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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18

80세 현역 방송 진행자 바바라월터스

‘인터뷰 달인’의 성공 키워드는 ‘불안감’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80세 현역 방송 진행자 바바라월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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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현역 방송 진행자 바바라월터스

바바라 월터스는 미모나 학력이 아닌 투지와 근성으로 성공에 이르렀다.

그 무렵 3년간의 결혼생활도 위기에 몰리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자살을 기도하는 바람에 바버라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30대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밝은 미래가 내다보이기는커녕 아버지 빚을 떠안아야 하는 절망적인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못 됐다. 한 홍보회사에서 일자리가 생기자 얼른 들어가 결사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러던 중 호시탐탐 방송국에 재취업할 기회를 탐색했다. 마침내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CBS 방송국 PD로부터 “작가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고(비정규직) 연봉도 홍보회사보다 낮았지만, 바버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투데이 쇼’의 작가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 여덟 명 작가 중 유일한 여자였다. 새벽 4시에 출근해 인터뷰할 사람을 섭외하고 질문지를 썼다.

어느 날 방송이 너무 남성 위주이니 여성 취향 보도를 해보자는 기획안이 나오면서 바버라가 직접 출연하게 된다.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 타기를 소재로 한 코너를 진행하는 짧은 데뷔였다. 이후 불규칙적으로 방송에 나가지만 고정적으로 출연할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 방송업계에는 ‘여자가 카메라 앞에 서려면 똑똑해서는 절대 안 되며 글래머여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바버라는 지적이지 않았고, 미인도 글래머도 아니었다. CBS 내 유명 PD로부터 “당신은 텔레비전에 나올 용모가 아니다. 거기다 R 발음을 못한다. 카메라 앞에 설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자리를 지켜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투데이 쇼’ 시청률이 계속 떨어졌다. 뉴스 위주의 심각한 프로그램이다보니 시청자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보고 싶어할 만한 방송 콘셉트가 아니라는 게 주 이유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버라는 작가로 열심히 일했다. 두 번째 결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번이나 임신을 하지만 모두 유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기회는 뜻밖의 일로 찾아왔다. 술고래인 여자 보조앵커가 전날 과음 때문에 아침 방송을 놓친 것이었다. 급한 김에 바버라가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데뷔는 성공적이었고 이후 몇 주 만에 한 번씩 고정출연하게 된다. 얼마 후 술을 좋아하던 여성 보조앵커는 해고됐다. 후임으로 유명 여배우가 섭외됐지만 진행이 엉망이었다. 경영진은 여배우를 해고하고 또 다른 여배우를 염두에 두었지만 섭외가 쉽지 않았다. 매일 고약한 시간(새벽 4시)에 일어나 어려운 요령을 배워가며 일해야 하는 자리였다. 웬만한 사람들조차 요구하는 출연료가 너무 비쌌다. 바버라가 적역이었다.

마침내 1964년 10월 바버라는 고정 앵커가 된다. 거창한 팡파르도 없었고 인사발령이나 공식발표도 없는 초라한 시작이었다. 바버라의 고정 앵커 캐스팅을 알리는 방송국의 별도 광고도 없었으니 시청자의 대단한 기대도 없었다. 그러나 바버라는 얼마 안 가 유명인사 인터뷰를 하고 패션쇼 소개를 하는 등 여성 관련 특집을 도맡아 하며 승승장구한다. 평소엔 말이 없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태연해지고 자신감에 넘쳐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바버라는 당초 13주 계약을 했지만 무려 13년을 일하게 된다. 그 사이 미국 내 여성운동이 거세졌지만, 바버라는 오랜 기간 남자 동료들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았고 그들의 무시와 질투에 마음고생도 많았다. 그럼에도 분노하기보다 오로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녀의 별명은 ‘푸시 쿠키’(저돌적인 여자)였다.

1968년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이 둘로 갈라졌다.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 밑에서 베트남전쟁을 완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진 국무장관 딘 러스크는 공직을 떠나서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바버라는 한 공식파티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간단한 안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뒤 집요하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그러다 기적이 일어났다. 딘 러스크가 퇴임 후 첫 단독 인터뷰어로 바버라를 지목한 것이다. 딘 러스크 장관은 장장 4시간 동안 재임시절 미국 행정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소상히 밝혔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겪은 마음고생, 권력과 성공이라는 겉치장이 사라진 뒤의 (쓸쓸한) 내면도 솔직하게 밝혔다. 인터뷰는 대성공이었다.

카스트로의 매력

바버라는 지금까지 단독 인터뷰를 숱하게 진행했다. 이스라엘의 첫 여성총리 골다 메이어, 과격 흑인들을 이끈 블랙팬더당 대변인 캐슬린 닐 클리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 헨리 키신저 등과의 인터뷰가 그녀를 바야흐로 명사 전문 인터뷰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우리(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서로를 이용했다. 내가 여러 해에 걸쳐 인터뷰한 많은 초청 인사는 다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서 텔레비전에 나온다. 무엇이 되었건 남에게 보일 자리가 필요해서 나오는 것이다. 나도 필요한 게 있었다. 바로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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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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