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 법정法頂 _ 근승랑 글·사진, 동아일보사, 4만8000원

불교에서는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 대부분을 인연으로 설명한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이를 참회의 기회로 삼을 때 인연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상황을 자신만을 위해 이용하거나 선에 위배되는 일을 할 때 인연은 언젠가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 사진첩이 저자인 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에게 선함의 메시지를 심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첩은 총 18장의 사진으로 구성됐다. 17장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법정스님의 길상사 모습을 찍은 것이고 마지막 한 장은 스님의 입적을 슬퍼하는 내 마음을 형상화한 사진이다. 내 식대로 찍고 해석한 스님의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니 부끄럽기만 하다. 스님의 사진에는 스님 모습뿐 아니라 내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님의 가르침을 내 안에 제대로 모셨는지 ‘눈 밝은’ 이에게는 다 보일 것이다.
스님의 입적이 임박했을 때 그간 찍었던 스님 사진을 하나하나 들춰봤다. 이상하게도 스님이 내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출간을 하면 그 느낌이 더 세고 강하게 내게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살아 계실 때 미처 그리지 못했던 ‘스님의 그림’을 완성하고 싶었다. 7년여 동안 스님을 친견하고 스님이 쓰신 글들을 읽으면서도 마치지 못했던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책을 펴낸 이유다.
글이 주는 느낌과 사진이 주는 느낌이 같지는 않다. 더구나 사진첩에 실린 사진을 다시 보는 것은, 스님의 또 다른 법문을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듣는 법문이다. 스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고 스님 글들을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언지 ‘거듭거듭’ 생각한다. 스님을 찍은 지 몇 년 만에 비로소 눈에 들어온 ‘빳빳한 행전’의 의미를 다시 내게 묻는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씀을 실천하신 징표인 당신의 행전이 이기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진장이’에게는 이기심을 비추는 거울이다. 당신이 쓰신 글들에 맞는 모습을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며 찾고 또 찾는다.
스님을 체화하는 것은 불법에 한발 다가가는 일이다. 나눔의 산물인 길상사를 기록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세상을 ‘글과 한 치도 다름없이 산’ 한 비구의 말년을 찍은 것이다. 평생을 걸식하는 수행자인 비구. 그중 하나였던 법정스님의 길상사에서의 7년이 ‘비구, 법정法頂’에 있다. 이 사진첩은 나를 가르치는 평생의 가르침이다.
근승랑│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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