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 12월 대북접촉 시도…“최대석과 무관”
- “국정원이 헤게모니, 이니셔티브 쥐려 한 것 아닐까”
- 국정원 “최대석 사퇴에 개입한 적 없다”
- “崔, 재신임 받을 것” 전망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임명돼 업무를 시작한 지 엿새 만에 사퇴한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오른쪽).
대선 직후 ‘통일장관 최대석, 외교장관 윤병세’라는 말이 회자됐다. 두 사람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으로 참여한 것도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1월 12일 의외의 사건이 벌어졌다. 최 교수가 인수위원 활동 엿새 만에 돌연 사퇴한 것.
최 전 위원은 다음 날 밤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조금 복잡한 사정이 발생해 사임을 요청했다. 개인적인 비리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렸다. “제 자신의 직접적 잘못은 아니지만…”이라고 언급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최 교수와 박 당선인의 인연은 두 사람의 아버지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교수의 부친인 최재구 전 의원(1998년 작고)은 경남 고성 선거구에서 8, 9, 10대(공화당), 12대(국민당) 의원을 지냈다. 최 전 의원은 공화당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의원으로 통했다. 청와대 연회 때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하는 노래 10곡을 연속해 불러 박 대통령이 기뻐한 일도 있다고 한다.
최 교수는 박 당선인과 7년 넘게 호흡을 맞춰왔다. 그는 2010년 말 출범한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수립을 주도했다. 박 당선인이 남북관계 정상화 방안으로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틀을 마련한 이가 바로 그다.
최 교수는 학계에서 ‘합리적 보수’ ‘대북 비둘기파’로 통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에 대응한 정부의 5·24 제재 조치 해제를 주장했다. 2011년 한 세미나에 참석해 “남북 간 신뢰의 부재는 대립적 관계의 고착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압박정책을 비판한 적도 있다. 1월 3일 한 세미나에선 “북한 신년사가 새로 들어서는 정부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뢰 프로세스’ 기틀 마련
최 교수는 사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1월 12일 이후 모처로 떠나 지금껏(2월 15일 현재) 연락이 닿지 않는다. 기자들이 서울 청담동 자택 앞에 진을 쳤고, 경남 고성의 최재구 전 의원 생가도 찾아갔으나 허사였다.
도대체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었기에…. 미스터리엔 설(說)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재산 문제 때문이라느니 처가인 GS그룹과 관련이 있다느니 가족 문제 탓이라느니 대북정책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느니 하는 각종 설이 난무했다.
최 교수의 인수위원직 사퇴 미스터리를 추적하기에 앞서 최 교수의 1월 동선(動線)부터 살펴보자. 그는 사퇴 직전인 1월 12일 오후 4까지도 업무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1월 8일 최 교수는 북한대학원대 연찬회에서 특강을 했다. 연찬회엔 진보성향, 보수 성향의 학자가 섞여 있었다. 한 참석자는 “연찬회에서 박 당선인의 ‘신뢰 프로세스’와 관련해 ‘많이 가진 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얘기가 주로 나왔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1월 12일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와 점심을 먹었다. 박 교수는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최 교수는 박 교수와 오찬 후 오후 3시부터 1시간가량 노무현·김대중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세현 원광대 총장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눴다. 최 교수는 “앞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정 전 장관이 “통일부 장관 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되겠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 전 장관은 혹시 안보실장으로 가는 게 아닌가 추측했다고 한다. 정 전 장관과 헤어질 때만 해도 이상 징후가 없었던 것이다.
최 교수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만나 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1월 17일 오후 4시엔 서울 삼청동 통일부 남북대화사무국에서 문정인 연세대 교수, 장달중 서울대 교수, 유호열 고려대 교수를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저녁식사를 함께 할 계획이었다. 이 약속은 최 교수가 외부와 연락을 끊으면서 취소됐다.
일각에선 최 교수가 정세현 전 장관, 이종석 전 장관, 박순성 전 민주정책연구원 원장 등 진보진영 인사를 잇따라 만난 게 사퇴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목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전문가 의견을 청취한 게 사퇴의 사유가 되긴 어렵다.
최 교수는 정 전 장관을 만나고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로 돌아온 직후인 오후 5시 30분께 사의를 표했다. 그날 4시부터 5시 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당선인의 의중을 들은 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짧은 시간에 사퇴를 결심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崔, 국정원 격하게 질타
1월 12일 오전엔 국가정보원의 인수위 업무보고가 있었다. ‘국민일보’는 1월 16일 “최대석 전 인수위원이 국정원의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목영만 기조실장과 언쟁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임명 엿새 만에 전격 사퇴한 최 전 위원의 낙마 배경으로 국정원 개입설이 새롭게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한 인수위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 전 위원과 목 실장의 언쟁 장면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는 “기조실장이 국정원의 대북 첩보 업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최 전 위원이 갑자기 말을 자르고 언성을 높였다”며 “업무보고를 하는데 그렇게 고압적인 자세로 임하면 되겠느냐며 따져 물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최 전 위원은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국민일보’ 1월 16일자 참조)
이와 관련해 국정원 측은 “언쟁이 있을 수가 없다. 감히 인수위 보고 자리에서 어떻게 언쟁을 하나. 일방적으로 질책을 당한 것이다. 또한 인수위 업무보고 때 어떻게 불법적인 대북 접촉을 경고할 수가 있겠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불법적인 대북 접촉을 경고할 수가 있겠느냐”는 국정원 측의 말은 세간의 소문을 두고 나온 얘기다. “국정원이 인수위 보고 때 최 교수 면전에서 최 교수 쪽의 불법 대북 접촉을 문제 삼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나돌고 있다. 최 교수가 대북 접촉, 정보수집 등 국정원 소관 임무를 통일부로 이전할 것을 주장해 국정원과 갈등을 빚었다는 관측도 있다.
‘최 교수 쪽의 대북 접촉’으로 알려진 것은 여권 고위 인사 A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접촉하려 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한 일간지는 1월 18일 ‘최대석, 朴도 모르게 北 비밀접촉 주선’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여권 고위 인사 A씨가 대선 직후인 지난달 말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측 인사와 비공개 접촉을 가진 정황이 포착됐다. 대북 핵심 소식통은 17일 “지난해 12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박근혜 당선인 측근 인사가 베이징의 웨스틴호텔에 머물며 북측 실무 관계자와 만났다”면서 “그러나 당초 만나기로 했던 고위급 인사와의 접촉은 불발됐다”고 전했다. 이번 베이징 접촉은 서울의 모 연구기관 소속 대북경협 전문가가 다리를 놨으며 베이징에도 함께 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북한과의 접촉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을 설명하고 북한의 협력을 촉구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이란 취지를 주변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로켓 발사에 이은 핵실험 등으로 당선인을 시험하려 들지 말라’는 메시지도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대통령직인수위 주변에선 북한 측 인사와의 접촉 시도가 인수위 외교·국방·통일 분과 최대석 전 위원의 사퇴와 관련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소식통은 “이번 비공개 접촉을 서울에서 총괄한 인물이 최대석 전 위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 전 위원과 A씨가 통일부와 국정원에 알리지 않은 채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며 이런 정황을 국정원이 포착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특히 대북 접촉 시도가 박 당선인에게도 사전 보고되지 않은 채 추진되면서 관련 사실을 보고받은 당선인 측이 최 전 위원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인수위원이 불법 접촉 지시?
최대석 교수는 학계에서 겸손함과 온화한 성품을 갖춘 호인(好人)으로 통한다.
최대석 전 인수위원의 사퇴를 불러온 것으로 알려진 여권 고위인사의 대북 베이징 비밀 접촉 시도 때 북한 국방위 소속 부부장(차관)급이 현지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28일 파악됐다. 대북 소식통은 “최 전 위원과 교감해온 것으로 전해진 여권 인사 A씨가 베이징을 방문한 지난해 12월 25일, 북한 국방위 부부장급인 박인국이 평양에서 나와 현지에 있었다”며 “박인국은 주중 한국대사관 인근 힐튼호텔에 머물던 A씨에게 자신의 대리인을 보내 박 당선인 측의 대북정책과 당국 대화 재개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961년생(52세)으로 알려진 박인국은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며 남북 경협 등 국방위의 대남 접촉 실무를 챙겨온 인물이라고 이 소식통은 소개했다. 그러나 양측의 회동은 북측이 박 당선인의 의중을 확인할 신임장 형태의 문건을 요구하면서 불발됐다. 소식통은 “A씨가 박 당선인의 재가 없이 나가면서 미처 문서를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2월 대북 접촉 시도에 관여한 인사들과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이 두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국정원 (내외통신)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두 기사의 취재원과 관련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박 당선인은 대선 이후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여왔다. ‘2월 24일까지 한국의 대통령은 이명박’이라는 생각이 강하다고 한다. 두 기사대로 최 교수의 지시를 받은 A씨가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대북 접촉을 한 것이라면 현행법 위반이다. 최 교수가 인수위원 신분이므로 인수위가 불법 대북 접촉에 나선 꼴이 된다. 진실은 무엇일까.
A씨 “北 인사 만난 적 없어”
A씨는 12월 25~26일 베이징에 체류했다. 모 연구기관 소속 대북경협 전문가 B씨는 12월 25~27일 베이징에 머물렀다. A씨는 이규형 주중 한국대사와 조찬, 정영록 공사와 오찬을 함께 했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작성한 북중 관계 보고서와 관련한 브리핑도 받았다. 당초 계획은 27일까지 체류하는 것이었으나 하루 앞당겨 26일 귀국했다.
A씨는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지 않았다. 북측 인사를 만나보려고는 했다. 북측 인사와 한국 정치인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이들은 주로 대북사업가, 조선족, 재미교포 등이다. A씨는 북한 관련 정책 연구소 인사,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경제인, 대북사업가 등과 친분이 많다. 같은 시기 베이징에 체류한 모 연구기관 소속 B씨 외에도 다수의 인사가 A씨에게 “베이징에 들를 일이 있으면 다리를 놔줄 테니 북측 인사를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A씨는 최 교수의 지시를 받아 북측 인사를 접촉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의원이 되기 전부터 가진 인맥을 통해 북측 인사를 만나보려고 한 것이다. “대선 때 최 교수와 같은 팀에서 일했지만, 북측 인사를 만나보려 한다는 얘기를 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런 말을 건네 부담을 줄 이유도 없었다”고 A씨는 강조했다.
A씨는 주중 한국대사관을 통해 호텔을 예약했다. 게다가 외교관 여권으로 출국했다. 비밀 접촉을 하는 이의 태도가 아니다. A씨의 설명이다.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에 하던 일과 관련해 중국 인사들을 만나러 간 게 방중의 주목적이다. 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중국에서 수시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한다. 내가 베이징에 간다니까 B씨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북측 인사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특별히 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관계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바닥이 좁다. 북측 인사를 만나보라고 권유한 또 다른 인사인 C씨도 내가 베이징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 27일 귀국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돌아다니는 얘기가 심상치 않아서 하루 일찍 귀국했다. 북측 인사를 만나는 게 주목적도 아니지 않았나.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 것도 그렇고 해서 기미가 안 좋다 싶어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박인국’은 사업가가 ‘만든’ 가명
최대석 교수는 박근혜 당선인의 대북정책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틀을 마련한 남북관계 전문가다.
“심정적으로 민주당이 되면 좋은 것이 사실이나 오히려 새누리당과도 잘할 수 있다고 본다. 후보 시절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고 당선 직후부터가 중요하다. 북측이 발표할 신년공동사설에 어떠한 메시지가 담기느냐가 남북경색 해결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천안함 문제는 인정 못하며 5·24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민주당의 취임식 관련 사전 발표는 불쾌하다. 협의도 없이 발표하는 일방적 형태는 인정할 수 없다. 이를 위한 사전협의 핫라인 구성이 필요하다. 당선인의 신임장을 지참해야 하며 전문가 1인 보좌관 1인 등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앞서 인용한 ‘박인국’이 등장하는 기사의 한 대목을 다시 읽어보자.
박인국은 평양과 베이징을 오가며 남북 경협 등 국방위의 대남 접촉 실무를 챙겨온 인물이라고 이 소식통은 소개했다. 그러나 양측의 회동은 북측이 박 당선인의 의중을 확인할 신임장 형태의 문건을 요구하면서 불발됐다.
이 기사는 ‘신임장을 지참해야 하며’ 등의 내용이 담긴 C씨 보고서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 앞서 언급했듯 A씨의 12월 방중은 C씨와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다. C씨는 1월 하순에도 ‘박인국’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사는 서로 관계가 없는 팩트가 엉뚱하게 엮인 측면이 강하다. 또한 각각의 팩트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2월 접촉 시도에 관여한 이들과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이 두 기사에 취재원으로 언급된 ‘소식통’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까닭이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누군가 팩트를 이런 식으로 엮어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낸 것이다.
문재인 쪽에도 “만나자” 제안
A씨가 ‘남북관계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바닥이 좁다’라고 표현한 곳에서는 A씨 외에도 Y 의원, K 전 의원 등 친박(친박근혜) 인사의 대북 접촉 추진설이 파다했다. 대선 이후 박근혜 당선인 측 인사들에게 ‘만나자’는 북측의 비공개 제안이 잇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러한 만남을 추진하려는 것엔 남측의 정세 등을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런 접촉은 낮은 수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중량감이 없는 북측 대남기관 인사를 만나고 돌아와 큰일을 하고 온 것처럼 착각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북측은 대선 직전 민주당 쪽에도 만나자면서 선을 댔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냈으며 문재인 캠프의 대북정책 수립에 관여한 한 학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A씨가 헛발질한 것 아니에요? B씨는 나도 잘 알아요. B씨 라인 정도로 일이 되겠어요? 지난해 대선 직전 북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온 적이 있습니다. ○○○(북한 통일전선부 인사)이 스탠바이하고 있으니 베이징으로 오라는 겁니다. 날짜가 12월 5일인가 그랬어요. 북측 인사를 만난 사실이 알려져 기사가 나오고 그러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북측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으면 내가 평양에 갔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평양에 갔을 거예요. 그쪽 얘기를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핵 문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해야 하고요. 대석(최 교수)이한테 도움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한 적이 있는데, B씨 갖고 일이 되겠어요?
남북문제는 편 가르기 하면 안 돼요. 서로 도울 일은 도와야지. 제대로 된 사람 만나서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면 보고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돼서 보고를 못해 사달이 난 거 아닐까요. 내가 보기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끝까지 몽니 부린 것 같은데요? 박 당선인이 (최 교수를) 다시 기용하지 않을까 싶어요. 대석이가 자의식이 강하고 마음이 여린 친구인데 고생이 심했을 거예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계 인사 등의 최 교수에 대한 평가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우호적이었다. 박 당선인이 중용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 겸손함과 온화한 성품을 갖춘 호인(好人)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재신임 받을 것” “앞으로 중용될 것”이라고 보는 이도 많았다.
최 교수가 A씨의 대북 접촉 시도와는 별도로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부터 자신이 구상해온 대북정책 로드맵을 가동하려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인사들과 빈번한 접촉을 가지면서 대북라인을 구축하려고 한 게 문제가 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으나 주변 인사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대북 지원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공동대표를 맡아온 최 교수가 과거 방북 활동이나 대북 접촉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A씨는 “최 교수는 정확하게 뭐가 잘못됐는지 잘 모르고 낙마한 것 같다. 당선인 쪽에 팩트를 잘못 엮은 국정원 보고가 입력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는 보고를 누가 올리겠나. 그게 정확한 보고가 아니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할 사람이 없었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헤게모니, 이니셔티브를 잡으려고 한 것 아니겠나. 그래서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무책임한 인수위
A씨와 가까운 한 인사의 시각은 달랐다.
“국정원이 인수위원직 사퇴에 개입돼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새로운 권력이 들어오면 다 들여다볼 것이다. 누가 뭘 했고, 그런 게 다 알려질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그렇게 했다가 최 교수가 복귀하면 칼날이 더 날카로워질 것 아닌가.”
국정원 측은 “인수위원직 사퇴에 국정원이 개입돼 있다는 주장은 팩트가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A씨의 대북 접촉(시도)을 국정원이 인지했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는 사안이지만, 국정원 보고로 인해 최 전 위원이 사퇴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최 전 위원이 사퇴할 때 당선인이나 인수위에 보고한 것은 1월 12일 인수위 업무보고밖에 없다. 당선인 쪽에 별도의 보고서가 간 적이 없다.”
박 당선인과 최 교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각종 설이 유포되면서 최 교수의 명예가 훼손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일신상의 이유로 인수위원직 사의를 표명했고 당선인이 이를 받아들였다”고만 밝힌 인수위의 태도는 사안의 무게를 볼 때 무책임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