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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특종

한국사 최초, 100 년 전 흉부외과 기록 발견

이재명의 칼에 찔린 이완용이 첫 환자, ‘대한의원’ 진료 후 감정서 발행

  • 김원곤│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

한국사 최초, 100 년 전 흉부외과 기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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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도산 안창호가 회장으로 있던 ‘한인공립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민족운동을 벌여나갔다. 1907년 7월 헤이그 밀사로 파견됐던 이준 열사의 순국 소식을 접한 그는 비분강개한 나머지 결국 매국노를 숙청하기로 결심하고 그해 가을 급거 귀국한다. 이후 동지를 규합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시도했지만 그에 앞서 10월26일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가 처단되자 11월 하순경 목표를 바꿔 평양에서 동지들과 합세해 이완용, 이용구 등을 처단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이때 이재명의 동지들 중에는 당시 대한의원 의학원(경성의전의 전신) 학생이던 김용문과 오복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재명은 12월12일 상경해 이미 한성에 와 있던 김용문, 이동수, 김병록 등과 함께 거사 기회를 엿보던 중 이완용이 12월22일 오전 종현 천주교회당에 나타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가 기다리다 거사를 실행에 옮겼다. 1962년 뒤늦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올해는 그가 거사를 실행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완용의 상처와 감정서

필자는 이재명 의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밝혀나가던 중 우리 의학사에서 귀중하게 취급되어야 할 의학적 기록을 찾아냈다. 이재명의 칼에 찔린 이완용의 흉부외과적 진료와 치료 기록이 그것이다. 정확하게는 이재명의 재판을 위해 당시 대한의원 의사가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 ‘상해 감정서’다. 대한의원의 의관이던 스즈키(鈴木講之助)에 의해 작성된 감정서의 내용은 한국사 최초의 흉부외과 관련 기술이다. 한자와 일본어로 작성된 감정서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은데, 이 감정서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완용의 상처가 어떠했으며, 어떻게 치료됐는지가 밝혀진 것도 최초다.

한국사 최초, 100 년 전 흉부외과 기록 발견

이완용을 칼로 찌른 이재명 의사(義士).

감정서 (鑑定書)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53세

명치 42년 12월22일 이완용의 창상에 관하여 경성지방재판소 검사 이토(伊藤德順)에 의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감정하도록 명을 받아 1. 창상의 위치 및 심천, 2. 흉기의 종류, 3. 창상의 경과, 4. 예후의 양부를 감정한 바는 다음과 같다.

1. 창상의 위치 및 깊이(深淺)

(갑) 좌견갑골 내측 상부의 자창

폭 7 cm 깊이 6 cm, 제2, 제3 늑간을 자통하면서 제2 늑골의 하연을 잘라 늑간동맥을 절단하여 과다 출혈을 일으키고 또한 폐를 손상해 창공으로부터 출혈 및 호흡에 수반된 공기 출입이 있었다.

(을) 오른쪽 등(右背) 제11 늑골 견갑연부(肩胛緣部)에 있는 자창

폭 3 cm 깊이 6 cm, 다행히도 신장의 손상은 없었다.

(병) 오른쪽 등(右背) 제12 흉추에서 우방으로 4 cm 떨어진 곳의 자창

폭 2.5 cm, 깊이 5 cm

(을병) 창상은 하나의 자창으로서 부상의 찰나에 신체를 회전함으로써 칼끝이 제12 늑골에 닿을 듯 말 듯한 후에 외피 아래쪽으로 뚫고 나온 것으로 일견 2개의 상처로 보이지만 완전히 하나의 자창으로 이는 수술을 시행할 당시 발견된 것이다.

2. 흉기의 종류

흉기는 창상의 상태로부터 추정한바 예리한 첨도(尖刀)로 생각됨

3. 창상의 경과

창상 앞부분은 2개소로 바깥은 좁고 속은 깊었다. 창상 내의 삼출물 및 응혈을 치료해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12월23일 양창을 상하좌우로 절개해 내용물을 제거하였다. 외과학의 제칙에 따라 치료를 시행함으로써 점차 원하는 결과를 거두고 6주 만에 창면(創面)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었다. 부상 당시 엎어져서 좌 흉부를 강하게 타박당했으므로 왼쪽 가슴의 후액와연(後腋窩緣)에 제 4 늑간에서 제 7 늑간에 걸쳐 손바닥 크기의 피멍이 생겼는데 수일 만에 암자색으로 변했다. 압통 및 타진(打診, 가슴을 두드려 진단함)상 탁음이 들리고, 청진기상으로는 호흡음이 미약했는데, 1월20일 이학적 증상이 더욱 현저해져 속이 빈 가는 침을 몸속에 찔러 넣어(천자술) 혈성장액 700ml 를 배출했다. 상태는 점차 좋아졌으나 타진상 탁음을 남기고 있고 때때로 발열이 있는바 전기(前記) 증상은 외상성 늑막염에 기인한 것이다.

4. 예후의 양부(良否, 좋음과 나쁨)

창상은 이미 치유돼 뚜렷한 장애를 남기지 않았지만 앞서 말한 외상성 늑막염에 따른 증상은 예후에 큰 관계가 있다. 즉 염증성 삼출물의 흡수가 전혀 흔적이 없을 정도로 이루어지면 후유증이 없을 수도 있으나, 이는 좀 더 시일이 경과해야만 만성질환으로 남을지 건강상태로 회복될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당장은 예후의 좋고 나쁨(良否)을 단언하기 어렵다.

이 감정서에는 명백하게 늑골하연 자상, 늑간동맥 출혈, 폐 손상, 좌흉부 타박상, 외상성 늑막염 등의 흉부외과 전문 병명이 언급되어 있으며 또한 기흉과 혈흉을 의미하는 서술(폐를 손상하여 창공으로부터 출혈 및 호흡에 수반된 공기 출입이 있었다)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흉부 천자술에 의한 혈성 삼출액 배출’이라는 외과적 시술에 관해서도 분명히 기록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술들이 바로 한국사(史) 최초의 흉부외과 관련 기술로 생각되는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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