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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투박하고 선 굵은 ‘하드 보일드’ 장동휘

눈짓 한 번 주먹 한 방으로 영화계를 평정한 사나이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투박하고 선 굵은 ‘하드 보일드’ 장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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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누아르 전성시대

장동휘가 데뷔한 때는 6·25전쟁이 끝난 폐허 위에서 한국 영화가 ‘춘향전’(1955) ‘자유부인’(1956)의 흥행 성공으로 점차 활기를 찾던 시기였다. 인천에서 태어난 장동휘는 중국에서 연극 단원 생활을 하다 광복 후 귀국, 전쟁을 겪고, 악극단과 연극단 생활을 하다 김소동 감독의 권유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다. 그의 데뷔작은 1957년 김소동 감독의 ‘아리랑’. 나운규의 ‘아리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영화 첫 출연작임에도 장동휘는 나운규가 연기했던 영진 역을 맡는다. 오랜 악극단과 연극단 경험으로 그의 연기는 데뷔 당시에 이미 인정을 받았다. 미남형이 아닌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우리는 그를 성격파 배우라고 한다. 장동휘는 데뷔와 동시에 성격파 배우로 이름을 알리며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1950년대 말, 6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액션 영화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일본군과 싸우는 독립군의 무용담을 그린 전쟁 영화와 범죄 스릴러다. 특히 ‘한국 누아르의 시대’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여러 편의 범죄 영화가 만들어진다. 미국과 프랑스의 누아르 영화에 영향을 받은 범죄 영화들이 스릴러라는 상업적 꼬리표를 달고 수십 편 만들어진 것. 음울한 청춘 범죄 영화의 걸작 ‘지옥화’(신상옥 감독, 1959)를 시작으로 한국 누아르 영화의 걸작이라 부를 ‘오발탄’(유현목 감독, 1960)이 만들어진 것도 이 시기다.

당시 누아르 영화의 제작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로테스크한 취향으로 성(性)과 권력의 관계를 파헤치는 걸 즐기던 김기영 감독까지 장동휘가 자신을 형무소로 보낸 형사 김진규에게 복수하기 위해 온몸에 다이너마이트를 장착하고 김진규의 집으로 돌진하는 ‘아스팔트’(1964)를 만들고, 평론가들이 “쏟아져 나오는 범죄 영화들이 스릴러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쉽다”며 “왜 이렇게 범죄 스릴러가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을 정도였다. 성격파 배우 장동휘는 이 시기에 주로 악역 조연으로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해 한국 액션 영화의 악역 3인방 중 한 자리에 오른다.

한국 액션 영화의 악역 삼인방은 장동휘 허장강 황해, 이 세 사람을 말한다. 허장강이 유들유들한 사기꾼 기질의 사악한 악당이라면, 황해는 제임스 케그니를 연상케 하는 정신분열적인 악당 역을 주로 했다. 그에 비해 장동휘는 하드 보일드. 이 한마디로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투박하고 선이 굵은 악당 역을 전담했고 ‘파멸’(1961) ‘지상의 비극’(1960)에서 지긋지긋한 악종을 연기해 상찬을 받았다.

품격 있는 맏형



모든 배우가 그렇듯 배우는 감독과의 만남에서 그의 행로가 결정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셀지오 레오네, 존 웨인과 존 포드, 알랭 들롱과 장 피에르 멜빌이 그렇다. 좋은 감독을 만나지 못한 배우는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장동휘는 운명적으로 한국 최고의 감독 이만희를 만나 자신의 캐릭터를 확립하는 두 번째 시기를 연다. 장동휘와 이만희의 첫 만남은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였다. 문정숙을 괴롭히는 잔혹한 전 남편으로 출연해 첫 호흡을 맞춘 장동휘는 이듬해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 출연한다. 수륙양용정 안에 한 사내가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밖에는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리고, 적의 폭탄이 바다에 떨어져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륙양용정을 뒤흔든다. 사내는 고개를 돌려 앞으로 치르게 될 전투에 대한 불안과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자신의 분대원들을 바라본다. 그는 말이 없다. 다만 자신의 분대원들을 바라볼 뿐이다. 인천 해안에 수륙양용정이 다다르면 적의 총알과 폭격으로 수륙양용정 안의 분대원들은 반 이상 죽을 것이다. 사내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들의 공포를 이해해주고 그들을 격려한다. 과묵하지만 믿음직스러운 분대장. 그가 바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장동휘다. 장동휘는 단호하지만 너그럽고, 사병들의 애환과 고통을 잘 알지만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전쟁광이라는 오해를 받고 부하들 사이에 증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사실 그는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프로페셔널이며, 그의 가슴속에는 부하들의 죽음과 고통을 괴로워하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장동휘는 최고의 스타가 되고, 미남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 조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갖게 된다. 가진 것 없는 비천한 출생이지만, 덕이 있고 품격이 있는, 그래서 수하 누구나 그에게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는 맏형이라는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안성기가 ‘무사’(김성수 감독, 2000)에서 고향을 떠나 수년간 전장에서 전투를 치르고 살아남은 포졸 고참 역을 인상 깊게 해낼 때까지 장동휘만이 유일하게 관객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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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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