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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박근혜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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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
‘김무성 원내대표 만들기’의 주역이 박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이라는 점에 박 전 대표 측은 주목한다. 10월 재보선과 연관지었을 때 김무성 원내대표 체제는 두 사람에게 ‘천군만마’라는 게 친박 측 시각이다. ‘친박 원내대표’의 존재는 친이계 후보가 친박 유권자 표를 흡수하는 기반이 되고 박사모의 영향을 급감시키며 친박 무소속 후보의 출마 명분을 제거해주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에는 계파화합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명분 뒤에 이런 ‘활용 목적’과 ‘개인적 욕심’이 내재해 있고 그럴수록 자기들끼리 합의해 일방적으로 발표할 게 아니라 상대와 먼저 상의했어야 했다고 친박 측은 보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한 인사는 “대통령과 당대표가 합의한 사안인 만큼 3일 정도는 숙고할 줄 알았는데 하루도 안 돼 거부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 귓등으로 듣는다”

박 전 대표 측이 ‘친박 원내대표’와 ‘조기 전당대회’를 사실상 거부하자, 여권의 난맥상에 대해 언론 보도는 친이와 친박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 쪽으로 흘렀다. 이를 보는 박 전 대표 측 시선은, 외부에는 공개가 안 되지만, 냉소에 가깝다. 다음은 박 전 대표 측 인사의 말이다.

“4월 재보선 참패는 이 대통령 탓이다. 친이의 국정실패, 정치실패가 근본 원인이다. 대선 승리 후 행정부에 들어간 소수의 친이가 승자독식으로 다 차지하고 밀어붙였다. 인사와 정책집행은 과정도 서툴렀고 결과도 안 좋았다. 당내에서 특정 친이 실세가 문제라는 걸 알지만 이야기도 못 꺼낸다. 이런 기조를 바꾸는 게 진정한 해법이다. 이게 유지되는 한 친이-친박 화합은 의미 없다. 자칫 친박도 2중대가 되어 국정실패 책임을 뒤집어쓴다. 일방적으로 제의해놓고 제의를 안 받았다고 친박에 공동책임을 지우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여러 언론은 “화합하든 갈라서든 결단을 내라”고 친이와 친박에 촉구하기도 했다. 친박진영 한 인사는 “그런 충고는 귓등으로 듣는다”고 얘기한다. “언론 보도는 태생적으로 균형과 비판을 지향한다. 친이만 비판할 수 없고 친박도 함께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결단은 오직 손을 내밀 위치에 있는 친이의 몫이다. 친박이 먼저 화합하자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언론의 주문과 실제 국민의 여론은 다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5월13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당 내 계파갈등은 ‘친이 책임’이라는 응답이 63.8%로, 친박 책임 19.3%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박 전 대표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거부한 데 대해서도 54.1%는 잘한 일이라고 답했고 24.0%만이 잘못한 일이라고 했다. 원희룡 의원이 주도하는 당 쇄신안은 이런 친박의 기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현실적으로 친박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쇄신안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안 변해도 개의치 않는다”

정국을 보는 이런 시각을 통해 향후 행보도 예측해볼 수 있다. 즉, 이 대통령과 친이 쪽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같은 획기적인 국정기조 변화와 계파 화합 방책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박 전 대표 측은 제한된 국정참여보다는 독자노선, 선명노선을 견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월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시흥시장 선거까지 포함해 6대 0으로 졌다. 청와대는 별 언급이 없었다. “재보선은 지역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의미를 크게 둘 필요 없다”는 말 정도였다. 여권 주류 측에선 ‘동네선거’라고 했다. 그런데 4년 전인 2005년 4월 재보선에서 6대 0으로 진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2년여 뒤 열린우리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기자에게 “근본적으로 이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된 쪽에서 계파 갈등이 있으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 전 대표 측 시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안 변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쪽이다. 여기에는 “친이의 대국민 리더십이 이미 ‘신뢰의 위기’ 단계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지금까지 여권의 해법으로 제시되어온 ‘친이-친박 화합’이 향후에도 해법으로 계속 유용한 가치를 지닐지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의문이 정당화된다면 친박은 보수진영 내에서 대안적 세력이 된다. 한 정당 안에 있으니 당적 변경 없이 손쉽게 개별이동이 이뤄지게 된다.

일부 언론은 “10월 재보선 후 내년 6월 지방선거 전, 조기 전당대회를 여는 데에는 친이와 친박이 동의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좀 느긋하다. “아직 그런 계획은 없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지방선거를 넘어 보다 멀리 보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친이가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자기사람 공천에 매진한다면 박 전 대표는 굳이 당내에서 공천전쟁을 벌이기보다는 4월 경주 재선거처럼 유권자의 선택을 직접 구하는 방식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 편인가

박 전 대표 측이 주목하는 또 다른 현상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간의 ‘당정협의 동맥경화’ 사태다. 친박 측은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한국 당정관계의 역동성과 제도화’ 논문 등 자료를 연구하고 전문가에게 자문도 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경제 중흥기였던 1973년 박정희 정부와 여당인 민주공화당 사이엔 대통령에서부터 실무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7단계의 당정협조체제가 상시 가동돼 ‘정부정책의 입법화’ ‘국회의원 요구의 정부정책화’가 신속 원활했다고 한다. DJP연합 정권인 김대중 정부에서도 당정협의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활발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몰락은 청와대의 새천년민주당 무시, 열린우리당 창당, 열린우리당 무시 등 상시적인 당정관계 마비에 기인한 측면이 컸다고 한다. 당정협의는 대통령중심제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일정부분 견제도 하는 순기능적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금 후자에 더 가깝다는 게 친박 측의 냉정한 평가다.

친박 측에 따르면 지난 1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비공개로 만났을 때 이 대통령은 ‘중국 정세’를 얘기했다고 한다. 정권 출범 후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여러 번 청와대로 불렀다. 매번 회동한 이후 친박 측에선 비슷한 불만 내용이 나왔다. “왜 만나자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이 대통령에게 호의적일까.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전 대표는 당대 최고의 ‘캠페이너(Campaigner)’다. 선거에선 이념이나 구도도 중요하지만 걸출한 인물 한 명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그는 정말 ‘선거의 여인’이다. 그런 박근혜를 한나라당의 주류에서 배척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5월10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캘리포니아 주 내파밸리의 와이너리 ‘파니엔테’에서 와인을 맛보며 수행인사들과 얘기하고 있다.

4월1일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

신동아 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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