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br>알베르 카뮈 지음, 이기언 옮김, 문학동네, 172쪽, 8500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왔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 삼가 조의.”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마도 어제였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 ‘이인’ 중에서
도대체 어떤 독한 작가가 (실제 모친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생애 첫 소설의 첫 문장을 엄마의 부음으로 삼을 수 있을까. 카뮈의 문학세계를 지속적으로 탐사해온 독자에게 그의 어머니(카트린 생테스)는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프랑스인 뤼시앙 카뮈와 결혼한 스페인 출신의 여성. 알제리에 이주한 이민자로 포도주 제조 노동자였던 남편 뤼시앙이 카뮈가 한 살 때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하자, 핏덩이 카뮈를 달동네의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날품팔이 노동으로 생계를 꾸렸다. 43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카뮈는 소감의 첫마디를 어머니에게 헌정했다.
작가의 어머니
어머니는 아들의 소설을 다 읽어왔을까? 아들을 세계적인 문호로 키운 어머니는 어떤 특별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까? 청중은 기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설가의 어머니는 아들의 아름다운 문장을 한 글자도 읽지 못하는 문맹(文盲)이었다. 더욱이 아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를 제대로 전해 듣지 못하는 반귀머거리였다. 카뮈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것은 그가 다닌 학교의 선생님들(제르맹, 장 그르니에 등)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나 깨어 있는 정신으로 문학을 응시하도록 뒤에서 말없이 채찍을 가한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를 향한 카뮈의 심정은 고등학교 은사인 장 그르니에의 ‘카뮈를 추억하며’와 지난해 카뮈 서거 50주년을 맞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카뮈의 마지막 날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도 정의의 편이오. 하지만 정의와 내 어머니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내 어머니를 택하겠소.’ … 알베르 카뮈의 정신 속에서는 알제리와 어머니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이 둘을 똑같이 사랑했다. … 그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과거에 기댈 필요를 느꼈다. … 1848년 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센 강에서 배를 타고 운하와 철도를 통해 마르세유에 이르고 뒤이어 아프리카로 간 사람들은 그들 뒤에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적대적인 미개의 땅에 머물러야 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였다. 예를 들면 알베르 카뮈의 아버지는 알사스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스페인계였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었다.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카뮈를 추억하며’(민음사) 중에서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옆에 가까이 계실 수 있을 텐데. 훨씬 나은 환경에서 훨씬 편안하게 사실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라디오나 신문, 정기적으로 전화 통화하는 친구들을 통해 그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으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텐데. … 지금 작업하고 있는 원고가 완결되어야 하나의 고리가 매듭지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결코 그 책을 읽지 못할’ 어머니에게 이미 헌정한 그 원고 말이다. -로제 렌지니 지음, 문소영 옮김, ‘카뮈의 마지막 날들’(뮤진트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