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4일 서울 경기고 운동장에서 만난 박준(38·배우)씨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회인 야구단 ‘야단’ 소속 유격수인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에 빠졌다. 친구들과 동네 공터를 주름잡던 시절, 부모님을 졸라 가슴에 ‘화랑’이라고 적힌 야구복을 사 입은 기억은 지금 돌아봐도 짜릿하다. “그때 친구 중에 유니폼을 갖춰 입은 사람은 나 하나였다”는 목소리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이날 경기고에서는 ‘야단’과 또 다른 사회인 야구단 ‘지원사랑’의 경기가 펼쳐졌다. 2005년과 2009년 각각 창단한 두 팀은 현재 사회인 야구 리그 ‘한리그’ 소속 11개 팀 중 1·2위를 다투고 있다. 전국적으로 이런 리그와 팀이 몇 개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수시로 팀이 창단되고 해체되기 때문. 사회인야구단연합회를 비롯한 리그 운영 업체들은 대략 1만1000개 정도의 팀이 운영 중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팀당 최소 10명에서 최대 30명 정도의 선수가 뛰는 걸 감안해 평균 20명으로 계산하면 사회인 야구단에 소속된 선수는 2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전국 규모 야구대회는 약 30개. 뜨거운 야구 열기를 실감할 만하다.
3월31일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신생 프로야구단 창단을 발표하며 “2009년 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우리나라가 준우승하는 모습을 보며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때부터 구단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과 WBC 준우승은 김 대표뿐 아니라 대한민국 많은 야구팬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김 대표가 ‘보며 즐기는’ 야구에서 벗어나 프로팀 창단을 꿈꾼 것처럼, 많은 이가 ‘직접 뛰는 야구’에 몸을 던졌다. 대한민국에 아마추어 야구팀 수가 급증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9년 KBS가 최강 사회인 야구단을 꿈꾸는 남자들의 도전을 그린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천하무적 야구단’을 방송한 것도 이 열기를 더욱 북돋웠다. ‘천하무적 야구단’ 선수들이 전국을 돌며 지역 사회인 야구단과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일반인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품었다.
“열정만큼은 프로페셔널”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 야구를 익혔고, 수십 년 동안 야구 경기를 관람해온 이들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야단’은 현재 2개 리그에 소속돼 있다. 한 리그의 경기는 보통 격주로 열리는데 멤버들이 토요일마다 야구를 하고 싶어 2개 리그에 등록한 것이다. 실력 역시 아마추어 수준 이상이다.
1회 초 ‘야단’의 공격. 주자 2루 상황에서 경쾌한 방망이 소리와 함께 공이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고 좌측 깊숙이 날아갔다. 양 팀 선수들이 숨을 멈춘 채 공의 행방을 주시하던 것도 잠시, 홈런성으로 보이던 타구가 ‘지원사랑’ 좌익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가면서 ‘야단’ 더그아웃에선 탄식이 쏟아졌다. “사회인 야구단에서 그런 공을 잡아도 되는 거야?”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날 경기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끝에 ‘야단’의 13대9 승리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한리그’ 타격왕을 차지한 강타자 박준씨는 “올 시즌 치른 세 경기에서 무안타 상태라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며 부진에서 벗어났다.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엎치락뒤치락하다 3점차로 패한 ‘지원사랑’ 박철민(44·배우) 감독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경기가 있는 날 촬영 스케줄이 잡히면 핑계를 꾸며대고 야구장으로 달려갈 만큼 야구 마니아라는 그는 “시합을 앞둔 날은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 같은 설렘을 느낀다. 소풍 배낭에 과자를 넣었다 뺐다 하고 날씨를 살피며 잠 못 이루던 그런 동심을 이 나이에 어디에서 또 느끼겠는가”라며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