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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⑩

미생물로 흙 살리고 토종 씨앗 살리는 괴산 농부 이태근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미생물로 흙 살리고 토종 씨앗 살리는 괴산 농부 이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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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농부가 꿈

▼ 그래서 흙살림이 미생물을 배양하는 연구소를 만들었군요.

“괴산미생물연구소를 만든 것이 올해로 딱 20년 됐습니다. 유기농법 기술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미생물 배양입니다. 미생물도 토종이 있고 수입종이 있어요. 내가 학교 졸업 후 처음 농촌에 내려왔을 때가 1984년인데 유기농 초창기였지요. 그때도 정농회 같은 선진 농업연구기관이 있었지요. 땅이 죽어간다는 것을 자각하고 미생물을 키워내야 한다는 건 알았는데 토종 미생물을 찾지 못하고 일본에서 수입해 쓰더라고요. 우리 미생물을 찾아 배양해보자고 결심했지요.”

▼ 농촌으로 내려오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고향이 대구라고 들었는데 왜 하필 괴산으로?

“다른 선택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려서부터 꿈이 농부였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장래 희망을 쓰는 난에 한결같이 ‘농부’라고 썼고 진학도 농대로 했지요. 다른 친구들이 대통령, 법관, 군인이라고 쓸 때 농부라고 쓰면 다들 와르르 웃었지요. 괴산에는 대학동기인 친구가 살고 있어서….”



농촌에서 태어났으니 이태근에겐 논과 밭, 산, 개울이 다 익숙했다. 두엄내기, 모내기, 가을걷이도 자연스레 터득했다. 남들은 농촌을 떠날 때였지만 농학을 전공한 이웃집 대학생과 자주 만나며 농사꾼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찍 깨쳤다. 뿌듯한 각성이었다. 군사독재가 막바지에 달한 무렵, 대학생이 되었고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었고 민중이 억압받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아니 민중이란 말은 막연하다. 이태근에게 그건 아버지였다. 성실하고 과묵한 농사꾼이던 아버지가 두어 마지기 논을 지주에게 뺏기는 것을 목격하면서 가난해도 억울하지 않을 세상을 만들려 했다. 그러다 군에 강제징집되었고, 곡절과 상처를 안고 농촌으로 내려왔다. 뜻을 같이하는 선후배들과 함께였다. 우둔하다면 우둔하고 진지하다면 진지한 일이었다. 그는 농사를, 농민을, 흙을 살리는 일에 제 삶을 걸기로 작정한다. 어릴 때 꿈꾸던 농부와는 조금 달랐다. 그냥 농사가 아니라 ‘농민운동’이었으니까! 흙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운동은 신념과 구호로 되는 게 아니었다. 실험과 노동으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었다. 흙에 엎드려서 증명해 보여야 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흙처럼 푸근한 사람

이제 ‘흙살림’ 20년이다. ‘흙살림’은 이태근의 정체성이고 그의 인생을 압축한 말이다. 나는 이번 괴산길에서 쉰이 갓 넘은 이태근의 그 뿌듯한 20년 수확물을 여기저기서 눈으로 확인하고 내심 환호했다.

그를 처음 본 건 교보문고가 벌이는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였다. 언제 봐도 싱그러운 호기심과 아이디어로 번뜩이는 천호균 쌈지 대표와 괴산 농부 이태근이 ‘어울리지 않게도’ 함께 책을 냈다는 소문에 달려간 자리였다. 이태근은 젊은 독자의 질문에 답하기 전 민망한 듯 벙긋벙긋 웃기부터 했다. 그 벙긋대는 웃음이 왜 저렇게 푸근하고 친숙할까를 따져보다 나는 알게 됐다. 그게 바로 흙의 성질이란 것을! 이태근은 서울 세종로처럼 시멘트와 돌로 뒤덮인 땅에서 만나기엔 너무나 황송한, 흙냄새를 그대로 닮은 사람이었다! 나는 행사 뒤풀이에 따라가서 그의 전화번호를 받고 취재 약속을 잡았다.

▼ 지금 농업의 가장 큰 문제가 농약입니까?

“어찌 한둘이겠어요? 유기농을 부르짖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우선은 농업의 공업화에서 벗어나자는 겁니다. 농약, 비료, 제초제를 들이붓는 농업은 농업이라기보다 차라리 공업에 가깝거든요. 농업은 이미 기계 중심의 속도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기울었어요. 농촌은 이제 석유가 없으면 멈춰 섭니다. 석유 없이 비닐과 비료가 만들어지며 석유 없이 트랙터나 경운기가 움직입니까. 흙의 가치는 석유 다음으로 밀려나버렸어요. 1970년대 곡물파동 기억하세요? 곡물생산량은 3% 감소했는데 곡물가격은 100% 올랐었지요. 석유파동으로 기름값이 오르면서 생긴 현상이지요. 이 파동으로 한몫 챙긴 곳은 미국의 거대 곡물자본이었고! 우리 농민은 지금 거대 다국적 기업인 종자회사, 농약회사, 농기계 회사를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휘고 있어요. 오염된 음식과 과도한 노동으로 병원비도 엄청 지불해야 하고요. 농약과 제초제에 기대 농사를 짓는 한 공기 좋고 물 좋은 농촌은 옛말이에요. 그래서 농업의 현주소가 확실히 드러나게, 천호균 쌈지 대표 같은 사람은 ‘관행농’ 대신 ‘화학농’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하지요.”

▼ 그렇지만 유기농으로는 생산량이 적어서 문제 아닌가요? 상당히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좋은 거름을 만들어 쓰면 생산량은 크게 문제될 게 없어요. 유기농의 가치를 인정하는 소비자만 있으면 덜 효율적일 것도 없고요. 물론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효율이 떨어지긴 하지요. 그러나 유기농은 인간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일깨워주거든요. 그게 바로 공존이에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다보면 생명체들이 서로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돼서 살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돼요. 유기(有機)란 말 자체가 몸의 기관, 즉 유기체의 조직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강조하는 의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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