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키리졸브가 끝난 3월 2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조국통일 대진군 명령을 기다리는 조선인민군 군인들’이란 설명과 함께 인민군이 소총을 들고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도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김정은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무시와 조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린 데다 이제까지 이렇다 하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적도 없으며, 최고지도자로 공식 즉위한 이후에도 하는 일이 철부지 같고, 뭘 잘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것 같으며, 부하들을 확고히 장악한 것 같지도 않고, 이렇다 할 현실성 있는 국가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주민들이 두려워하거나 존경하는 것 같지도 않다는 식이다. 김정은이 이러한 이미지로 국제사회에 각인된 데는 이제까지 그의 행동거지 자체에서 유발된 인식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이처럼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김정은 자신의 내부 권력 장악뿐 아니라, 북한의 대외정책 추진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어느 나라가 철부지이자 권력을 장악했는지도 불분명한 ‘(골목의 소년) 대장’하고 심각하게 외교적 흥정과 거래를 추진하려 할 것인가. 주변 국가는 김정은 말고 아마도 그 뒤에서 그를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를 진짜 실력자와 전략가를 찾아내 담판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김정은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핵심 엘리트들도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 김정은과 주변 엘리트는 심각한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켜 상대방을 공황에 빠뜨릴 능력을 과시하고 각인시키는 것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라 간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이 두려워해야 하는 지략가와 권력자이자, 문제를 풀려면 반드시 상대해야 하는 ‘핵심’이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심어놓고자 하는 것이다.
北 정권이 감당하기 힘든 부담
북한의 이 같은 전략이 얼마나 성공을 거뒀는지는 미지수다.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북한 정권이 추구한 것은 김정은이 내부를 확고히 장악하고 국제사회가 두려워할 만한 명실상부한 지도자이며, 따라서 응당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존중해야 하지 않느냐, 존중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복이 있거나 당신들이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는 암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의 정세 교란 능력을 다시 평가하게 된 것은 사실이며, 나아가 ‘철부지’이기 때문에 한계를 넘어선 오판을 감행할 수 있고, 그 때문에 특별히 위험하다는 우려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국제사회에서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라는 사실엔 큰 변화가 없다. 더욱 불운한 것은 중국 내부의 민간 여론에서 김정은에 대한 무시와 조롱이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자세는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지만, 중국 내부의 부정적 여론은 음으로 양으로, 특히 중기적으로 중국 정부가 북한 정권을 다루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중국의 여론이 이처럼 부정적인 것은 앞으로 김정은과 북한 정권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협박과 도발의 단계적 고조는 실제로 북한 정권에 상당한 부담 증가를 초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내부 긴장과 동원 상태가 장기화하는 것에서 초래되는 부담이다. 군대와 주민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일부 부유한 주민의 동요를 반영하는 달러 사재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둘째, 군대의 준비 태세를 높이면서 대량의 전쟁비축물자를 탕진하고 있다. 전쟁비축물자는 긴장 장기화가 초래하는 주민생활 불안정을 완충하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군사동원 때문에 생산과 상업활동도 차질을 빚고 있다. 셋째, 지도부 내부에도 현재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회의와 논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그동안의 대내외 긴장고조 정책으로 재정과 물자를 탕진한 가운데 춘궁기에 접어들었고, 5월이면 ‘모내기 전투’에 국가적 힘을 집중해야 한다.
대외 관계에서의 부담과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첫째, 북한 정권이 도발과 협박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상승시키는 가운데 긴장고조 수준과 위기의 ‘판’이 북한 정권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질 수 있다. 외견상으로는 협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지만,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이 보복할 빌미를 주지 말라”고 비밀리에 지시했다고 한다. 둘째, 북한 정권의 행동은 중국 정부와 주민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이것이 당장 중국의 대북정책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서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셋째, 미국이 앞으로 북한 정권의 고통을 극대화할 정책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명분을 줬다. 유엔 제재와는 별도로 미국 정부는 북한의 불법활동 규제와 금융제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의 합리적 이성과 현명한 행동능력을 불신하게 될수록 북한 내부의 인권 참상 폭로 및 정보 유입 활동이 강화될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과의 협상에 대한 회의가 커졌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어젠다를 장악할 협상 기회를 얻는 게 어려워질 것이다.