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호

막판 점검, 호남 표심 & 호남 정치권

“노무현에 배신당한 전라도가 정동영한티 몰표 줄 것 같여?”

  • 조인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7-12-11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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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네 차례의 대선에서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에게 90% 이상의 표를 몰아준 호남 민심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특히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정서가 발견되는 것도 심상치 않다. 10% 이상만 챙길 수 있다면 ‘대박’이라고 판단하는 한나라당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당 대 당 통합의 주판알을 튕기는 범여권 호남 정치인들의 계가(計家) 싸움을 통해 가늠해본 대선 판도의 핵심 변수.
    막판 점검, 호남 표심 & 호남 정치권
    호남 정치권이 안개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동교동’의 바닥작업까지 합쳐진 덕분일까,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통합 행보를 이어가고, 정동영 대선후보는 20% 지지율 탈환을 목전에 뒀다.

    하지만 광주, 전남과 전북이 1987년 이래 지난 4번의 대선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화끈하게’ 뭉치는 분위기는 아니다. 호남지역에서는 아직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 대해 17%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한나라당 지지율도 15%대에서 비교적 견조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5%대 미만을 얻은 호남에서 5%만 더 얻을 수 있다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의 단일화나 다른 구도 변화 없이도 게임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광주·전남·전북 유권자가 약 4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20만표를 추가로 얻고 범여권에서 20만표를 빼앗아 40만표 차이를 낸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제15,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과의 표차는 각각 39만, 57만표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통합민주당’으로의 출항을 앞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반응은 물론 ‘언감생심도 유분수’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결국 ‘전략적 투표’ 관행은 여지없이 살아날 것이고, 그동안 표심을 드러내지 않던 수도권 소재 호남 출신 유권자들까지 결집해 12월초까지 30%대 지지율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정동영 후보측은 여기에 ‘BBK 의혹’ ‘조세포탈 의혹’ 등 네거티브 캠페인을 통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흔든다면 막판에 대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차피 다자(多者) 선거구도가 유력해진 상황이므로 결승고지는 40% 안팎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중론. 따라서 ‘야합’이란 비난 속에서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과 후보단일화를 결행한 것은 ‘집토끼 사수’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3기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그럴듯한 대의에는 어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호남 정치인들이라고 모두 환영 일색인 것은 아니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 지역이 호남인데, 합당으로 인해 갑자기 한 지역구에서 3, 4명이 출마를 준비하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그렇듯 정치인들의 정치공학적 상상력만으로는 이번 대선에서 나타날 호남의 투표성향을 점치기가 어렵다. 과연 호남 향토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총선을 뒤로하고 온전한 진정성을 지닌 채 대선에서 뛰어줄 것인지도 의문이다.

    지난 10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때 광주 시내에서 택시를 탔다가 운전기사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노무현이야 원래 그랬고, 김대중 씨도 요즘 얼마나 인기가 없는 줄 아요? 차라리 이명박 찍어부린다는 말들을 한당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호남인들의 ‘무조건적 사랑’이 얼마쯤 식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차라리 이명박’이란 말에 방점이 찍혔다. 그러고 보니 현지 몇몇 기업인이나 대학교수도 최소한 ‘이명박 지지 선언’ 정도는 별 눈치 안 보고 저질렀던 것 같다.

    ‘수도권 호남표’ 집결할까?

    택시 기사는 “정치인들이 광주에 공들이는 이유가 광주만 보고 그러는 거것소? 그런데 내가 추석 연휴 땜에 와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 경기도에 터 잡고 사는 이쪽 사람들이 참 싸늘하대. 그래서 이번엔 그것조차 생각만큼 잘 안될 것으로 보요”라며 말을 이었다.

    그때 나눈 대화가 생각나는 것은, 대선 한 달여를 앞둔 11월 중순 현재 나타나는 여론조사의 동향 때문이다. 대체로 후보등록(11월 25, 26일)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마음을 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론조사 기관에서도 대선 한 달 전부터는 데이터를 좀더 꼼꼼히 챙기는 편이다.

    막판 점검, 호남 표심 & 호남 정치권

    11월12일 대통합민주신당 오충일 대표와 정동영 대선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박상천 대표(오른쪽부터)가 국회 귀빈식당에서 당 대 당 통합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11월10일 실시한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KRC)의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호남지역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그런대로 ‘호남 후보’로서의 체면치레는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수도권에서의 지지율은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

    정동영 후보는 광주·전라(45.7%)에서 과반에 가까운 지지를 얻었으나 서울(10.3%)과 경기·인천(10.8%)에서는 범여권의 전통적 약세지역인 부산·울산·경남(9.1%)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서울·경기에서 영남권 정도의 지지율밖에 얻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측은 아직은 ‘집토끼의 방황’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수도권 지지율의 저하는 정 후보가 ‘진보개혁세력’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보수화한 20대가 별로 지지를 보내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 후보는 이 여론조사에서 30대에서는 16.0%의 지지율을 얻었지만 20대에서는 8.6%에 그쳤다.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수치다.

    호남권에 원적을 둔 거주자가 3분의 1이라고는 하지만, 서울·경기에서는 이미 새로운 종류의 지역정서가 나타나는 징후도 엿볼 수 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랄 수 있는 대구·경북(47.2%)보다 서울(47.5%)에서 오히려 조금 더 높았다. 경기·인천(45.1%) 역시 부산·울산·경남(43.7%)보다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호남과 수도권 표심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시작되고 있다고 표현한다. 기존 선거에서는 호남 표심의 향방에 따라 호남 출신 거주자 비율이 높은 서울 등 수도권의 표심이 따라가는 현상을 보였지만, 이번 대선만큼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네 번의 대선에서 서울·경기에서는 한 번도 민정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 보수정당이 이긴 적이 없다. 전국 유권자 3700만명 중에서 수도권 두 지역에는 1600만명이 거주하기에 위력면에서 거의 절대적이다.

    민주당의 유종필 대변인도 이런 분석에 공감하는 듯하다. 그는 기자와 사석에서 만나 “지난해 지방선거 때부터 그런 현상이 감지됐다. 고향이 호남인 부모와 다르게 투표하는 2세들이 늘고 있고, 또 아예 수도권 호남 출신들의 성향이 그야말로 ‘실용’으로 바뀌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현 정권의 ‘세금폭탄’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고향이나 출신지와 상관없이 수도권 서민들이 과연 범여권 후보 쪽에 애정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예기치 못한 ‘엇박자 상황’은 범여권 전략기획통들에게도 적지 않은 당혹감을 주고 있다. 전통적인 집표(集票) 공식이 어긋나고, 선거구도 역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임에 따라 마땅한 ‘돌파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강래, 이광재 의원 등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호남 표 결집과 이에 따른 수도권 동조화로 인해 누가 후보가 되든 대선후보 경선이 끝나면 후보 지지율은 최소 25%대에서 시작할 것이고, 컨벤션 효과로 인한 ‘플러스 5%’도 노려볼 수 있다고 호언하곤 했다. 그러나 ‘본전’이라던 25%는 역설적으로 정동영 후보를 기준으로 보면 아직 한 번도 찍어보지 못한 고지(高地)인 셈이다.

    한나라당의 ‘10%+α’ 방정식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무소속으로 출마함에 따라 한나라당은 최악의 경우 ‘전통적 지지층’이던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서 표가 갈라질 공산이 커졌다.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다자구도 속에서도 40%대를 유지하려면 이념적으로는 중도, 연령대로는 20·30대, 지역으로 보자면 호남에서 지금보다 표가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한나라당 선거 전략가들의 속내다.

    이명박 후보는 11월 하순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지율 12~17%를 기록하고 있다. 한때 30%를 웃돈 것에 비하면 ‘거품이 빠진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이미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까지 진행된 마당이라 더는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호남 지역의 경제 살리기 여론이 이명박 후보에 대한 기대로 전이돼 있는 측면이 있고, 상대적으로 이명박 후보가 이 지역의 비토 정서가 강한 ‘정통 한나라당’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이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되고 난 뒤 호남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율도 후보 지지율과 큰 차이 없이 15%대를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노무현식 진보개혁주의’에 지친 호남 지역 내 50대 이상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표심도 관건이다. 대선 한 달여를 앞두고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본부의 체육·청소년분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초빙된 김주훈 전 조선대 총장은 공개석상에서 “대학 행정을 책임졌던 내가 본의 아니게 이런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정권교체의 시급성 때문이다. 호남에서 한나라당이 두 자릿수 지지율을 얻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호남에서 이른바 ‘제3후보’에게도 큰 애정을 주지 않는 것은 한나라당 처지에서는 고무적인 대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정당 단일화가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문국현씨까지 포함해 모두 다 연합으로 해서 대통령 당선시키고, 설사 안 되더라도 최선의 투쟁을 해서 국민적 인정을 받으면 나중에 총선 끝나고 나서 통합해도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근히 문 후보를 띄워주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진보·개혁 성향임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수도권과 영남 지역에서는 7%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호남권에서는 2%대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16개 시·도 중 최저 수준이다. 이와 관련, 문 후보측에 합류한 여론조사전문가 김헌태씨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했던 영남지역 보수층 중에서 문 후보 지지율이 의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호남 지지율이 5~6%대로,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한나라당측의 시각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광주·전남·전북을 합쳐 평균 92.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은 4.9%에 그쳤다. 당시 두 후보의 전국 전체 표차는 57만표에 불과했다. 이회창 후보가 호남권에서 10%만 더 얻었다면 3만여 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다.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39만표차로 누른 1997년 대선 당시 이 후보는 호남에서 3.27%를 득표했다. 그가 호남에서 10%만 득표했어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호남’을 승리 방정식으로 삼았던 예전의 야당 선거 패턴이 이번에 한나라당에 적용되지 말란 법도 없다. 특히 아무리 마지막 거품이 빠진다 해도 호남에서 10%는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이렇게만 돼도 한나라당으로서는 ‘대박’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서부 벨트 부활 가능성은?

    이와 관련해, 대선 한 달을 앞둔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범여권의 양대세력을 형성해온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기로 한 데 대해 호남표가 어느 정도로 결집할지의 문제다.

    예전과 다른 부분은 호남이 결집한다고 해서 ‘호남-충청-수도권’ 서부벨트가 모두 곧 완벽하게 복원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구도라는 점이다. 앞서 설명했듯 실제로 수도권 표심이 호남과 엇박자를 보이는 가운데 충청도에서도 이명박, 이회창 후보가 60% 정도의 지지율을 비슷하게 나눠먹고 있고 정동영 후보는 20% 남짓한 형편이다.

    아직도 ‘현존하는 범여권의 최대 정치권력’으로 실체를 인정받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각이 다소 다르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에 나를 당선시킨 사람들, 또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사람들은 같다. 그 사람들을 집결시킬 수만 있다면 선거는 해볼 만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거에 두 번 이겼으니까 또 한 번 이길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호남에 끼치는 영향력도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게 범여권 정치인들의 전언이다. 일례로 이번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과정 막후에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가교 노릇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범여권 정치인들에게 미친 소구력이 예전처럼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몇몇 민주당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호남에서 ‘김대중 선생님’이란 말이 많이 사라지고 김대중씨, 심지어 ‘김대중이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 요즘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은 지난 7월 그의 아들 김홍업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류하면서부터 조금 더 지역 밑바닥으로 퍼졌다는 게 정설이다. 앞서 4월 민주당은 어려운 당내 사정을 무릅쓰고 ‘전략공천’ 카드를 뽑아 들어 김홍업씨를 전남 무안·신안 보궐선거에서 당선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다. 그런 김 의원이 결국 3개월 만에 탈당계를 낸 것이다.

    믿고 찍어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속적인 실망감도 이번 대선 호남 표심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은 했지만, 아직도 ‘국정실패세력’ 이미지가 강한 노무현 대통령 색채가 당에 많이 투영돼 있는 데다 정동영 후보 역시 노 대통령의 정책이나 이념을 ‘비판적으로 승계’하겠다고 밝힌 점 등은 범여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11월8일 노 대통령은 무안 국제공항 개항식에 참석한 직후 전남 나주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 주요인사 오찬 간담회’에서 “내가 열린우리당 창당을 응원했던 것은 호남 안에서도 정당간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로지 지역만을 근거로 단결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부르게 되고 영원히 큰 판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화를 참지 못해서 그러는데 ‘호남 뭉치자’는 말만 거듭하며 저급한 전략을 쓰는 전라도 정치인들하고 일을 못해먹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 사실은 다음날 지역 유력언론 1면 톱기사를 장식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취임 초기의 ‘내가 좋아 찍었겠냐,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찍었겠지’라는 발언을 비롯해 노 대통령이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호남 불신’ 발언을 남긴 것을 호남 유권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런 비토 여론까지 가슴에 묻고 한나라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정동영 후보에게 몰표를 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무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와 ‘자리’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의 국회의원과 당직자들 가운데 요즘 가장 긴장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호남에 지역구를 뒀거나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인사들이다. 그나마 대선결과나 정치지형 변화와 관계없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 호남인데, 합당으로 인해 공천을 받기 위한 내부 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전남 일부 지역구는 이미 3, 4명씩 예비 후보들이 출마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번 합당에 대해 해당 지역구 의원과 원외 당원협의회장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만에 하나 범여권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당초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오충일 대표-민주당 이인제 후보, 박상천 대표의 합의안 대로 오충일·박상천 공동대표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르게 되면, 이후 당은 사실상 박상천 대표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나도는 상황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시민사회단체출신 한 인사는 “오충일 대표가 시민사회 출신이므로 당초 당헌대로 1월 전당대회를 통해 교체되지 않고 대표직을 6월까지 유지하게 되면 시민단체측 인사들이 공천을 받는 데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이는 사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오 대표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사실상 박 대표가 실권을 장악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특히 호남에서는 원외 유력 인사들이 민주당에 줄을 많이 대놓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통합민주신당 호남 출신 인사들은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봉주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50대 50으로 신당과 민주당이 지분 약속을 했지만, 대선 결과에 따라 합의 내용 이행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사실 일부 호남 지역을 빼놓고는 어느 누구도 선뜻 당선을 확신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 당에서 합당과 관련한 합의내용을 놓고 지나치게 민감하게 해석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결국은 대선에서 승리해야 더 많은 호남 정치인에게 ‘미래’가 보장된다. 꼭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정권 주변에 많은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후보는 최근 민주당과의 통합선언 바로 다음날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광주의 자존심 때문이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선동하는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 통합하기로 했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집권을 위해 ‘호남의 몰표’가 반드시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호남은 과연 한나라당과 대척에 있는 정당의 후보라는 이유로 1987, 1992, 1997, 2002년 선거에 이어 다섯 번째로 ‘90%대 몰표’를 선사할 것인가. 아니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보수정당 후보에게 10% 이상의 득표율을 선사할것인가.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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