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산업의 혁신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에 힘입어 호황을 누려온 선진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또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세계경제의 불균형과 그 근간을 이루어온 달러기축통화 제도의 안정적 운용이 한계에 도달했음도 시사했다.
최근 위안화 국제화 논의가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은 이러한 현실인식과 향후 국제통화제도의 개편 또는 보완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누리는 독점적 지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부담과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제통화체제를 지금보다 더욱 다변화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같은 초국가적 지불·결제수단의 활용도를 높여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위안화의 사용 확대 및 위상 제고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 아일랜드 등의 재정위기에서 표출된 유로화의 구조적 문제점이나 중국 자본시장의 낮은 개방 정도를 감안할 때 당분간 달러화를 대체할 만한 대안통화는 나오기 어려우며, 위안화 국제화도 빠르게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중국 정부가 30여 년 동안 유지해온 금융자유화 및 개방에 대한 소극적 정책기조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제기되고 있는 국제통화제도의 변화 방향과도 무관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기 이후 원자바오 총리나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 등 중국의 주요 정책담당자들은 국제통화제도 개편의 필요성에 부쩍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 개선방안으로 향후 SDR의 역할 확대나 국제통화 사용의 다변화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외화 축적의 부담을 줄여라
하지만 중국 정부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오히려 중국 쪽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중국은 2조8000억달러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이다. 이러한 외환 보유는 자국통화의 국제적 통용력 및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유사시를 대비해 별도의 대외준비자산을 마련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무역불균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통화가 국제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적인 신뢰를 얻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위안화가 국제화되면 중국은 외환보유액 규모를 줄일 수 있다. 그러면 과다한 외환보유고에서 비롯됐던 다양한 비용과 위험을 덜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외환은 수익률은 낮지만 가치변동이 적은 안전자산에 투자된다. 이 때문에 대규모 준비자산을 보유할 때 고수익의 기회를 포기하는 데서 비롯되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또 중국이나 일본,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외환보유고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관리에 소요되는 비용도 상당하다. 여기에 최근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달러화의 가치와 국제통화체제에 대한 불확실성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향후 달러가치 하락으로 인한 외환보유액의 잠재손실마저 우려된다.
중국이 보유한 외환의 65% 정도가 달러 및 달러표시자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외환 보유를 비롯해 가치저장수단이나 지급결제의 기준 측면에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여기에 미국의 경상 또는 재정수지 적자가 누증돼 달러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경우, 달러표시 자산의 비중이 높은 중국은 큰 투자손실을 입게 된다. 위안화의 국제화는 외환 보유액에 대한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이러한 비용과 위험요인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더욱이 전세계적으로 위안화가 국제통화로 자리 잡으면 중국 정부는 시뇨리지(Seigniorage·화폐주조차익) 수입을 향유할 수 있다. 또 위안화가 국제화되면 글로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중국의 수출입 기업은 불필요한 환전비용의 지출을 줄이고 환율변동 위험을 덜어냄으로써 경영환경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