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그때가 아줌마가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것 같다. 사업차 외국을 자주 드나들던 아줌마와 그분은 그 시절 유럽뿐 아니라 중동에도 자주 갔다. 이란에서 아줌마가 가져다준 그림엽서들 속에서는 아름다운 모슬렘 양식의 지붕들과 금으로 만든 골동주전자나 낯설고 신비로운 장신구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이가 없던 아줌마는 특히 나를 참 예뻐했다. 그림을 잘 그리니까 나중에 유명한 화가가 될 거라고 늘 말씀하셨다.
렘브란트 유화 화구를 처음 선물로 준 사람도 아줌마이고, 맨 처음 피카소 화집을 선사해준 사람도 아줌마다. 그녀가 외국에 다녀오면서 사다준 선물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레이스와 단추로 장식된 밝은 노란색 롱 드레스는 공주님이나 입을 만한 옷이어서, 나는 한 번도 입고 외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 주기도 아까워서 서랍에 몇 십 년을 넣어두고 있다가 며칠 전 찾아서 꺼내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아마도 액자에 넣어서 걸어두면 좋을 것 같은 그 옷을, 누구에게 선사하면 좋을까 망설이다가 결국 주인을 찾지 못했다.
1989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문상을 와서 가장 슬프게 운 이가 바로 아줌마였다. 나는 그녀가 백 살까지 살 줄 알았다. 걷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건강했다. 며칠 전 어느 일간지에서 연인과 함께 찍은 오래된 사진 속 아줌마의 얼굴을 보니 참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본인들이 다 세상을 떠난 뒤, 사랑이 끝난 지 그렇게 오랜 뒤에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사랑의 속성에 관하여 잠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척 사랑했다 해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지나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다른 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아름답지만, 사실 실제의 삶은 그저 계속 어긋나는 쓸쓸한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게 아닐까?
하긴 그게 바로 삶의 본질이어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의 삶 속에서 피고 졌던 가장 아름다운 꽃, 사랑에 관하여 그저 아름답게만 추억하는 것이 사랑에 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랑을 주제로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후일담을 들으니 아마도 이구 선생은 아줌마 유위진 여사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문 기사를 읽으며 문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보다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그분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따로따로 떠올랐다. 날 때부터 질곡 많은 삶을 살았던 이 나라의 마지막 황세손과 10년을 함께했던 그의 연인이라는 설명보다는, 나는 그들의 사랑에 관해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
옛날 옛적에 어느 멋진 모던보이와 어느 아름답고 지적인 모던걸이 사랑을 나누었다. 그 자태가 얼마나 멋지던지 그들을 곁에서 구경하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한 바람의 태풍이다. 그 질곡 많았던 태풍이 지나간 허허로운 자리에 아침은 오고, 수천 개의 전봇대가 쓰러져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내가 오래된 화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줌마가 그리운 목소리로 “주리 왔나?”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