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입력2009-09-09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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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가 슈트를 입는 것은 단순히 한 벌의 옷을 걸치는 일이 아니다. 슈트는 그 옷을 입은 사람의 사회성과 존재감을 표현하는 최선의 수단이다. 특히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는 클래식 슈트는 영국 상류층의 전통과 명예가 담긴 최상급의 옷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클래식 슈트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누구에게나 처음은 다 어렵다. 갓 입사한 회사에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민망함은 신입사원 특유의 패기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법이다. 노래방에서 어떤 신곡도 세련되게 뽑아내는 붙임성 만점인 청년이 아니라면, 미술이나 와인을 매개로 한 사교적인 모임을 새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익숙해진 다음에는 마음을 놓게 되지만, 분명 시작이라는 건 어렵다. 이처럼 낯선 사람이나 장소, 혹은 처음 접하는 개념이나 행동은 우리에게 무언가에 능숙해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진실을 가르쳐 준다.

    특히 이미지가 현실을 넘어서는 현대를 사는 남자가 옷차림, 특별히 슈트라는 복식에 관심을 갖고 차츰 그 활용에 탄력을 받기까지는 시간과 금전을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 옷 잘 입는다고 주위에서 평가받는 누군가는 분명 상당한 시행착오와 금전적인 투자를 해왔을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칭송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볼 수도 있다. 슈트와 와인, 혹은 그림은 그런 면에서 아주 닮았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데 일단 부담스러워 보인다는 것, 그래서 항상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것, 용기 내어 관심을 가져보면 책을 통한 이론적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책만으로는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것,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영원히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겉에서 맴돌 뿐이라는 것 등등.

    남자들은 슈트에 대한 추억담이 많다. 학교나 직장에서 누군가가 슈트 입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책이나 온라인에서 얻는 정보들도 개개인의 수준에 딱 부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옷장을 열어보면 슈트의 수는 많지만,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갈 만큼 좋은 슈트는 그리 많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마다 그만큼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분별없이 산 슈트 한 벌을 보며 후회를 곱씹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이 말은 사람의 이성을 꼭꼭 묶어두고 오로지 그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하도록 만드는 마법의 언어다. 그러나 말쑥한 옷차림과 세련된 화술로 나의 지갑을 열게 했던 판매원들은 그들이 판매한 슈트를 제대로 입는 방식에 대해서는 애프터서비스를 해주지 않는다. 충동적으로 슈트를 사고 난 후 더 이상 입지 않은 경험을 몇 번 반복하게 되면 매장 판매원들이 곧 비즈니스맨이라는 뼈아픈 사실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나만의 것’에 대한 은밀한 욕구를 그들은 잘도 알아차린다. 역시 프로답다.



    “이 슈트가 어울리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정말 주인을 제대로 만났네요.”

    얼마나 설득력 있는 대사인가.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이라기보다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배려하는 듯한 따스함까지 느껴져 역시 마지막에는 지갑을 열어버리고 만다. 그 옷이 정말로 내게 어울리는지 여부는 신중하게 따지지 않는다. 또 개성 강한 배우자가 소비권을 독점하는 이 시대에는 본인이 입을 슈트도 그녀들이 미리 간택해버리는 수가 많다.

    “내가 보기엔 이게 젤 나은 거 같네요. 그걸로 하세요. 사이즈는 좀 넉넉하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잘 입지도 않는 상당량의 슈트를 옷장에 보관하게 된 것이다.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을 샀다면 개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현상이 만연한 것은 우리 남자들이 슈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슈트에 대한 지식은 인디애나 존스 박사가 고대 유물을 탐험하듯 어려운 과정도 아닌데, 왜 이토록 실용적인 정보가 없는 것일까. 타인이 나에게 강요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내게 필요한 스타일을 찾는 심미안은 없을까. 게다가 제대로 입으면 다섯 살은 더 젊어 보인다는 올바른 슈트를 찾는 혜안은 없을까.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지혜는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

    슈트의 두 가지 콘셉트

    그 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래의 내용들을 번호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가볍게 읽다보면 어느새 옷장 속에 걸린 당신의 슈트들이 남다르게 보일 것이다. 비슷하게만 보였던 그 옷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한국 현대화의 블루칩 이우환 선생의 ‘조응’시리즈를 처음 대하면, 그 그림들은 그저 점이나 면들의 불규칙적인 배열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림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고 디테일을 천천히 음미하다보면 이윽고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린다. 슈트도 그렇다.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클래식 슈트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나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하는 문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콘셉트의 상이한 슈트가 있다. 먼저 몇십 년 전 아버지의 사진에서 본, 그러나 지금 내가 입는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 클래식 슈트가 있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터치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슈트가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복식이므로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며,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다만 클래식 슈트의 출발점은 각 개인의 신체적인 특성이며, 디자이너 슈트는 브랜드마다의 개성적인 디자인과 실루엣이 핵심이다. 즉, 클래식 슈트를 입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슈트 그 자체를 입는 것이고, 디자이너 슈트를 입는 사람은 특정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즐기는 셈이다. 둘 다 멋진 삶의 방식이긴 하지만 선택은 필수적이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두 가지 옷을 섞으면 결국 옷차림도 묘해지기 때문이다.

    클래식 콘셉트의 슈트는 옷을 구성하는 각 요소와 인체의 조화를 목표로 하며, 기본적으로 옷의 품질에 전력을 투구한다. 그러므로 어떤 브랜드의 클래식 슈트를 입든 간에, 개개인의 인상은 비슷하게 보인다. 슈트가 개인을 넘어 자신의 독자적인 존재감을 주장하지 않고 남자의 몸에 부드럽게 스며들면서 본연의 목적을 묵묵히 수행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다. 그러므로 슈트를 입고난 뒤 사람이 느끼는 착용감이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클래식 슈트의 핵심 가치가 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소재와 패턴, 그리고 숙련된 장인들이 제작하는 메이킹 프로세스가 몹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슈트를 만드는 유럽의 브랜드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하늘에 닿아있다. 분명 그들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슈트가 아닌 하나의 예술품을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보다 슈트 그 자체를 먼저 생각하는 클래식 브랜드를 예로 들자면 이탈리아에서도 나폴리의 체사레 아톨리니(Cesare Attolini) 키톤(Kiton), 이사이야(Isaia), 로마의 브리오니(Brioni), 피렌체의 카스탄자(Castangia 1850)와 스테파노 리치(Stefano Ricci), 밀라노의 세인트 앤드루스(St.Andrews)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고집하는 수제 맞춤복들도 클래식 슈트의 범주에 속한다.

    아르마니와 디올의 슈트

    세계 패션의 흐름을 좌우하는 명망 높은 디자이너들은 항상 새로움을 제시해야 한다는 패션 비즈니스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프로들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핸드백은 그 기능이나 가죽의 품질 면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적 조류를 반영한 디자인의 차별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인지에 따라 핸드백의 가격은 천차만별이 되어버린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디자이너의 가치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슈트도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슈트의 가치 역시 브랜드의 명성과 디자이너의 현재적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브랜드네임은 매우 긴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눈썰미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어떤 브랜드인지 알아차릴 만큼 디자이너 슈트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의 저명한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는 물 흐르듯 유연한 느낌을 주는 슈트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고, 항상 중성적인 소재를 제시하는 일관성이 있다.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디올 옴므(Dior Homme)는 작은 사이즈의 옷일수록 어울리는 패턴이며, 늘 블랙과 화이트를 주된 테마로 삼는다. 그런 특성들을 선택하면서 브랜드를 즐기는 것이다.

    클래식 슈트는 격식과 전통을 바탕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복식의 역사를 존중한다. 현대의 슈트가 영국의 상류사회 귀족들이 입던 군복에서 진화했으므로, 영국인들이 역사적으로 중시하는 전통과 명예가 클래식 슈트에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전통적인 슈트를 입으려면 초기의 귀족들이 입던 복식의 원칙에 입각해 입기를 권장하고, 나아가 문명의 발전에도 초기의 정신을 지킨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디자이너 슈트는 애당초 매우 창조적인 인물로부터 시작된 독창적 산물이므로,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도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의 특기는 슈트를 전통적으로 입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그 범위를 넘어서 색다르게 코디하거나, 당연히 그렇게 입는다는 상식을 비트는 디자인을 제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슈트를 어떻게 입어야 한다는 원칙이나 방법론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입든 그 나름의 멋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슈트에 담긴 사회적 의미

    슈트에 대한 이런 담론들은 계절이 바뀌는 무렵마다 미디어에 총출동하는 몇 가지 신제품 슈트 소개, 혹은 트렌드를 빙자한 코디네이션 방식만을 앙상하게 제시한 기사들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 슈트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무엇이든 간에 일단 자신에게 어울리는 실루엣과 패턴을 찾는 것이 우선이므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슈트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의류 중에서 가장 비싼 품목이지 않은가. 아무리 고가의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한번 입고 나면 그 가치는 중고차처럼 급락한다. 최고급 수제 슈트라고 하더라도 사이즈가 다른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보석이나 시계처럼 미래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금전의 투자가 필요한 아이템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선입관과 감언이설에 현혹되면 가정 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지만, 클래식 슈트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순간, 남자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깨닫게 해주는 지혜를 갖고 있기도 하다.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클래식 슈트는 영국 귀족들이 입던 군복에서 진화한, 전통있는 의상이다.

    디자이너 슈트의 장점은 개인의 감성을 일깨우는 디자인의 힘과 브랜드에 대한 감정이입에 있다. 그러나 남성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디자인의 신제품을 소화하기는 사실 무리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감성 차이, 나아가 여성복과 남성복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와도 같다. 옷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여성의 마음을 투영해, 가능한 한 많은 브랜드가 빠르고 다양하게 제시하는 것이 여성복 마켓의 경향이라면, 남성들은 충동구매보다는 신중하게 좋은 물건을 사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따라서 남성복 브랜드의 가짓수는 여성복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하나를 사더라도 좋은 제품,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이나 커뮤니티에도 잘 어울리는 제품을 사고 싶은 것이 남자들의 공통점이다. 결국 남자의 옷에는 사회성이라는 주제가 필연적으로 담겨 있으며, 이는 클래식 슈트의 탄생 배경과도 일맥상통한다.

    모든 옷차림은 보온이든 치장이든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특히 남자의 복장은 타인을 위해서도 존재한다. 즉, 슈트는 개개인의 옷인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 사회와 연계돼야 하며 그 때문에 그 옷을 평가할 때는 객관성이라는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다른 물건들, 즉 자동차나 AV시스템, 카메라, 시계 등은 주관으로 고르든 브랜드로 고르든 그다지 달라질 일이 없다. 이런 제품들은 그 자체로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래식 슈트는 그것을 입는 순간, 바로 사람과 일체가 되면서 그 어떤 요소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그의 존재감을 표현한다. 이처럼 클래식 슈트는 입었을 때 옷을 넘어 누군가의 복장으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배려하는 지혜를 가져야만 멋지게 입을 수 있다. 홀로 튀기 위해 혹은 브랜드네임을 자랑하기 위해 클래식 슈트를 입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슈트를 선택하는 최선의 방법

    결국 클래식 슈트는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가장 우선이다. 따라서 브랜드에 구애하지 않고 슈트를 선택하는 자신만의 확실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클래식 슈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장을 찾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지만, 그동안 수동적으로 슈트를 대해온 대한민국 신사들에게 특별히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옷을 구매하기 이전에 가능한 한 많은 슈트를 직접 입어보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슈트와 자신의 궁합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브랜드네임이나 이미 알고 있던 정보에 얽매이지 말고 부담 없는 마음으로 슈트를 입고 그 모습을 분석해보기를 권한다.

    물론 처음에는 꽤나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다. 100% 자신과 어울리는 슈트에서부터 가끔 50%면 감지덕지의 기분도 들고, 때로는 30% 미만의 좌절감도 맛볼지 모른다. 유적 탐사처럼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다. 마치 골프나 수영 같은 스포츠에 숙련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동안 스스로, 혹은 배우자에 의해서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이것이라고 주입되었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의 품위와 신체적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슈트를 고르는 ‘눈’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슈트를 입어보는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드는 소재인데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다면, 그 사이즈의 옷이 맞는 판매원에게 슈트를 입어보기를 부탁하고 그 모습을 자세히 보면 된다. 이 같은 비교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슈트의 느낌을 조금 더 현실로 끌어들이게 해줄 것이다.

    슈트의 종류와 수량에 대해 처음부터 욕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특별한 맞춤복이 아니라 기성복이라면 슈트를 선택할 때 질적인 면에 보다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질적인 문제란 넓이보다는 깊이를 중요시한다는 것으로, 슈트의 색상이나 패턴을 너무 다양하게 하지 말고 선호하는 방향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컬러나 무늬의 슈트를 갖추면 이에 따르는 셔츠, 타이, 구두 등의 필수품들도 종류가 늘어나게 된다. 모든 비즈니스맨을 위한 슈트의 색상은 당연히 네이비나 그레이로 한정된다. 그렇다면 우선 이 두 가지 색상을 철저하게 고집하면서 그 느낌을 비교하고 소재를 음미하며, 솔리드와 스트라이프 그리고 때로는 체크로 패턴의 변주를 즐겨보는 것이다. 심플한 공식으로 절대불변의 정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최선의 답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슈트에 대한 교육이고 클래식 문화의 성숙에 이르는 길이다.

    자산의 보유 상태나 자동차 브랜드 혹은 남다른 주량 등으로 남자다움을 평가해온 한국 사회에서, 진지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와 타인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는 클래식 슈트는 남자들에게 새로운 지혜를 수혈하는 문화가 되고 있다.(다음호에는 클래식 슈트를 입는 귀중한 그러나 실용적인 법칙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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