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호

뜨거운 감자,외고

글로벌 인재의 산실인가 사교육 조장의 주범인가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9-12-04 1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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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고 폐지 논란이 뜨겁다. ▲특성화고 전환 ▲자율형 사립고 전환 ▲일반고 전환 ▲현행 유지 등 다양한 해법이 쏟아지면서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외고가 전교조나 야당은 물론, 교육에 있어‘자율과 선택’을 강조하는 한나라당 내 일부로부터도 개혁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 외고 논쟁의 현안을 짚어보고 선발권 폐지를 주장하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현 체제 유지를 주장하는 강성화 전국외국어고교장협의회장을 인터뷰했다.
    뜨거운 감자,외고
    지난해 4월 ‘뉴욕타임스’에는 대원외고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렸다. 2007년 미국 명문대에 133명을 진학시키자 기자가 직접 학교를 방문해 ‘대원외고의 경쟁력’을 취재한 것이다. 2007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도 대원외고의 입시 성과를 크게 보도했다. 하버드, MIT, 프린스턴 등 미국 상위 8개 대학 진학 실적이 세계 고교 가운데 13위라며, “뉴욕 명문 호레이스 그릴리 고교와 비교해도 4배나 높다”고 놀라워했다. 대원외고는 올해도 아이비리그 대학에 38명을 보냈다. 한국외대부속외고가 15명, 한영외고가 14명으로 뒤를 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 기록은 각종 매체를 장식하며 ‘외고 교육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증거로 활용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외국어고(이하 외고)는 활짝 웃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영광의 기록이 도리어 부메랑이 돼 외고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10월 외고가 특혜와 편법으로 우수 인재를 독점하고 있다며 외고의 학생 선발권 폐지를 주장했다. 곧이어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고 학생을 시험 대신 추첨 방식으로 선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이 즉각 반발해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외고의 문을 닫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외고 폐지’ 논란은 현안으로 떠올랐다.

    외고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긍정적인 쪽에서는 외고가 평준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 교육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서울·경기지역 외고의 아이비리그 합격생 수는 2007년 49명, 2008년 52명, 올해 74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2009년 서울·경기 지역 외고의 SKY대(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진학률은 41.1%다. 역대 법조인 수에서도 대원외고 322명, 한영외고 144명, 대일외고 95명 등으로 외고 출신은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공주대 역사교육과 이명희 교수는 “고교 평준화 속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수월성 교육을 원했다. 외고가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키워왔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잘 뽑았다 vs 잘 가르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교육시장이 팽창하고 초등학생까지 입시 경쟁에 내몰리게 된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해 최근 2년간 대원외고 등 6개 외고 입시의 영어 듣기 평가 문항 난이도를 분석한 결과, 고교 1학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 창문여중 조영수 교사는 “정상적인 공교육만으로는 외고에 진학할 수 없기 때문에 외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닌다. 이 과정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학교보다 학원 수업에 집중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고 비판했다. 교육문제 칼럼니스트 김소희씨에 따르면 이들이 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은 상상 이상이다.



    “서울 강남지역 초등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3·4학년 때부터 외고 입시 준비를 시작한다. 원어민 영어회화, 영어·수학 선행 학습을 통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최소한 중2~중3 수준의 실력을 만들어놓는다. 그래야만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외고 입시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학원비 수준은 모든 과목을 다 듣는다고 할 때 매달 최소 70만~80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올해 서울지역 6개 사립외고의 수업료가 분기당 110만원선인 것을 감안하면 외고 준비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등록금의 2배 이상을 학원비로 쓰고 있는 셈이다. 대원외고의 2009년 신입생 중 서울 강남·서초·송파 3구 출신이 50%를 차지한 것은 경제력이 외고 입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외고의 학생 선발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외고가 난이도 높은 시험을 통해 우수 학생을 독점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냈을 뿐, 정작 이들을 가르치는 데는 소홀히 해왔다고 비판한다. 민주당 김춘진 의원이 수도권 외고 학생 130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91%(1195명)가 ‘연중 학원에 다닌다’고 답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성천 부소장은 “외고가 진짜 잘 가르친다면 왜 이처럼 많은 외고 학생이 학원을 다니느냐”고 지적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강영혜 박사도 2007년 국어 점수를 놓고 분석한 결과, “외고가 단순 점수(원점수) 비교로는 일반고를 상당히 앞서지만 학생과 학교를 둘러싼 경제적, 문화적 환경 등을 모두 반영하면, 특별한 차이가 없더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강 박사는 당시 “특목고의 우수한 성과는 좋은 배경과 가만히 둬도 스스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얻게 되는 ‘선발 효과’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고들은 학생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등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글로벌 명문으로 도약했다고 반박한다. 대원외고는 설립초기부터 우수 교사에게 상을 주는 방식의 교원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학기마다 근무 성실성, 수업기술, 생활지도 등 교사의 업무수행을 평가해 상위 15~20% 교사에게 연구비 명목으로 100만~150만원의 격려금을 지급한다. 부산외고 역시 2000년부터 교원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교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였다는 주장이다. 여러 외고가 미국 대학에서도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AP(대학과목 선이수제) 과정을 만드는 등 일반고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교육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외고발(發) 아이비리그 돌풍의 원인이라는 의견도 많다.

    시험이냐 추첨이냐

    외고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지금처럼 외고에 학생 선발권을 줄 것이냐, 아니면 추첨으로 뽑도록 할 것이냐에 대한 대립으로 이어진다. 정두언 의원 등 한나라당 일각에서 내놓은 외고의 특성화고·자율형 사립고 전환 구상이나 민주당·전교조의 일반고 전환론은 외고에 더 이상 학생 선발권을 주지 말자는 의견이다. 반면 한국교총과 한나라당 일부는 선발제도 자체는 유지하자고 한다.

    외고 관계자들은 “추첨 선발은 외고 교육 자체를 망가뜨린다”고 주장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외고를 ‘어학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 계열의 고교’로 정의해 사실상 ‘영재교육기관’으로 보고 있다. ‘영재’를 기르기 위해 학생선발권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대원외고의 한 교사는 “우리 학교 수업 가운데 상당 부분은 아예 영어로 진행된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이해조차 못 할 수 있다. 외고의 교육성과는 뛰어난 아이들이 모여 자극을 주고받으며 경쟁하는 데서 나오는데 학생들 사이에 수준 차이가 생기면 수월성 교육이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다만 현행 선발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은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원외고 최원호 교장은 외고 입시에서 사교육 열풍이 문제가 된다면 “2011학년 입시부터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 또 서울대처럼 서울지역 25개 자치구에서 학생을 골고루 뽑는 지역균형선발제와 정원의 35%는 외국어·예체능 우수자·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뽑는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화외고 역시 입시전형에서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입학사정관제’로 전환하는 방안과 ‘내신+기본영어실력(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영어가 자격시험으로 바뀔 경우 합격 혹은 불합격의 기준으로만 사용 된다.

    하지만 외고의 학생 선발권을 없애고 국제중, 자율형사립고 등에서 실시되는 추첨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수학·과학 가중치 변경, 대입 내신 반영방식 변경, 입학전형방식 변경 등 부분적인 개선책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외고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외고에 선발권이 있는 한 사교육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번에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문제의 소지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외고 관련 논란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외고 입시안 개선에 관한 외부 연구용역을 실시한 후 늦어도 12월10일까지 자체 안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밝힌 뒤 일단락된 상태다. 교과부 관계자는 “원래 연말까지 개편안을 마련할 방침이었으나 학생·학부모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기기로 결정했다”며 “개편안에는 외고 입시안 및 교육과정, 외고를 포함한 고교 체제 재편 방안 등을 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선발권 폐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특혜 편법의 온상 외고에 제자리 찾아줘야 한다”

    ▼ 외고 개혁 논란이 뜨겁다.

    뜨거운 감자,외고
    “교육 문제의 폭발력을 알았다. 국민들이 사교육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도 깨달았다. 외고 문제를 제기한 건 이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면 사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핵심 공약 중 하나가 ‘사교육비 반으로 줄이기’다. 그런데 2008년 통계를 보니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었더라. 경제위기가 아직 다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교육비 부담이 심화되면 중산층은 저소득층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용 감소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구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 국회에 제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설명해달라.

    “내용은 간단하다. 지금 외고는 가짜 외고니까 진짜 외고로 만들자는 거다. 이를 위해 외고의 선발방식을 선지원 후추첨제로 바꾸도록 했다. 외국어에 소질과 적성이 있는 지원자 가운데 추첨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 뒤 이들을 잘 가르쳐서 외국어 분야 인재를 양성하도록 하자는 게 법안의 골자다.”

    ▼ 지금의 외고가 왜 ‘가짜 외고’라는 건가.

    “외고는 외국어에 소질과 적성이 있는 학생을 뽑으라고 준 독점적인 선발권을 남용해 전 과목 우수자를 싹쓸이하고 있다. 탈법 특혜다. 이것을 내려놓게 하고,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내 주장에 대해 외고를 없애자는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외고를 ‘진짜 외고’로 만들자는 게 내 생각이다.”

    ▼ 외고에는 공(功)도 많은데 과(過) 부분만 부각시켜 얘기한다는 지적이 있다.

    “외고에 무슨 공이 있나. 나는 정말 외고의 공을 단 하나도 모르겠다.”

    ▼ 수월성 교육과 글로벌 인재 양성 얘기를 많이 하지 않나.

    “교육은 가르치는 거지 뽑는 게 아니다. 잠재력 있는 학생을 발굴해 키우는 것과 시험 잘 본 애를 뽑는 것 가운데 뭐가 교육인가. 다른 학교들은 ‘우리한테 선발권 줘봐라. 훨씬 훌륭한 글로벌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할 거다. 지금 전국 최고의 사립초등학교로 평가받는 서울 영훈초등학교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수가 미달되는 학교였다. 좋은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르치니까 학교가 변한 거다. 이렇게 교육의 질을 높여서 수월성 교육을 하게 해야 한다. 외고는 지금껏 수월성 교육을 못해온 걸 최근 자인했다.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라니까, 재단전입금 낼 능력이 안 된다고 하지 않나. 전국 최고의 인재를 뽑아서 최고의 교육을 시킨다면서 학교를 그렇게 부실하게 운영해도 되나. 외고 애들이 사교육을 제일 많이 받는다는 것도 문제다. 메가스터디에서 준 통계를 보면 외고 학생들이 일반고 학생보다 훨씬 강의를 많이 들었다. 학교에서 제대로 하면 애들이 왜 학원에 가겠나. 외고가 글로벌 인재를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판·검사, 의사를 키운 거 아닌가. 아이비리그에 많이 간 건 우리나라 명문대 가기에 내신이 불리하니까 그렇게 된 거다. 외고마다 아이비리그 특별반이 있는데, 추천서 써주고 관리하는 게 거의 학원 수준이다. 그걸 갖고 잘했다고 얘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외고가 ‘우리는 훌륭한 학원이다’ 하면 인정하겠지만 ‘훌륭한 학교다’라고 하는 건 인정할 수 없다.”

    “외고는 훌륭한 학원일 뿐”

    ▼ 외고 찬성론자들은 외고가 해외 유학 수요를 흡수한다고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조기유학이 외고 때문에 생긴 거라는 건 상식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자식 키우는 데 하도 사교육비가 많이 드니까 그 돈이면 차라리 외국 가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가는 거다.”

    ▼ 외고 선발 방식을 바꾸면 사교육도 사라질 것이라고 보나.

    “당연하다. 엊그제 한 기자가 찾아와 아이를 외고 입시반에 보내는데 매달 250만원이 든다고 했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또 있겠지. 외고가 없어지면 이런 데 돈 쓸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학원에 가보면 다들 외고 가려고 공부한다고 한다. 외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교육 전문가들을 여럿 만났는데 한결같이 ‘대입 사교육은 별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고교 입시다. 외고 문제 해결 못하면 초·중학교 사교육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현장의 목소리다. 어떤 시스템이 현저하게 공정성을 상실하면 개혁 대상이 된다. 외고는 이미 현저하게 공정성을 상실했다. 처음엔 수월성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해놓고, 이젠 거의 경제력이 선발 기준이 됐다. 공정성을 상실한 사회 시스템은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는데, 외고는 그 씨앗이 커서 어느새 숲이 돼 있는 상태다. 사회의 굉장한 위험 요소다. 모든 사교육이 외고 때문은 아니겠지만, 외고가 사교육 문제의 뇌관인 만큼 그것부터 건드려야 한다.”

    ▼ 하지만 학생을 추첨으로 선발하겠다는 법안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 일반계고는 지원도 없이 배정 방식으로 학생을 뽑는다. 추첨에 대해 지적하는 분들이 지금까지는 어떻게 가만히 있었는지 모르겠다. 추첨 논란은 청계천 뚜껑을 덮어놓았을 때는 아무 말 안 하다가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개선하겠다고 하니 ‘왜 좀 더 환경적으로 안 하느냐’고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현행 외고 입시 요강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폐해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 하지만 결과는 외고가 더 커지고 강해지기만 했다. 이번에 좀 세게 개혁할 거 같으니까 외고에서 보인 첫 번째 반응이 선발 과정에서 영어 듣기평가를 빼겠다는 거였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외고 입시에서 듣기평가를 안 하고 내신만 보겠다는 건 ‘우리는 그동안 가짜 외고였어요’ 하고 커밍아웃한 거나 다름없다. 외고들이 전 과목 최우수자를 뽑겠다는 걸 이렇게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상황에서 입시 요강 개선은 해법이 안 된다.”

    “고교선택제 통한 교육경쟁으로 교육의 수월성 높여야”

    ▼ 외고의 선발권이 사라지면 강남 학군이 부활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단기적으로는 그런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고교선택제가 정착되면 달라질 거다. 고교선택제 아래서는 모든 학교가 서로 경쟁하게 된다. 우수 교사를 유치하고 커리큘럼을 개선할 거다. 그때는 지역에 상관없이 좋은 학교에 학생이 몰리게 된다. 처진 학교는 자극을 받아 더 노력하게 돼 결과적으로 모든 학교가 상향평준화 될 거다. 광주광역시가 좋은 예다. 고교선택제를 도입한 뒤 과학고나 자립형사립고가 없고 학원도 별로 없는 광주광역시가 수능 점수에서 전국 1등을 했다. 영훈초등학교도 강북구 미아동에 있다.”

    ▼ 외고 동문들이 우리 사회의 파워 집단으로 성장했는데, 외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들의 조직적인 반발 같은 건 없었나.

    “오히려 외고 출신 중에 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외고 나와서 판·검사 된 분들 중에도 외고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외고 졸업생들도 나중엔 다 자녀를 키워야 한다. 외고 문제 해결을 바란다. 외고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교육업체나 외고 운영자들처럼 외고로수혜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무서운 건 외고가 없으면 수월성 교육이 안 될 것처럼 생각하는 고정관념이다. 그 편견의 벽을 깨야 한다.”

    ▼ 외고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것으로 보나.

    “법안 통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비관적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외고를 아예 일반고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한나라당 내에도 해법에 대한 이견이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교과부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외고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12월 초에 발표한다는 용역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 만약 외고가 지금 형태로 존속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외고 개혁을 위해 끝까지 가겠다. 학부모들과 여론의 지지가 있어서 든든하다. 우리 당 이철우 의원이 전국 중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교사의 87%도 외고 개혁에 동의하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선발권 유지│ 전국외국어고교장협의회장 강성화 (고양외고 교장)

    ”외고가 꿈이 된 현실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다”

    뜨거운 감자,외고
    ▼ 외고 논란을 보는 심경은.

    “참여정부 때부터 정치권에서 사실과 다른 얘기로 외고를 공격해왔지만, 교육에만 전념해왔다. 이번 정부 들어 외고를 없애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방식으로 공격해올지는 몰랐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불안하다.”

    ▼ 최근 경기지역 외고 입시 경쟁률이 크게 떨어졌다. 이번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경쟁률이 떨어질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첫째 원인은 선발 방식 수정이다. 내신을 강화하고 듣기평가 비중을 낮췄다. 과거 학생 선발의 잣대로 삼았던 지필고사도 치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신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외고 진학을 많이 포기했을 것이다. 올해부터 서울권 학생들이 경기지역 외고에 지원할 수 없게 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렇게 큰 폭으로 떨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정치권에서 시작된 외고 존폐 논란에 있다. 경쟁률 하락은 단편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정말 외고를 없앤다면 심층적인 효과는 오랜 시간에 걸쳐 강력하게 나타날 거다.”

    ▼ 심층적인 효과라는 게 뭔가.

    “국제경쟁력 약화다. 대한민국은 인재를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인재를 길러온 학교를 없애면 득이 많을지 실이 많을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 지난 10년간 외고의 공과(功過)를 평가해 달라.

    “외고의 역사는 평준화 정책과 같이 시작됐다. 평준화가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인 교육을 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음을 인정한다. 과도한 입시 경쟁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약점이 있었고, 그걸 보완하기 위해 태어난 게 외고다. 국민이 원하니까, 영재교육기관으로서 특수목적고등학교를 만든 거다. 사실 외고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죽은 교육이었다. 10년간 영어 공부를 해도 말 한 마디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외고 애들 봐라. 영어 정말 잘하지 않나.”

    ▼ 그렇다면 과(過)는 뭐였다고 보나.

    “외고 비판론자들은 사교육 문제를 지적한다. 외고 지망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을 받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이 전부 외고 때문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가장 높다. 교육을 받으면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건설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영어 사교육은 어릴수록 흡수가 빠르고 중고등학교 때는 다른 공부 하느라 바쁘니까 교과 부담 적은 초등학교 때 시키는 거다. 그래서 많은 아이가 학원에 다닌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뭐 하고 싶니’ 하면 ‘외고 가고 싶다’고 하는 거다. 그건 어릴 때 ‘대통령 되고 싶다’고 하는 것 같은, 그저 꿈이다. 그것까지 외고가 책임져야 하는가. 외고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일단은 수긍한다. 하지만 외고는 외국어 영재를 기르는 교육기관이다. 중학생 수준 문제로 어떻게 영재를 변별하겠나. 영재 아닌 아이들이 시험을 안 보면 좋겠지만,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노력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공부하는 것 아닌가. 문제를 쉽게 내면 누구나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시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학교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외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 옆에 있는 학교가 외고처럼 좋아지도록 해야 한다. 외고를 마치 나쁜 학교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해법이다.”

    “외고 학생들은 당연히 명문대 가야 한다”

    ▼ 외고가 외국어 영재를 기르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명문대 입시학원이 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부 정치인들이 ‘사실이 아닌 공격’을 퍼부으면서 국민 사이에 광범위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외고의 목적은 물론 외국어 영재를 기르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어 영재가 외국어만 해야 한다고 정한 사람이 누군가. 외국어고 만들 때 동일계로만 진학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요즘은 학문 간 융합이 대세다. 인문과 자연을 넘나드는 데 있어 가장 유능한 사람이 언어 영재 아닌가. 외고 졸업생들이 판사 한다고 뭐라고 하는데, 영어 잘하고 일본어 잘하는 판사들이 한국어만 잘하는 판사보다 훨씬 유능할 거다. 대한민국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한다. 외국어를 잘하는 국제정치인 국제경제인 언론인 문학인이 다 필요하다. 그게 국가와 국민의 수요다. 명문대에 가는 문제도 그렇다. 우리 학생들은 외국어 영재다. 당연히 명문대에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명문대에 안 가고 영재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월성 교육을 한다는, 세계적인 인재 기른다는 서울대에 많이 보내는 게 뭐가 문제인가 말이다. 과학고의 경우 나라에서 아예 카이스트를 만들어줬다. 과학고 애들은 조기졸업해서 그리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외국어 영재들을 위한 별도의 학교는 없다. 당연히 일반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명문대라는 것이다. 외국어를 기능으로만 가르치는 학교는 특성화고다. 거기는 전문직업인을 기르는 곳이니까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영재를 가르치는 특수목적고다. 대학 넘어 대학원까지 진학하는, 국가 경쟁력 있는 언어 기반 인재를 기르는 학교다.”

    ▼ 외고 학생들의 이과 진학을 문제 삼는 데 대해서도 불만이 있겠다.

    “학문 통섭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내 아이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MSE(management · science · engineering)를 전공한다. 경영과 공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한 학문적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팀을 이뤄서 연구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자연계니 인문계니 하면서 아이들을 시대착오적으로 가둬놓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게 문제 있다는 걸 다 안다.”

    ▼ 하지만 외고비판론자들은 외고가 사교육을 줄이겠다면서 선발 방식에서 영어 듣기를 빼고 내신을 강화한 점을 비판한다.

    “정치인들이 오죽 괴롭히면 외고의 정체성인 듣기 시험까지 포기했겠나. 우리는 사실 읽기 시험도 보고 독해 시험도 보고 싶다. 토플 점수도 반영하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시험이 사교육을 유발한다니까 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포기한 거다. 막상 그러고 나니 또 비판한다. 우리만 바보가 된 것 같다. 선발 전형에서 내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영재성 판별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영재성은 언어와 수리를 다 잘하는 거다. 그런 애들을 뽑으면 정말 수월성 교육을 하기 쉽다. 수학 내신을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중요하다. 외고는 1주일에 외국어 수업만 82시간이다. 남들 안 하는 제3외국어 공부까지 시킨다. 하지만 졸업할 때는 일반고 학생들과 똑같이 수능시험 보고 대학 가야 한다. 여기 와서 수학공부 할 시간이 없으니 미리 수학 능력이 있는 애들을 뽑는 거다. 외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외고 애들도 다 과외한다고, 교육을 잘 못하는 증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거 알고 보면 다 수학 과외다. 애들도 괴로워한다. 페어플레이하려면 ‘외고 애들은 다른 분야를 이렇게 많이 공부하니까 이 부분(수학)은 좀 감해주자’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외고 졸업생이 수학 시험 없이 대학 가게 되면 수학 내신 안 볼 수도 있다.”

    “일반고에서는 행복한 시민, 외고에서는 글로벌 리더 길러야”

    ▼ 외고 개혁의 해법으로 특성화고, 자립형사립고, 자율형사립고로의 전환 얘기가 나온다.

    “특성화고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걸 먼저 언급했다. 자립형사립고를 하려면 재단이 막대한 법인전입금을 내야 한다. 그런 환경이 안 되는 외고가 많다. 하지만 교육은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교육정신으로, 노하우로 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경시하고, 못 내는 외고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건 얄밉다. 자율형사립고는 선발의 자율성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자율형사립고로 가라는 얘기는 그냥 평준화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외고 비판론자들은 인문계 고교가 돼도 글로벌 리더를 기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인문계고에서 실력과 능력이 안 되는 애들에게 그렇게 하는 건 학대라고 본다. 그건 말려야 한다. 행복한 국민이 있어야 리더도 있는 거 아닌가. 모든 국민이 다 리더가 되려고 하면 어떡하나. 일반 고교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글로벌 리더한테는 리더로서의 품격을 길러줘야 한다. 리더가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가. 그런 짐을 지고 갈 수 있도록 교육하려면 다른 형태의 학교가 필요하다.”

    ▼ 앞으로 외고 폐지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곧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침묵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일단은 외고에 대한 진실을 알릴 생각이다.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 만약 외고가 현재의 형태로 존속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할 계획인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 나는 지금 중간 지점에 서 있다고 본다. 맨 뒤를 생각하면 앞으로 못 나간다. 이 자리에서 배수의 진을 쳤다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동안 해온 것에 대해 인정받을 수 있을지, 새로운 앞길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을 집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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