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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⑫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버락 오바마보다 더 강하고 매력적인 여성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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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한 성격,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오바마의 고통스러운 반쪽’ ‘불만에 찬 흑인여성’이라 손가락질받기도 했다. 그러나 신념에 찬 그녀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가질 뿐 아니라, 남편 버락 오바마마저 더 진실돼 보이게 만들었다. 버락 오바마의 부인이 아닌, 성공한 흑인여성으로 들여다볼 때 그녀의 삶은 훨씬 가치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보다 영부인 미셸의 인기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똑같은 ‘가식 없는 모습’이 그녀의 매력으로 꼽힌다. 이런 자신만만한 태도는 물론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뉴스위크’는 자신의 능력과 인종, 계급, 그리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속에서 갈등을 극복하며 얻어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의 복잡함과 혼란을 오로지 실력과 진지함으로 이겨낸 미셸 오바마는 미국 현대여성의 또 다른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미셸 라본 로빈슨은 1964년 1월17일 시카고 남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청 정수공장 보일러 룸에서 교대로 근무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미셸 위로 16개월 먼저 태어난 오빠가 있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했다. 서른 살에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은 이후 건강이 계속 나빠졌다. 그런데도 열심히 일을 해 자녀 둘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둘 다 프린스턴대에 보냈으니 자식농사를 잘 지은 셈이다. 어머니는 딸 미셸이 웬만큼 자라자 은행에 취직해 최근까지 다니다 손녀를 돌보기 위해 그만뒀다.

미셸이 태어난 곳은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서민동네였다. 가족 넷이 좁은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힘겨운 삶이었다. 부모가 단 하나뿐인 침실을 쓰고 거실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아들 방, 딸 방,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공부방으로 만들었다. 교육열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부모는 남매에게 매일 밤 텔레비전을 1시간만 보게 하는 대신 독서, 체스, 스포츠 등 몸과 마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활동을 권했다.

미셸의 어머니는 딸이 집중력이 매우 강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치더라도 그만 치라고 할 때까지 의자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성격이 약간 불같은 데가 있고 지는 걸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운동선수로서도 재능이 있었는데 오빠인 크레이그에 따르면 지는 것을 싫어해 경쟁적인 스포츠는 아예 하지 않았다. 크레이그는 현재 오리건 주립대학 농구팀 감독이다.

미셸은 어릴 때부터 똑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줄곧 영재반에 들어갔으며 중학교 졸업식 때는 졸업생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졸업생의 95% 이상이 아이비리그에 들어가는 명문 공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열심히 일하는 부모의 뒷받침을 받으며 미셸은 2학년을 월반했다. 그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그녀는 오빠의 뒤를 이어 프린스턴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하버드대 로스쿨을 택한다.



가난하지만 훌륭한 부모

미셸의 1차적 스승은 부모였다. 양친은 그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지속적으로 불어넣어준 멘토였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늘‘무엇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무엇이 잘못될지 모른다고 걱정하지 마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주문처럼 늘 내 머리에 새겨져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었다.”

미셸은 대통령선거 기간 중인 2008년 1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연설에서 “내 인생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아버지가 시청 공무원의 박봉으로 4인 가족을 부양했다는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의 아버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삶을 보여주었다. 한때 수영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서른이 넘어서는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없는 지경에도 단 한 번의 불평 없이 매일 직장으로 출근했다. 그러나 미셸이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는 신장수술을 받은 후 사망했다. 아버지는 그녀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딸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마음이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미셸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커리어를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마다 과연 아버지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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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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