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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와 술 ⑨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을 기억하는 술, 포트와인

  • 김원곤| 서울대 의대 교수·흉부외과 wongon@plaza.snu.ac.kr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을 기억하는 술, 포트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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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해소할 대안으로 루이 황태자 대신 그의 아들인 앙주 공작 필립과, 레오폴드 1세 대신 그의 아들인 카를 대공(Archduke Charles)을 각각 스페인 왕위 계승자로 내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카를로스 2세도 요제프 페르디난트가 후계자가 되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1699년 요제프가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천연두 때문에 그만 사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자 프랑스와 영국은 긴급 회동을 하고 스페인 왕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대공에게 넘겨주되, 스페인의 이탈리아 영토를 프랑스가 차지하는 분할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회담에서 제외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이탈리아를 프랑스에 넘겨주는 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스페인으로서도 그들의 국외 영토가 프랑스로 넘어가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렇지만 스페인으로서는 어쨌든 왕위를 부르봉 왕가에 넘기느냐 합스부르크 왕가에 넘기느냐를 결정해야 했다. 결국 부르봉 왕가 지지자가 다수를 차지해 최종적으로 부르봉 왕가의 앙주 공작 필립이 이탈리아를 포함한 스페인 전체 영토의 공식 후계자로 결정됐다. 다만 스페인으로서는 부르봉 왕가에 합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만일 필립이 프랑스 왕위를 이어받게 되는 경우 그의 동생인 베리 공작 샤를(Duc de Berry Charles)이나 그 다음 순위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에게 스페인 왕위를 넘기도록 했다.

1700년 오랜 병마에 시달리던 카를로스 2세가 채 마흔이 되지도 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리고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필립 앙주공(公)이 정식으로 펠리페 5세로서 스페인 국왕에 즉위한다. 그런데 야심에 찬 루이 14세는 손자인 펠리페 5세의 스페인 왕 즉위를 계기로 유럽 전체의 주도권을 차지할 계획을 세운다. 그 일환으로 그는 스페인에 영국과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중요한 무역항로의 차단으로 자국의 이익이 심각하게 손상될 위기에 처한 영국과 네덜란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당시 영국 왕은 네덜란드 출신의 윌리엄 3세(1650~1702, 재위 기간 1689~1702)로 1688년 명예혁명으로 프랑스로 망명한 제임스 2세(1633~1701, 재위 기간 1685~1688)에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는 네덜란드와 함께 강대국 오스트리아를 끌어들인 협상 끝에, 1701년 9월7일 ‘덴 하그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의 핵심은 “펠리페 5세의 정통성은 인정하되 영국과 네덜란드의 스페인 교역권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이 대가로 그토록 바라던 이탈리아 영토를 할양받는다는 조건이었다.



프랑스, 스페인 vs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그런데 조약이 체결된 지 며칠 후에 당시 윌리엄 3세에 의해 쫓겨나 프랑스에 망명 중이던 제임스 2세가 사망했다. 그러자 윌리엄 3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루이 14세는 이를 계기로 앞으로는 제임스 2세의 아들(제임스 프란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을 새 영국 국왕으로 공식 인정하겠다고 선포한다. 이미 유사시를 대비해 군대를 모으고 있었던 영국으로서는 루이 14세의 이런 언동이 국민의 전쟁에 대한 지지를 더욱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영국은 윌리엄 3세가 전쟁 발발 이듬해인 1702년 사망하게 되지만, 그의 후계자인 앤 여왕(Queen Anne) 시대에도 적극적으로 전쟁에 임하게 된다.

어쨌든 결국 프랑스와 스페인이 한편이 되고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가 그 상대편이 되는 전쟁이 발생하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후세에 스페인 계승전쟁(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1701~1714)으로 불리는 전쟁이다.

개전 초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명장인 사보이 공작 오이겐이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이 스페인령 이탈리아 밀라노 공국을 침범한다. 그러나 개전 초기 전반적인 전황은 프랑스에 유리하게 진행됐다. 그러다가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 전선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후 1704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북상한 오이겐 부대와 독일 쪽으로 남하한 영국의 말버러가 이끄는 군대가 블렌하임(Blenheim) 전투에서 프랑스, 바이에른 연합군을 협공해 이김으로써 국면을 전환시켰다. 영국군은 또 같은 해 포르투갈 연해에서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하고 스페인 지브롤터를 장악하는 성과를 올린다. 이후 1705년은 교착상태가 유지됐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을 기억하는 술, 포트와인

숙성 중인 ‘샌드맨 포트’ 와인.

그러다가 1706년 오스트리아-영국 동맹군은 큰 전과를 올린다. 이탈리아 전선의 오이겐과 네덜란드 전선의 말버러가 각각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프랑스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1707년에는 마침 그때 북구에서 발생한 또 다른 전쟁(the Great Northern War) 때문에 스페인 계승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는다. 그러나 1708년 영국-오스트리아 동맹군은 말버러와 오이겐의 활약으로 우드나르드(Oudennarde)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긴다. 이 전투의 패배로 큰 곤경에 처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부득이하게 강화 교섭을 시작한다. 그는 동맹군에 정전을 하면 이탈리아의 나폴리를 제외한 스페인과 스페인 관련 영토에 대해 프랑스의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협상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나 동맹군 측은 한술 더 떠 루이 14세에게 그의 손자이기도 한 스페인 펠리페 5세를 직접 퇴위시키라고 압박한다. 이런 치욕적인 요구에 대해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루이 14세는 끝까지 항전을 결의한다.

이후 전쟁은 계속되고 1709년 오이겐과 말버러의 동맹군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향해 진격해 프랑스의 빌라르 공작(Duke de Villars)이 이끄는 방어군과 맞선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동맹군은 비록 승리를 거두었지만 무려 2만명 이상의 전사자를 기록하는 등 전력에 큰 타격을 입는다. 이러한 손실로 동맹군 세력이 주춤해지면서 이후 전쟁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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