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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⑤

‘효녀’ 틀에 담기 힘든 버려진 딸들의 엄청난 에너지

심청과 바리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효녀’ 틀에 담기 힘든 버려진 딸들의 엄청난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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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보다 통 큰 바리공주

바리공주는 현대 사회의 ‘알파걸’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통과의례를 거쳐,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아비의 목숨을 구한 후에도, 아직 ‘미션’이 끝나지 않았다고 여긴다. 바리공주의 아버지 오구대왕은 “이 나라 반을 나누어 너를 줄까, 사대문에 들어오는 재산의 반을 나누어줄까”하고 바리공주에게 묻는다. 젖 한 번 제대로 물리지 않고 딸을 버리고선, 이제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권력이나 화폐를 제시하는 무정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제안을 바리는 단호히 거절한다. 그녀는 자신을 버린 가족뿐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 ‘저승여행’ 도중에 낳은 일곱 아들에게도 골고루 은덕을 베푼다. 그러고는 ‘저승과 이승 사이를 오가는 샤먼’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오냐 나라 반을 주마 국가 반을 주마

이때에 애기(바리공주)가 나라 반도 싫고 국가 반도 싫고 만화궁도 싫습니다

저는 어려서 살면서 풀벌레를 친구로 삼고 풀로다가 양식 삼고 뿌리로다 양식 삼고 나뭇잎으로다가 옷을 삼아 살았으니 …사람 죽어서 억만사천 지옥에 갇힐 적에 큰머리 단장 곱게 하고 극락세계 연화대로 보내주는 만신의 몸주가 되게 하여주나니다



-‘노들제 바리공주’ 중에서-

문수보살의 몸주(강신무당이 몸의 주인, 즉 수호신으로 섬기는 신)가 되어 죽은 사람들을 천도하고 이승과 저승을 계속 넘나들겠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소원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관련된 주변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바꾸는 엄청난 내공을 발휘하고는,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죽은 사람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여전히 재물이나 명예 따위로 자식의 환심을 사려는 오구대왕의 소유욕과 집착을 거부하는 당찬 풍모야말로 그녀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부모가 품기에는 너무 거대한 딸이었다.

왕국 정도를 통치하는 부모는 결코 담을 수 없는 도량을 가진 딸 바리의 진짜 재능은 효성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고, 그들의 마음에 쌓인 각종 원한과 분노를 삶에 대한 의지로 바꾸며, 마침내 인간의 가장 커다란 한계인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의 힘이며,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인생이었다. ‘바리공주’는 부모의 계산과 짐작을 벗어던진 딸의, 아무리 버려지고 짓밟혀도 사그라지지 않는 생의 에너지를 증명하는 텍스트가 아닐까.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바리공주가 약수를 뜨러 갈 적에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구천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보고 길동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혼을 데려가는 일은 저승의 강림 차사만으로 족하지 않겠소?”

“강림 차사는 저승으로 가는 영혼들이 달아날까봐 잡으러 다니는 것이지요. 극락으로 가는 영혼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죽은 줄도 모를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바리데기 공주에게 들었나이다.”

옥황상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인의 말처럼 일곱 공주를 하늘나라 북두칠성이 되게 하였다. 바리공주는 일곱 별자리를 이끄는 북극성이 되었고, 언니들은 여섯 개의 별이 되어 바리데기 공주의 뒤를 따랐다. 일곱 자매는 하늘을 돌며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는지, 한숨 소리 들리는 곳은 없는지, 세상 구석구석을 깜박깜박 비추면서 살펴보았다.

-‘바리공주’, 최창수 지음, 대교출판, 2005년, 178쪽

버려지고 난 뒤의 삶

‘효녀’ 틀에 담기 힘든 버려진 딸들의 엄청난 에너지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는 가혹한 시련을 ‘긍정’하고 새 삶을 열어가는 현대판 바리데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리데기는 단지 ‘또 딸’이라는 이유로 처절하게 버려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그녀는 풀벌레를 친구로 삼고 풀뿌리로 연명하고 나뭇잎으로 옷을 삼으면서도 당차고 명랑하게 성장한다. 그녀는 자신을 버린 아비를 살리기 위해 저승세계를 여행하며 죽을 고생을 한 후 더욱 ‘나처럼 버려진 것들’에 대한 커다란 사랑을 키운 것이 아닐까. 그녀는 아비를 살리기 위해 떠난 저승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들의 삶과 죽음을 함께 아파한다. 바리의 진정한 재능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몸에 난 상처처럼 아파하고 공감하는 데 있었다.

저승의 길잡이가 되려는 그녀의 꿈은 ‘한 나라의 공주’에 안주하지 않는, ‘세속의 부귀영화’에 그치지 않는 바리공주의 원대한 꿈이 아니었을까. 그 꿈은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의 사랑을 넘어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존재에 대한 더 큰 사랑이었다. 바리데기는 죽은 사람의 죄를 징벌하는 공포의 사도가 아니라, 타인의 죄악도 타인의 원한도 자신의 품 안에서 보듬으며 죽음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저승으로 가는 길이 무섭지 않도록 일일이 손잡아주는 따스한 안내자가 된다. 결점 많은 필멸의 인간들을 호통치고 야단치는 죽음의 신이 아니라 보듬어주고 달래주고 구슬리는, 따스하고 자비로운 여신의 이름, 바리.

바리와 심청은 철저하게 버려진 존재였다. 바리는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그들이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부모님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것은 두 이 이야기의 중요한 공통점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후에’ 펼쳐지는 그들의 삶이다. 심청은 바닷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바리공주는 서천에서 무엇을 체험했을까? 우리는 그들의 ‘고난’에 눈이 팔려 그들의 눈에 비친 세계의 참혹함과 그들이 고통의 문턱을 넘어 만난 세계의 오아시스를 놓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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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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