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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노무현 시대의 좌절: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

노무현 사람들의 노무현 평가

  • 이승협│한국노동연구원 교수 solnamu@gmail.com

노무현 시대의 좌절: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비판적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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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요구를 방기한 순간

주체역량의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난 대표적 영역이 통일과 외교영역이다. 김양희(3장)와 구갑우(4장)가 분석하듯이, 미국의 정책을 대변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등 이해관계가 다양한 동북아 지역의 소패주가 되겠다는 동북아시대의 주창은 자기 역량의 과대평가이자 모순덩어리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주의를 지향하면서 미국의 요구와 패전국의 전후 처리라는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고, 열린 지역주의를 주창하면서 강대국 중심의 무역질서인 WTO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전략과 정책은 외교와 통일 문제를 또다시 내부 문제화하여 범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미국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던가, 아니면 부분적으로 미국의 입김을 배제하면서 동북아 공동체를 추진하던가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고립되어버렸다.

노무현 정권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사회정책 영역이다. 노무현 정권에 쏟아졌던 사회적 열망은 40년간 지속되어온 성장주의가 낳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진보정권이라는 시대적 요구의 선택이었지 노무현 개인이나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이 시대적 요구를 개인에 대한 지지로 착각하고 사회정책적 과제를 방기하는 순간 정권의 존립 토대는 와해됐다.

사회정책을 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한 보조제로 이해하는 수준에서는 전병유(5장)가 지적하듯 관료의 덫을 벗어나기 힘들다. 성장주의의 경로의존성에 함몰된 관료가 주도하는 사회정책은 그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던 성장과 분배라는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혼 없는 관료의 정책마인드로는 관리 이상의 새로운 방향과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국가복지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시대에 사회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는 복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양재진(6장)의 표현대로 “지지동원의 실패”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노무현 시대에 가장 가혹한 평가를 받는 영역이 노동영역이다. 박태주(7장)와 은수미(8장)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사회통합을 내건 신자유주의 정책”“안일한 인식과 무력한 대응”이라고 정리한다. 비전 없이 로드맵에만 매달린 규제적 노동정책은 사회통합을 목표로 했으나 사회갈등을 첨예화시킨 대표적 사례가 되고 말았다.

노무현 시대에 가장 깊은 좌절을 느낀 이들은 아마도 무주택자들일 것이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지속된 집값 상승랠리는 특별한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근로소득 계층, 특히 청년층에게 사회양극화를 몸으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정준호(9장)나 정건화(10장)가 지적하듯이, 원대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저금리정책과 맞물리면서 의도와는 다르게 전국민이 주택로또에 뛰어드는 신건설족의 황금시대를 불러왔다. 중앙정부의 권력독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간적 분산을 통해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방 및 지역 발전의 의미와 합리적 핵심에 대한 고민 없이 지역개발사업 위주로 짜인 발전전략은 지역에 서울과 같은 대도시형 발전모델을 강요하여 지역사회 또는 지역공동체를 해체하는 신개발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재벌기업 및 대기업 위주의 기술혁신전략으로 인한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산업양극화 심화(11장), 사교육비 경감을 목표로 놓고 공교육을 오히려 사교육으로 만들어버린 교육정책의 실패(12장) 등도 뼈아픈 대목이다.



진보의 재구성

그렇다면 총체적 개혁시도의 총체적 실패와 이로 인한 진보세력의 몰락을 극복한 진보의 재구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일영(13장)은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에 기대어 새로운 진보의 경제체제를 제시한다. 즉 남북한 경제통합과 총체적 개혁을 수행하는 조직·제도를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경향성으로 새로운 진보의 경제체제를 규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진보가 진화로 이해되고, 시장과 제도가 혼합된 중도가 강조된다는 점.

책을 읽고 나서, 노무현 시대의 좌절에 대한 비판적 진단의 결과가 중도와 진화라는 두 개의 추상적 개념어로 정리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중도와 진화는 영국 블레어 신노동당의 제3의 길(The Third Way)이나 독일 슈뢰더 사민당의 신중도(Neue Mitte)의 정책노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장주의의 경로의존성에서 탈피할 수 있는 진보의 사회경제전략을 분단과 세계화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추구해갈 수 있을 것인지 제시했더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어쨌든 이 시대의 진보는 노무현 시대의 좌절을 딛고 새로운 전환을 이룩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과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의 오만이 가져올 사회적 파국에 새로운 희망과 전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시대에 대한 냉혹한 진단과 검토가 필요하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은 새로움을 모색하기 위한 내부로부터의 자기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창작과비평사/ 272쪽/ 1만5000원

신동아 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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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협│한국노동연구원 교수 solnam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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