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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알뜰주유소 표류 내막

“면밀한 검토·사전조율 없는 油價정책이 불신 불렀다”

바꾸고, 고치고, 압박하고…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면밀한 검토·사전조율 없는 油價정책이 불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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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몽니를 부린다”

“면밀한 검토·사전조율 없는 油價정책이 불신 불렀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1년 3월 서울의 한 셀프주유소에서 주유하는 모습. 당시 윤 장관과 최중경 지경부 장관 등은 정유사에 기름값 인하를 압박했다.

정책을 펴다보면 때론 강한 추진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기업은 이윤추구가 지상과제인 만큼, 유·무형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경부는 “낙찰가는 정유사 간 경쟁으로 결정될 부분이며 저가입찰을 강요한 사실은 없다”고 밝히지만, 업계 반응은 다르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보도자료를 통해 “알뜰주유소 성공 여부가 석유제품을 낮은 가격에 구매하는데 있다”고 강조한 정부가 정작 ‘알뜰주유소 성패를 결정할 공급업체와의 사전협의는 왜 안했을까’하는 의문 말이다. 2011년 정부가 발표한 각종 유가 안정 대책을 추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알뜰주유소 정책은 2011년 11월 초 발표됐지만, 그 시작은 2011년 1월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유가가 (1배럴에) 140달러 갈 때 (휘발유 1L당 소비자가격이) 2000원 했다면, 지금 80달러 수준이면 조금 더 내려가야 하는데 1800~1900원 정도 한다. 어떻게 된 것이냐. 기름값이 묘하다”고 했다.

이 발언이 있은 직후 임종룡 당시 기획재정부 제1차관(현 국무총리실장)이 “석유제품가격 TF팀을 구성해 가격결정구조를 재검토하겠다”고 나섰고, 2월에는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동안 국제가격과의 비대칭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돼왔다”고 거들었다.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도 “내가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 직접 기름원가를 계산해보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석유제품은 원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유, LPG 등 시장가치가 다른 20여 개 제품이 동시에 생산되는 ‘연산품(連産品·joint product)’이어서 개별 원가 산정이 어렵고, 개별 주유소가 스스로 가격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주유소를 상대로 씨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등심이나 갈빗살에 들어가는 생산비용이 얼마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경부와 공정위, 시민단체,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한 TF팀이 이 문제를 분석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오히려 최 전 장관이 회계 공부를 잘못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연산품의 원가산정이 어렵고, 적정이윤 등에 대한 객관적 평가기준과 모니터링에도 한계가 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 국내 기름값은 더 많이 오르고, 유가가 내릴 때 천천히 내리는 ‘가격 비대칭성’ 현상은 있었지만 이 때문에 정유사가 폭리를 취했다고 할 수 없다.”

TF팀은 “국내 석유제품 시장을 개설해 국내 수급요인을 반영하는 국내 가격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면서 △석유제품 전자상거래 개설 △석유제품 가격공개제도 확대 △시장 감시기능 강화 △제6 독립폴 신설 지원 △자가폴 주유소 확대 △정유사 폴사인과 판매제품 일치 의무 완화 △한국석유공사 유통업 진출 방안 검토 △석유제품 수입 활성화를 위한 저장시설 기준·석유제품 품질기준 완화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석유시장 투명성 제고 및 경쟁 촉진방안’이었다.

최중경 “기름원가를 계산하겠다”

그러나 대책의 대부분은 기름값 논란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다. 유가대책의 실효성 문제는 기사 후반부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앞서 정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통령이 발언했고 서민 물가대책의 핵심이어서 (유가대책은) 부담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 세금 인하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품질기준 완화까지 검토하며 일본산 석유제품을 수입하려 했지만 동일본 대지진 여파와 일본 정유사 수출 인프라 부족 등으로 물량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외국산 석유제품을 수입하려면 국내 품질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품질기준 완화는 정부가 강조하는 녹색성장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대기질 개선 사업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들 수 있어 고심이 컸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유일하게 실효를 거둔 사례는, 업계 1위 SK에너지가 ‘3개월간 L당 100원 인하’를 단행한 것이었다. 2011년 4월이었다. 그러자 나머지 정유사들도 잇달아 100원 인하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정유4사는 3개월간 모두 8000여억원의 손실을 입었지만, 유가 고공행진으로 소비자는 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했다. 정부와 싸울 수도 없고, 정유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겠나. 그때는 그나마 할인기간이 정해져 있어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했지만, 알뜰주유소는 예측할 수 없다. 입찰을 꺼리는 이유도 이 문제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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