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교사가 매 맞는 ‘막장’ 학교…공교육 살릴 길은 교권입국(敎權立國)”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3-02-21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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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감 직선제는 고도의 정치행위, 민주주의의 오만
    • 男교사 비율 높이고 여성도 군복무해야 진정한 양성평등
    • ‘스승의 날 주간’ 정해 학생, 학부모와 정서적 유대 강화해야
    • 20년째 정원 제자리…교사 늘려야 체벌 없이 통제 가능
    “교사가 매 맞는 ‘막장’ 학교…공교육 살릴 길은 교권입국(敎權立國)”
    두꺼운 책과 자료들이 여기저기 수북하다. 하얀 벽면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힌 4절지들이 길게 붙어 있다. 교권보호대책, 학생언어문화개선사업 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그동안 추진해온 일을 짐작게 하는 것들이다. 1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우면동 교총 사옥, 수장인 안양옥(56) 교총 회장의 집무실은 분주하고 활기찼다.

    교총은 18만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 교원단체다. 안 회장은 2010년 6월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정부와 교육계에 교권회복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업들을 강도 높게 추진해왔다. “교권이 바로 서야 학교가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선다”는 교육자로서의 신념에서다.

    안 회장의 이런 교육철학은 집안 내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전남 보성 태생인 그의 집안 어른 중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스승인 안용백 전 전남교육감, 광주교육감을 지낸 안준, 안순일 선생 등 유명한 교육자가 많다. 부모의 교육열도 남달랐다.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학교를 네 군데나 옮겨 다닌 그는 서울 효제초등학교와 동성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서초중·동작중·수도여고에서 교편을 잡았고 198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교대 교수로 재직하며 초등 예비교원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교육협력위원, 교원양성대학교 발전위원회 공동의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교육분과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교육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헌신해왔다. 그를 만난 날은 마침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총리 후보직 사퇴가 이슈였다. 이번에도 재산과 아들 병역 문제가 화근이었다.

    탈무드의 교훈



    ▼ 안 회장께선 공직에 나가도 추궁당할 일이 없겠습니까.

    “세상에 완전무결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저야 모아둔 재산도 없고…저도, 제 아들도 학도호국단 출신이라 군에 애정이 많거든요. 그런데 제가 화를 잘 내요. 다혈질이에요. 격정적이고 열정이 과해요. 열정이 있으니까 이런 봉사를 하는 건데, 성격 때문에 평판도 엇갈려요. 모르긴 해도 회원의 30%쯤은 나쁘게 얘기하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안 회장은 김용준 위원장 사퇴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생활보다는 공직 능력으로 검증해야 한다. 또한 지배층과 부유층이 부의 축적에 따른 기득권을 내려놓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다. 김 위원장도 사회적으로 기부를 많이 했다면 재산 문제도 그만큼 희석됐을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미래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가치교육과 행복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가치교육의 좋은 사례가 있다면.

    “유대인의 탈무드가 대표적이죠. 탈무드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가르쳐요. 선과 악의 공존을 인정하니까 편견 없이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공격적 삶을 추구해요. 무조건 1등 해야 해요. 착한 아이도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고 악행을 하는 아이도 마음은 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모든 것을 선과 악, 1등과 꼴찌 같은 이분법적 논리로 구분하려고 하죠. 그걸 빨리 극복해야 해요. 유대인도 어릴 때부터 중용지도, 가치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된 겁니다.”

    ▼ 서울교육감 재선거에 출마했다면 어떤 얘기를 하셨을지 궁금하네요.(안 회장은 이번 서울교육감 재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후보 단일화를 위해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언제부턴가 학교가 교육을 모두 책임지는 곳이라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생겼어요.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데. 가정에선 부모, 사회에선 사회 조직과 사회인, 학교에선 교원이 주체예요. 그런데 부모와 교원 사이가 멀어졌어요.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죠. 삶의 중요한 가치는 인성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내면의 보이지 않는 힘이 인성인데 그걸 키우려면 지식과 지혜를 함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균형을 이뤄야 해요.

    과거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해서 선생이 부모 같은 마음으로 학생을 때려도 이해했는데, 요즘은 선생을 지식을 가르치는 기능인으로 보니까 자기 아이에게 손대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거예요. 거기다 촌지(寸志)나 받는 타락한 존재, 학부모보다 지식이 부족한 존재로 여기죠. 학부모 중에 고학력자가 많아져서요.

    이러니 아이들이 선생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이의 미래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학부모와 교원 간의 가치 공유예요. 이게 중요한 정책적 화두가 돼야 하고 교육감은 교원과 학부모의 중재자가 돼야 합니다. 진정한 교육은 학생이 중심에 있고 가정과 학교에서 일체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겁니다.”

    ‘합법적 정치활동’은 해야

    ▼ 예전에는 교원이 교권을 남용한 측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 점을 반성하자는 게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이었어요. 학교를 숨도 못 쉬게 하는 권위와 권력에 대한 항거였죠. 그런데 그 바람에 촌지가 어느 순간부터 돈봉투가 됐어요. 학부모와 투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촌지 근절운동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어요. 물질만능주의를 없애고 학교를 정화하는 데 기여했으니까요.

    문제는 그걸 일회성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계속 끌고 가면서 소명감 있는 교사들까지 매도한 거예요. 촌지를 상징적으로 내세워 교사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타락한 부류로 만들어버렸잖아요. 전교조가 교원의 자존심과 권위 회복운동도 함께 했어야 해요. 더구나 종북(從北) 사상까지 들고 나오는 건 심각한 문제예요. 절대적 지식을 가르쳐야 할 교사가 검증되지 않은 것을 강조하고 불법적인 정치활동을 하니 사회적으로도 지탄받는 거고요.”

    ▼ 교원의 정치활동이 잘못이라는 말씀인가요.

    “이제는 교원이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합법적인 정치활동 말이에요. 지금은 사회와 가정에서 학교를 보호하지 않아요. 학교가 가장 정치적인 집단이 됐습니다. 선거 기지가 됐어요.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시의원·구청장이 와서 돈 쥐고 교원 흔들고, 축사하고, 학부모를 알게 모르게 조직화해서 동원하고…. 이런 거 모르셨어요? 아주 심각한 수준이에요. 언론이 그걸 때려야 해요. 학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야 해요. 교원들은 학교를 지키고 싶어도 속수무책입니다.”

    안 회장은 “교육감 직선제야말로 가장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민주주의의 오만”이라며 “교육감을 직선제로 뽑으니 교육감이 막강한 권한을 쥐고 멋대로 칼을 휘두른다. 더구나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빌미로 교육감을 정치인과 같이 뽑으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뽑는 ‘깜깜이 선거’, 기호 1, 2번 받으면 당선되는 ‘로또선거’가 됐다”고 꼬집었다.

    ▼ 교원이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역설적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학교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학부모나 정치가도, 사회나 국가도 아니에요. 헌법 제31조 4항에 따르면 교육감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데 선출제가 이를 위배하게 하고 있어요. 교육감은 교육 전문성을 고려해서 별도로 선거를 해야 교육자치가 가능하고요. 학교의 한 구성원인 학부모를 주체로 여겨 교육감 투표권을 주고 있는데 학부모는 엄밀히 말하면 한시적 주체예요. 영속적 주체는 교원입니다. 교원이 학교를 지켜야 하는 주체로서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러기 힘들어요. 2014학년도부터는 교육감 후보 자격에 교육 경력도 없어져요. 막말로 교육대학원 나온 깡패가 기호 1, 2번 달고 후보로 나와 돈 뿌리면 당선됩니다.”

    ▼ 그렇게까지야….

    “2014년에도 정치인 선거와 같이 하기 때문에 어떤 후보인지도 모르고 뽑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예요. 정치인은 걸인의 손도 붙잡고 애환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직선제로 뽑는 게 맞아요. 그러나 교육감은 임명제가 맞아요. 그래야 권력을 분산시켜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어요. 직선제로 뽑으면 이해(利害)에 따라 교육을 재단해요. 교육감은 교육의 파수꾼이어야 하는데 교원의 손발을 묶어놓고 교육자의 길을 포기한 사람만 교육감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신체적 구속’은 훈육상 필요

    ▼ 그럼 누가 교육감을 뽑아야 한다는 건가요.

    “대통령이 뽑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면 임명제로 하는 것이 타당한데,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국회의원선거나 자치단체장선거와는 별도로 실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교육의 안전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우리가 계속 추구해야 하는 가치니까요. 아울러 교육감의 권력을 분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사권 분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예요. 교장과 교사 인사권을 다 쥐고 있어서 공교육이 기를 못 펴는 거예요. 교육이 권력보다 강해져야 합니다.”

    ▼ 교권이 추락한 근본 원인도 교육감 직선제에서 비롯했을까요.

    “사실이지 않나요? 그동안 선출직 교육감들이 학생인권 내세워 자기네 마음대로 조례 만들고 그걸로 공교육을 좌지우지하려다 보니 경기도 교육이 다르고 강원도 교육이 다릅니다. 그게 자치인가요? 교육의 근본 원리는 같아요. 전 세계적으로 교육이 완전한 나라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성공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아왔어요. 근데 지금은 교육감 직선제로 서구의 공교육 실패를 답습하고 있어요. 세계적인 국가들은 지금 교육개혁과 교육의 질을 논하면서 교원의 질 향상에 역점을 두고 있어요. 학생의 자유를 강요하지 않아요. 영국 교육부 장관이 2010년에 ‘이제 노터치(No Touch)는 없다’고 선언했어요. 아이들에게 손을 못 대게 했더니 학교가 엉망으로 돌아가니까 훈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거죠.”

    ▼ 훈육이라 하면 체벌을 말하는 겁니까.

    “체벌은 안돼요. 신체적 고통의 정도가 문제인데 구속은 필요해요. 가학(加虐)은 안 되고요. 왜 구속이냐? 한 선생이 교실 안에서 40명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구속 없이는 지식을 전수하기가 힘듭니다. 그 시기에는 강제성이 동원돼야 해요. 학교 안에서도 쉬는 시간에는 자유를 주잖아요. 그 자유를 학교 안에서 권리로서 향유하면 돼요. 윤리 기준과 사회통념에 부합하는 수준에서요.”

    ▼ 원래 꿈이 선생님이었습니까.

    “어릴 적 꿈은 군인이었어요. 교육자가 됐으면 하는 부모님 뜻에 따라 꿈을 접었죠. 그런데 군인과 교육자가 다른 것 같지만 같은 맥락이에요. 국가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라는 점에서요. 국민의 4대 의무가 뭡니까. 국방, 납세, 교육, 근로의 의무잖아요. 그중에서도 국방과 교육은 국가를 방어하고 구성원을 내적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에 의무이자 권리예요. 양성 평등 시대이니 이제 여자들도 이스라엘처럼 군대를 가야 합니다. 남자 교사를 더 양성하고, 국방의 의무를 여자가 나눠 져야 진짜 양성 평등인 겁니다.

    저도 교육대학원 교수지만 초등학교 교사의 85~90%가 여성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성비를 반반으로 맞출 순 없지만 제도적 보완이 절실합니다. 교장을 비롯해 모든 교사가 여성인 학교도 있어요. 사춘기가 빨라지면서 남학생 관리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여선생이 많아요. 교육에야말로 양성평등 정책을 도입해야 해요. 그래야 여성과 남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교사가 매 맞는 ‘막장’ 학교…공교육 살릴 길은 교권입국(敎權立國)”

    안양옥 회장이 올해 교총이 할 일을 설명하고 있다.

    ▼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잘 맞던가요.

    “고등학교 때 비교적 공부를 잘해서 체육선생님이 교수 만들려고 체육교육과를 보냈는데, 교사가 참 좋더라고요. 5년간 교편을 잡았는데 그 5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때 제자들을 지금도 만나요. 선생님 할 때는 아이들 이름과 번호를 사흘 만에 외웠습니다.”

    담임교사와 생활지도의 힘

    최근 KBS 드라마 ‘학교 2013’이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이 드라마는 성적제일주의에 빠져 병들어가는 학생들과 제 자식의 안위만을 위해 교장실을 들락거리는 학부모들, 무너진 교권 앞에서 속수무책인 교사 등 대한민국 학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드라마를 봤는지 묻자 안 회장은 “얘기만 들었는데 그런 드라마가 자꾸 나와야 한다”면서 “언론과 방송에서 학교의 실상을 객관적, 종합적으로 파악해 고발하고 학교를 새롭게 살리자는 메시지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과 방송은 사건 중심이지만 교육분야를 다룰 땐 사건보다 정책에 대한 비판이 우선돼야 할 것 같아요. 교사 한 사람의 특수한 문제가 자칫 학교의 총체적인 문제처럼 비칠 수 있거든요. 그게 고정관념이 돼서 촌지 받는 선생은 다 나쁜 놈이 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의사가 다 도둑놈이면 어떻게 내 몸을 맡기겠습니까. 학부모와 교원 간의 정서적 유대가 끊어진 것도 그런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 촌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돈봉투는 안 되지만 전문직에는 촌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의 표시로요.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도 촌지문화가 있어요. 공개적이니까 문제도 없고요. 근데 우리나라는 완전히 나쁜 것이 돼서 책상에 봉투를 집어넣는 게 아니라 주스 한 캔을 건네는 것조차 금기가 됐을 만큼 삭막해졌죠. 그래서 올해 ‘스승의 날 주간’을 만들자는 거예요. 그 기간을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는 기회로 활용하면 좋잖아요. 편지 주고받기 운동도 하고요. 한꺼번에 왕창 가서 꽃 수십 송이 사다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요. 사제가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돼야 교육의 힘이 생깁니다.”

    안 회장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칭송한 우리나라 교육의 힘은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를 같이하는 담임교사제도에서 비롯됐다”고 역설했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교육의 힘은 교과지도보다 생활지도에 있어요. 교과지도를 통해 학생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긴 힘들거든요. 그래서 교사도 생활지도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학생도 수업내용보다 선생과 대화하고 함께 활동하고 그런 걸 오래 기억해요. 교과지식은 머리로 받아들이지만 삶의 지혜는 마음으로 깨우치는 거니까요.

    담임선생의 역할이 중요하고 교사가 매우 어려운 직업이라는 걸 부모와 사회가 알아야 합니다. 학교를 이해시키고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학부모 교육이 절실합니다. 우리와 달리 서구에서는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를 각기 다른 교사가 담당해요. 서구 교육의 실패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근데 우리의 장점을 살리기는커녕 교과지도에만 치중하고 생활지도를 가벼이 여긴 탓에 학교질서와 교권이 무너지는 악순환을 초래한 겁니다.”

    그가 생활지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교원 인권침해 심각

    “고등학교 관선 이사직을 2년 반 하면서 애들한테 수요일마다 등반과 건강달리기를 시켰어요. 자율학습 전에 한 시간씩 운동도 하게 하고요. 그랬더니 전교 1등 학생 부모가 와서 ‘그런 걸 왜 시키느냐, 운동하면 집에 와서 잔다’고 항의하더라고요. 반박자료를 보여주면서 ‘운동을 하면 뇌 혈류량이 20% 증가해 학업성적이 올라간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자지 않고 집중력이 생긴다’고 설득했더니 그 뒤로 아무 말이 없었어요. 제 말대로 됐거든요. 탈선도 운동으로 예방할 수 있어요. 학교짱에게 방과 후 활동도 시키고 운동도 시키면 짱 노릇할 시간도 여력도 없어져요. 근데 학교에서 오후 3시면 나 몰라라 내보내니까 한창 혈기왕성한 애들이 기운을 나쁜 쪽에 쓰는 거예요. 학교가 바로 서려면 철학적이고도 전략적인 교육과 인적자원이 필요해요. 공교육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려면 정규수업은 물론 방과 후까지 고려해서 교사를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해야 해요.”

    ▼ 교원 충원이 시급합니까.

    “당연하죠. 교원 수가 20년 동안 정체돼 있어요. 교사도 공무원이라 행안부가 관리하는 공무원 총 정원제를 따라야 하거든요. 교사를 5만 명 늘려야 한다고 하면 다른 쪽에서도 다들 ‘우리도 죽겠다’고 하니 원만한 해결이 힘들어요. 게다가 교원 정원 정하는 건 교육부 소관이에요. 교육공무원은 특수성을 고려해 교육부가 예산 내에서 관리해야 해요. 1980~90년대엔 교원 수가 많이 늘었는데 지금은 학생 수가 준다는 이유로 안 늘려줘요. 대신 인구가 느는 지역에 학교 짓고, 주는 지역에선 학교 없애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어요. 교원 충원 없이 무상급식만 계속하면 편안한 수용소가 되는 거죠. 아침에 나와 교실에 앉아 있으면 공짜 밥 주지, 수업 안 듣고 잠자도 인권 존중해주지, 저녁엔 PC방이나 폭력서클에 가서 문제 일으켜도 학교는 속수무책이지.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교원을 늘려서 소규모 수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인수위에 가서 얘기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요.”

    ▼ 교원을 늘리면 체벌 문제도 해결될까요.

    “한 학급 학생이 8~9명밖에 안 되면 교사가 모든 학생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으니까 체벌이 필요 없어요. 하지만 1대 30이 넘어가면 반드시 일탈학생이 생겨요. 일탈학생을 인권 보호라는 이유로 방치하면 학교 안에선 통제가 안돼요.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생각이 바뀌도록 교화해서 통제하는 것, 신체를 구속해서 통제하는 것. 둘을 병행해야 효과가 좋아요.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 더 바람직하지만 생각이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거예요. 행동적 습관을 구속하는 건 효과가 빠르지만 지금은 직접체벌은커녕 벌세우고 무릎 꿇리는 간접체벌도 못해요. 인권조례에 따라 감화만 시키라는 데 그게 쉽나요. 아이들도 선생이 못 때린다는 걸 알고 있으니 통제가 될 리 없죠.”

    2011년 경기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교사의 학생체벌은 2009년 46건에서 2010년 39건, 2011년 35건으로 감소한 반면 학생의 교사 폭행은 같은 기간 13건에서 45건, 49건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때리는 교사보다 매 맞는 교사가 더 많아진 것이다. 또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570건이던 교권침해 건수는 2010년 2226건, 2011년 4801건, 2012년 상반기에만 4477건이 발생하는 등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단순한 수업방해를 넘어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욕설, 협박, 성희롱 등 교사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런 행위는 교사 개인의 인권을 넘어 교권을 무너뜨림으로써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의 왜곡된 인권의식이 교권 붕괴를 부추기고 불합리한 교원평가제도가 교원들의 사기를 꺾고 있습니다.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제대로 본 적 없는 학부모들의 만족도 평가, 학생들의 감정적 평가결과가 강제 집합연수라는 씻지 못할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교총 조사에 따르면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의 70%가 교권 추락을 명퇴 이유로 꼽았고, 올 2월 말 명퇴 신청자가 전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사기만 떨어진 게 아니라 교단을 등지게 하고 있습니다. 열정과 신념이 사라지고, 교사가 떠나가는 교단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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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 인권 침해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습니까.

    “중학교는 퇴학이 허용되지 않으니까 다른 학교로 강제 전학시키는 정도예요. 교사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어요. 정신질환이 생길 정도로 인권침해가 심각한 데도 이를 제재할 권한이 없고, 사회적 비난 때문에 학생을 고발하지도 못한 채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죠. 학부모들이 신자유주의 논리에 매몰돼서 ‘내가 세금 낸 돈으로 국가가 고용했는데 내 말을 들어야지’ 하면서 교육감 직선제를 밀고 있는데, 교육자는 여느 공무원과는 다르게 관리하고 보호해야 해요. 보호는 뒷전이면서 높은 도덕성만 요구해서야…. 교권침해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아무런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교총이 나선 것도 그 때문이죠.”

    올해 교총의 최우선 과제는 교원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교권회복 즉, ‘교권입국(敎權立國)’이다. 안 회장은 “우리 공교육의 약화는 교권의 약화에서 비롯된 만큼 교권회복이야말로 공교육을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교권보호 종합대책의 후속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교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하고 지원할 겁니다. 또 교총이 대한변호사협회와 손잡고 800여 개 학교에서 운영하는 ‘1학교-1고문변호사제’를 더 확대해 학교분쟁에 대한 예방과 중재 활동 등 선제적인 교권보호 활동을 전개할 거예요. 학교가 교권 침해사건 대처 능력을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대응 요령과 관련한 원격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고, 조만간 모든 교원을 대상으로 연수를 시행할 겁니다. 교권침해 사건 지원 외에 학교분쟁 해결 등과 관련한 현장 모범·미담사례 발굴 등을 통해 교권 신장을 위한 여론 조성에도 더욱 매진할 거예요.”

    안 회장은 새 정부를 향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모두 교사 출신이에요. 지금 오바마가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박 대통령 시대의 교육 전통입니다. 그 시절엔 교원들이 새마음운동의 기수였어요. 박근혜 당선인도 그처럼 교원의 사기를 한껏 북돋워주는 대통령이 되면 좋겠어요. 교육입국을 위한 교권입국의 꿈을 시원하게 이뤄주시길 바랍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때 행복교육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학생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행복교육의 요체는 교원과 학부모의 진정한 화해입니다. 국민대통합을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할 가치가 그것입니다. 교육가족의 일원인 만큼 교원과 학부모가 정서적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사제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래서 스승의 날 주간을 제청하고 인수위에도 제안했어요. 스승의 날 주간은 학부모와 교원이 서로 고마움을 주고받는 뜻 깊은 행사예요. 박 당선인이 이를 꼭 반영해 진정한 행복교육 시대를 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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