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산업재해, 선진국 수준으로 확 낮출 겁니다”

백헌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s.com

    입력2013-02-21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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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우리 산업현장의 산업재해율은 0.65%로, 산재통계율 산출 이래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2015년 세계산업보건대회도 유치했다.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발판을 마련했다. 백헌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만나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실태와 미래 비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산업재해, 선진국 수준으로 확 낮출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매년 9만여 명이 일터에서 재해를 당하고, 이 중 2000여 명이 목숨을 잃는다. 산업재해 통계가 집계된 1964년부터 지난해까지 49년 동안 재해 근로자는 423만 명, 사망자는 8만 명이 넘었다. 산업재해로 다친 근로자가 인천광역시와 대전광역시 인구를 합한 것보다 많고, 경기도 과천시 인구보다 많은 근로자가 목숨을 잃은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산업 현장의 재해율이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는 게 백헌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하 공단) 이사장의 설명이다.

    “1970~80년대의 산업재해율은 3~4%대로,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공단 설립 무렵인 1987년만 해도 2.66%이던 것이 1995년엔 1%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잠정 집계한 2012년 산업재해율을 보면 2011년의 0.65%보다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공단의 활동에 힘입어 산업재해율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 선진국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가.

    “근로자 1만 명당 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인구 비율을 나타내는 ‘사고성 사망만인율’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0.96%로 일본 0.25%, 미국 0.35%, 독일 0.16%보다 많게는 6배나 높은 수준이다.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산업재해 분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산업재해 예방과 근로자 안전·보건을 목표로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다’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1987년 12월 설립된 기관이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 구축은 물론 안전경영기법 개발·보급, 안전인증제도 시행, 전문교육 확대, 대국민 홍보활동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4년 연속 청렴도 우수기관

    국제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2008년에는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사회보장협회(ISSA)와 공동으로 서울에서 제18회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를 개최해 산업안전보건 기술과 정보의 국제적 교류협력을 가속화했다. 2011년에는 ISSA 재해예방특별위원회 예방문화분과 창립을 주도하고 의장국으로 선출됐으며, 2015년 세계산업보건대회 서울총회를 유치하는 등 글로벌 산업안전보건 전문기관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 산업안전보건 분야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

    “2011년 7월 이사장에 취임했는데 그해 2월까지 한국노총 사무총장으로 재직했다. 그전에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정책심의위원회 위원, 장애인고용촉진위원회 위원, 근로복지공단 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 등 근로산업현장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서에서 활동하며 산업현장에 대한 이해와 실무 능력을 쌓아왔다.”

    “산업재해, 선진국 수준으로 확 낮출 겁니다”
    ▼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하는 청렴도 평가에서 2009년부터 4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비결이 있었다면.

    “공단의 윤리경영 목표는 ‘최고의 안전보건서비스를 위한 고객 감동의 클린문화 구축’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반부패, 비리 예방’ ‘상시적 윤리경영 실현’ ‘사회봉사활동 실천’을 집중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직원의 비위행위 발견 시 감사에게 직접 신고하는 ‘청렴 핫라인’과 민원, 계약업무 등 전 과정을 학계·노동계·외부 전문가가 독립된 위치에서 감시·감독하는 ‘청렴 옴부즈만 제도’ 등이 공단의 청렴도 제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1000만 원 이상 계약 시 청렴서약서 체결, 사이버 감사실 운영, 청렴 마일리지 제도, 청렴 서한문 발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산업재해 예방과 창의적 조직 운영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CEO 대상’에 선정돼 ‘지속가능경영부문’ 대상을 받았는데.

    “취임 첫해의 과제가 ‘산업재해 감소’였다. 공단 설립 이후 최저 재해율인 0.65%를 달성한 것도 그 성과의 일환이다. 재해예방 활동의 중심축을 제조와 건설에서 서비스업까지 확대하고, 과학적 분석을 통해 타깃 사업장을 선정하고 지원 방법을 차등화했다. 안전보건 네트워크를 구축해 재해예방 활동을 펼치는 한편, 직접 산업현장을 방문해 안전보건 실태를 점검하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개선 방안을 모색했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 것은 소통이다. 대외적인 소통뿐만 아니라 공단 내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일선기관을 함께 방문하고 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했다.”

    ‘위기탈출 다국어 회화’

    ▼ 현장을 자주 찾은 소감은.

    “‘현장 중심의 재해예방 활동’은 부임하면서 세운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직접 현장을 방문해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현장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산업현장의 위험 요소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답도 현장에 있다. 실제로 현장을 방문해보면 산업재해율이 낮은 현장일수록 사업주와 근로자의 안전의식이 높다.”

    ▼ ‘소통’을 위해 SNS 등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07년부터 공단 대표 블로그를 만들고, 2011년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미투데이 등의 계정을 개설·운영하며 홍보매체로 활용해왔다. 특히 최근 급부상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뉴미디어의 전달력과 파급력은 엄청나다. 지난해부터 SNS 사용 활성화를 위해 임직원 대상 교육과 공단 인턴직원을 중심으로 한 블로그 기자단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힘써왔다.”

    ▼ 산업현장에 맞는 다양한 안전보건 앱을 개발하고 보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외국인 근로자와의 소통을 위해 산업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300개 문장을 10개 국어로 제공하는 ‘위기탈출 다국어회화’ 앱과 산업재해 속보를 실시간으로 전하는 ‘위기탈출 사고포착’ 앱, 응급상황에서 심폐소생술 등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응급조치’ 앱, 다양한 안전보건 정보를 담은 ‘지식충전소’ 앱을 개발했다. 인기 걸그룹 걸스데이의 민아 양이 출연한 ‘체조송’ 앱도 개발해 간단한 체조로 요통이나 근골격계질환을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 체조송 앱은 디지틀조선일보와 비즈니스앤TV에서 주최한 ‘앱 어워드 코리아 2012’에서 생활서비스분야 올해의 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현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계와 기구의 안전수칙, 재해사례, 관련법령 등을 제공하는 QR코드 콘텐츠 100종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 ‘위기탈출 다국어 회화’와 ‘위기탈출 사고포착’ 앱은 아이디어가 눈길을 끈다.

    “사고는 사후처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방이 최선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한 해에만 700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입었다. 대부분 입국한 지 1년이 채 안된 새내기들이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하기도 어렵고, 일하는 곳도 대부분 영세사업장이라 안전사고 예방시설이 미흡한 경우가 많다.

    안전보건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을 위해 개발한 것이 바로 ‘위기탈출 다국어 회화’ 앱과 ‘위기탈출 사고포착’ 앱이다. 지난 2월 6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예방문화위원회 이사회에서 이 앱을 소개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중대 사고를 함께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차세대 미디어로 주목받았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듯했다.”

    ▼ 공단의 대표 슬로건을 ‘조심조심 코리아’로 정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세계 8위의 무역강국이며, 세계시장 1등 품목을 61개나 보유하고 있다. 짧은 기간 안에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가 ‘빨리빨리’ 문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안전 문제가 다소 소홀히 취급된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진정한 세계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선진화한 면모를 갖춰야 한다. ‘조심조심 코리아’ 캠페인은 우리 경제를 성장시켜온 ‘빨리빨리’ 문화를 안전 분야에서만큼은 ‘조심조심’ 문화로 바꾸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빨리 가져다달라’는 말보다는 ‘안전하게 배달해 달라’는 말이 보편화하면 좋겠다.”

    ▼ 지난해 경북 구미 불산 누출사고에 이어 올해 초 경북 상주 염산 누출사고, 얼마 전에도 반도체 공장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사고들의 원인과 예방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유해 화학물질 누출사고의 공통점은 안전관리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사업장에서 유지·보수작업을 하는 과정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업장에서 위험설비를 부실하게 관리하거나 근로자가 안전작업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게 주요 원인인 셈이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면 정기 안전점검 등을 통해 설비 유지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조심조심 코리아’

    제도적으로는 유해위험설비를 보유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 관리체제를 구축·시행토록 하는 ‘공정안전관리제도’를 확대하고, 공정안전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평소 비상조치계획을 수립하고 사전 모의 훈련 등을 통해 사고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단에서는 올해 초 화학물질에 의한 화재, 폭발, 누출사고 등 중대 산업사고 예방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기술지원 활동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 공단의 올해 중점 목표는.

    “사고성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과 사고재해율(전체 근로자 중 사고로 인한 재해자 비율), 업무상 질병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질병이환자 비율) 등을 각각 5%씩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위험성 평가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사업주 스스로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노사협력을 통해 재해를 예방하도록 하는 제도다. 사업장 자체적으로 위험요소를 개선해 공단의 인증평가를 통과하면 산재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자율규제방식으로 추진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또 하나의 중점 사업으로 적시 기술지원 활동을 꼽을 수 있다. 적시 기술지원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2년 이내에 다시 재해가 발생한 비율이 약 29%에 달한다는 통계에 근거해,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을 1개월 이내에 방문해 그 원인과 대책을 분석하고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금까지는 사고수습과 처리 등에 밀려 사후 1년이 지나서야 사업장을 방문하는 등 제도적으로 문제가 됐던 부분이 개선된 것이다. 사고 예방에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제도가 개선된 만큼 재해율도 크게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 이미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도입해 성과를 거뒀는데.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 18001)은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게 개발해 199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최고경영자가 기업의 경영방침에 안전보건정책을 반영하고, 세부 실행지침과 기준을 수립해 그 결과를 자체 평가한 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방식이다. 사업장에서 공단에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을 신청하면 공단은 해당 사업장의 안전보건활동을 평가해 인증 여부를 판단한다. 인증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 인증 전에 비해 평균 48.6%(2011년 기준)의 재해 감소 효과를 보였다. 기업에서도 산재보험료 감소, 기업 인지도 상승, 노사의 안전의식 향상 등 다양한 효과가 있는 제도다.”

    ▼ ‘신동아’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은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기업을 번영시키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본적인 사회 유지활동이다. 산업재해 예방은 정부나 공단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 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실천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안전한 일터,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일에서부터 안전을 실천하는 노력을 함께 해주길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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