2심 끝나면 한다더니… 삼성이 세긴 세군.”(2007년 6월21일자 ‘조선일보’-‘팔면봉’)

    기사 내용대로 검찰은 항소심에서 유죄가 나올 경우 이건희 회장을 조사하겠다는 뜻을 비쳤다가 슬그머니 후퇴했다. 조사 시점을 대법원 판결 이후로 늦추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에버랜드 사건이 주목을 받는 것은 삼성의 후계구도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삼성카드의 최대 주주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에버랜드다. 따라서 에버랜드를 움켜쥐면 주요 계열사를 모두 지배하게 된다.

    이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바로 이재용 전무다. 에버랜드가 저가에 발행한 전환사채를 ‘독점적으로’ 사들인 덕분이다. 축소 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도 항소심 공판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이유에 대해 “지배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을 정도다. 따라서 에버랜드 사건이 조작됐다는 김 변호사의 폭로는 삼성의 심장부를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증인을 어떻게 빼돌렸다는 건가”

    김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에버랜드 사건의 증인을 조작하고 관련자들이 위증을 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참고인들을 빼돌려 수사를 방해하고 검찰 수사를 축소하거나 무마하기 위해 로비를 벌였다고 폭로했다.

    “유죄선고를 받은 허태학·박노빈은 이 일과 무관하고 일부 증인은 시나리오에 의해 가공된 인물이다. 고령이어서 답변에 미숙하거나 욱하는 성격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거나 외국으로 내보냈다.”(11월3일 발행 ‘시사IN’)

    물론 이에 대해 삼성은 부인하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전환사채 발행에 관여한 에버랜드 실무진, 이사진, 비서실 핵심 임원들이 다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 변호사는 도대체 어떤 증인을 어떻게 빼돌려 수사를 방해했다는 건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삼성은 또 검찰 수사내용을 들어 김 변호사의 주장이 모순이라고 반박한다.

    “1, 2심 재판에서 사실관계에 관한 다툼이 거의 없이 검찰의 주장대로 확정된 상태다. 다만 인정된 사실에 대한 법률적 해석과 판단에 대해서만 검찰과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해 피고인들이 유죄선고를 받았는데, 웬 엉뚱한 소리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의 속뜻은 ‘이건희 회장은 관계없다’는 것이다.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김 변호사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지금으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자칫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수도 있다. 삼성 주장대로 “3년 반에 걸쳐 방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사건의 전체 구도를 뒤집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자들이 김 변호사처럼 ‘고해성사’하지 않는 다음에야.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전환사채 발행과 관련된 에버랜드 이사회를 무효라고 판단했다. 17명의 이사 중 과반에 못 미치는 8명만 참석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변호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고 사제단에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그러잖아도 사제단이 이재용 전무의 부도덕한 재산증식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내놓은 문서(‘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는 삼성의 강력한 반박에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김 변호사의 주장이 폭발력을 갖는 것은 에버랜드 사건이 삼성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재벌의 불법적인 혹은 변칙적인 경영권 세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정무위, 재경위 포진한 親삼성 의원들

    삼성 내부에서도 에버랜드로 상징되는 후계구도 문제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비판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다음은 삼성 간부와 사석에서 나눈 대화다.

    ▼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삼성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대부분의 삼성 직원은 에버랜드 사건에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 중에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에버랜드가 생명을 통해 전자를 지배하지 않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이는 만큼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 핵심은 후계구도이지 않은가.

    “이재용 전무에 대한 주식 편법 증여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검찰이 (적정선에서) 종결했다고 보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 신뢰도가 떨어져서 문제지만.”

    ▼ 후계구도 정립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나.

    “그런 방법밖에 없지 않나. 에버랜드 지분 구도의 정확한 내용은 재무팀 외에는 모른다.”

    삼성이 평소 정관계와 법조계, 언론계 등에 로비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X파일 녹취록만 봐도 그렇다. 삼성은 ‘일개’ 기업이 아니다. 한 국가의 장래와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삼성은 정경유착의 구도를 바꾸었다. 전엔 정치권력이 ‘갑’이고 경제권력이 ‘을’이었다. X파일 사건은 ‘갑’과 ‘을’의 관계가 역전됐음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공화국이 있다’는 얘기가 시중에 나돌겠는가.

    삼성이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해 각계에 로비를 한다는 김 변호사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아마도 ‘비정상적인’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변칙적인 경영권 승계 혹은 후계구도 안착에 유리한 법적 환경을 조성하려면 로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산법은 에버랜드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에버랜드 대주주인 이재용 전무가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것은 한국 재벌 특유의 순환출자 구조 덕분이다.

    1997년에 제정된 금산법 24조는 금융계열사가 비(非)금융계열사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재벌의 금융 지배를 견제하는 법이다. 그런데 초과 보유지분을 가진 금융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이 법의 맹점이었다. 이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회사가 삼성의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두 기둥인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이다. 삼성카드가 가진 에버랜드 지분은 25.64%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6%를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금산법 개정안의 골자는 금융계열사가 가진 초과보유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고 5년 이내에 자발적으로 처분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금산법 개정을 주도한 박영선 의원의 초안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박 의원이 애초 발제한 법안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계열사 초과지분을 강제로 매각시키는 것이었다. 1년 이상 지속된 금산법 개정안 논의과정에 제기된 ‘삼성 봐주기’ 의혹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삼성생명에 대해 금산법이 아닌 공정거래법 11조(계열 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를 적용해 2년 후부터 의결권만 제한하도록 한 것도 그런 의혹을 부추겼다. 삼성은 2005년 공정거래법 11조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금산법은 다른 기업들과는 관련 없는 법이다. 해당되는 기업이 삼성 빼고는 동부화재밖에 없다. 그나마 삼성에 비하면 논할 대상도 아니다. 정무위, 재경위 등 상임위에서 삼성 논리를 대변하는 의원이 많았다. 9인으로 구성된 금융법안심사소위(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산하)에서는 거의 8대 1로 싸웠다. 국회 밖에서는 ‘일류인 삼성을 3류인 정치인이 왜 건드리느냐’는 힐난을 받았다. ‘삼성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이 좀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라는 얘기는 먹혀들지 않았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삼성을 건드리는 국회의원들을 못마땅해 하는 얘기를 하더라. 그만큼 힘든 싸움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 커진 삼성”

    금산법 개정에 적극 나섰던 모 의원실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너무 커져 법과 제도로 삼성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국민 여론을 반영한 일종의 사회협약으로 삼성 문제를 풀어야 할 지경”이라고 탄식했다.

    ‘삼성 봐주기’ 논란이 있긴 하지만 금산법 개정은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는 평을 들었다. 금융계열사의 초과 보유지분에 대한 강제처분권 등의 처벌조항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개정 금산법에 따라 삼성카드가 매각해야 할 에버랜드 초과 보유지분은 20.64%.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전무를 비롯한 자식들은 50% 이상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기 때문에 에버랜드 경영권에는 지장이 없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재직 시절 검사들을 만나면 삼성의 ‘위대함’을 적극 홍보했다고 한다. 그의 법조계 지인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삼성만큼 앞서 나가는 조직이 없다. 삼성 사람들만큼 고생하고 노력하는 사람도 없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데 왜 삼성을 못살게 구나”며 삼성맨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의 자부심이 ‘적개심’으로 바뀐 이유는 분명치 않다. 폭로 동기가 석연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은 삼성의 무리한 행보 때문이다. 자부심을 넘어선 오만함 때문이다. ‘자본의 힘’에 대한 과도한 믿음 말이다.

    김 변호사의 ‘양심 고백’이 가치가 있다면, ‘떡값 검사’ 명단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삼성의 ‘실수’를 바로잡거나 반성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에버랜드 사건의 진실 게임이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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