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카뮈를 만나는 깊은 겨울밤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1-11-23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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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뮈를 만나는 깊은 겨울밤

    ‘이인’<br>알베르 카뮈 지음, 이기언 옮김, 문학동네, 172쪽, 8500원

    2011년1월27일 정오 무렵. 2차선의 D27 국도 중의 소로(小路). 아를에서 생-레미 프로방스를 지나 뤼베롱 산간의 고원(高原) 지대를 달려온 자동차는 루르마랭이라는 푯말이 나타나면서 속도를 낮추었다. 산골의 작은 마을이니 묘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묘지를 지척에 두고도 성(城)과 마을을 두 번 빙빙 돈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은 서너 대 정도 주차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안과 밖을 가르는 담장은 높지 않았다. 검은 이끼가 두껍게 내려앉은 돌십자가가 담장 위에 얹혀 있었다. 묘지 안으로 몇 걸음 옮기는 중에 귓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발소리와 창공에서 번쩍이는 태양, 그리고 그 아래 일렬로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우듬지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청춘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사자(死者)들의 거처를 찾아 세상을 떠돈 나였기에 특유의 정적과 그 속에 팽팽하게 흐르는 긴장감에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바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야 했다. 주문을 외듯, 소설 ‘이인’의 칼 같은 첫 문장을 짧게 읊조렸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왔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 삼가 조의.”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마도 어제였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 ‘이인’ 중에서

    도대체 어떤 독한 작가가 (실제 모친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생애 첫 소설의 첫 문장을 엄마의 부음으로 삼을 수 있을까. 카뮈의 문학세계를 지속적으로 탐사해온 독자에게 그의 어머니(카트린 생테스)는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프랑스인 뤼시앙 카뮈와 결혼한 스페인 출신의 여성. 알제리에 이주한 이민자로 포도주 제조 노동자였던 남편 뤼시앙이 카뮈가 한 살 때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하자, 핏덩이 카뮈를 달동네의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날품팔이 노동으로 생계를 꾸렸다. 43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카뮈는 소감의 첫마디를 어머니에게 헌정했다.

    작가의 어머니

    어머니는 아들의 소설을 다 읽어왔을까? 아들을 세계적인 문호로 키운 어머니는 어떤 특별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을까? 청중은 기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설가의 어머니는 아들의 아름다운 문장을 한 글자도 읽지 못하는 문맹(文盲)이었다. 더욱이 아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를 제대로 전해 듣지 못하는 반귀머거리였다. 카뮈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문학의 길로 인도한 것은 그가 다닌 학교의 선생님들(제르맹, 장 그르니에 등)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나 깨어 있는 정신으로 문학을 응시하도록 뒤에서 말없이 채찍을 가한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를 향한 카뮈의 심정은 고등학교 은사인 장 그르니에의 ‘카뮈를 추억하며’와 지난해 카뮈 서거 50주년을 맞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카뮈의 마지막 날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도 정의의 편이오. 하지만 정의와 내 어머니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내 어머니를 택하겠소.’ … 알베르 카뮈의 정신 속에서는 알제리와 어머니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이 둘을 똑같이 사랑했다. … 그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과거에 기댈 필요를 느꼈다. … 1848년 많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센 강에서 배를 타고 운하와 철도를 통해 마르세유에 이르고 뒤이어 아프리카로 간 사람들은 그들 뒤에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적대적인 미개의 땅에 머물러야 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였다. 예를 들면 알베르 카뮈의 아버지는 알사스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스페인계였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것이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었다.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카뮈를 추억하며’(민음사) 중에서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옆에 가까이 계실 수 있을 텐데. 훨씬 나은 환경에서 훨씬 편안하게 사실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라디오나 신문, 정기적으로 전화 통화하는 친구들을 통해 그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으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텐데. … 지금 작업하고 있는 원고가 완결되어야 하나의 고리가 매듭지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결코 그 책을 읽지 못할’ 어머니에게 이미 헌정한 그 원고 말이다. -로제 렌지니 지음, 문소영 옮김, ‘카뮈의 마지막 날들’(뮤진트리) 중에서

    ‘카뮈의 마지막 날들’은 카뮈 서거 50주년을 맞아 알제리 출신의 카뮈 전공자 로제 렌지니가 쓴 전기 소설이다.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3년 뒤 자동차 사고로 죽기 직전 이틀간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곧 내가 남프랑스 아를에서, 돌발적으로, 목적지 방향과는 반대로 달려간 뤼베롱 산간 고원 마을 루르마랭이 현실적 시간의 공간적 무대. 나는 이곳에 다녀온 뒤, 공식적으로 세 편의 글을 썼다. 한 편은 칼럼 형식, 다른 한 편은 추도 소설 형식, 마지막 한 편은 편지 형식. 소설에는 한 장면으로 처리돼 있는데, 추도의 주체인 P선생(박완서 선생)의 부음을 접한 장소가 루르마랭의 카뮈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었던 데서 비롯됐다. 문단에서의 인연으로 치면 당연히 나는 선생의 빈소를 향해 한걸음에 달려가야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한 편지는, 루르마랭 묘지의 카뮈 묘석 아래 꽃 대신 꽂아놓고 온 내 명함을 보고 나에게 e메일 편지를 보내온 아비뇽의 에릭 베랑제라는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답신이었다. 카뮈를 가운데 두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와 나는 e메일로 소통하며 우정을 느끼는 사이가 됐다.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힘(매개체)이 작용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친애하는 베랑제씨, … 카뮈가 생의 마지막 2년을 보낸 루르마랭을 추억하며 작가의 운명에 대하여 되새겨봅니다. 소년 카뮈를 불멸의 작품을 써낸 작가의 길로 인도한 스승이 있었지요. … 어느 날 카뮈는 이 스승을 따라 스승의 친구가 살고 있는 루르마랭에 갔다가 알제리의 고향 마을과 흡사한 자연경관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루르마랭은 카뮈에게 집안은 극빈했으나 집밖 자연만은 최고의 순도와 향기로 가득했던 티파사를 연상시켰지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카뮈가 왜 파리를 떠나 뤼베롱 산간의 이 한적한 고원 마을로 옮겨갔는지, 저는 직접 루르마랭을 돌아보면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카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는 문맹(文盲)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이 필요했고, 동시에 속악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자신만의 문학을 일구어갈 수 있는 곳이 절실했습니다. 루르마랭이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함정임, ‘문인들의 여름 편지-나는 카뮈가 죽도록 사랑한 그곳으로 떠납니다’(조선일보, 2011.7.18) 중에서

    알제리의 가난한 프랑스 이민자 출신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찾고 정주(定住)를 꿈꾼, 아니 꿈을 실현한 루르마랭에서 카뮈는 겨우 2년밖에 살지 못했다. 그리고 51년째 거기, 루르마랭 묘지에 영원히 살고 있다. 카뮈의 죽음은 문학사에 기록된 몇몇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교통사고로 죽기 이틀 전 카뮈는 파리행 기차표를 예약했다. 계획대로라면 죽은 다음 날 떠날 것이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이, 깊은 우정을 맺어온 미셀 갈리마르가 찾아왔다. 마침 파리까지 가려던 것을 하루 앞당겨 그는 친구의 차에 동승했다. 그리고 그것은 카뮈가 그토록 사랑했던 루르마랭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상스와 퐁텐블로 사이에서 영원히 중단되어버린 귀로’가 됐다. 1960년 1월4일의 일이다. 카뮈의 가방 속에는 유년 시절의 삶과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자전적으로 쓴 ‘최초의 인간’이, 그리고 그의 주머니 속에는 원래 타고 가려고 예약했던 파리행 열차표가 들어 있었다.

    새롭게 만나는 카뮈

    지난해 카뮈 서거 5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세계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올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카뮈의 ‘이방인’을 재출간했다. 사후 50년 저작권 보호가 풀린 것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학동네판 ‘이인’이다. ‘이방인’은 일찍이 이휘영의 번역본과 세계적인 카뮈 전문가 김화영의 번역본으로 널리 읽혀왔다. 한국이 저작권 협약에 가입한 이래(1988년 이후) 저작권자와의 독점 계약본인 김화영의 ‘이방인’이 결정본 역할을 해왔다. ‘이인’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방인’이라는 제목이 거느린 아성에 대한 도전이고, 문장가로 평가받은 김화영의 번역문에 대한 비교 경쟁이다. 이방인의 원제는 ‘L‘et-ranger’. 수많은 한국어 번역자와 출판사들은 한결같이 ‘이방인(異邦人)’으로 제목을 삼았다. 번역 작품의 경우 번역과정에서 그 나라 현실과 시대적인 정서에 맞게 개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방인’이란 제목은 ‘이미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경우로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했다. 그런데 ‘이인’은 ‘異人’으로 한자 병기를 하지 않은 채, 철자 조합이 매우 단순한 두 글자로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번역자이자 전공자의 제목 선택의 변(辯)이 예외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인공 뫼르소의 진정한 정체성과 원제가 갖는 중의적인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보통사람과 다른 낯설고 이상한 인간으로서의 이인과 작품 안에 두 뫼르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인(二人)의 뜻을 함께 담은 것이다.”

    루르마랭에서 돌아온 지 어느새 일 년. 20세기 불후의 문제작 ‘이방인’이 21세기에는 ‘이인’으로 거듭날지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깊어가는 겨울밤, 다시 카뮈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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