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7일. 취재진이 신두사구를 찾았을 때 누런 풀이 사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약 100만㎡ 면적에 펼쳐진 높고 낮은 구릉이 사구였음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사구 하면 모래언덕인데, 어떻게 풀이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 있나요?”
“관리를 안 하니까 그렇지. 예전에는 소도 먹이고 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에는 출입 자체를 못하게 하고 내버려두니까 이 모양이 된 게지.”
‘푸른태안21추진협의회’ 임효상 회장은 혀를 찼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에 지속적인 관리를 하지 않아 갯버들만 무성해졌다는 설명이었다.
신두사구 지킴이를 자임하는 임 회장은 사구에 자생하는 식물과 동물 이름을 줄줄이 읊을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해안사구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지만, 도통 ‘사구가 이런 모습인가?’하는 의구심만 일어 직접 사구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다.
해안가로 다가서자 고운 모래가 쌓여 있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래 둔덕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경계지점에 쇠말뚝을 박고 그물로 해안선과 구분해놓은 게 눈에 거슬렸다.
기름 유출 피해의 흔적
“이건 뭐 하러 설치한 거예요?”
“기름이 못 올라오게 하려고 설치했지. 또 모래가 흘러 내려가는 것도 막고….”
그랬다. 신두사구는 2007년 12월 서해안 원유 유출 사고로 백사장이 기름범벅이 됐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쇠말뚝과 그물은 당시 처참했던 상황의 산물인 셈이다.
“올해 안에 이것도 철거해야지. 그래도 이 펜스 덕분에 기름 피해도 막았고, 모래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으니 다행이지 뭐야.”
임 회장은 아픈 기억 속에서도 애써 희망을 찾아냈다.
드넓게 펼쳐진 사구를 가로질러 한가운데로 향했다. 사구가 워낙 넓어 걸어서 이동하려면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릴 것 같았다. 신두사구 내방객들에게 안내와 해설을 해준다는 임 회장은 “찬찬히 둘러봐야 사구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며 “여기서 자생하는 해당화 군락지도 둘러보고, 갯그령이나 통보리사초를 눈으로 봐야 진짜 사구를 체험한 것”이라고 했다. 갯그령이나 통보리사초는 사구에서만 자생하는 식물이다.
동물의 천국
사구 중간쯤 들어가자, 내륙 쪽으로 드넓은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른바 ‘동물의 천국’이란다. 과거에는 높은 모래언덕이었는데 몇 해 전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위해 대형 트럭들이 무질서하게 돌아다니는 바람에 지금은 분지처럼 내려앉았다고 했다. 인적이 뜸한 지금은 고라니나 토끼 등 야생동물들의 천국이 됐다. ‘훠이훠이’ 소리를 질러보고, 박수도 쳐봤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그런지 야생동물을 만나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놈들이 어디 가서 낮잠이라도 자나? 이른 아침에 와보면 서너 마리씩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임 회장은 서울에서 해안사구 취재차 내려온 취재진에게 야생동물이 맘껏 뛰노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지 연신 혼잣말을 하더니, 이내 사구에 서식하는 동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