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쟁점법안 폭풍의 핵’ 김형오 국회의장

“청와대는 정무기능 다시 점검해 보라”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9-02-05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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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는 제때, 제대로 법안 만들어야
    • 보수신문에 엄청 깨져 아침에 두려웠다
    • 나의 결단이 ‘제2의 노동법 사태’ 막아
    • 인터넷은 폭발 직전…이어령 같은 사상가 더 필요
    ‘쟁점법안 폭풍의 핵’ 김형오 국회의장

    사진 김형우 기자

    지난 연말연초 미디어법안 등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에선 해머와 전기톱까지 동원된 극단적 여야 대치가 있었다. 김형오(金炯旿·61) 국회의장은 ‘친정’인 한나라당의 쟁점법안 본회의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입법 전쟁’의 최대 뉴스메이커가 됐다. ‘신동아’는 1월12일 오후 국회 본관 의장실에서 두 시간여에 걸쳐 그를 심층 인터뷰했다. 지난해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신동아’와 단독 인터뷰한 지 1년여 만이다.

    김 의장은 “정무기능을 다시 점검해 보라”고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으며 시원시원한 시각으로 ‘18대 국회의 자화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는 느낌이다.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 출신답게 현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네르바’ 논란에도 관심을 표명하면서 “미네르바가 과연 한명인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정상소와 미친소

    ▼ 2008년 7월 제18대 국회 초대 의장에 취임하여 지금까지 6개월여 간 입법부를 운영해온 소회가 있다면.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국민들은 18대 국회 하면 연말연시의 폭풍 외에는 기억이 없으실 거예요. 그 폭력사태가 너무 깊게 각인되었고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상당히 실망하고 계실 겁니다. 면목이 없고 부끄럽고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입니다. 지난해 7월 어렵사리 의장에 취임한 뒤 나름대로 노력도 했는데 한 순간에 물거품…공든 탑, 아니 탑을 쌓기도 전에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국회가 다시 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영원히 버림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를 악물고 국회의 정상화, 민주화, 자율기능을 회복하고자 해요.”



    ▼ 의장께선 어떤 방향으로 국회 개혁을 추진해왔습니까.

    “나는 국회 개혁의 큰 그림으로 정책 국회, 상생 국회, 소통 국회를 내걸었습니다. 국회의 경쟁력을 높여 국가발전에 큰 힘이 되도록 하자, 여야 간 상생하고 국민을 보고 경쟁하자, 민의의 대변기관답게 국민과 더 잘 소통하자는 거였죠. 첫 글자만 따면 ‘미친소’의 반대인 ‘정·상·소’인데, 지난 광우병 파동과 같은 일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죠. 그러나 이번 폭력 사태를 낳은 국회는 분명 ‘정상소’가 아니죠.”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김 의장은 ‘국회 기능 효율화’ 기구와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1987년 헌법체제의 극복을 위한 ‘개헌’ 기구를 의장 직속으로 두어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고 한다. ‘국민과의 소통’과 관련해선 일반인의 국회 출입 절차를 간소화했고 주차공간이 절대 부족함에도 일반인 전용 주차장을 만들었으며 법·의안 인터넷 공지, 위원회 의사진행 생중계, 인터넷을 통한 법 제안·청원·여론 수렴, 국회의원의 해외여행 의무 공지를 실현했다고 한다.

    “지엽말단적인 일로 싸워”

    ▼ 18대 국회를 만든 지난해 4월 총선의 민의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요.

    “별로 ‘뉴스가치’가 없는 질문 같지만 중요한 얘기예요. 매 선거에는 국민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이를 잘 해석해 국정에 반영하는 풍토나 시스템이 아직 우리 정치권에는 별로 없어요.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에 153~180석에 육박하는 과반 의석을 주었고, 민주당에는 82석이라는 견제력을 갖춘 의석을 주었어요. 이는 이명박 정부와 집권당이 힘 있게 국정을 운영하되 야당과도 대화와 타협을 하라는 의미였죠.”

    ▼ 그런 민의가 국정에 잘 반영됐나요.

    “물어보나 마나죠. 제대로 못했죠. 이제는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더 하기도 뭣하네요.”

    ▼ 실패한 이유를 차근차근 따져보죠. 18대 국회는 원 구성에서부터 여야 간 대립으로 한 치도 못 나아갔습니다. 이 때문에 무려 83일간 허송세월을 했는데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미국이나 유럽 의회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국회의장의 실질적 권한이 별로 없어요. 원 구성과 관련해선 특히 그래요. 여야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구성하겠다, 좋은 자리 더 차지하겠다고 싸워도 이를 중재할 수단이 별로 없는 거죠. 의장이 협박을 해도, 아무런 무기도 없는 협박을 누가 무서워할까요. 결국 나는 언론에 호소해 여론의 압력으로 싸움을 멈추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죠. 그때 언론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 예전 국회의 원 구성과 비교한다면.

    “나는 5선 의원으로 제법 오래 국회에 있었는데, 이번처럼 여야가 ‘지엽말단적인 일’로 싸움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얼마나 싸웠으면 국회 문 여는 데만 83일이나 걸렸겠어요?”

    ▼ 정쟁(政爭)이 더 심화되는 쪽으로 국회가 ‘퇴행’한 이유는 뭔가요.

    “10년 만의 ‘자리바꿈’이어서 여야 모두 새로운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집권당이었다가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자신에게 닥친 변화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같고, ‘반DJ 반노’의 야당에서 집권 여당으로 바뀐 한나라당은 여전히 투쟁적인 듯했어요. 또한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여야의 중진-원로그룹 상당수가 소멸했어요. 이것이 예전 국회의 여야 간에 존재했던 다양한 대화채널의 상실로 이어졌죠. 여기에다 원 구성이 늦어지면서 국회 일정이 상당히 쫓기게 되어 여야간에 서로 얼굴 익힐 시간도 없었습니다. 여야 협상을 중재하면서 ‘여야 간에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는가’라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어요. 한나라당 내부적으로는 친박계는 당내에서 소외되었다고 보고 적극 나서지 않으니 타당과의 관계에는 더 나서지 않게 되죠. 민주당 내부도 복잡하긴 마찬가지고요. 서로 적(敵)도 아니고 원수도 아니고 의견의 차이일 뿐인데, 앞으로는 같은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잘 조율해 나아갔으면 해요. 이런 분석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겁니다.(웃음)”

    “헌법이 문제다”

    김 의장은 ‘예산안 처리 과정과 결과’에 대해선 “경제위기를 감안했을 때 12월12일 경 예산안을 통과시킨 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 김 의장은 예산안을 직권상정해 통과시켰으나 야당 측은 연말연시 여야의 쟁점법안 충돌 때와는 달리 직권상정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예산을 빨리 집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게 12월12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산안을 처리한다고 누누이 못 박아 두었기 때문에 야당도 예산안 합의를 서둘렀고 직권상정을 막지는 못한 거죠.”

    ▼ 언론은 이번에도 국회가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을 넘겼다고 비판했는데요.

    “의원들이 더 분발해야겠지만 근본적으로는 1987년 체제의 현행 헌법 자체의 문제입니다. 개헌이 필요해요.”

    ▼ 헌법의 어떤 점이 현실과 맞지 않나요.

    “정부가 10월2일 다음해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60일간 심의한 뒤 12월2일까지 처리해야 해요. 정부가 다음해 1월1일부터 바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실행계획을 12월 한 달간 마련하라는 취지죠. 그런데 헌법이 정한 60일 심의기간 자체가 너무 부족해요. 헌법이 개정된 1987년 무렵 20조원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정부예산 규모에선 60일이면 충분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정부의 살림규모가 300조원까지 불어났기 때문에 60일 만에 제대로 검토하기가 어려워요. 더구나 9월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 대(對)정부질의 등 다른 국회 일정으로 예산 심의 기간은 실제로는 30~45일 정도로 줄어드는 게 다반사예요. 그러니 매년 부실 심의, 늑장 통과가 반복되는 거죠. 개헌을 해서 국회가 4월부터 예산 심의에 착수해 90일 이상 정부 예산을 꼼꼼히 처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 예산 심의와 함께 국정감사는 국회의 중요 기능인데, 2008년 국감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별로 잘된 건 없지 않나요? 국감에서 눈에 띌 만한 게 있었나요?”

    ▼ 쌀 직불금 문제….

    “국감이 갈수록 형식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구조적으로 문제점이 있는 것이, 20일 동안 500개 피감기관을 상대로 몰아치기를 하니까 폭로와 호통이 난무할 뿐 내실 있는 국감이 되기가 쉽지 않은 거죠.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도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서 준비는 소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청와대-정부-국회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야당에선 “국회가 청와대와 정부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집권층 내부에선 “정부와 국회의 손발이 안 맞는다. 국회의 무능과 비협조로 정부의 정책집행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의장은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답은 아니다. 정부와 국회는 한통속이면서 동시에 딴 통속이 되는 게 가장 좋은 관계”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하는 방식과 국회가 일하는 방식은 달라야 합니다. 정부는 합목적적으로 실행 위주로 일해야 해요. 국회는 절차적 합리성을 더 따져야 합니다. 또한 집행에 따른 불이익이나 소외를 최소화하는 데 주목해야 하죠. 세계 어느 나라든 정부와 국회 간에는 그러한 역할 분담이 필요해요.”

    ‘쟁점법안 폭풍의 핵’ 김형오 국회의장

    김형오 의장은 “적법 절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자, 이제 연말연시의 그 ‘폭풍’ 얘기를 해볼까요.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의장께 쟁점법안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야당의 물리적 저항에 굴복해 다수결의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해당 법안들은 국정 추진에 꼭 필요하다면서요. 청와대도 조속한 법안 처리를 강하게 희망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끝내 직권상정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정에 꼭 필요한 법안들이었다면 정부가 잘 검토해서 제때에,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왔어야죠.”

    ▼ 대다수 쟁점법안은 정부가 발의한 정부입법이 아닌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의원입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정부의 주문에 의한 의원입법이었다고 보는 건가요.

    “정부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자니 법안 내용을 놓고 부처 간에 의논할 것도 많고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고 시간도 오래 걸려 의원들에게 주문하거나 부탁해 내놓은 의원입법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정부가 준비를 소홀히 한 점이 나타났어요.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12월 초가 되어서야 여야 간 이견이 첨예한 쟁점법안들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가져왔어요. 법안 내용에 문제점이 지적되자 40여 개 법안은 12월24~26일에야 수정안이 나왔습니다. 그래놓고는 국회의장에게 12월 말까지 법안이 통과되도록 직권상정하라고 떠들기 시작한 겁니다. 한나라당 의원 총회에서 직권상정 요구서가 발부되고…. 이런 식의 운영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국회가 통법(通法)부, 거수기 시절로 돌아갈 위험한 사고방식이죠.”

    ▼ 다수결 원칙도 중요하지만 절차적 정당성의 확보를 통한 명분의 축적도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법안은 먼저 해당 국회 상임위에 상정해 여야가 충분한 토론을 하고 본회의에 올려 표결 처리하는 게 정상적 절차이고 상식이죠. 이런 과정을 거쳐야죠. 예를 들어 ‘과반의석의 여당이 상임위에 상정하려고 하는데 소수 야당이 폭력으로 상임위 상정조차 못하게 하고, 상임위에 상정해 토론하려고 하는데 토론도 불가능하게 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어 도저히 본회의 직권상정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정당성이 입증되어야 그런 법안에 한해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할까 말까 최종 판단하는 겁니다.”

    “내 정치인생을 걸었다”

    ▼ 의장께서 말씀하셨으니 이 기회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보고 싶습니다. 의장 말씀대로 한나라당은 의장께 쟁점 법안들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이에 야당 국회의원들은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은 명백한 국회법 위반”이라고 했습니다. 야당 측은 TV토론에서도 ‘위법성’을 강조했습니다. 한나라당 측 패널들은 반박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한나라당의 요구가 과연 ‘불법’일까요? 여러 해 국회를 취재한 저로서는 야당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반드시 법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다툼이 있는 사안 정도일 뿐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법안은 상임위-법사위-본회의를 거쳐 처리됩니다. 법안을 상임위에 상정해 논의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국회의장이 바로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는 것은 이런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국회법 위반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회의장은 국회법의 최종 해석권자이므로 국회의장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상임위 단계를 생략하고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건데요. 의장의 견해는 어떠신가요.

    “나도 같은 견해예요. 상임위에 상정했는지 여부가 핵심 사항은 아닙니다. 다만, 직권 상정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국민적 여론과 판단이 있어야 하겠지요. 여당이 수의 힘만 믿고 직권상정에만 의존한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국회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직권상정은 역사 앞에 당당하고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해요.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과정을 거치는 ‘적법 절차(due process)’는 정치의 기초입니다. 이걸 거치지 않은 일은 누가 어디서 무슨 압력을 행사하더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나는 정치인생을, 모든 걸 걸었어요. 직권상정을 거부한 이번 결정, 참 외로웠어요.”

    ▼ 법안들이 통과되어 시행되면 여러 공익이 발생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법안들의 직권상정이 거부되어 아무 일도 시행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공익은 무엇인가요.

    “해야 할 일을 하면 이익을 얻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피해를 봅니다. 변화가 항상 선(善)은 아닙니다.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역사를 변질과 퇴행으로부터 지켜낸 거예요. 나는 성숙되지 않은 법안을 직권상정하지 않음으로써 ‘제2의 노동법 사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 겁니다.”

    ▼ 직권상정 요구를 물리친 뒤 의장께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보수 신문은 연일 비판하고, 진보 신문은 ‘옳소’라고 하니 지구가 거꾸로 도는 기분이었죠. 평소 사이가 좋았던 보수 신문에 엄청 깨져서 아침에 신문 보기가 두려울 정도였죠. 정신을 못 차리겠더군요. 나는 미디어법에 찬성, 반대 입장을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습니다. 그러나 당내 토론 한 번 없이 통과시키겠다는 행태는 바꿔야 합니다. 국회에서, TV에서 여러 번 토론해야 해요.”

    지구가 거꾸로 도는 기분?

    김 의장은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밑그림을 디자인하는 데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출범 1년을 맞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세밀함’이 필요한 것 같다”고 평했다.

    ‘쟁점법안 폭풍의 핵’ 김형오 국회의장

    1월 13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폭력 장면을 녹화한 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출범 초기 광우병 소동이 엄청나게 확산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어요. 청와대에도 충격이었을 것이고 나에게도 충격이었죠. 이 일로 인해 5월 한미FTA 처리가 물 건너가고 청와대 비서진은 전면 교체됐어요. 해 넘기기 전에 뭔가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는지 또 서두르는 모습이었어요.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주려고 해도 할 수가 없도록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습니다. 야당은 정부 정책에 대해 일단은 견제하고 반대하는 속성이 있어요. 그렇다면 가급적 반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게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절차적 흠결을 자주 노출하니 이는 정부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김 의장은 “청와대의 정무 기능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청와대도 그 부분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이 많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김 의장에게 비서진의 보고가 올라왔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기자간담회 발언 내용이었다. 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이어진 충돌에 공당의 대표인 제가 한 당사자가 되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쳤다. 진심으로 죄송하다. 그러나 국회 폭력의 원인은 한나라당, 청와대, 국회 사무처가 제공했다. 검찰의 소환 요구에는 일절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내용을 훑어보고는 “종전 주장 되풀이한 거네”라며 서류를 손으로 슬쩍 퉁겨 밀어냈다. 강 의원은 1월5일 국회 사무총장실 집기를 부수는 등 ‘활극’을 벌여 국회 사무처로부터 특수주거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공무집행방해, 모욕 혐의로 형사 고발됐다. 국회 사무처는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18일 국회 본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장 안팎의 폭력 사태와 관련, 문학진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민주당과 민노당 소속 보좌직원 3명을 형사고발한 바 있다.

    ▼ 국회 폭력 사태가 외국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국가 위신이 실추됐다는데.

    “거듭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국회는 한국과 대만 정도겠죠. 그런데 대만에서도 해머나 전기톱이 등장하지는 않아요. 수출될까 두렵습니다.”

    ▼ 한류(韓流)의 확산으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한국은 문화국가라는 이미지가 형성됐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국회 폭력이 발생하니 외국에선 큰 뉴스가 되겠죠.

    “맞아요. 의외성이 뉴스 가치를 높이죠. ‘한국 같은 수준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라는 의미로 보도하는 거죠. 국회의원들이 나라에 도움은 못될망정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놓고 있어요. 국회 폭력 사태와 관련해 형사 고발된 사람들에 대해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법적 판단을 구해볼 생각입니다.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과거에 자꾸 그렇게 하니 국회 내 폭력사태가 없어지지 않는 겁니다.”

    김 의장은 역대 의장 중 비교적 젊은 편으로, IT, 인터넷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은 발달했으나 이를 뒷받침해주어야 할 인문학의 수준은 그에 못 미쳐 인터넷 문화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쟁점법안 폭풍의 핵’ 김형오 국회의장

    1월 9일 오전 국립현충원에 김형오 의장, 부의장단, 상임위원장단 등이 방문, 헌화와 분향을 했다.

    “인문학 달려 인터넷 황폐화”

    ▼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사이버모욕죄’도 여야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 중 하나죠. ‘표현의 자유’의 과도한 제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이버 테러, 허위사실의 유포 등 인터넷 문화의 피폐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인터넷 관련 기술 중 세계 최고 수준이 꽤 있죠. 인터넷 보급이나 이용도 잘 되어 있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인터넷 시대의 핵심 담론, 철학, 문화를 끄집어내어 사회를 선도해 나아가는 인문학자는 이어령 전 장관 등 한두 명 정도에 국한되는 거 아닌가요. 사회 문화가 진보하는 과학기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요. 미국의 유명한 학자들 중 몇 사람만 한국에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 의장께선 사이버 모욕죄에는 개인적으로 찬성과 반대 중 어떤 입장인가요.

    “인터넷의 강점 중 하나가 익명성의 보장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확대될 때 창의성이 고양되죠. 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을 할 때엔 인터넷과 관련된 일체의 규제에 반대했어요. 인터넷 실명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해킹이나 스팸메일과 관련된 규제도 못하도록 했죠. 그땐 우리나라는 디지털화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풀어주어야 산업이 발전한다고 봤죠.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일정 부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어요. 익명의 루머에 희생되는 분이 또 나와서는 안 되죠. 야당은 사이버 모욕죄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하는데, 자율적 규제에만 맡겨놓으니 자정 노력이나 사회적 캠페인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면 일정 정도의 법률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봐요. 나는 사이버 모욕죄에 찬성합니다.”

    ‘광장’과 ‘밀실’의 지배자들

    ▼ 인터넷은 광우병 촛불시위, 미네르바 현상 등 사회여론을 선도하고 있는데요.

    “소위 ‘광장’과 ‘밀실’이 모두 네티즌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요. 이 세대들이 문화 패권을 잡았어요. 그 에너지가 엄청난데 광우병 사태 때처럼 가끔은 파괴적으로 흐르기도 하죠. 역시 문화의 리더로서 세계적 사상가들이 우리 사회에서 많이 나와야 해요. 그런데 내가 기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미네르바’ 문제, ‘신동아’는 여러 명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 그렇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도 그렇지 않겠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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