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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어요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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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예도 도덕도 신뢰도 바닥났다”는 전직 대통령의 한탄으로 봄이 저물고, 스물아홉 살 신인 탤런트가 자살하며 남긴 ‘장자연 리스트’가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렇게 봄날이 갔다.

노무현-박연차 ‘패밀리 커넥션’의 속편은 천신일-박연차 ‘의형제 커넥션’이다. 검찰 수사가 드디어 ‘죽은 권력’에서 ‘살아있는 권력’으로 넘어가는 모양인데, 과연 전자를 다루듯이 후자도 집요하게 다룰지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초장부터 어째 좀 이상하다. 검찰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수사하더라도 대선자금 부분은 보지 않겠다고 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천 회장에게 로비를 청탁했다는 부분만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천씨는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다. 2007년 대선 때는 고려대 교우회장으로 고대 동문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이 대통령에게 특별당비 30억원을 빌려주는 등 사실상 후원회장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에 대한 수사를 하다보면 당연히 대선자금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이 보이는 것도 안 보겠다고 미리 선을 그어서야 ‘박연차 관련 건’에 대한 수사인들 사람들이 미덥게 여기겠는가.

그렇잖아도 검찰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도피성 출국’을 방조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한 전 청장은 ‘박연차 세무조사’ 결과를 지난해 11월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국세청은 그 뒤 박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하자 놀라운 점이 발견됐다. 국세청이 ‘박연차 세무조사’ 결과보고서 중 일부 항목을 누락한 채 검찰에 넘긴 것이다. 빠진 항목에는 천씨를 비롯한 여권인사와 사정기관 관계자 관련내용이 들어 있었고,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 박씨가 천씨에게 보낸 것으로 기록된 송금전표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검찰은 “필요하다면 한 전 청장을 소환하겠다”고 변죽을 울릴 게 아니라 당장 소환해야 한다. ‘은폐의 주역’을 빼놓고 하는 수사는 ‘죽은 권력’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이중 잣대만 돋보이게 할 뿐이다.



천씨의 말대로라면 박씨는 그에게 “친동생 같은 아이”다. 원래 박씨는 천씨 동생과 친구 사이였는데, 친구가 세상을 뜬 후 그 형과 가까워져 의형제처럼 지냈다는 것이다. 아무튼 ‘살아있는 권력’의 실세이자 ‘죽은 권력’의 패밀리와도 뗄 수 없는 운명인 ‘천신일 드라마’가 ‘노무현 드라마’의 후속편으로 지겹게 이어질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는 ‘친이(親李)-친박(親朴) 싸움’이다. 한동안 잠복해 있던 이 싸움이 다시 불거진 이유는 4·29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데 있다. 친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에 앉혀 ‘두 나라당’을 ‘한 나라당’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는데, 박희태 대표가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에게 내놓은 안을 미국에 가 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김무성 카드’는 물거품이 됐다.

친이-친박 싸움의 근원은 ‘이명박-박근혜의 참을 수 없는 불신’에 있다. 2007년 여름의 지독했던 대선후보 경선 이후 두 사람 간의 불신은 고질이 됐다. 이명박의 승리로 박근혜는 고개를 숙여야 했지만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다. 박근혜의 힘은 지난해 총선에서 친박 후보들을 살렸고, 이번 경주 선거에서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밀었다는 친이계 후보를 패퇴시켰다. 더구나 아직은 이르겠지만 시간은 오히려 박근혜의 편일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당내 구도가 친박 우위로 역전될 개연성이 높다. 그러니 조기 전당대회를 연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낱개인 듯한 이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권력의 사유화(私有化)가 존재한다. 권력의 사유화에는 필연적으로 크로니즘(cronyism·정실주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역대정권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일이다.

당사자는 펄쩍 뛴다고 하지만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영일대군’으로 불린다. ‘상왕(上王)’이라는 얘기다. 모든 인사는 형으로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 형님이 한마디하면 논란이 종결된다는 ‘만사형결(萬事兄結)’이라는 조어도 붙어 다닌다. 여의도 정치는 형님 몫이라는 말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 국가정보원 등 권력의 요소에는 빠짐없이 ‘이상득의 사람들’이 박혀있다. 예컨대 이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은 여전한 ‘실세’다. 그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6월 인사 전횡(專橫) 시비로 물러났던 인물이다. 그는 야인이던 지난해 말 대통령의 친구인 천씨와 함께 포스코 회장 교체에 간여했다고 한다. 그 뒤에 누가 있어 그런 무소불위(無所不爲)가 가능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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