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기업 경영도 살림하듯 꼼꼼하게”

이민재 신임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02-21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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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미노믹스’ 시대 걸맞은 여성 기업 인식 필요
    • 회원 배가 운동 벌여 ‘경제 6단체’ 인정받을 것
    • 턱없이 부족한 ‘여성창업 보육실’ 확대 절실
    “기업 경영도 살림하듯 꼼꼼하게”
    여성 대통령 시대에 발맞춰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새해 단행된 대기업 인사에서는 여성 임원 승진자가 여럿 나왔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는 경제를 이끌어갈 주역으로 주목받는 시대가 됐다. 여성 CEO가 이끄는 기업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여성 경제인의 이해와 요구를 정부에 전달하는 공식 통로가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다. 여경협은 최근 이민재 엠슨(주) 회장을 제7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2월 6일 서울 역삼동 여경협 회장실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올해 68세인 그는 왕성하게 기업을 이끌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와서인지 50대로 여겨질 만큼 젊어 보였다.

    14개 지회, 1800여 회원

    ▼ 앞으로 3년 동안 한국여성경제인협회를 이끌게 됐습니다. 어떤 점에 역점을 두고 협회를 운영할 계획입니까.

    “제가 요즘 ‘위미노믹스(women+economics)’ 시대가 도래했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여성과 경제가 만나 더 큰 능력을 발휘하면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위미노믹스 시대에 걸맞게 여성 CEO 기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한계를 극복하는 데 노력할 생각입니다. 회원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사업을 발굴해 정부에 건의하고, 회원 배가(倍加) 운동을 활발히 벌여 경제단체로서 여경협의 위상도 높이겠습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전신은 1972년 설립된 대한여성경제인협회다. 1977년 사단법인 한국여성실업인회를 거쳐 1979년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로 이름을 바꿨다. 사단법인으로 20년 넘게 이어온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는 1999년 법정단체로 정부인가를 받아 한국여성경제인협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연합회 9대 회장을 맡았던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여성 경제인 소통 능력 탁월”

    여경협은 14개 지회를 갖춘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회원 수는 2013년 2월 현재 1800여 명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회원 수가 적어 경제단체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에 이어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경제 6단체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창업해서 여성 기업인으로 나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 대학교 1학년 때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명예퇴직을 했어요. 애들 공부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지요. ‘열심히 하면 잘되겠지, 불가능은 없을 거야’하는 마음으로 사업에 임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아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1987년 광림무역상사㈜(2004년 엠슨㈜으로 사명 변경)를 설립한 이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하지 않는 특수용지를 수입해 제지업체에 납품했다. 지폐의 원료가 되는 용지를 수입해 한국조폐공사에 납품했고, 우유팩을 만드는 펄프를 수입해 유가공업체에 납품했다. 특수용지를 수입하며 사업을 꾸려오던 그에게 외환위기가 몰아친 1998년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찾아왔다.

    “우유팩 원료 펄프를 납품받던 한 우유업체에서 ‘외환위기 이후 사료를 공급하는 업자들이 농간을 부려 힘들다’며 제게 ‘사료를 납품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보름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며 사료 공급처를 찾았죠.”

    이때부터 이 회장은 특수용지 외에 축산사료라는 새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지난해 230억 원 매출을 기록한 이 회장의 회사는 올해 300억 원 매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발 재정위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차츰 안정돼서 올해는 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기업을 경영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나요.

    “여성 기업인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에 힘들 때가 많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제가 처음 사업할 때만 해도 바이어나 금융회사 관계자들 중에는 여성 기업인을 기업인이 아니라 ‘주부’나 ‘여자’로만 보려는 사람이 많았죠. 거래처에 술을 접대하는 문화도 그렇고, 사우나에서 남성끼리 갖는 네트워크에서 소외당하는 것도 여성 기업인이 극복해야 할 어려움 가운데 하나죠.”

    ▼ 여성이라 유리한 점도 있지 않았을까요.

    “(여성 경제인이) 로비 능력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나 부드러움, 진실함은 기업활동을 하는 데 큰 장점이 돼요. 제 경우 거래처에 로비는 잘 못했지만, 거래처 담당자의 생일을 챙기고, 거래처 직원 자녀의 학교 입학을 축하해주는 등 작은 관심을 보여 가까워진 적이 많아요.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결국 거래처에서도 인정해줍니다. 또 여성 경제인은 웬만해서는 분에 넘치게 사업을 확장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성 경제인이 운영하는 기업의) 부도율이 낮고 재무건전성도 좋은 편이에요. 소비자와 상대 회사에 부드럽게 다가가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도 여성 경제인의 장점이지요. 여성 경제인들은 사업할 때도 집안 살림하듯 작은 문제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챙겨요. 그런 점이 기업을 경영할 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 넘긴 비결은 ‘공부’

    ▼ 이 회장께선 여러 대학에서 다양한 교육 과정을 이수했더군요.

    “기업인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급변하는 경제 환경을 잘 이해하고 트렌드를 미리 알아둬야 경영의 방향을 제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과정에서 만나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도 기업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민재 회장은 1992년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한 것을 시작으로 연세대(1997)와 세종대(2000), 서강대(2001), 이화여대(2003), 서울대(2004) 등 5개 대학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이 회장은 외환위기 직전에 다닌 연세대 경제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교육 덕분에 환란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때 강의한 여러 석학이 ‘우리나라에 곧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당시 1달러당 원화 환율이 800원대였어요. 그런데 위기가 찾아오면 환율이 1300~1400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실제로는 한때 달러당 원화 환율이 1900원까지 치솟았다). 특수용지 수입을 하던 우리 회사엔 대금 결제를 위한 달러가 좀 있었어요. 석학들 말씀을 듣고 한동안 환전하지 않고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외환위기가 찾아와 환율이 많이 올랐어요. 이렇듯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큰 도움이 됩니다.”

    “기업 경영도 살림하듯 꼼꼼하게”

    서울 역삼동 한국여성경제인협회 6층에 마련된 ‘창업보육실’엔 9개사가 입주해 있다.

    성공 창업 3계명

    ▼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여성 경제인에게 선배 처지에서 노하우를 들려준다면.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업종과 분야를 선택하고,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리고 좋은 멘토를 만나 자주 상의하는 게 좋습니다.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사업을 벌인다고 곧바로 이익이 생기지는 않아요. 창업 후 본격적으로 이익이 나기까지 보통 3년 정도 걸리는데,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자본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처음부터 규모를 크게 하는 것보다 작게 시작해서 차츰 규모를 키워가는 것이 실패 확률을 줄이는 길입니다.”

    ▼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관통한 사회적 의제 가운데 하나가 ‘경제민주화’였습니다. 기업 경영인으로서 경제민주화 이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균형 잡힌 성장과 안정을 위해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선거 때 제기된 경제민주화의 기본 방향에 다수가 동의한 것도 경제민주화가 담고 있는 공익적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겠죠. 성장의 과실을 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좋은 취지고요. 다만 어떤 시각으로 경제민주화를 바라보고 구체적으로 어떤 추진 방안이 뒤따를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업이든 서민이든 스스로의 노력에 따른 결실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첫 여성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박근혜 당선인과 곧 출범할 새 정부에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대기업과 남성 위주의 경제 시스템에서 여성 경제인이 약자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여성 경제인끼리 쉽고 편하게 자금을 운용해 쓸 수 있는 공제조합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공제조합을 설립할 초기 자금으로 2000억 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둔 여성 경제인이 마음 편히 자녀를 맡기고 교육과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보육시설을 갖춘 연수원을 만들었으면 해요. 또 우리 협회가 중소기업청에서 위탁받아 여성창업 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시설이 너무 열악해요. 보육실을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현대적인 시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기 바랍니다.”

    유명무실한 여성 기업 우대제도

    여경협 전국 14개 지부는 중소기업청의 위탁을 받아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각 센터에는 여성 창업자가 최장 3년까지 임차료 부담 없이 사무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보육실이 있다. 보육실을 쓰려는 여성 창업자는 서류와 면접 등 두 차례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경쟁률이 보통 10대 1이 넘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역삼동 여경협 중앙회 건물 한 층에 마련된 보육실이 고작 9개뿐이다. 시도 지부 가운데 보육실이 가장 많은 곳도 20곳이 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경제활동 인구는 1000만 명이 넘고, 여성이 운영하는 사업체 수도 130만 개나 된다. 그에 비해 여경협이 여성 창업을 지원하는 보육실 수는 169개에 불과하다. 여경협의 한 실무자는 “여성 창업자가 보육실에 입주하면 대부분 3년을 모두 채운다”며 “창업자금이 넉넉지 않은 여성 창업자에게 임차료 부담 없는 보육실은 그만큼 초기 창업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민재 회장은 “여성 기업을 우대하는 제도가 있는데도 지금까지는 유명무실했다”며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꼭 법대로 시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언급한 여성 기업 우대제도는 여성 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조를 가리킨다. 정부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물품 및 용역에 대해 구매총액의 5% 이상, 공사의 경우 총액의 3% 이상을 여성 기업과 거래하게 하는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관련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 기업을 우대하는 제도가 있으면 뭐합니까.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외면하면 그만인걸요. 2년 전과 지난해에 각각 2건 정도 여성 기업이 우대 배점을 받았다고 해요.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고 여성 경제인에게 특별한 혜택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힘이 모자란 여성 기업을 배려하려고 마련한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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