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무원 불륜 미행은 불법”

  • 입력2012-04-20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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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무총리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문건이 대량으로 나와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감찰이나 사찰을 어느 정권에서 했는지가 아니다. 그 감찰이나 사찰이 적법한 것이었는지가 핵심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차분하고 냉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야당이 이 문제를 총선 이슈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헌정 질서에 관한 문제가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변질되어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4·11총선이 끝났다고 묻힐 성질이 아니다. 끝까지 파헤쳐야 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민주주의의 기본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합법 감찰과 불법 사찰을 구분해 이해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감찰과 사찰은 모두 감시 또는 조사해 살핀다는 의미다. 법률에서는 감찰이라는 용어를 쓴다. 즉 감찰은 감사원법, 국가정보원법 등의 법률에 근거한 용어다.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직무감찰이라고 한다. 사찰은 직무감찰에 해당하지 않는 감시를 일컫는 용어로 통용된다.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제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다만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비밀이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반드시 법률에 의해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만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범죄 수사 목적으로 사생활을 조사하고 통화 내용을 살펴보려면 반드시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법률과 명령은 이와 같은 헌법의 규정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전쟁이나 계엄 상태가 아닌 평상시라면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 이러한가.

    감찰이든, 사찰이든 적법한 감시이기 위해서는 법률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조사목적이 정당해야 한다. 조사의 주체, 방법, 절차가 적법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의 요건이라도 갖추지 못하면 감시는 불법감찰, 사찰이 된다.

    “소주를 마시며 애원하듯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무원 불륜 미행은 불법”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모 공무원 미행 조사보고서.

    감찰은 법률에 의해 조사권을 부여받은 기관만이 할 수 있다. 수사가 감찰보다 훨씬 강력하므로 검찰이나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은 범죄수사와 관련된 범위에서 감찰권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는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 정도가 공무원 및 공기업 직원에 대한 직무감찰권을 갖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문제가 된 국무총리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경우 감찰권한을 부여받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국무총리실 직제규정에 의하면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 및 소관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나 조사권한은 법무감사담당관에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법무감사담당관실이 아닌 부서의 공무원은 감찰권한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법무감사담당관실조차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 및 소관 공공기관의 공무원에 대해서만 조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외 공무원에 대해선 조사권한이 없다. 민간인에 대한 조사는 말할 나위도 없이 불가능하다.

    박원순 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현 서울시장)는 2009년 9월경 국가정보원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국가정보원은 박 전 이사에 대해 2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불법사찰 주장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있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이러한 폭로 행위는 국가기관에 대한 감시와 비판으로서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1990년 11월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윤석양 이병은 보안사령부가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국가가 국민에 대한 사적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경우에도 법령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수집기관에 대한 적절한 통제 내지 감독이 있어야 하며, 개인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서울고법 1996. 8. 20. 선고 95나44148 판결).

    감찰은 공무원 직무의 정당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만 가능하다. 특정 인물을 낙마시키기 위한 감찰 같은 것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

    또 조사 방법도 법에 정한 범위 내에서 한정된다. 감사 대상자에 대한 출석·답변 요구나 관련 자료 제출 요구와 같이 상대방의 동의를 전제로 한 조사만 가능하다. 감사 대상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조사하는 것은 강제 수사가 되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권한범위에 해당한다. 이는 감사기관의 권한을 넘는 것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조사보고서 중 “대상자는 계속 소주를 마시며 뭔가를 애원하듯이 이야기했지만, 내연녀는 다소 무덤덤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고 술은 마시지 않았다”라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내용은 조사자가 조사대상자를 근접미행하지 않고서는 작성할 수 없는 내용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는 일반 공무원에 대한 감찰 권한이 없을 뿐 아니라 감찰방법도 당사자의 동의에 기반을 둔 방법만 가능하기 때문에 미행 조사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감찰할 법적 근거 없어

    또한 조사내용은 직무에 관련된 사항에 한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직무와 무관하게 조사대상자의 사생활, 사상 등 개인에 대한 사적 정보를 무제한적으로 뒤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법적 절차에 의해 조사해야 한다. 적법한 지시에 의해 개시해야 하고 조사 이후에도 보고라인에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조사결과를 감사 목적 외 용도로 이용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한 보안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용도에 따라 사용된 자료는 폐기해야 한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감찰기관의 감찰자료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간인에 대한 사찰보고서는 대부분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 감찰자료라고 하더라도, 노무현 정부에서 작성되었든 이명박 정부에서 작성되었든 법에서 정한 감찰요건을 갖추고 작성된 것인지를 점검해봐야 한다.

    행정부 수반이 공무원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감찰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법원이 아무리 감찰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불법 감찰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저지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근본이념 부정한 사건

    우리 국민은 국가의 근본이념이 담겨있는 헌법 조문을 잘 알지 못한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헌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존엄성 구현과 관련해 구절구절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헌법 정신의 핵심은 애국가도 아니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는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하면서도 전문과 13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헌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는 큰 문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무원 불륜 미행은 불법”
    헌법을 아는 국민만이 헌법정신을 훼손한 중대범죄와 그렇지 않은 범죄 사이의 경중을 구별할 수 있다.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국민의 사생활 자유를 불법 침해하는 것은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뇌물을 받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민간인 사찰은 국가의 근본이념을 부정한 사건이다. 한 국회의원 후보의 저질발언 경력으로 덮일 일이 아니다. 총선이 끝났다고 흐지부지될 일도 아니다. 끈질기게 추적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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