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대박 난 캠페인광고, 국민에게 희망 주고 재벌 이미지 바꾸고”

기업 PR 고수들이 만드는 공익광고

  • 구가인│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9-06-03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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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 난 캠페인광고,       국민에게           희망 주고 재벌 이미지 바꾸고”
    너는 나보다 높이 날 것이다

    너는 나보다 큰 꿈을 이룰 것이다

    너는 나보다 더 넓은 무대에 설 것이다

    너는 나보다 당당할 것이다

    너는 나보다 사랑받을 것이다



    너의 코리아는 나의 코리아보다 빛날 것이다

    대한민국의 내일을 확신합니다

    이 캠페인은 삼성이 함께합니다 - SBS 캠페인 ‘너는 나보다’편

    회사원 김모(28)씨는 얼마 전 TV에서 일명 ‘삼성 공익광고’라 불리는 방송사의 캠페인광고 영상을 보고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 담았다. 김씨는 지금껏 나온 여타 공익광고들과는 다른 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삼성이라는 재벌기업에 대한 거부감이 없진 않다. 하지만 광고는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가슴이 찡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가족이나 위기 극복 같은 다소 뻔한 메시지를 정말 공감가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비단 김씨뿐 아니라 공중파 3사가 2008년 11월부터 내보내고 있는 삼성 협찬의 캠페인광고(이하 캠페인협찬광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다. 인터넷에서도 이 협찬광고를 포스팅한 블로그는 물론 각 게시판에 실린 “삼성이 협찬하는 ‘당신의 대한민국을 믿습니다’광고 제작사가 어디인가요?” “MBC-삼성 공익광고 음악 좀 알려주세요” 류의 질문을 쉽게 볼 수 있다.

    삼성 역시 이번 협찬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지난해 11월 1차 캠페인협찬광고가 등장한 데 이어 4월부터 새로운 2차 캠페인협찬광고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조용우(41) 차장은 “본래 캠페인협찬광고는 한 차례만 계획했다가 반응이 좋아 2차까지 진행하게 됐다. 서울시나 일부 정부기관에서도 광고를 쓰고 싶다는 요청이 많다”고 전했다.

    공익광고야, 상업광고야?

    캠페인협찬광고는 엄밀히 말하면 공익광고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익광고란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사규에 의해 구성된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주제를 정하고 한국방송광고공사의 공익광고부를 통해 제작해 방송사에 무료로 판매, 편성하는 광고를 말하기 때문이다. 반면 광고는 협찬사와 방송사가 광고를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협찬사는 캠페인협찬광고가 나가는 시간대에 따라 일정금액을 방송사에 지급해야 한다. 물론 캠페인협찬광고는 방송법이 규정하는 비상업적 광고(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제작, 방송되는 광고물)에 속하며 일정부분 공익성 심의를 거쳐 통과된다. 방송사는 방송법상 이러한 비상업적 광고를 일정비율 이상 방송해야 하는데 상업광고가 없는 KBS1에서 최근 삼성의 캠페인협찬광고를 볼 수 있는 것도, 보통 15초 남짓한 상업광고의 2~3배 길이인 40초로 구성된 것도 모두 이러한 이유 에서다.

    한때 방송사의 공익성 캠페인광고는 협찬사가 아닌 방송사가 직접 제작하는 형태였지만 최근에는 협찬사가 제작에 참여하거나 협찬사에서 직접 제작한 광고를 내보내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삼성의 캠페인협찬광고는 후자에 속한다. 조용우 차장은 “협찬 역시 기업 이미지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왕이면 더 좋은 광고를 보내고 싶은 바람에서 기업이 자체적으로 더 많이 투자한 광고를 공급한다. 방송사 역시 이를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경제가 침체된 와중에 우리 기업의 메시지만 내세우는 것보다 방송사와 공동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자신감,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협찬광고는 심의 때문에 결코 삼성이라는 기업의 느낌을 넣지 못합니다. 실제로 협찬광고에 나오는 어떤 제품에서도 삼성 로고를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조용우 차장)

    “대박 난 캠페인광고,       국민에게           희망 주고 재벌 이미지 바꾸고”
    사실 기업이 방송사 캠페인광고를 협찬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삼성이 기업광고가 아닌 캠페인협찬광고에 뛰어든 것은 처음이며, 한 기업이 같은 시기 공중파 3사 캠페인광고를 한꺼번에 지원하는 것도 전례 없던 일이다.

    삼성의 캠페인협찬광고가 남다른 이유

    삼성이 만들고 협찬하는 방식과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광고의 의도는 동일하지만 공중파 3사의 캠페인광고는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KBS가 흑백화면과 함께 60년 전인 6·25전쟁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를 보여주며 한국의 괄목할 만한 발전상을 증명하는 형식을 취한다면(‘당신의 대한민국을 믿으세요’ ‘여명’), MBC는 세계 속 한국, 혹은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의 위상에 주목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할 수 있습니다’ ‘온 코리아’). 또 SBS는 개인과 가족의 희망찬 미래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대한민국의 내일’ ‘소중한 시간’). KBS의 경우 다큐멘터리와 같은 시사적인 프로그램이 많고 시청자의 연령대가 높다는 점, 반대로 MBC와 SBS에는 젊은 시청자를 겨냥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점을 떠올리면 캠페인협찬광고 역시 각 채널별 타깃층을 고려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겐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했고 벅찬 감동을 주었으며

    더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명 또 해낼 것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니까요 - KBS 캠페인 ‘여명’편

    (자막: 호주의 제시카가 대한민국을 듣습니다)

    대한민국을 듣고

    (인도의 굽타가 대한민국을 바라봅니다)

    대한민국을 바라봅니다

    (프랑스의 알제리가 대한민국의 맛을 즐깁니다)

    대한민국의 맛을 즐깁니다

    (미국의 토마스가 대한민국으로 통화합니다)

    대한민국으로 통화합니다

    (케냐의 마타이는 대한민국의 바람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의 바람을 느끼고

    (중국의 류첸이 가족의 행복을 담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담습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온 코리아

    코리아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 MBC 캠페인 ‘온 코리아’편

    “대박 난 캠페인광고,       국민에게           희망 주고 재벌 이미지 바꾸고”
    삼성의 캠페인협찬광고는 어려운 시기 희망 메시지를 던진다는 주제 자체에서 최근 쏟아지는 공익성 광고 및 기업 광고들과 다를 바 없지만, 호감도와 세련미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공도 들였다. 국내 제작 광고의 경우 모델비와 매체비를 제외한 순수 제작비가 보통 2억5000만~3억원으로 다른 상업광고와 비슷하다. 그러나 4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MBC ‘온 코리아’의 경우 공익성 광고로는 드물게 호주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했으며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카피에서 언급된 해당 국가(호주, 인도, 프랑스, 케냐, 중국 등) 출신 모델들을 모두 섭외했다. KBS ‘여명’편의 경우 늦저녁부터 다음날 해 뜨는 아침까지 반나절을 나흘에 걸쳐 타임랩스(time laps) 방식으로 시시각각의 장면을 기록한 후 그 촬영본을 일일이 손질하면서 서울의 60년 변화상을 입혀갔다. 그 결과 40초 안에 해가 뜨는 여명의 순간과 지난 60년간 서울의 변천사를 함께 담는 작품이 탄생했다. 여기에 상업광고와 마찬가지로 내외부 모니터 평가과정도 거쳤다.

    광고계 최고수들이 만드는 그룹 PR광고

    알려진 것처럼 삼성계열사의 광고는 대부분 제일기획이 담당한다. 그중 삼성그룹의 기업PR 광고는 제일기획에서 가장 공들이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제일기획 자체가 삼성의 계열사이기도 할뿐더러,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는 제일기획의 국내 광고 중 60%를 차지하는 삼성계열사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 기업광고를 만드는 이들은 광고계 엘리트그룹인 제일기획에서도 에이스 집단으로 꼽힌다. 주목할 점은 이번 삼성의 캠페인협찬광고 역시 이들 팀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이다. 삼성에서 캠페인협찬광고에 기울이는 관심, 혹은 공익성 캠페인광고가 상업광고 못지않은 홍보수단으로 부각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박 난 캠페인광고,       국민에게           희망 주고 재벌 이미지 바꾸고”
    이번 협찬광고를 포함해 공중파TV에서 방영되는 기업광고의 경우 보통 3~4개월 단위로 새롭게 바뀐다. 이 광고를 위해 총괄기획팀(AE)과 마케팅전략(AP), 제작팀 등 외주 촬영팀을 제외한 20명 안팎의 제일기획 스태프가 기획단계부터 참여한다. 기업PR광고의 경우 특히 초기 콘셉트를 잡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2007년 ‘고맙습니다’부터 2008년 ‘더 뛰겠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삼성그룹 기업PR광고의 총괄기획을 맡고 있는 제일기획 The South 1팀의 윤문재(46) 팀장은 “광고를 제작하기 전 무엇을 말하고,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 그 방향을 정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서 “특정 상품처럼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PR광고의 경우 소비자의 숨겨진 심리와 경향성을 파악하고 그 시대에 맞는 슬로건을 내거는 게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나를 낮추고 감성을 자극한다”

    실제로 삼성 기업PR광고가 내거는 슬로건은 각 시대 혹은 특정 상황에 놓인 삼성의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1994~96) ‘세계일류’를 슬로건으로 내건 삼성은 IMF 직후인 1998년에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21세기를 맞이하는 시기에는 ‘밀레니엄 프런티어’(1999~2000)와 ‘디지털 프런티어’를 내세운 바 있다. 특히 2003년부터 3년 동안 슬로건으로 내세운 ‘함께 가요, 희망으로’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직후 등장한 ‘고맙습니다’(2007) 캠페인 등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정경유착, 불공정 거래 등에 얽힌 논란 많은 ‘1등 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슬로건들은 끊임없는 조사와 데이터 분석, 논의를 통해 결정된다. 지난 15년간 삼성그룹 PR 기획에 참여해온 제일기획 The South 1팀의 정선우(42) 국장은 “1년에도 여러 차례 다양한 조사를 통해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과 삼성의 현황 등을 분석하고 그를 통해 나온 결과로 콘셉트를 짠다”면서 “최근 들어 사회변화에 따라 고려해야 할 대상과 매체가 늘어나 조사의 폭이나 양이 증가한 편이다”고 말했다.

    친근하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광고는 기업 PR광고의 첫째가는 조건이다. 삼성의 경우 기업광고에서 특히 겸손함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이라는 실체가 워낙 강력한 탓에 이미지 메이킹은 반대로 기업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감추거나 부드럽게 바꾸는 데 주력한다. 포스코의 광고‘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의 카피라이터이자 제일모직 ‘The Suite’, KTF Show의 ‘강도’와 ‘쑈녀’편 등을 제작했으며 2007년부터 삼성 기업PR광고 제작 CD(Creative Director)를 맡아온 예희강(39) 국장은 “기업광고에서 잘난 척은 금기”라고 강조했다.

    “기업광고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는 게 중요해요. 예컨대 모델도 스타나 너무 예쁜 얼굴이 아니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편안한 인상을 줘야 하죠. 내레이션을 하는 성우도 전달력 있으면서도 가식적이지 않게 최대한 힘을 빼고 녹음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요. 공감을 주되 신파도 안 되고, 너무 어려운 얘기도 안 돼요. 수위조절이 중요하죠.”(예희강 국장)

    이러한 그룹 PR광고의 노하우는 최근 제작한 캠페인협찬광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유독 강조하는 이번 캠페인협찬광고들이 국가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 ‘수위조절 능력’에 있었다. 공감대를 얻기 위해 실제 부부나 갓 태어난 아기 모델을 섭외해 리얼리티를 살렸다.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영상에 입혀진 곡들은 주로 감성적인 외국곡과 연주곡이 대부분(‘여명’에서는 영화 ‘디워’ OST ‘Arirang’이, ‘온 코리아’에는‘Build To Last’가, ‘소중한 시간’에는‘Eternal Flame’이 쓰였다)이다.

    예 국장은 “음악은 광고를 이루는 수십 가지 요소 중 하나지만 때에 따라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음악이 거슬리지 않으면서 분위기를 북돋워줄 곡을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비상업 광고에 눈 돌리는 기업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 ‘더 뛰겠습니다’ 이후 공식적으로 기업PR 광고는 하지 않고 있으며 비상업성 캠페인협찬광고와 온라인을 통한 하하하 캠페인만을 진행 중이다. 조용우 차장은 “앞으로 경제사정이 좋아지면 변화가 있겠지만 당분간은 기존 기업PR 방식에서 벗어나 현재와 같이 공익성 캠페인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 및 전문가들은 삼성의 이러한 목소리 낮추기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한다. 한 공중파 방송국 관계자는 “삼성협찬 캠페인광고의 영향으로 최근 들어 대기업들의 캠페인협찬광고 제안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한상필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경기불황에 따라 공익성 광고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기업광고들이 사회적 분위기 개선을 위해 공익성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면서 “삼성처럼 이름이 알려진 기업의 경우 기업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더라도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중요한데 캠페인협찬광고는 그런 좋은 이미지를 쌓는 데 도움이 될뿐더러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광고가 비교적 긴 시간, 빈번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40초 동안, 동트는 장면과 60년의 변화상을 담은 KBS‘여명’.

    4월부터 방영 중인 MBC 캠페인 광고 ‘온 코리아’ 중에서.

    삼성의 기업PR광고를 만드는 이들은 제일기획 내에서도 에이스 집단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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