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12월4일. 이탈리아 과도 내각은 세금인상, 예산삭감, 연금개혁 방안이 담긴 300억 유로(약 400억달러) 규모의 긴축안을 채택했다.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 마리오 몬티 총리는 “이탈리아 국민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서 자신도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등장한 엘사 포르네로 복지장관도 “연금개혁을 해야만 하고, 이것이 심리적으로 큰 비용을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녀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차마 내뱉지 못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다음 날인 12월5일. 한국 정부는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달러 돌파를 선언했다. 이탈리아는 2007년에 1조달러를 돌파했으나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가 2011년 다시 1조달러를 돌파할 예정이다. 2007년 무역 1조달러 돌파에 축배를 들었을 이탈리아! 도대체 무슨 일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이토록 처량한 처지가 되고 만 것일까?
원인은 포퓰리즘? 자유주의?
국내에서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엇갈린다. 복지 포퓰리즘 때문이라는 설과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설이다. 먼저 자유기업원이 지난 10월18일에 개최한 ‘이탈리아 재정위기, 원인과 교훈’이란 강연회에 참석한 프랑코 디베네데티 이탈리아 전 상원의원은 “관대한 복지 입법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아 막대한 정부 부채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과도한 복지경쟁에 따른 광범위한 부패가 국가 시스템 붕괴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함께 참석한 알렉산드로 드 니콜라 변호사도 “복지 포퓰리즘이 이탈리아 경제의 장기 침체를 가져온 원인”이라며 거들었다.
반면에 11월9일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의연구소가 개최한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과 시사점’ 토론회에서는 “이탈리아 위기의 원인을 복지 포퓰리즘으로 지목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호균 경제정의연구소장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규제완화, 감세, 임금억제를 특징으로 한 적자경제가 보편화됐고, 이후 가계 부문에서 발생한 막대한 적자를 해소하지 못한 속에 국가가 빚을 내서 경제를 이끌어온 것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를 분석할 때도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이처럼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진실은 무엇일까? 재정위기는 복지 포퓰리즘 때문에 오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 때문에 오기도 한다. 지출 측면에서 복지 분야에 과잉투자를 하는 것도 재정적자를 가져오지만, 수입 측면에서 조세 분야에 과도한 감세정책을 도입하는 것도 재정적자를 초래할 수 있다. 지출 측면에서 복지가 아닌 건설 분야에 과잉투자를 해도 마찬가지고, 수입 측면에서 부자감세가 아닌 서민감세를 해도 마찬가지다. 또 재정적자 비중이 높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재정위기를 겪는 것도 아니다. 재정적자 비중이 높고 국채 발행 규모가 커도 국채에 투자한 자본이 단기간에 급속히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재정위기는 오지 않는다.
이때 흔히 지적하는 것이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이 튼튼하다’는 전제다. 그러나 이것은 헤지펀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한 상징이기도 한 헤지펀드는 간혹 펀더멘털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제 볼일만 본다. 이것도 신자유주의 체제하 과도한 자본시장 개방의 폐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 재정위기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복합적인 요인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 복지 포퓰리즘도 거들었지만 신자유주의도 거들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크게 경제적 측면, 정치적 측면, 사회적 측면 등 세 측면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먼저 경제적 측면. 이탈리아는 제조업 기반이 튼실하다. 앞서 지적한 펀더멘털이 뒷받침된다는 이야기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탈리아 경제가 힘을 갖고 있지만 공공부채가 많고 경제성장률이 낮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는 오랜 구조적 병목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최근 들어 기조가 다소 바뀌긴 했지만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소장도 지난 7월까지는 “이탈리아가 다른 남유럽 국가와 달리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국내 자본축적도 양호한 편”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증권가에서도 “이탈리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시각이 주류를 이룬다.
이탈리아 재정위기가 1999년 유로존 형성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에서 처음 재정위기 사태가 불거졌을 때부터 같은 지적이 있었다. 국회 예산정책처 김정미 경제분석관은 “유로존 이후 단일 환율을 적용하면서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남유럽 국가들에서 무역적자가 심화되면서 대외 채무가 확대 추세를 보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탈리아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1.4% 정도로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1999년 이후 적자로 돌아서서 2007년까지는 -1.1% 선을 유지했고, 2008년에는 -3.5%, 2009년에는 -3.1% 선까지 적자폭이 커진 바 있다. 물론 2010년에도 무역수지는 적자였다. 만약 단일통화 도입과 동시에 재정에 대한 통합관제도 함께 실시됐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안 그래도 이 문제가 최근 유럽연합 내에서 쟁점이기도 하지만, ‘통화는 같이, 재정은 따로’ 관리하는 환경 속에서 남유럽 국가들은 국민이 나태해서였건 기업 경쟁력이 약해서였건 재정위기의 늪으로 빠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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