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욱 “이 씨가 신춘문예 응모작 ‘허물’ 표절해 소설 썼다”
- 이승우 “무의식적으로 표절했을 소지조차 없다”
- 이 씨, 심사위원으로 김 씨 작품 읽고 심사평 써
- 평론가 K씨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 있다”
김 씨는 불혹이 넘은 나이에 습작을 시작해 2008년 단편소설 ‘보드게임’으로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지방지 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작가는 으레 중앙지를 통해 재등단을 시도한다. 김 씨도 그랬다.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선 최종단계에서 낙선했다. 이 작가가 심사위원이었다. 이 작가는 심사평에서 ‘허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미용사를 주인공으로 아름다움과 욕망,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라는 문제를 꽤 집요하게 다뤘다. 낯선 소재에 대한 취재도 성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주요인물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평면적이고 진부한 데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서술의 지루함도 아쉬움을 주었다.”
김 씨는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때는 ‘허물’을 개작한 연작 형태의 중편소설 ‘핑크빛 허물’ ‘우로보로스’로 응모했다. 이 작가는 그해에도 심사위원을 맡았다.
이 작가는 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문단의 중견이면서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한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가 ‘한국 문인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소설가’라고 격찬한 정통파다.
‘노벨문학상 받을 만한 소설가’
‘지상의 노래’는 대중성은 약하나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폭력성, 구원에 대한 갈망 등을 치밀한 플롯으로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인간 존재와 내면세계에 대한 다층적 사유와 철학으로 욕망과 죄의식의 근원을 파헤친 또 하나의 문제작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이 문제작이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표절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그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지상의 노래’ 6장 카다콤과 ‘허물’은 모티프, 전체적인 구도, 인물 캐릭터, 관계 설정, 배경, 디테일 등이 심하게 유사하다. ‘허물’은 미용실에서 실제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미용업계라는 특수한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완성한 것으로 자전적 소설이나 다름없다. 수년간 공들인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중견작가의 소설 한 부분을 도용했다는 누명을 거꾸로 쓰게 될 처지에 놓였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이 작가에게 e메일을 보내 항의했다. 이 작가는 “내 작품에 어떤 표절의 증거가 있는지 나로서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 게 있다면 미스터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김 씨는 1월 2일 ‘지상의 노래’를 출간한 민음사에 이 책의 판매를 중단해달라는 요구가 담긴 내용증명을 보냈다.
‘미스터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이 작가의 표현이 암시하듯 두 작품은 닮은 구석이 많다. 김 씨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자
“‘허물’에서 ‘차명규’는 미용실을 옮겨 다니면서 기술을 익혀 실력 있는 미용사가 된다. 차명규는 미용실 손님, 미용실 원장을 성적인 자극으로 유혹해 서로의 욕망을 채우고 대가로 기술을 배운다. ‘지상의 노래’의 주인공 ‘후’는 연희를 찾으려고 미용실을 돌아다니면서 기술을 익혀 실력 있는 미용사가 된다. 후는 헤라뷰티 숍에서 ‘사모님’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보를 얻는다.”
‘허물’의 차명규와 ‘지상의 노래’의 후는 여성 손님이 대부분인 미용실의 남자 미용사다. 두 사람은 모두 ‘욕망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미용실을 옮겨 다니면서 미용 기술을 배우고 여성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비슷하다. 박혜지와 사모님은 ‘힘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박혜지는 차명규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특혜를 제공한다. 사모님은 후에게 ‘정보’를 가르쳐주는 특혜를 제공한다. 이 작가가 주요 인물의 캐릭터를 표절해갔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표1 참조)
김 씨는 남자 미용사에게 특혜를 주는 설정이 같으며 미용실의 고객층, 공간 묘사, 디테일 등 두 작품의 묘사가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갑자기 환경과 복지가 좋아졌기 때문에 직원들은 내가 차 선생을 편애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 큰 불만이 없었다. 미용실은 더 활기를 띠어갔고, 차 선생이 친동생처럼 편해졌다. 내가 가진 기술을 차 선생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따로 연습을 하기도 했다.”(‘허물’ 15쪽)
“후의 사정을 이해한 이민아 원장은 그를 예외적으로 대했다. 일이 끝난 후에 원장은 시간을 조금 내서 가위 잡는 법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그녀는 손놀림이 유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칭찬을 자주 했다.”(‘지상의 노래’ 244쪽)
“입구 쪽 벽에는 원장이 영국 토니앤가이에서 받은 디플로마가 걸려 있었다.” (‘우로보로스’ 11쪽) “신사동 미용실은 큰 가정집을 고쳐 입구에 정원이 있었고 내부치장이 화려했다. 연예인을 단골로 확보한 어느 정도 알려진 곳이었다. 하얗게 칠해진 건물에 정원이 화려해서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허물’ 13쪽)
“영국에서 선진 미용기술을 배워 왔다는 30대 후반의 원장은 미용실 내부를 호텔 커피숍이나 잘사는 집 거실에 들어선 것 같은 쾌적한 느낌이 들게 꾸몄다.”(지상의 노래 251쪽)
캐릭터, 설정 비슷해
두 작품에 나오는 미용실의 운영 방식, 영업 전략 등도 유사하다
“모든 요소가 감각적이고 고급스럽게 연출되고 있었다. 영업 전략은 건강한 머릿결을 유지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회원들의 윤기나는 머릿결은 화려한 치장보다 더 고급스러웠다.”(‘우로보로스’ 11쪽)
“헤라 헤어 숍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고 파마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양제를 쓰고 두피 마사지를 하는 등 이른바 두피와 모발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는 곳으로 이름을 날렸다.”(‘지상의 노래’ 251쪽)
김 씨는 미용실 원장의 영국 유학, 회원제 미용실, 피부관리실 운영 등의 설정도 거의 같다고 주장했다.
“입구 쪽 벽에는 원장이 영국 토니앤가이에서 받은 디플로마가 걸려 있었다. 압구정 미용실의 원장은 삼십 대 후반 같았다. 성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확 들어오게 옷을 입었다. 편안한 의상이지만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코디네이션이었다. 처음 이력서를 내러 갔을 때는 실크 블라우스에 라이더 가죽잠바를 입고 있었다.”(‘우로보로스’ 10쪽) “고객이 회원에 가입하면 머릿결을 분석해서 회원의 특성에 맞게 개별 약품을 제조해서 서비스했다. 회원이 머리를 하러 오면 나무상자에 회원의 이름이 붙은 약품을 가지런히 담아왔다.… 회원이 보는 앞에서 약품을 덜어서 배합했다. 약품에서는 향기가 나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모든 요소가 감각적이고 고급스럽게 연출되고 있었다.”(우로보로스’ 11쪽) “미용실 안에 피부 관리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장은 얼굴 마사지를 받다가 나와서 면접을 봤다.” (‘우로보로스’ 10쪽)
“8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에서 귀국한 30대 후반의 이혼녀인 원장이 익혀 왔다는 선진기술이 말하자면 그런 것이었다.…. 원장이 운영하는 또 다른 업체인 피부 관리실과 병행하여 회원제로 사람을 모은 것이 그것이다. 회원제 미용실 운영 역시 헤라 헤어 숍이 처음 도입한 방식이었다. 미용실은 3층에, 피부 관리실은 4층에 있었다. 미용실의 이름은 헤라 뷰티 숍이었다. 헤라의 회원이 되면 헤라 헤어 숍과 헤라 뷰티 숍을 같이 이용할 수 있었다. 두피와 모발 관리도 그렇지만, 피부 관리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다.”(‘지상의 노래’ 252쪽)
김 씨는 “‘원장은 마법사처럼 군림하며 직원들을 움직였다’(‘허물’ 13쪽) ‘인물들이 줄에 매달려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지상의 노래’ 254쪽)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모습을 봤다. 소파에 앉아서’(‘핑크빛 허물’ 18쪽), ‘가죽소파에 앉아서 조금 전까지 자기가 일하고 있던’(‘지상의 노래’253쪽) ‘원장은 나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거울 속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우로보로스’ 19쪽) ‘남자 미용사가 거울 속에서 그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지상의 노래’ 243쪽) 같은 대목에서의 디테일도 닮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미용실을 거치면서 실력을 키우는 과정, 남자 미용사의 여성적 외모 및 가위와 손놀림을 묘사한 곳도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모티프, 설정, 배경 등에서 유사성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해서 김 씨의 주장처럼 저작권을 침해했다거나 표절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표절 시비가 붙은 곳은 8장으로 짜인 장편소설의 6장만이다. 나머지 장은 ‘허물’과 유사성이 전혀 없다. 책 전체를 보면 ‘지상의 노래’와 ‘허물’은 주제와 구성이 상이하다. ‘신동아’는 소설가 K씨와 서울 소재 대학 교수이면서 문학평론가인 또 다른 K씨에게 두 작품을 비교해 읽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기사화해야 할 사안이라고 보는지 답해 달라”고 했다.
주제와 구성 서로 달라
소설가 K씨는 표절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했다
“작가는 창작하면서 다른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기존 작품을 변용하는 것도 창작의 한 형태다.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만 해도 독일의 전승 설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 아닌가. 토마스 만의 대표 대하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다. 서양 문학은 성경, 그리스·로마 신화에 뿌리를 둔 경우가 적잖다. 이렇듯 다른 작품에서 모티프를 얻어 새로운 작품을 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러나 이런 변용, 변주와는 달리 남의 창작물을 그대로 옮기면 표절이 된다. 핵심 줄거리를 모방하거나 상황묘사를 베끼는 행위가 그렇다. 물론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 있고 남의 작품을 탐독하다보면 무의식중에 그 작품의 플롯을 흉내 내거나 흡사한 인물을 등장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상의 노래’ 6장 ‘카다콤’은 ‘허물’을 표절한 것일까, 아니면 ‘허물’에서 모티프를 일부 가져와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우연의 일치로 닮은 부분이 생긴 것일까. ‘무의식적 표절’이 이뤄졌을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심사위원으로 ‘허물’을 읽은 뒤 머릿 속에 있던 잔상이 ‘지상의 노래’에 무의식적으로 녹아들어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가 K씨의 견해를 들어보자.
소설가 K씨는 “이승우 작가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두 소설을 세심하게 비교하면서 읽었다. 기사로 써야 할 사안이다. 다만 김 씨가 걱정이다. 이 작가는 한국 문학계의 대표선수 격인 인물 중 하나다. 이번 일을 문제 삼으면 중앙에서 영원히 등단도 못하고 소설가의 길을 접어야 할 수 있다. 김 씨가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섰으면 기사로 써라. 여성 손님이 대부분인 미용실의 남자 미용사는 흔한 직업인이 아니다. ‘지상의 노래’의 주인공 후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들의 세계를 파악하려면 별다른 취재 노력이 있어야 한다. 김 씨는 그 직업을 직접 수행해본 경험으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미용실에 대한 상황묘사가 탁월한 까닭이다. 언론계 은어를 빌리면 ‘우라까이(남의 기사를 참조해 자신의 기사를 쓰는 행위)’라고 봐야 할 듯하다.”
“李 작가 변호하고 싶지 않다”
교수이면서 문학평론가인 K씨는 이렇게 말했다.
“신춘문예 심사 때 읽은 텍스트를 한번 읽고 내다버린 뒤 머릿속에 있던 게 나온 수준이 아니라 ‘지상의 노래’를 쓸 때 그 텍스트를 가져다놓고 다시 읽으면서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모티프와 설정 등을 가져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법적으로는 모르겠으나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상당하다. 문단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안다. 기사로서 다뤄야 할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다만 이승우 작가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조경란 씨의 경우도 언론에서는 이슈가 됐지만 결국은 그냥 넘어간 것 아닌가.”
2008년 주이란 씨가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 ‘혀’를 심사위원이었던 소설가 조경란 씨가 표절했다”고 주장해 시비가 붙은 적이 있다.
학술논문과 다르게 문학작품은 ‘표절이다’ ‘표절이 아니다’라고 양단하기 어렵다. 또한 모티프나 설정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로 비슷해질 수도 있다. ‘지상의 노래’ 6장과 ‘허물’을 비교해 읽은 소설가 K씨, 문학평론가 K씨의 견해 역시 주관적인 것일 뿐이다.
김 씨는 이 작가가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작가는 ‘지상의 노래’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대강의 얼개를 2년 전에 짰다”고 밝혔다. ‘지상의 노래’는 2011년 봄부터 2012년 봄까지 계간 ‘세계의 문학’에 연재됐다. 이 작가가 심사위원으로 ‘허물’을 읽은 후 소설을 완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작가가 텍스트를 가져다놓고 다시 읽으면서 참조한 게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김 씨가 법적으로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인정받는 것은 지난할 것으로 보인다. 모티프, 설정, 아이디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례에 따르면 저작권과 관련해 보호되는 저작물은 독창성이 나타난 개인적 부분, 즉 표현이지 아이디어나 모티프, 설정 등이 아니다. ‘두 저작물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해야 할 것이며, 소설 등에서 추상적인 인물의 유형 혹은 어떤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등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대법원 2000.10.24. 선고 99다 10813 판결)
“법적 대응 나서겠다”
단, 아이디어가 워낙 독창적인 경우에는 표현의 범주에 들어가므로 정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 이 경우 김 씨의 아이디어가 ‘워낙 독창적인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아주 적겠지만, 판례가 바뀔 소지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두 소설에서 문장이 통으로 같다든지, 구체적 표현을 베꼈다든지 하는 문자적 유사성이 나타난 곳은 없어 보인다. 작품의 전개 과정, 캐릭터 등 비문자적 유사성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전개 과정, 캐릭터 등은 유사성의 정도에 따라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남자 미용사가 대가를 지급하고 이득을 취한다는 두 소설의 사건 전개 과정이 유사하지만, 이러한 사건 전개는 누구나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카다콤’의 전개 과정은 ‘허물’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는 유사한 부분이 있는 만큼 차이 나는 부분도 많다. 법적으로는 비중이 높아 등장인물 자체가 이야기를 구성할 정도에 이를 때 저작권을 보호 받을 수 있다.
‘허물’에서 신사동 미용실 원장과 압구정 이지스타일 원장은 역할 비중이 낮다. 남자 미용사 차명규와 주인공 박혜지 원장은 ‘독창적으로 개발된 등장인물’인 것으로 보여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박혜지 원장과 사모님은 외모나 배경 등이 다르고, 박혜지 원장은 차명규로부터 두피 안마, 립 서비스 등을 받지만 ‘지상의 노래’의 사모님은 후에게 성적 결합까지 제공받는다. 고급 미용실의 공간 묘사가 비슷한 것처럼 읽히지만 구체적인 표현을 베낀 것은 아니다. 김 씨는 고급 미용실 운영방법, 고급 미용실 원장의 배경, 미용실 공간 묘사, 남성 미용사 묘사, 소파와 거울 장면 등이 독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누구나 취재해 쓰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소지도 많다.
종합적으로 볼 때 김 씨가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는 알 수 없으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작가가 ‘지상의 노래’를 쓰면서 ‘허물’의 모티프 설정 등을 가져왔다면 도덕적, 윤리적 문제는 남는다.
“8년 전 쓴 소설에도 미용실 나와”
표절 시비의 당사자인 이 작가의 견해를 들어볼 차례다. ‘신동아’는 2월 6일 전화통화로 내용을 설명한 후 e메일로 질문지를 보냈다. 그는 “참조나 참고도 하지 않았다” “무의식적 표절의 소지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 김 씨의 소설과 ‘지상의 노래’ 6장 카다콤이 설정, 배경, 소재, 캐릭터가 겹친다.
“고급 미장원이라는 공간 배경과 미용사라는 등장인물의 직업이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2005년에 발표됐고, 2008년에 나온 내 작품집 ‘오래된 일기’에 수록된 단편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에 고급 미장원을 운영하는 미용사가 나온다. 이런 공간(고급 미장원)과 이런 인물을 상상하기 위해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하거나 누군가의 작품을 참고할 이유가 없다.”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에 미장원, 미용사가 언급되는 것은 전체 분량 23쪽 중 세 부분(8줄+3줄+3줄) 정도가 전부다. 3줄로 이뤄진 문장은 미용실을 언급만 하는 수준이다. 책에서 8줄로 이뤄진 문장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첫 번째 아내가 위암으로 숨진 지 1년 만에 열 살 연하의 미용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변두리 동네 골목에서 보조미용사 두 명을 데리고 미장원을 운영하던 사십대 초반의 미용사는 결혼하자마자 시내 한복판에 100평짜리 건물을 빌리고 자기 이름을 앞에 내세워 ‘윤혜토탈헤어샵’을 냈다. 직원만 스무 명이 넘었다. 손톱 관리는 물론 전신 마사지까지 받을 수 있는 시설이 만들어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아버지 소유의 빌딩들마다에 윤혜토탈헤어샵이 들어섰다.’
▼ 지압샴푸(‘허물’), 터치와 마사지(‘지상의 노래’), 헤라 헤어숍 원장과 신사동 원장, 압구정 원장 등 디테일이 닮은 곳이 많다.
“지압샴푸에 대해서 나는 모른다. 마사지는 일반적으로 다 아는 거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제 소설에는 터치나 마사지가 무슨 특별한 기술로 나와 있지 않다. 단편 ‘무슨 일이든, 아무일도’의 미장원 묘사 부분에도 마사지가 언급돼 있다. 특별한 상상이나 다른 작품을 참고해야 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헤라헤어 숍 상호가 문제라는 건가? 흔한 상호 아닌가?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다.”
▼ 영국 유학 설정, 회원제, 피부관리실 운영 등 배경이 비슷하다.
“영국 유학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쓰였는데, 왜냐하면 영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그 여자가 그런 규모의 미장원을 차릴 수 있는 자금의 출처와 그런 호화롭고 앞서가는 미장원 운영 방식을 택하게 된 개연성 같은 것이었는데, 그래서 외국에서 살다가 이혼의 대가로 얻은 위자료를 생각한 것이다.
2009년 여름부터 2010년까지 1년간 영국 런던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보고 들은 것이 집필 과정에 작용을 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다니던 런던 교회 신자 가운데는 비달사순 학원 출신이 있었고, 그곳이 미용계에서 매우 유명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회원제나 피부관리실 운영 역시 이런 규모의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고급 미장원을 설정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대단한 상상력이 아니라 오히려 좀 통속적이기까지 한 상상력이다. 내 이야기는 이것들이 특별한 경험과 기발한 착상, 혹은 유별난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인물들이 줄에 매달려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와 “원장은 마법사처럼 군림하며 직원들을 움직였다”는 문장 등 ‘참조’ 혹은 ‘변주’로 여겨지는 문장이 발견된다.
“두 문장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참조나 변주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용된 내 문장은 마법사처럼 군림하는 원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원장이 그런 사람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 미장원의 구조와 그곳에서 하는 일의 기계적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 문장이다.”
▼ 여성 손님이 대부분인 미용실의 남자 미용사는 흔한 직업인은 아니다. 그들의 세계를 파악하려면 남다른 취재 노력이 있어야 할 듯하다. K씨는 스스로 그 직업을 수행하면서 취재했다고 주장한다.
“내 소설은 공간 배경이 미장원이지만, 고유한 미용 기술이나 거기서 쓰는 전문적인 용어나 외부인이 알 수 없는 미용사 세계의 내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단어나 용어가 모두 상식적이고 일반적이다. 예컨대 ‘지압샴푸’(그분의 소설에 나온다는) 같은 것조차 나오지 않는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관찰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묘사일 뿐이다. 피부미용실에서 무슨 관리를 받는지 알아보고자 인터넷에 들어가 정보를 얻긴 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내 소설은 미용사 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취재가 필요하지 않았다. 미용실 공간 묘사는 자세하지만, 그것은 취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도다. 어디에나 있는 가죽소파가 미장원에 있는 게 특별하단 말인가. 거울로 상대를 보는 건 미장원에 앉아 머리를 자를 때 누구나 경험하는 것 아닌가. 소설이든 영화든 미장원 장면 묘사 가운데 이보다 더 흔한 게 어디 있겠나. 특정한 미용실에만 있어서 직접 취재를 해야 쓸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 소설과 전혀 다른 소설”
▼ 참고나 참조 혹은 표절한 것 아닌가.
“앞에서 말한 대로 참고, 참조나 표절이 필요한 사항이 없다.”
▼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면 미용실의 디테일을 어떻게 취재했는지 밝혀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앞서 말한 대로 취재를 해야 할 정도로 특별한 장면이나 용어나 기술 같은 게 내 소설에는 없다. 누구의 눈에나 보이는 걸 조금 자세히 썼을 뿐이다.”
▼ ‘무의식적 표절’의 가능성조차 없다고 보나.
“전혀.”
▼ 창작할 때 다른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남의 작품을 탐독하다보면 무의식중에 그 작품의 플롯을 흉내 내거나 흡사한 인물을 등장시킬 수 있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그런 경우로 봐야 하나.
“문제의 그 소설을 탐독한 적 없고, 플롯을 흉내 내거나 흡사한 인물을 등장시키려 한 적도 없다. 나는 내 작품이 그 소설과 어떻게 유사한지 알 수 없지만, 내 소설을 쓰면서는 물론이고, 문제를 제기해 올 때까지 그 작품을 떠올려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아마 무의식중에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 김 씨는 자신이 소설을 발표하면 ‘지상의 노래’ 6장을 표절한 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인상으로 말하자면, 내 소설은 그 소설과 전혀 다른 소설이다.”
▼ K 교수는 “텍스트를 한번 읽고 내다버려 둔 뒤 머릿속에 있던 게 나온 수준이 아니라 ‘지상의 노래’를 쓸 때 그 텍스트를 가져다놓고 다시 읽으면서 참조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아마 내 소설을 읽지 않고, 그 사람이 만들어 보인 내용만 본 것 같다. 내 소설과 그 사람의 소설을 실제로 읽어보고 판단하라고 권하고 싶다.”
2월 8일 이 작가에게 “K교수는 두 소설을 실제로 읽어봤다”고 밝히면서 K교수의 평가와 관련한 재(再)질문을 포함해5가지 항목으로 이뤄진 추가 질의서를 보냈으나 이 작가는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대신 민음사에서 이 작가의 답변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의견서를 보내왔다. 의견서엔 추가 질문에 대한 이 작가의 답은 담겨 있지 않았다.
김 씨는 소설의 모티프, 전개과정, 캐릭터 설정 등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고, 이 작가는 참조, 참고는 물론이고 무의식적으로 표절했을 소지조차 없다고 항변한다. 두 사람의 다툼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