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햇볕정책이 北 핵개발 도와 vs 개성공단 같은 곳 늘려야

보수 탈북자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장 vs 진보 탈북자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3-02-22 0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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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정책이 北 핵개발 도와 vs 개성공단 같은 곳 늘려야
    북한 3대(代) 권력자 김정은이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20년 넘게 진행해온 비핵화 정책에 조종(弔鐘)이 울린 것.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 외투’를 벗기기는커녕 오히려 핵무기 수만 늘려놓았다. 이명박 정부의 압박정책도 북한을 길들이기는커녕 핵 폐기와 관련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용도폐기됐다. 박근혜 정부는 신뢰를 대북정책의 키워드로 내놓았으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출발점에 서기도 전에 좌초한 꼴이다.

    국내외 전문가가 핵실험 이후의 남북관계 및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의견, 전망을 내놓고 있다. 북한 핵실험으로 동아시아 안보 프레임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대북정책, 탈북자 정책을 주제로 ‘보수 탈북자’와 ‘진보 탈북자’의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탈북 지식인은 일종의 경계인이다. 남북관계, 대북정책을 보는 시각이 달라 국내외 전문가가 놓친 부분을 잡아낼 수 있다. 또한 결이 다른 직관(直觀)을 제공할 수도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장은 1979년 판문점 인근 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다 탈북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의 대북전략국 등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때는 새누리당 통일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1993년 탈북해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의 보좌관 등으로 일했다. 매년 한두 차례씩 북-중 국경을 답사하는 등 통일 문제에 천착해왔다.

    북한 40대, 이념에 찌들지 않아



    ▼ 두 분이 각각 새누리당, 민주당을 지지하는 까닭은 뭡니까.

    안찬일 나의 포지션, 나의 개인적 성향,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과정이 새누리당과 일치합니다.

    김형덕 민주당의 대북정책이 옳기에 지지합니다. 결국은 흡수통일을 해야 할 터인데, 그러려면 교류를 늘려 점진적으로 통합해가야 합니다.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을 구사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북한이 붕괴하면 재앙이 일어납니다. 시장경제를 학습하게 한 다음 우리 쪽으로 편입시켜야 해요.

    ▼ 김정은의 정치 스타일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안찬일 올해 신년사를 김일성처럼 직접 발표했습니다. 마이크, 연탁(演卓)도 김일성이 쓰던 것과 비슷하더군요.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겁니다. 신년사에서 “중요한 문제는 북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해 희망을 가졌는데, 핵실험으로 인해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김형덕 김정은 정치는 한마디로 ‘향수(鄕愁) 정치’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 따라 하기예요.

    ▼ 기어이 핵실험을 하는 등 북한이 막 나가고 있습니다.

    안찬일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을 위해 국제관계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 아니겠어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한 상황에서 3차 핵실험에 나섰습니다. 핵무기 체계를 거의 완성한 거죠. 그런 연후에 개혁, 개방에 나서려는 게 북한 나름의 로드맵인 것 같습니다.

    김형덕 북한이 가진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온탕 갔다, 냉탕 갔다 하니 북한이 극단적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 또래, 그러니까 40대의 북한 주민은 이념에 찌들어 있지 않아요. 북한을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자본주의 문화를 퍼뜨리는 겁니다. 한국 정치권이 압박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킬 것인지, 장기적이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해나갈 것인지 합의한 후 일관된 대북정책을 구사해야 합니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김 소장의 주장과 비슷했지만 부작용이 많았습니다. 남측의 원조가 북한의 핵 개발을 도와준 측면도 있습니다.

    김형덕 김대중 정부는 잘했다고 봐요. 노무현 정부는 앞선 정부가 이룬 것에서 몇 걸음 못 나갔으니 잘한 게 별로 없다고 봅니다. 개성공단 같은 곳을 5개, 6개 더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스톱’하면 북한 경제가 무너지는 수준으로 남북경협을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노(No)’할 수 없는 근본적 이유도 경제적 연계 때문 아닙니까. 북한에 개성공단 같은 단지가 10개 있다고 해봅시다. 한국 기업이 철수하면 북의 100만~200만 명이 생존을 위협받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멋대로 핵실험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안찬일 햇볕정책은 목표는 좋았으나 과정, 방법에 문제가 상당히 많았어요.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에 치중한 데다 엄청난 액수의 현금이 북한으로 넘어갔습니다. 핵 개발에 남측이 넘긴 돈이 쓰였겠죠. 김정일에게 돈을 쥐여주면서도 핵 개발을 포기시키지 못했습니다. 햇볕정책은 결과적으로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남측의 대북정책, 북측의 대남정책이 모두 남북 내부 정치의 종속물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을 국내 정치에 활용했습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김형덕 대북정책이 국내 정치의 부속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런 경향은 북한이 더 심하죠.

    ▼ 김 소장은 북한에 건넨 현금이 핵 개발에 쓰였다고 보지 않나요.

    김형덕 남측이 건넨 돈으로 핵실험을 했다? 그것은 정치적 해석일 수 있어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대북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안 줬으니 미사일 발사, 핵실험을 못했어야 정상이겠네요? 남측이 핵실험 자금을 댔다는 말은 논리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新대결 프로세스’

    ▼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성과라면.

    안찬일 새누리당 지지자가 보기에도 성과보다는 고칠 점이 많은 정책이었습니다. 성과를 꼽으라면 우리의 체제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북한에 보여준 겁니다. 요구하면 주겠거니 여기던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퍼주기 정부’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안 주기 정부’였고요. 박근혜 정부는 ‘잘 주기 정부’가 돼야 합니다.

    김형덕 성과라고 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해저드에 볼을 빠뜨린 골퍼라고나 할까? 페어웨이를 조금 벗어나는 것은 괜찮은데, 해저드에 빠지면 목표 달성이 아주 어려워집니다. 압박을 하려면 전략을 제대로 짜고 압박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요. 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찬일 리더가 전략적 판단을 못한 측면은 있습니다. 많은 이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대북정책을 구사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리더가 전략적이었다면 해저드도 피하고 OB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무작정 정면질주를 하다보니 해저드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해저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정권이 끝났습니다.

    ▼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조기 붕괴할 소지가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안찬일 판단 미스였어요. 북한 정권이 그렇게 쉽게 붕괴할 성질의 것이 아닌데…. 일부 전문가의 말만 듣고 몽상에 빠져 있다 5년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중국이 버티고 서 있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의 붕괴는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그런 시나리오를 갖고 접근한 게 치명적인 실수라고 봅니다.

    김형덕 붕괴론은 북한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내부에 대안세력이 있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붕괴를 추동하는 힘을 제공하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엔 대안 세력이 없습니다. 일당제잖아요.

    ▼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흘러갈 것 같습니까.

    안찬일 대북정책의 키워드는 신뢰 프로세스입니다. 그냥 신뢰가 아니라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는 ‘강요된 신뢰(enforcing trust)’를 강조합니다. 남북 간 기존의 신뢰를 지킬 틀이 없는데다 북한이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비핵화 천명은 무효다”라는 식으로 나오면서 핵실험까지 해 신(新)대결 프로세스로 바뀔 판국에 와 있습니다.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지만 지금은 앞이 캄캄한 상황입니다. 그렇더라도 공단, 관광 같은 비정치적이고 비군사적인 분야에서부터 접근하면 길은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5년을 답습하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김형덕 민주당 지지자인 저도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을 괜찮게 봅니다. 공약을 실제로 이행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새누리당 공약과 민주당 공약이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박 당선인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두겠다는 겁니다. 독일식입니다. 동·서독이 대표부를 두고 갈등이 있을 때 조정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안찬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성숙했던 점이 많았습니다. 결국은 어떻게 잘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1대 1의 등가 교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경제적, 물질적으로 지원하면 북에서 이산가족,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서로 줄 수 있는 것을 주고받는 게 균등한 교환입니다. 사마천이 ‘사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기보다 돈이 10배 많으면 그를 증오하고, 100배 많으면 그를 부러워하고, 1000배 많으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1만 배 많으면 그의 노예가 된다. 한국의 경제 수준은 북한 정권을 노예로 만들 수준에 와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들고 맹목적으로 굴복하지는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고요. 경제적으로 남북을 엮어나가면서 총칼을 내려놓게 하는 게 통일의 방정식 아니겠는가, 그렇게 봅니다.

    햇볕정책이 北 핵개발 도와 vs 개성공단 같은 곳 늘려야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장(왼쪽)과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핵 개발로 협상력 높아져

    ▼ 말은 쉬운데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요.

    안찬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김형덕 정권이 붕괴되면 포기하겠죠.

    안찬일 그렇죠. 그날로 포기하는 거죠. 핵은 군사적 균형을 맞추려고 개발한 것입니다. 다른 수단으로는 남한에 이길 수 없으니 핵이라도 가져야겠다는 비대칭 전략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국제정치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무기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그런 전략에 안 말리려고 전략적으로 인내(strategic patience)하고 있는 것이고요.

    미국 오바마 정부는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거나 핵 포기와 관련한 행동을 표하기 전까지 대화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구사했다. 오바마 2기 정부가 관여 정책으로 전환할지 주목되고 있다.

    김형덕 핵은 북한 정권이 주민의 마음을 붙잡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대결 구도를 강조하면서 주민을 일치단결시키는 수단으로 핵을 사용하는 겁니다.

    ▼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남북대화는 곤란한 것 아닙니까.

    안찬일 기본적으론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가면 남북대화는 영원히 없을 겁니다. 북한의 신세대 중 70% 이상이 한국 드라마를 봤을 겁니다. 아직도 혁명사상에 매몰돼 있는 사람은 30%가량에 불과할 겁니다. 우리가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더라도 북한을 컨트롤하는 시대를 열 수 있어요.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은 북한이 망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김형덕 북한은 개혁, 개방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고요. 그 과정에서 남한이 소외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입니다. 주민들이 한국 정부를 의존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여기는 순간 북한 정권이 위험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는 왜 일당제고, 쟤네는 왜 다당제일까? 쟤네는 왜 잘살고, 우리는 왜 못살까, 이런 비교대상이 생기잖아요. 북한 집권세력 처지에서 보면 남한의 자본주의가 들어오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는 게 권력 유지에 좋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북한 정권을 도와주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봅니다. 제가 농담으로 ‘MB가 혹시 노동당원이 아니냐?’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예요.

    안찬일 2002년 박근혜 당선인이 평양에 가 김정일을 만나서인지 북한 주민의 다수가 박 당선인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북한의 식자들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펼친 경제정책의 성과를 인정합니다. 비약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박 당선인에게 통일대통령, 혹은 통일에 기여한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봅니다.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전에 대결 프로세스가 먼저 등장해 애로가 많겠지만요.

    ▼ 북한 핵실험 탓에 신뢰 프로세스 가동이 어려울 듯합니다.

    김형덕 저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북한에서만 원인을 찾으려 하면 해답이 없다고 봅니다. 북한은 실패한 체제 아닙니까.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체제라는 것을 국제사회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체제를 어떻게 다뤄야 바람직할지를 얘기해야지, 북한 탓이다? 이건 무책임한 것이라고 봐요. 북한같이 후진 나라한테 어떤 기대를 하는 것이 우스운 것 아닙니까?

    ‘창녀’ 기간 길면 ‘결혼’ 어려워

    ▼ 북한의 현재 상황이 어떻다고 짐작합니까.

    안찬일 정치는 세습정치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경제, 사회 분야에서 기존 시스템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재작년에 죽은 뒤 개혁, 개방 쪽으로 갈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졌는데 실제로 그러한 결과로 나타나지 않아 세습정치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형덕 정치 분야에서 북한이 변동성을 가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봉건사회에서 봉건적 사회주의 사회로 넘어왔습니다. 민주적 정치에 대한 경험이 전무(全無)한 것입니다. 다만 경제는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다고 봅니다. 정치권력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시장경제를 조금씩 용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밖에서 볼 때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속도로 개혁이 이뤄지는 것 같지만 중국도 개혁, 개방에 나선 후 굉장히 느린 속도로 변화했습니다.

    안찬일 장마당 경제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정착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선군정치에서 노동당 지배로 선회했지만 당이 아직 장마당을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장마당을 해체하면 인민이 굶어 죽을 판이라 장악할 수도 없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지만 시장사회주의로 나갈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되고 있다고 봅니다. 김일성 사회주의는 산업사회주의, 그러니까 인더스트리 소셜리즘이었고, 김정일의 사회주의는 병영사회주의였습니다. 김정은이 갈 길은 마켓 소셜리즘밖에 없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어요.

    ▼ 북한 경제의 대(對)중국 예속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안찬일 북한은 지금 중국의 창녀가 되고 있습니다. 창녀 처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주도로 이른 시일 내 통일을 이뤄내지 못하면 북한이 창녀로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집니다. 우리가 결혼할 처녀는 북한 하나밖에 없습니다. 창녀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결혼할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김형덕 기댈 곳이 없으니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죠. 북-중 국경지대 답사를 1년에 한두 번씩 갑니다. 지난해 단둥 세관을 살펴보니 중국에서 자본재가 엄청나게 들어가더군요. 중국은 광산개발 등에 필요한 인프라를 북한에 설치해주고 대신 북한의 지하자원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의 대중국 종속화가 심화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국도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 처지에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요. 다만 통일을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어드밴티지가 사라지는 측면이 있어요. 나진항 사용권 등을 중국이 확보한 상태에서 우리가 나중에 들어갔을 때 중국의 허가를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겠죠.

    안찬일 동북공정에서 미뤄볼 수 있듯 중국은 팽창주의적 목적으로 북한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진항도 중국 해군의 동해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고요. 북한은 굶어 죽을 순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중국의 잉여상품을 들여오는 것인데, 이것을 제국주의론으로 들여다보면 식민지화로 가는 의존입니다.

    탈북자 ‘2등 시민’으로 여겨

    ▼ 탈북자 정책으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최근 1년간 탈북자 재입북이 4차례나 있었습니다. 탈북자 정책에 문제가 있나요.

    안찬일 문제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는 작업을 했는데, 잘 안됐습니다. 탈북자 대부분이 교육 수준이 높은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도 북한에서 온 박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게 현실입니다. 왜 이렇게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나쁜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김형덕 메이저가 마이너를 밀어내는 거죠. 언론도 탈북자를 호기심 위주로 다루면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있어요. 박근혜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합니다. 탈북자는 대체로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습니까. 물론 저 같은 민주당 지지자도 있지만요. 능력 있는 분들에겐 정부에서 일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안찬일 센터장 같은 분이 하나원장(통일부가 운영하는 탈북자 교육기관)을 맡으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할 겁니다.

    ▼ 탈북자로 위장한 화교 유모 씨가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탈북자 정보를 북한으로 유출한 일이 있었습니다.

    김형덕 국정원 잘못이에요. 딱 봐도 중국 사람인데 국정원이 왜 못 걸러냈는지 그게 이상합니다. 화교는 말하는 것부터가 달라요. 우리말을 할 때 영어의 R 발음이 섞입니다. 국정원이 잡아내지 못한 게 한심한 거죠.

    안찬일 유 씨를 잘 압니다. 통일지도자 아카데미라는 것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탈북 대학생을 교육하는 곳인데요. 유 씨는 아주 똑똑한 친구였어요. 그래서 기수 회장을 시켰습니다. 유 씨가 전략적 공작원 같지는 않습니다. 탈북자 출신 간첩을 우리 남한 사람들은 레귤러 간첩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황장엽 씨를 암살하러 온 애들 같은 경우는 오리지널 공작원이지만 나머지는 그저 매수당한 간첩이란 말이죠.

    김형덕 유 씨는 탈북자가 아니라 화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안 센터장에게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탈북자 사회가 이 문제와 관련해 공동대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가 화교 출신 간첩이지 어떻게 탈북자 출신 간첩입니까. 탈북자 단체들이 공동으로 성명서 같은 것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의 화교들은 중국하고 북한을 마음대로 왔다갔다 해요. 그 친구도 한국에 정착한 뒤 북한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포섭됐을 겁니다.

    “못 걸러낸 국정원 잘못”

    ▼ 유 씨 사건으로 탈북자 사회가 뒤숭숭할 것 같습니다.

    김형덕 사람들이 탈북자들에게 농담으로 “너 간첩이지?”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은 탈북자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어요.

    안찬일 특히 젊은 친구들이 상처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패닉 상태에 빠진 친구들도 있어요. 통일지도자 아카데미에 다니는 대학생 중에도 그런 이가 많습니다. 막 아우성치고 우는 여학생도 있었고요. 주변에서 차가운 눈초리로 보니 그렇게 되는 거죠. 탈북자 한 명이 간첩으로 드러나면 2만 5000명 모두가 자세를 낮춥니다. 오해 받을까봐요. 겁도 먹고요.

    김형덕 북한 거주 화교 출신이면서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온 사람이 10명이 넘는 것으로 압니다. 화교는 탈북자 형식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없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번 사건은 국정원 책임일 뿐 탈북자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안찬일 센터장 같은 분이 국정원에서 계속 일했으면 그런 일을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국정원 직원이 북한 사람과 화교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을 거예요. 이렇듯 북한 출신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선 자리를 주지 않아요.

    안찬일 한 가지 덧붙여 말하면 유 씨는 탈북자들이 신고해서 잡힌 겁니다.

    김형덕 한번 신고했는데, 잡았다가 풀어줬어요

    안찬일 놔줬죠. 그런데 재차 신고해서 다시 잡은 겁니다. 신고 안 했으면 계속 놔뒀을지도 몰라요. 유 씨를 체포하기 전날 국정원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곤 이튿날 체포했죠.

    2008년 8월 탈북 여간첩 원정화가 발각된 이래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사건’이 이따금 발표되면서 탈북자 사회는 위축됐다. 이러한 분위기가 정부기관이나 언론 등에서 일하던 ‘탈북자 사회의 성공 모델’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자리를 잃거나 자리를 떠나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탈북자 정착교육을 담당하는 통일부 산하기관 하나원에서 일하던 탈북자 출신 근무자 7명이 2008년 모두 자리를 떠난 일도 있었다. 하나원 외곽경비를 담당하던 용역업체에서 일하던 탈북자 3명도 비슷한 시기에 해고됐다.

    안찬일 센터장도 2008년 국정원에서 해임됐다. 안 센터장과 ‘신동아’는 악연이 있다. 그의 해임에 ‘신동아’가 관련돼 있어서다. ‘신동아’ 2008년 11월호에 ‘내우외환, 김성호 국정원’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국정원은 안 센터장을 이 기사의 취재원 중 한 명으로 지목해 해임했다. 안 센터장이 ‘신동아’ 기자와 서울 마포구의 한 냉면집에서 식사를 하며 소소한 얘기를 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국정원이 신동아 기자와 안 센터장의 대화를 어떻게 인지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안 센터장이 ‘신동아’에 들려준 내용은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형태로 기사에 다음과 같이 소개됐다.

    “올해 들어 국정원 내곡동 청사 지하 사우나실의 대형 욕탕에는 뜨거운 물이 사라졌다. 샤워면 충분한데 굳이 온수를 받아 종일 식힐 이유가 없다는 것. 층마다 서던 청사 엘리베이터가 격층 운행으로 조정되는가 하면, 지난 추석에는 명절 귀향버스 제도도 사라졌다. 줄줄이 이어지는 예산절감 방안에 대해 대부분의 직원은 혈세를 아끼자는데 할 말이 없다면서도 불만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안찬일 처음엔 누구 한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조용히 나가줄 수 없느냐고 하더군요. 나를 희생양으로 삼은 거예요.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시켜버렸어요. 공직에서 20년 일하면 은퇴 후 매달 300만 원 넘는 연금을 받지 않습니까. ‘신동아’ 탓에 공무원 연금을 못 받게 됐죠(웃음).

    대학 나와도 기업이 외면

    탈북자들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마다 ‘기관’의 시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탈북자 사회에선 “잠재적 간첩 취급을 당하고 살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만 문제를 공론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민간에서 탈북자를 ‘2등 국민’으로 인식하는 시각도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못 살겠다는 탈북자가 느는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일한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있을 때 탈북자 관련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북한에서 오신 분이 2만 5000명 남짓인데 그중 3700명이 ‘한국에서 못 살겠다’는 겁니다. 북한이 싫어 천신만고 끝에 넘어온 동포를 껴안지도 못하면서 무슨 통일을 하겠다는 겁니까. 한국에 오신 분들이 북쪽에 남은 가족에게 한국 사정을 전할 텐데 북쪽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안찬일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식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탈북자를 귀순용사라고 부르면서 영웅시했습니다. 지금은 환영하는 게 아니라 멸시하거나 천대합니다. 물론 우리 탈북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 수도 많고…. 1000명 넘는 탈북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면 기업에서 탈북자라는 이유로 받아주질 않습니다. 그 친구들을 사회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요? 정부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데 안 하고 있습니다.

    ▼ 대학 입학 때는 특혜가 있죠.

    안찬일 고마운 일이죠. 4년간 등록금을 면제해주는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년 후 기업에 서류를 넣으면 뽑지를 않는 거죠.

    김형덕 교육 기회를 제공해주는 게 탈북자에게 주는 시혜 중 가장 큰 겁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죠. 그런데 고등교육을 받기는 했는데 일자리를 못 잡으면 그게 더 힘든 겁니다.

    안찬일 좌절이 클 수밖에 없죠.

    김형덕 탈북자에게 뭔가 혜택을 주려고 해도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기업에 탈북자를 선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공기업이나 공무원 쪽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가 탈북자 2만 5000명조차 잘 관리하지 못하는데, 북한이 붕괴할 경우 2300만 명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요. 북한 붕괴는 우리에게 악몽입니다. 그러려면 남북 경제 교류를 늘려가야 합니다. 햇볕정책이 해법일 수밖에 없어요.

    “남쪽 가서 고생하기 싫다”

    ▼ 탈북자의 상당수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한다면서요.

    김형덕 다들 연락하죠. 중국에서 만나는 사람도 많고요. 남쪽으로 데려오기보다 돈을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만나도 안 데려오는 겁니다. 데려오려고 해도 안 오겠다는 사람이 많고요. 중국에서 누나를 두 번 만났어요. ‘내가 남한으로 올 생각 있느냐? 도와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누나가 정색하고 답하더군요. ‘내가 나이가 마흔이 훌쩍 넘었다. 남쪽에 가면 설거지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굳이 가서 고생할 일이 뭐가 있냐? 북쪽에서 우리가 그래도 중산층인데다 네가 도와주면 잘 살 수 있는데 거기 가서 고생하기 싫다.’ 누나의 이 같은 말이 북한 사람들이 느끼는 현실이라고 봐요. 돈을 쥐여주고 누나와 작별했습니다. 매형하고 누나가 맨손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면 그분들 삶을 책임질 자신이 없습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한국 돈 200만 원이면 북한에서 1년 동안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답니다. 돈을 보내주는 게 데려오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겁니다.

    김일성대 출신인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가 칼럼에서 김 소장과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일반적 관점에서 볼 때 탈북자들은 취직도 어렵고 사회적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는 집단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한번 보자. 입국한 지 몇 년 안 된 탈북자라도 임대아파트 보증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을 합치면 최소한 수천만 원의 재산은 있다. 이 돈이면 북한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다. 먹고살기 어려워 북한을 떠났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재산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혈육과 떨어져 이 땅에서 빈곤계층으로 살기보단 북한에 돌아가 가족친지들 앞에서 부자로 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망이다.”(1월 29일자 ‘북한 언제까지 재입북 대우할까’)

    ▼ 두 분이 서로 다른 의견을 피력하면서 격돌할 줄 알았는데 내놓는 의견에 공통점이 많습니다.

    안찬일 우린 뿌리가 같으니까 공통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형덕 안 센터장님이나 저처럼 중간에 있는 보수, 진보는 차이가 별로 없어요. 타협이 가능하다는 거죠. 앞서 언급했듯 우리 정치권이 대북정책의 방향과 관련해 어떤 합의를 하고 정책을 일관적으로 밀고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극좌와 극우는 비슷한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의 극우는 북한과 서로 협동하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머리 아플 정도로 들은 얘기가 ‘남쪽 놈들이 쳐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는 ‘빨갱이는 나쁜 놈’ 운운하면서 해먹는 사람이 많은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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