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가입한 펀드는 KTB마켓스타주식투자신탁, 미래에셋인디펜던스주식형K-2 등이다. 장씨는 “은행 창구 직원에게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하자 은행 직원이 펀드를 몇 개 설명해줬는데, 당시까지 수익률이 안정적이라는 설명을 듣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투자한 펀드는 국내 우량주를 편입하는 주식형 펀드다.
그는 이들 펀드에 13개월 동안 총 2600만원을 적립한 후 지난해 7월 불입을 중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면서 손실률이 한때 44%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입 직후 한때 4~5%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후 계속해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2009년 초 현재 이들 펀드는 모두 손실률이 35%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지금이 코스피 지수 바닥이라고들 해서 다시 적립식 펀드에 불입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자니까 잘 알 것 아니냐”고 덧붙여 기자를 곤혹스럽게 했다. 답답한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주식 투자는 자기 책임하에 해야 한다”는 말 외에는 달리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30대 중반의 강씨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경우. 그는 2004년 8월 코스피 지수가 800 고지를 향해 가고 있을 때 미래에셋인디펜던스펀드와 미래에셋차이나펀드에 가입했다. 매달 30만원씩 적립하는 조건이었다. 1년 후 추가로 미래에셋디스커버리펀드에 가입해 30만원씩 적립했다. 2007년 11월 환매 당시 그의 수익률은 무려 96%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씨에게 펀드 투자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번 더’를 외쳤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 다시 1000만원을 펀드에 투자했다가 ‘펀드 통(痛)’을 앓고 있는 것. 그의 손실률은 한때 47%까지 곤두박질쳤다. 올해 초 현재 손실률은 26%.
앞의 사례에서 장씨는 펀드 투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은행 창구 직원의 설명에 의존해 펀드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강씨는 틈틈이 주식 투자 관련 책을 읽는 등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2004년부터 불어닥친 펀드 붐에 일찍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문제 많은 ‘수익률 지상주의’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투자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선 아무리 재테크 고수라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펀드 투자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 펀드산업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펀드 평가사인 한국펀드평가(주) 신중철 대표의 말이다.
“우리나라 펀드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별 특성을 고려해 어떤 상품이, 또는 어떤 상품의 조합이 적절한지 ‘자문’하는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투자자가 펀드 상품에 가입하는 곳은 증권사나 은행과 같은 판매사인데, 이들은 ‘판매’에 집중할 뿐 ‘자문 서비스’는 거의 제공하지 않으며, 이런 서비스에 대한 체계나 지식도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이 대부분 자신의 투자 특성과 무관하게 판매사가 권유하거나 과거에 높은 수익률을 보인 상품에 가입한다. ‘수익률 지상주의’로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얻으려는 비슷한 방식의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수익률 지상주의’는 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제기해온 문제다. 펀드산업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도 끊임없이 논란 대상이 돼왔다. 수익률 지상주의에 따른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과거 수익률은 미래 실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의 단기 실적에 솔깃해 하는 투자자들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펀드가 지속적으로 고수익을 올리기 힘들기 때문.
우리투자증권 서동필 연구원(CFA)은 “2006년과 2007년 수익률 상위 20위 안에 든 국내의 펀드 가운데 다음해 역시 20위권을 유지한 펀드는 2006년의 경우 단 1개였고, 2007년엔 2개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높은 수익을 내는 업종이 꾸준히 바뀌는 탓에 한 펀드 매니저가 항상 좋은 실적을 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서 연구원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