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25일 삼성그룹은 바이오 사업 진출 로드맵을 발표하며 ‘바이오 빅뱅’의 서막을 알렸다. 2010년 현재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 규모는 약 19조원으로 전체 증시의 1.5%에 불과한 수준. 하지만 삼성이 2020년까지 바이오제약 분야에 2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의 선언은 바이오 분야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정해놓고도 대규모 투자를 망설이던 다른 대기업에 경쟁의 불을 지폈다. 이미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 LG, SK, 한화, CJ, 코오롱 등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한 기업 간 전쟁도 점입가경이다.
바이오제약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세계 제약 시장이 합성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의약품 특허와 시장독점권이 2012~15년을 기점으로 만료되면서 여러 기업이 바이오 복제약(바이오시밀러) 품목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바이오제약 및 의료기기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혀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든 각 대기업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일까. 이들의 경쟁이 산업의 지형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CMO→바이오시밀러→신약
“바이오제약은 삼성그룹의 미래사업이다.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업이므로 사명감을 갖고 적극 추진하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바이오산업 진출을 앞두고 당부한 말이다. 2000년대 초부터 삼성은 차세대 먹을거리 발굴에 집중해왔다. 지난해 삼성은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태양전지, 자동차용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등 5개 분야를 신수종 사업으로 키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작은 진척들이 있었지만, 바이오제약 합작사 설립은 신수종 사업과 관련한 첫 번째 구체적인 밑그림이기에 더욱 주목받는다.
삼성은 미국 퀸타일스와의 합작사 삼성바이오(가칭)를 통해 바이오제약 사업을 벌인다. 퀸타일스는 세계 60개국에서 임상시험을 대행하는 바이오·제약 서비스 전문업체다. 여기에 삼성전자(40%), 삼성에버랜드(40%), 삼성물산(10%)이 참여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 김태한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 부사장은 “에버랜드는 식품안전 연구와 그린 바이오 분야의 전문 인력을, 삼성물산은 플랜트 설계 역량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3월 71개 계열사의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합작사에 근무할 임직원을 공개모집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내부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바이오제약 사업은 3단계로 전개된다. 먼저 해외 제약사의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 생산(CMO·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한다. 이를 위해 삼성은 인천 송도에서 상반기 중 3만 L급 동물세포 배양기를 갖춘 바이오 의약품 생산 플랜트 건설에 착공한다. 2016년부터는 림프암과 관절염 치료에 쓰이는 ‘리툭산’ 등의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한다. 처음부터 신약을 만들긴 어렵기 때문에 생산 노하우를 쌓고 복제약을 개발하면서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바이오신약 사업에 진출한다는 것이 삼성의 전략이다.
삼성의 사업 구상에 대해 업계는 어떻게 평가할까.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바이오시밀러 선두주자인 벤처기업 셀트리온의 전략과 흡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2002년 탄생한 셀트리온은 설립 초기 ‘CMO→바이오시밀러→바이오신약’이라는 3단계 장기 성장 전략을 내세웠다. 지금은 바이오시밀러 중심의 두 번째 성장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셀트리온의 몇몇 직원은 삼성으로 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 벤처업체인 셀트리온은 삼성의 추격에 위협을 느끼진 않을까. 셀트리온 관계자는 오히려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이 제시한 사업 계획은 우리의 사업 전략이 맞았다는 것을, 바이오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검증해줬다. 우리가 약 5~6년 앞서 있는 만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삼성의 바이오산업 진출로 셀트리온이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며 인지도도 더욱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