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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 기자의 재미있는 자동차 ②

김 여사가 시속 250km로 달린 이유는?

자동차 유머를 통해 들여다본 자동차 세상

  • 나성엽│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기자 cpu@donga.com│

김 여사가 시속 250km로 달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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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유머 단골소재인 이유

자동차가 풍자 섞인 유머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를 최근 발간된 과학 저널리스트 톰 밴더빌트의 저서 ‘트래픽’(김영사)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드러나는 인간 본성에 대해 파헤쳤다. 앞에서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복수감에 불타서 욕이 나오고, 길이 뻥 뚫려 있어도 근처에 사고현장이 있으면 길이 막히며, 정지신호에 서 있을 때 옆 차 운전자와 눈이 마주치면 심기가 불편해지는 이유 등에 대해 무릎을 탁 칠 만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

밴더빌트에 따르면 인간은 자동차 운전석에 앉는 순간 사람이 바뀐다. 똑같은 차량이라도 컨버터블 뚜껑을 열고 다니면 운전을 얌전하게 하고, 자동차 트렁크에 스티커를 붙이면 운전이 험해진다. 멀쩡히 밖에서 안이 다 보여도 코를 후비며, 옆 차 운전자에게 부담 없이 욕을 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방음 처리된 철판과 유리가 선사하는 안락함. 1990년대 미국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예측한 소비 트렌드 중 ‘코쿠닝(cocooning)’개념에 딱 맞아 떨어지는 생활도구이면서 이면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코드도 숨어 있다.



외부와 물리적으로 단절된 자동차라는 공간에 들어서면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믿는 것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은 ‘딱딱한 껍데기에 둘러싸여 나만의 공간을 즐기려는 소비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팝콘의 예언과도 일치한다. 밴더빌트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누군가에게 욕을 하는 행위는 인터넷 익명 채팅룸에서 욕을 하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는 또 정서적으로 강하게 운전자와 연결된다. 마치 미니홈피를 만들면서 아바타를 꾸미고 대화명을 정하듯 자동차의 디자인과 모델명 크기를 단순히 비싸고 좋은 차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 하나의 나’에 지금 내 모습을 투영하지는 않는다.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상징한다. 신뢰성 있는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에 검증할 수 없지만 취재차 만난 한 남성의학자는 “성기능이 약한 남성일수록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동차와 사람 사이의 끈끈한 관계. 결국 자동차 유머는 또 하나의 사람 얘기이지만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 차를 통해 갖게 되는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다룬다는 점에서 사람이 타인에 대해 갖는 심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때 한국에서 대유행했던 ‘티코 시리즈’는 자동차를 매개로 한 인간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티코 시리즈

김 여사가 시속 250km로 달린 이유는?

자동차 유머에서 ‘밥’으로 자주 등장했던 티코.

1994년 대학 2학년생이던 S씨는 부유층 친구 4명과 함께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가던 중 “프라이드가 건방지게 끼어든다”며 차를 가로막고 세운 뒤 프라이드 운전자를 집단 폭행해 징역형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티코 운전자 폭행사건, 마티즈 운전자 폭행사건 등 주로 소형 경차 운전자의 수난이 잇따랐다.

특히 프라이드 운전자 폭행사건은 한국 사회 특유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프라이드 운전자 폭행사건이 일어났던 1994년은 대우자동차가 1991년 경차 ‘티코’를 내놓은 뒤 한창 ‘티코 시리즈’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잘 달리던 티코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이유가 뭘까?

껌을 밟아서.

티코에서 남성이 여성과 사랑을 나누면?

작은 차 큰 기쁨.

티코 운전자가 왼손에 목장갑을 끼는 이유는?

쇼트트랙 선수처럼 코너를 돌 때 창밖으로 손을 뻗어 땅을 짚어야 하므로.

이 밖에도 ‘그랜저가 티코를 뒤에서 들이받았는데, 티코 운전자가 화를 내니까 그랜저 운전자가 그냥 한 대 사준다고 하고 사고를 마무리하더라’, ‘내 차가 티코인데 주유소에 가서 2만원어치 휘발유 넣어달라고 하면 주유원이 비웃더라’는 등 진실을 가장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독일의 트라비 시리즈가 체제와 자동차 자체를 비웃었다면 한국의 티코 시리즈는 전형적으로 티코 오너나 운전자를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사회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유머에서 소형차가 조롱당하는 분위기와 프라이드, 티코 운전자 폭행사건은 서로 무관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모든 운전자의 ‘적(敵)’,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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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운전자가 싫어하는 경찰.

자동차 유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가 바로 경찰이다. 나의 존재를 대신해주고 나를 안락하게 물리적 심리적으로 외부와 차단해주는 자동차. 그 안에 있으면 세상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코를 후빌 수 있지만 유일하게 ‘창문 내리라’고 지시하는 존재가 있다. 경찰이다.

경찰이 등장하는 유머에서 대부분 운전자는 피해자로 묘사된다. 운전자 정서가 유머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한 남성이 회식 자리에서 얼큰하게 술에 취했다. 동료들은 대리운전을 부르라고 했지만 그는 “집이 여기서 가깝다”며 고집스럽게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음주단속에 걸렸고, 경찰은 남자에게 음주 측정기를 입으로 불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순간, 경찰 무전기로 인근 상점에 도둑이 들었다는 긴급 연락이 왔고 경찰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얘기한 뒤 자리를 비웠다.

남자는 계속 기다렸으나 그래도 경찰이 오지 않자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부인에게는 “혹시 누가 찾아오면 남편이 몸살이 나서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잤다고 얘기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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