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잘나가는 미래부? 글쎄올시다…”

조직개편 칼바람에 공직 사회는 春來不似春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3-02-21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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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부로 가나…잠 못 이루는 공무원들
    • 외교관 신분 날아가고 세종시 갈 통상직 ‘멘붕’
    • “소속 바뀌면 인맥, 노하우까지 ‘증발’”
    • 당선인 의지 실린 미래창조과학부는 기피 부처
    “잘나가는 미래부? 글쎄올시다…”

    1월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 옥동석·강석훈 위원(오른쪽부터)이 정부조직 후속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웃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조직 개편이 뒤따른다. 공직자들은 5년마다 ‘필수코스’처럼 치르는 조직개편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현행 15부2처18청 체제를 17부3처17청으로 바꾸는 개편안을 발표하자 공직 사회에선 이례적으로 직접적인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총대를 멨다. 그는 위헌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외교통상부의 통상 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이관하는 방안에 반대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부처 이기주의”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자 반발 기류는 금방 사그라졌다. 행정부 수반으로 향후 5년간 인사권을 행사할 대통령당선인의 뜻을 끝까지 거스를 만큼 간 큰 공무원은 없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2라운드 공방은 무대가 국회로 바뀌었다. 이번엔 여당과 야당이 대리전을 치렀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당선인의 뜻이 반영된 인수위 원안을 고수하려 했고, 민주통합당은 개편안에 반발하는 여러 부처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맞섰다. 결국 새 정부 출범 열흘 전(2월 15일)까지 개편안은 확정되지 못했다.

    개편안이 국회 표결을 거쳐 확정되더라도 하부조직 개편까지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정부조직 직제표 작성을 맡은 행정안전부에서는 인수위가 발표한 개편안을 바탕으로 각 부처 의견을 수렴한 뒤 내부 검토 중이다. 담당 공무원은 “직제표 초안이 마련되면 인수위에 보고하고, 새 정부 출범 뒤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확정된다”고 말했다.



    조직개편에 따라 타 부처로 옮기게 될 공무원들은 ‘불확실한 미래’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소속이 바뀌면 공무원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한 공무원은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요즘 어느 한 사람이 갑자기 지방 근무를 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두 집 살림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처 희비 엇갈려

    정권이 바뀌면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인사권자인 대통령당선인의 의지에 따라 생각지도 않은 부처와 근무지에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공무원들이 나온다. 이번 개편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 이는 외교통상부 통상직렬 공무원들이다. 외통부의 통상 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토록 한 인수위 개편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그들은 외교관 신분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되고, 근무지도 서울에서 세종시로 옮기게 된다.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이처럼 소속과 근무지가 한꺼번에 바뀌게 된 통상직 공무원들의 사례를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언제든 비슷한 일이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몸담았던 부처가 조직개편으로 없어져 타 부처로 옮겨갔던 한 공무원은 “조직개편으로 소속이 바뀌면 그때껏 힘들게 쌓아온 인맥과 노하우까지 함께 잃어버려 마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힌 심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아무래도 함께 일해본 사람과 계속 일하려는 경향이 강한 공직 사회의 특성상 소속이 바뀌면 인사상 불이익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인수위가 발표한 개편안의 핵심은 국가안보실 신설, 경제부총리 부활, 식품의약품안전처 승격,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안전행정부 개칭, 산업통상자원부 확대, 중소기업청 강화, 해양수산부 재설치로 요약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는 본질적으로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해 없앴던 것을 부활시킨 경우다. 이 때문에 공직 사회 일각에서는 “부처가 마치 5년 주기로 붙였다 뗐다 하는 ‘포스트잇’이 된 느낌”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앞뒤만 바꾼 명칭 개정에 대해서는 ‘레토릭(修辭)에 너무 치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된다. 한 공무원은 “부처 명칭에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담는다는 취지에서 부처 명칭 변경이 필요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직 운용으로 달성하려는 정책 목표다. 이름의 앞뒤 만 바꾼다고 절로 변화가 따르는 건 아니다”고 꼬집었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조직 개편안 검토보고서는 “행정안전부의 기능 변화가 크게 없는 상황에서 명칭만 바꾸는 것은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 이를 위해 불필요한 예산이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 성과 매몰’ 경계해야

    조직개편에 따른 부처 간 기능 재조정으로 부처 간엔 희비가 크게 엇갈린다. 기능의 상당 부분을 내줘야 하는 교육과학기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들은 위기감이 큰 반면, 여러 기능을 넘겨받아 산업통상자원부로 확대 개편되는 지식경제부 소속 공무원들은 개편 방향에 대체로 긍정적이다. 조직이 커지고 인원이 늘면 승진과 보직 등 인사 적체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그렇다고 모든 지식경제부 공무원이 반색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실국 소속 공무원들은 중소기업청을 강화하기 위해 ‘부’소속에서 ‘청’ 소속으로 신분이 바뀐다. 외청으로 옮겨가게 된 부서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 중 기능과 역할을 강조한 끝에 신설된 부서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의 하이라이트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다. ‘창조경제와 창조과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부처이기 때문이다.

    미래부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가 나눠 갖고 있던 과학기술 분야 업무 외에도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무총리실 등 8개 부처에 분산돼 있던 기능을 넘겨받아 매머드 부처로 출범하게 된다. 하지만 언뜻 미래가 창창해 보이는 미래부에 대해 공직 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힘이 실려 업무 성과를 많이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미래부의 5년 후를 걱정하는 이도 많다.

    미래부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전망하는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까지 지낸 해양수산부가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폐지된 것을 예로 들곤 한다. 이명박 정부가 부처 기능을 통합해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방송통신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번 정권교체로 5년 만에 핵심 기능을 내주게 된 요즘 상황도 지적한다.

    “여러 부처의 기능을 포괄하게 될 미래부는 누가 보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아이콘 부처’다. 그런데 역대 정부에서 잘나갔던 부처는 거의 예외 없이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해체되거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됐다. 그러니 5년 뒤 미래창조과학부의 미래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미래부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데는 아니러니하게도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의 높은 관심이 한몫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미래부 신설이 포함된 이후 여러 부처 공무원들은 ‘실국 단위의 큰 기능이 많이 옮겨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미래부로 옮겨갈 부서의 규모가 오히려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실국 대신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과’ 단위 이전 논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은 이런 걱정을 전했다.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부서는 힘이 실린 만큼 높은 성과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는 단기 성과를 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 미래를 보고 중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분야가 과학기술이다. 5년 내에 성과를 내려고 조급하게 일하다보면 중요한 의미가 있는 중장기적 투자는 미루고 단기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투자가 집중될 우려가 크다.”

    조직 구성 과정에서부터 ‘성과’에 대한 부담을 떠안은 미래부가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어떤 ‘미래’를 창조해낼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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