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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⑨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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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슈트에 담긴 전통과 지혜

클래식 슈트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나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하는 문제다.

세상에는 두 가지 콘셉트의 상이한 슈트가 있다. 먼저 몇십 년 전 아버지의 사진에서 본, 그러나 지금 내가 입는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는 클래식 슈트가 있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터치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슈트가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복식이므로 우열을 가릴 문제는 아니며,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다만 클래식 슈트의 출발점은 각 개인의 신체적인 특성이며, 디자이너 슈트는 브랜드마다의 개성적인 디자인과 실루엣이 핵심이다. 즉, 클래식 슈트를 입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슈트 그 자체를 입는 것이고, 디자이너 슈트를 입는 사람은 특정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즐기는 셈이다. 둘 다 멋진 삶의 방식이긴 하지만 선택은 필수적이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두 가지 옷을 섞으면 결국 옷차림도 묘해지기 때문이다.

클래식 콘셉트의 슈트는 옷을 구성하는 각 요소와 인체의 조화를 목표로 하며, 기본적으로 옷의 품질에 전력을 투구한다. 그러므로 어떤 브랜드의 클래식 슈트를 입든 간에, 개개인의 인상은 비슷하게 보인다. 슈트가 개인을 넘어 자신의 독자적인 존재감을 주장하지 않고 남자의 몸에 부드럽게 스며들면서 본연의 목적을 묵묵히 수행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다. 그러므로 슈트를 입고난 뒤 사람이 느끼는 착용감이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클래식 슈트의 핵심 가치가 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소재와 패턴, 그리고 숙련된 장인들이 제작하는 메이킹 프로세스가 몹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슈트를 만드는 유럽의 브랜드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하늘에 닿아있다. 분명 그들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슈트가 아닌 하나의 예술품을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보다 슈트 그 자체를 먼저 생각하는 클래식 브랜드를 예로 들자면 이탈리아에서도 나폴리의 체사레 아톨리니(Cesare Attolini) 키톤(Kiton), 이사이야(Isaia), 로마의 브리오니(Brioni), 피렌체의 카스탄자(Castangia 1850)와 스테파노 리치(Stefano Ricci), 밀라노의 세인트 앤드루스(St.Andrews)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고집하는 수제 맞춤복들도 클래식 슈트의 범주에 속한다.

아르마니와 디올의 슈트

세계 패션의 흐름을 좌우하는 명망 높은 디자이너들은 항상 새로움을 제시해야 한다는 패션 비즈니스의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프로들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핸드백은 그 기능이나 가죽의 품질 면에서는 그다지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적 조류를 반영한 디자인의 차별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인지에 따라 핸드백의 가격은 천차만별이 되어버린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디자이너의 가치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슈트도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슈트의 가치 역시 브랜드의 명성과 디자이너의 현재적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브랜드네임은 매우 긴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눈썰미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어떤 브랜드인지 알아차릴 만큼 디자이너 슈트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의 저명한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는 물 흐르듯 유연한 느낌을 주는 슈트로 세계 시장에 진출했고, 항상 중성적인 소재를 제시하는 일관성이 있다.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디올 옴므(Dior Homme)는 작은 사이즈의 옷일수록 어울리는 패턴이며, 늘 블랙과 화이트를 주된 테마로 삼는다. 그런 특성들을 선택하면서 브랜드를 즐기는 것이다.

클래식 슈트는 격식과 전통을 바탕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복식의 역사를 존중한다. 현대의 슈트가 영국의 상류사회 귀족들이 입던 군복에서 진화했으므로, 영국인들이 역사적으로 중시하는 전통과 명예가 클래식 슈트에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전통적인 슈트를 입으려면 초기의 귀족들이 입던 복식의 원칙에 입각해 입기를 권장하고, 나아가 문명의 발전에도 초기의 정신을 지킨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디자이너 슈트는 애당초 매우 창조적인 인물로부터 시작된 독창적 산물이므로,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도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들의 특기는 슈트를 전통적으로 입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그 범위를 넘어서 색다르게 코디하거나, 당연히 그렇게 입는다는 상식을 비트는 디자인을 제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슈트를 어떻게 입어야 한다는 원칙이나 방법론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입든 그 나름의 멋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다.

슈트에 담긴 사회적 의미

슈트에 대한 이런 담론들은 계절이 바뀌는 무렵마다 미디어에 총출동하는 몇 가지 신제품 슈트 소개, 혹은 트렌드를 빙자한 코디네이션 방식만을 앙상하게 제시한 기사들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다. 슈트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무엇이든 간에 일단 자신에게 어울리는 실루엣과 패턴을 찾는 것이 우선이므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슈트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의류 중에서 가장 비싼 품목이지 않은가. 아무리 고가의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한번 입고 나면 그 가치는 중고차처럼 급락한다. 최고급 수제 슈트라고 하더라도 사이즈가 다른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보석이나 시계처럼 미래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금전의 투자가 필요한 아이템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선입관과 감언이설에 현혹되면 가정 경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지만, 클래식 슈트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순간, 남자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깨닫게 해주는 지혜를 갖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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