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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한국의 명장

‘천년의 꽃’ 전주장 되살려낸 대한민국 소목명장 1호 소병진

기술이 예술이 된 ‘쟁이’의 뚝심과 도전 한평생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천년의 꽃’ 전주장 되살려낸 대한민국 소목명장 1호 소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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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꽃’ 전주장 되살려낸 대한민국 소목명장 1호 소병진

궤틀에 나무를 올려놓고 탱게톱으로 자르고 있다. 옛 목공도구가 정겹다.

“살기 어려운 시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저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한 3년 있다 오려고 했어요. 목공부 작업반장으로 가면 1억원은 만들겠다 싶어 서류까지 다 준비했는데, 떠나기 직전 아내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다시 해보자며 매달렸습니다.”

아내의 만류로 주저앉게 된 그는, 다시 가구에 매달렸고 마침내 명장 1호가 되었다. 그리고 명장이 되자마자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전주장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전주장에 ‘꽂혀’

그가 전주장을 처음 만난 것은 동일가구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인사동에 동일가구 전시장이 있어서 휴일이면 인사동에 곧잘 나갔는데, 어느 날 한 골동품 가게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특별한 장을 만나게 된다.

“느티나무로 만든 장이었는데, 자그마하니 아주 예쁘더군요. 전주장이라고 써 있기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18세기 후반부터 전주 지방에서 쓰던 농이었는데 조선이 망하면서 맥이 끊어져버렸대요. 귀가 번쩍 뜨이면서 이게 바로 내 농이다 싶더라고요.”



그때 가슴에 새겨놓았던 전주장을 그는 잊지 않았고, 전주로 내려온 뒤로 전주장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주장이 있는 곳이라면 전라도와 서울 가리지 않고 다니며 박물관과 인사동 골동품 가게는 물론이고 개인집까지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사진을 못 찍게 하면 치수를 재어왔다.

“나중에 보니 우리 고향마을에도 더러 있더라고요. 전주장은 하나도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이 없어요. 왜냐하면 집으로 목수를 불러서 그 집의 방 크기와 쓰임새에 맞게 만들도록 했으니까 같은 게 나올 수가 없지요. 그만큼 사람에게 맞춘 인간적인 가구란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주장은 다른 지방 장보다 크기가 작은 편이고, 장 안에 비밀문갑이 달린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잘살던 전주 지방 안방마님들이 귀중한 패물이나 문서를 갈무리하기 딱 좋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실용적이면서도 외장은 화려하고 기품이 있어, 과연 전주장이 조선시대 후기 우리 전통가구의 결정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전주장의 가장 큰 비밀은 특이한 제작기법에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전주 한지를 넣어 붙이는 적층기법으로, 가령 세 종류의 나무를 붙여 복판(가구 앞면의 틀에 끼워 넣는 넒은 면)을 만들 때 그 판면과 판면 사이에 종이를 배접해두는 방법이다.

“계절에 따라 습도와 온도가 달라지고 또 난방으로 가구 판재가 조금씩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갈라지는 폐단을 막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지요. 우수한 우리 닥나무 종이가 습기와 건조의 격차를 조절해주는 겁니다. 이 기법으로 특허까지 받았답니다.”

그런데 이 기법은 옛 장수의 투구와 갑옷을 종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 전통 종이가 매우 질기고 변함이 없으며 나무와 아주 잘 결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활용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창의력과 기술로 재현해낸 전주장은 그 결과 원래 전주장보다 더 튼튼해졌다.

또 전주장의 화장면(앞면)에 들어가는 길상 문양이나 장석 하나까지 연구와 검증을 거쳐 정통 그대로 살려내는 데 주력하는 그는 농과 장의 제작법을 고루 응용한 전주장 특유의 까다로운 짜임새대로 일일이 다 짜 맞추고, 장석은 너무 번쩍거리지 않게 밀랍 처리하고, 진흙으로 색을 내고 동백기름으로 꼼꼼하게 마무리한다. 이 아름답고 까다로운 전주장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드는 데 그는 그동안 쌓아온 기술과 공력을 남김없이 쏟아 부었다. 그렇게 해서 재탄생한 전주장이 뛰어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명품이자 예술품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맥이 끊긴 전주장을 이렇듯 충실히 되살린 그는 한편으로 전주장을 알리는 길에 나섰다. 이미 명장 칭호를 받은 그가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것도 그 때문이다. 10년에 걸쳐 전주장을 연구하고 재현해나가는 동안 그는 해마다 출품했는데, 처음에는 번번이 낙선했다.

“전문가들도 전주장을 잘 모르니 상을 받기 어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꾀를 내었지요. 전주장의 유래와 역사 등을 적은 설명문을 함께 제출했더니 관심을 갖고 보아주기 시작하더군요.”

2001년 처음 선(選)에 들기 시작해 이듬해 장려상, 2003년에는 문화예술진흥원장상을 거쳐 마침내 2004년 대통령상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전주장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인사동 라메르 전시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고서다.

“대통령상을 받은 그해 라메르에서 초대전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전시할 작품이 없는 겁니다. 전주장은 많이 만들어야 한 해 대여섯 채밖에 못 만드니 여분의 작품이 없었어요. 초대전 제의받은 그날부터 팔지도 못하고 만들기 시작해 5년 동안 만든 것을 모아 겨우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 사이 빚은 1억원이 되었지만 ‘천년의 꽃’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전시회로 그의 명성과 전주장의 인기는 단번에 치솟았다. ‘소병진’이라는 이름이 곧 ‘천년의 꽃’ 용목으로 만든 전주장을 뜻하는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제는 코엑스에서 전시를 하고나면 전국의 심미안들이 그에게 연락을 해온다. 일 년에 몇 채 만들지 못하지만, 일 년에 몇 채만 팔아도 이제 작업을 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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